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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193화 (304/356)

< 낭만필드 - 193 >

“벨기에의 전설이라... 그것 참 멋진 말이군.”

콤파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성배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성배가 물었다.

“뭘? 뭘 어떻게 하겠냐는 건데. 벨기에 이야기라면 당연히 너랑 같이 위로 올라가야지.”

콤파니는 무슨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말했다.

하지만 성배가 말한 뜻은 그게 아니었다.

“누가 그거 물었냐. 언제까지 그렇게 벤치에 앉아있을 거냐는 거다.”

콤파니의 현재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경기력이 조금씩 살아나고 리그 적응도 완료되는 듯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다시 벤치에 앉아야 했다.

“글쎄. 그게 내가 어떻게 한다고 되는 건가. 마크의 뜻에 달린 거지.”

콤파니도 답답할 것이었다.

겨우 길이 보인다 싶었는데, 데 용과 배리가 영입되며 다시 길이 막혀버렸다.

센터백으로도 뛴다고 하지만, 여기는 아스날 무패 우승 멤버 투레와 차기 잉글랜드 주장 감이라는 마이카 리차즈, 그리고 얼마 전 2,400만 파운드에 영입된 레스콧까지 있었다.

일단 지금은 답답하기만 했다.

“내가 그리는 FIFA 랭킹 1위 벨기에는 네가 자리를 잡아줘야 가능한 거다. 정신 좀 빨리 차리고 자리 좀 잡아라.”

콤파니를 보면 참 답답했다.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재능인데, 운도 좋지 않고 중요한 시기에 부상까지 당하면서 이래저래 밀린 것이었다.

선수의 커리어에 있어서 ‘운’이라는 요소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그건 참 고맙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나도 나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은 여전하니까. 솔직히 이번 시즌 안에 제대로 보여줄 자신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다른 클럽으로 이적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여전히 콤파니는 자신이 넘쳤다.

확실히 그럴 만도 했다.

신체 조건도, 기량도, 재능도, 뭐 하나 부족하지 않은 콤파니가 자신감이 없다면 그것도 이상할 터였다.

“이번에 스페인을 상대로 좋은 모습만 보여주면... 알지? 바로 스타되고 기회까지 온다는 거.”

지금 상황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시점에서 스페인은 도대체 누가 스페인을 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강의 포스를 자랑했다.

특히 비야, 토레스, 실바 등으로 이루어진 공격진의 파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 상황에서 이들을 상대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 맨체스터 시티와 감독 휴즈 역시 콤파니의 가치와 포지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것이었다.

“당연하지. 나도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콤파니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벨기에 국가대표팀에서는 부동의 센터백으로 활약 중인 콤파니였다.

비록 전임 감독이었던 반더레이켄의 재임 기간 막판에 잠깐 눈 밖에 났던 적이 있지만, 베우스만테른 감독은 안더레흐트 시절 믿을맨으로 활약했던 콤파니를 잊지 않았다.

스페인과 아르메니아 2연전에서 센터백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콤파니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것이었다.

“스페인 공격수들을 완전히 발라버려. 그러면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해줄 테니까.”

성배에게도 월드컵 진출은 꼭 필요했다.

벨기에가 팀으로써 정점에 오를 시기는 2014년으로 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2010년에 월드컵을 경험해보지 못한다면, 전력이 아무리 좋아도 불안했다.

이번 월드컵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콤파니가 제 자리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

“너한테 맡기라고? 하하, 어떻게 해주려고. 마크랑 싸우기라도 하게?”

성배의 말이 그냥 지나가는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콤파니는 그저 웃었다.

하지만 성배는 진심이었다.

“필요하다면. 못할 것도 없지.”

팬들이 자신에게 보내주는 환호와 사랑, 자신이 받고 있는 엄청난 주급, 자신에게 팀이 투자한 이적료와 시간 등.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유리했다.

커리어도 보잘것없고, 선수 영입을 제외한 다른 능력들도 특별하지 않은 마크 휴즈 정도의 감독은 꺾어낼 수 있었다.

*   *   *

“스페인을 한 단어로 설명하라면 결국 티키타카죠. 세 단어로 설명하라면 숏패스, 점유율, 압박이고요.”

경기를 앞두고 베우스만테른 감독은 선수들에게 스페인전 전술에 대해 설명했다.

극강의 모습을 보이는 스페인이었지만, 벨기에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포기할 수 없는 경기였다.

“일반인들은 이 티키타카가 패스와 탈압박에 중심을 둔, 얌전하고 예쁘장한 전술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님은 다들 알고 있겠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누구보다 터프하고 거친 전술 중 하나예요.”

아무래도 아름다운 패스들과 화려한 공격 장면이 주가 되어서 그런지, 평범한 팬들은 티키타카를 얌전하게 보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전체적으로 간격을 좁히느라 수비라인까지도 하프라인 근처에 올라오는 전술이 몸싸움을 피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티키타카를 완성하기 위해서 스페인 선수들은 누구보다 많이 뛰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달려들어요. 선수 개개인의 체력과 수비력은 전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입니다.”

비어있는 뒷공간으로 패스를 내주지 않기 위해서 스페인 선수들은 전방부터 강하게 압박해 들어왔다.

그리고 스페인의 살아있는 레전드, 카를레스 푸욜의 수비 조율 능력 때문에 넓게 펼쳐진 뒷공간을 활용하는 공격도 쉽지는 않았다.

“일단 이기는 것보다 지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세요. 그리고 기회가 생기면... 주! 주의 킥을 믿어봐도 되겠죠?”

명실공히 현재 세계 최강의 팀인 스페인을 상대로 벨기에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베우스만테른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골대 앞에 흔히 버스를 세운다고 말하는 텐 백에 가까운 전술을 준비했고, 기회가 날 때만 역습으로 전개하라고 지시했다.

역습의 시작은 당연히 성배였다.

“당연합니다. 맡겨만 주시죠.”

게다가 스페인의 전술은 4-4-2 다이아몬드.

윙어가 없었다.

아무리 전방 압박을 활발하게 한다고 해도, 측면 수비수인 성배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윙어가 있을 때와 비교해 약할 수밖에 없었다.

*   *   *

“사비 알론소, 사비에게. 그리고 곧바로 실바, 다시 사비. 스페인의 패스가 끊기질 않습니다.”

경기 시작 후, 예상대로 스페인은 짧고 정교한 패스로 벨기에 선수들을 흔들었다.

중원에서의 완벽한 패스 플레이에 펠라이니, 데푸르, 시몬스 세 명의 벨기에 미드필더들은 정신없이 흔들렸다.

다행히 세 선수 모두 활동량이 많은 편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활동량이라도 부족했다면 일찌감치 어디 한 군데는 뚫렸을 것이었다.

“부스케츠, 실바에게 찔러줍니다! 실바, 패스하는 척 하면서 돌파 시도!”

이렇게 계속 이어지는 패스가 왜 무서우냐면 스페인을 상대하는 상대 선수들은 자유로운 상황에서 나올 패스가 무섭기 때문에 공을 소유한 선수가 바뀔 때마다 계속해서 프레스를 걸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소유권이 바뀌고, 그것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결국 지치기 마련이었다.

프레스가 약해진다는 뜻이었다.

그때가 스페인의 공격 타이밍이었다.

‘미드필더만 있는 게 아니라고!’

왼발잡이인 실바는 무의식적으로 벨기에의 왼쪽 측면을 노렸다.

중앙에서 왼쪽으로 빠져나오는 실바를 향해 라이트백으로 출전한 성배가 달려갔다.

“실바의 돌파! 페널티 박스 진입 직전에 태클로 저지하는 주성배!!”

실바의 돌파는 타이밍이 완벽했던 성배의 태클에 저지당했다.

오늘 벨기에는 극단적인 수비 전술을 들고나왔다.

당연히 선수들끼리의 간격이 좁았다.

미드필더들과의 중원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파에 성공한다고 해도 곧 수비수들과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스페인도 고생 좀 할 것 같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제 우리의 수비진은 완벽히 자리 잡았어요. 마음먹고 수비에 집중하면 스페인도 애를 먹을 수밖에 없죠.”

왼쪽의 베르마엘렌, 중앙의 콤파니와 반 바이텐, 오른쪽의 성배, 백업으로 베르통헨과 알더베이럴트까지.

유로 2008 예선 막판에 완성되어 벨기에의 막판 돌풍을 이끌었지만, 이후 구성원들이 부상과 기타 이유들로 번갈아 빠지면서 가동되지 못했던 수비진이 오늘 오랜만에 다시 가동되었다.

이제는 그때보다도 훨씬 더 발전한 이들이었다.

“바이에른 뮌헨 소속의 반 바이텐과 맨체스터 시티 소속의 주, 콤파니. 그리고 베르마엘렌까지도 이제 아스날 소속으로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하지 않았습니까?”

“백업인 베르통헨과 알더베이럴트 역시 네덜란드 명문 아약스의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 중이죠. 수비진의 이름값만큼은 이제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아요.”

분데스리가 최고의 클럽인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 센터백 반 바이텐, EPL 유일의 무패 우승을 달성했던 아스날의 주전 센터백 베르마엘렌, 무섭게 치고 올라와 빅4를 위협하는 맨체스터 시티의 성배와 콤파니까지.

주전 포백 라인의 네임밸류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어지간한 나라들은 이런 선수들로 수비진을 구성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성배와 헤이팅아, 베르마엘렌이 연달아 이적하면서 베르통헨과 알더베이럴트 역시 네덜란드 명문 아약스의 주전 센터백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 최고의 수비진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런 선수들을 중심으로 텐 백 전술을 활용하고 있으니, 스페인도 쉽게 골문을 열지 못했다.

‘중원에서 이렇게 밀리면 답이 없는데.’

하지만 성배는 현재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실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다.

당장 수비진에서 볼을 바깥으로 걷어내기만 하면 바로 스페인이 볼을 잡았고, 벨기에 미드필더진 역시 수비에 가담하느라 바빴다.

‘언젠가 한 골 정도는 내줄 확률이 높은데. 그렇게 한 골 내주면 두 골 주는 건 더 쉽고, 그때부터는 파티지. 스페인 선수들의 파티.’

솔직히 이런 전술은 대놓고 비기자는 전술이었다.

득점을 위해 역습을 노리거나 세트피스를 노려야 했다.

양쪽 측면 윙어 아자르와 뎀벨레는 물론이고 최전방 스트라이커 송크까지 벨기에 진영으로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는 상황에서 푸욜을 중심으로 한 스페인의 수비를 뚫고 슈팅 한 번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계속해서 이렇게 얻어맞는 동안 한 골도 내주지 않기는 힘들었다.

한 번 뚫려서 한 골을 내주면 또 한 골 내주는 건 훨씬 더 쉬웠고, 다음부터는 우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티키타카가 어떻게 무너졌더라. 빠른 윙어와 타겟 선수를 활용한 롱볼 축구. 이게 다였나?’

수비를 단단히 하는 것도 좋지만, 날카로운 무기 한 개는 무조건 필요했다.

성배는 전생에서 티키타카가 어떻게 무너졌는가를 떠올리기 위해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롱볼 축구의 핵심인 정확한 패스는 내가 하면 되고, 빠른 윙어는 에당이면 되겠지. 타겟은... 역시 마루앙?’

아쉽게도 뎀벨레는 발이 느린 편이었지만, 왼쪽의 아자르는 발이 빨랐다.

발이 빠르고 테크닉이 화려한 아자르와 제공권과 피지컬이 뛰어난 펠라이니.

이 두 선수의 장점이 스페인 수비진의 그나마 있는 약점이라는 걸 감안하면 분명 가능성이 있었다.

‘잘만 된다면...’

가능성을 엿본 성배는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물론, 일단은 경기에 집중하는 것이 먼저였다.

< 낭만필드 - 193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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