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192 >
시즌 개막전을 완벽한 승리로 장식한 맨체스터 시티는 이후에도 탄력을 받아 파죽지세로 승점을 쌓아나갔다.
비록 아직 팀으로서는 완성되지 못해 조직력에서 문제점을 노출했지만, 비싼 돈을 들여 모아놓은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이를 커버했다.
리그 2라운드와 3라운드, 울브스와 포츠머스를 상대로 연승을 거둔 맨체스터 시티는 리그 초반 3연승을 달리며 기분 좋게 시즌을 시작했다.
칼링컵 1라운드에서도 챔피언십의 크리스탈 팰리스를 상대로 가볍게 승리하며 2라운드에도 진출, 8월 한 달 동안 4전 전승을 거두는 호성적으로 시즌 첫 달을 끝냈다.
이는 전적으로 돈의 승리였다.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맨체스터 시티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첼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아스날, 에버튼, 토트넘 등의 경쟁자들이 2,500만 유로에서 4,000만 유로 수준의 돈을 쓰는 동안 맨체스터 시티는 1억 유로를 가뿐하게 넘어가는 이적 자금을 투자했다.
그 결과, 카를로스 테베즈,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주성배, 졸레온 레스콧, 콜로 투레, 루케 산타 크루즈, 가레스 배리, 등 이번 이적시장에서 대어로 꼽혔던 선수들을 대거 영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영입으로 자리가 없어진 다니엘 스터리지, 엘라누, 리차드 던, 채드 에반스, 겔손 페르난데즈, 카스퍼 슈마이켈 등을 헐값에 처분하며 대인배의 모습을 선보였다.
이번 이적시장의 흐름과 화제를 알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면, 딱 두 클럽의 이적시장 결과만 살펴보면 된다.
그 두 개의 클럽은 바로 맨체스터 시티와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맨체스터 시티보다도 훨씬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적인 투자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1기 갈락티코스와 크게 실패하고, 성적 부진 등의 이유로 사퇴한 페레즈 회장의 뒤를 이어 레알 마드리드 회장 자리를 차지한 인물은 라몬 칼데론.
칼데론은 비효율적이었던 갈락티코스 정책을 중지하고 ‘네덜란드 커넥션’을 꾸렸다.
뤼트 판 니스텔로이, 라파엘 판 더 바르트, 아르옌 로번, 베슬리 스네이더, 클라스 얀 훈텔라르, 로이스톤 드렌테 등 네덜란드 국가대표 6명이 한 팀에 속한 것이었다.
이들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지만, 드렌테의 기량 부족, 훈텔라르와 판 더 바르트의 적응 실패, 판 니스텔로이, 스네이더, 그리고 ‘그’ 로번의 부상이 겹치며 지난 시즌 무관에 그쳤다.
게다가 이 커넥션을 주도한 칼데론 회장까지 부정 선거 논란으로 사퇴했으니 네덜란드 커넥션의 붕괴는 당연했다.
다시 회장직에 복귀한 페레즈는 칼데론의 색깔을 지우고, 무관의 한을 풀고자 갈락티코스 2기 정책을 천명했다.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6,500만 유로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 AC 밀란의 카카를 영입한 레알 마드리드는 곧이어 9,300만 유로라는 역대 최고 이적료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까지 영입한 것.
두 선수에게만 3,000억을 넘게 투자했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멈추지 않았다.
올랭피크 리옹의 신성, 카림 벤제마를 3,500만 유로에, 리버풀의 핵심 미드필더 사비 알론소를 3,000만 유로에, 발렌시아의 스페인 국가대표 수비수 라울 알비올까지 1,200만 유로에 영입한 것이었다.
이로써 90년대 후반과 00년대 초반, 세계 최고 선수 논란의 중심에 있던 지네딘 지난, 루이스 피구, 호나우두를 동시에 보유했던 갈락티코스 1기에 이어, 2기 역시 00년대 후반 세계 최고 선수 논란의 중심에 있는 리오넬 메시, 카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중 두 명을 보유하게 되었다.
2007년 발롱도르 수상자와 2008년 발롱도르 수상자가 2009년에 한팀이 된 이 상황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이번 여름, 이적료 순위 TOP 10은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가 점령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가 1위, 카카가 3위, 벤제마가 4위, 알론소가 5위였으며, 맨체스터 시티의 테베즈가 7위, 아데바요르가 8위, 레스콧이 9위였다.
성배 역시 전체 14위로 이적료가 적지 않았다.
스쿼드가 이미 두터웠던 레알 마드리드가 세계 최고만을 영입했다면, 이제 막 시작한 맨체스터 시티는 정상급 선수들 여러 명을 영입한 것이었다.
이외에도 바르셀로나가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 사무엘 에투에 4,500만 유로 가량을 더해 영입, 이번 이적시장에서 이적료 순위 2위에 오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역시 큰 화제를 모았다.
분데스리가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가볍게 경신한 바이에른 뮌헨의 마리오 고메즈나 신데렐라로 떠오른 바르셀로나의 드미트리 치그린스키, 유벤투스의 지에구, 펠리페 멜루 네덜란드 커넥션의 해체로 뿔뿔이 흩어진 바이에른 뮌헨의 로번, 인테르의 스네이더 등도 작지 않은 관심을 모은 선수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프리미어리그 내 강팀들이 두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시즌 우승팀인 맨유는 호날두가 빠져나간 자리를 위건의 스타, 안토니오 발렌시아로 메웠고, 호날두 외의 전력 이탈은 없었다.
사비 알론소와 알바로 아르벨로아를 모두 레알 마드리드에게 내준 리버풀 역시 알베르토 아퀼라니와 글렌 존슨을 영입하며 일단 한 시름은 덜었다.
클라우디오 피자로가 떠나긴 했지만, 전력 외 선수였고, 유리 지르코프와 다니엘 스터리지를 영입한 첼시는 소소한 전력 상승을 이뤘다고 봐야 했다.
다만, 아데바요르와 투레를 잃고 토마스 베르마엘렌 영입에 그친 아스날은 확실히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였다.
팀 내 핵심 센터백이었던 투레를 아약스에서 레프트백으로 활약하던 베르마엘렌으로 채웠다는 것에 많은 팬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물론 몇 달 뒤면 그 불만이 환호로 바뀌겠지만.
그리고 레스콧을 잃은 에버튼은 헤이팅아로 빈자리를 채웠다.
성배와 함께 아약스의 철벽 수비진을 이끌었던 두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것이었다.
팀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던 성배가 떠났지만, 레드냅 감독의 구상에서 빠진 대런 벤트, 디디에 조코라를 떠나보낸 것으로 전력 유출을 잘 막아낸 토트넘은 세바스티안 바송, 카일 워커, 카일 노턴 등을 영입해 수비진 강화에 힘썼고, 피터 크라우치를 영입하며 공격진의 부족한 높이 역시 보충했다.
이번 시즌, 토트넘의 성적도 지켜볼 만할 것 같았다.
* * *
“이제 나도 프리미어리거라고. 하하. 기다려라. 곧 따라잡아 줄 테니.”
8월 30일, 포츠머스와의 리그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성배는 국가대표 경기를 위해 스페인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경기를 이틀 앞둔 9월 3일, 이제는 국가대표 경기가 있을 때마다 당연히 소집되는 젊은 선수들의 모임에서 만난 베르마엘렌은 명문 아스날 입성을 자랑했다.
“그래, 그래. 잘됐다. 축하한다.”
“축하해, 토마스. 너도 이제 고생 좀 하겠군.”
대화를 나누던 성배와 콤파니도 잠시 대화를 멈추고 베르마엘렌을 축하해주었다.
물론, 젊은 선수들이고, 성격은 진중하지만, 장난기도 넘치는 두 사람이었기에 단순히 축하만 해주지는 않았다.
“여기 뱅상 보이지? 너도 이제 곧 헤매게 될 거다. 잘 빠져나와 보라고.”
“와... 덕담 고맙다, 친구들. 힘이 아주 팍팍 나네.”
성배와 콤파니의 연속 공격에 침몰한 베르마엘렌은 자신을 도와줄 선수를 찾다가 펠라이니에게로 향했다.
베르마엘렌은 네덜란드계, 펠라이니는 프랑스계였다.
모든 선수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네덜란드계와 프랑스계 선수들 사이에서도 절친한 관계들이 나오고 있었다.
“토마스가 마루앙을 찾아가네. 허, 참 믿기 힘든 광경이야.”
그 모습을 본 콤파니가 성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확실히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다.
특히 베르마엘렌과 펠라이니는 두 살의 나이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청소년 대표팀 시절에도 거의 만난 적이 없었고, 베르마엘렌은 유소년 시절부터 아약스 소속이었다.
벨기에 리그에서도 만난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닌데 프랑스계 선수와 네덜란드계 선수가 절친한 사이로 발전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게. 잘 된 거지. 그래도 국가대표팀 동료인데 저 정도 친분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
성배도 그 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보았다.
지난 1, 2년 동안 노력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아직 프랑스계와 네덜란드계가 따로 모임을 갖는 것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점차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이곳에서 모두 함께 모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선수들도 이 모임에 함께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미 고정관념이 깊게 자리 잡은 그들이 분위기를 흐릴까 봐 성배보다 먼저 반 바이텐이 막고 있었다.
“너랑 나, 그리고 토마스, 얀, 안토니, 마루앙, 악셀, 스티븐, 케빈, 에당, 무사, 마르텐에 토비까지. 여기 있는 이 친구들이랑 같이 뛰면 분명 2012년 유로 대회는 나갈 수 있겠지.”
이 자리에 모인 벨기에 국가대표 선수들만 벌써 열세 명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벌써 1, 2년 전부터 꾸준히 국가대표팀에 합류해왔던, 벨기에의 핵심 선수들이었다.
20대 초중반에서 심지어는 10대 후반까지,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굉장했고, 그래서 벨기에의 미래는 밝았다.
“그렇겠지. 이렇게 자주 모이면서 이 친구들 사이에 벽만 없어진다면... 어쩌면 몇 년 뒤에는 FIFA 랭킹 1위를 차지할 지도 모르지 않을까.”
성배 역시 여기 모인 선수들 면면을 살펴보며 감회에 젖었다.
정말 엄청난 선수들이었다.
이 중 몇몇 선수들은 경쟁에서 떨어져 나가지만, 어쨌든 이들이 중심이 되어 FIFA 랭킹 1위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이들을 모아놓고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꿈에서조차 상상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하하, FIFA 랭킹 1위라... 그거 참 과분한 꿈이군.”
성배의 말을 그저 허황된 꿈으로 치부하는 콤파니였다.
전성기에도 고작 15위에서 20위 사이였다.
그리고 맞이한 암흑기 끝에 FIFA 랭킹 30위권도 겨우 올라온 지금 상황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허황된 꿈이라고? 과연 그럴까?”
하지만 성배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예정된 사실이라는 것을.
그리고 전생에서의 상황보다 지금의 상황이 훨씬 더 좋았다.
최소한 선수단 통합의 실마리는 보이는 상황.
훨씬 더 빠르게 전력이 강해질 수 있는 토대가 갖춰진 것이었다.
“지금 전성기를 달리는 스페인을 봐. 카스티야계와 카탈루냐계 선수들의 반목이 어느 정도 해소되니까 바로 우승해버린 것을.”
항상 강력한 모습을 보이며 2대 메이저 대회인 FIFA 월드컵과 UEFA 유로 선수권 대회에서 모두 통산 성적 상위권에 올라 있었던 스페인이지만, 2008년까지 우승 경험은 없었다.
그래서 무관의 제왕이라 불리기도 했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로 대표되는 카스티야계와 바르셀로나로 대표되는 카탈루나계 선수들이 어느 정도 화합하면서 상황은 뒤바뀌었다.
2008년 유로 대회 우승은 물론이고 2007년 2월 7일부터 2009년 6월 20일까지 A매치 35경기에서 32승 3무라는 말도 안 되는 성적을 거둔 것이었다.
“우리라고 못할 건 없지. 세계 어디에 가져다 놔도 밀리지 않는, 재능있는 친구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반목만 사라지면... 우리도 스페인처럼 될 수 있어.”
벨기에도 스페인처럼 충분히 성장할 수 있었다.
프랑스계와 네덜란드계의 뿌리 깊은 반목.
이것만 사라지면 벨기에의 전력 역시 몇 배는 더 강해질 것이었다.
“그걸 네가 하는 거고?”
“그래. 너희가 못하겠다면, 아시아, 한국 출신인 내가 해주지.”
어차피 들어선 길이었다.
그리고 좋은 기회였다.
“해내기만 한다면... 나는 벨기에의 전설이 되겠지.”
FIFA 랭킹 10위권 이내에도 들어본 적 없는, 월드컵 1회 4강, 유로 선수권 대회 1회 준우승 이외에는 8강에도 진출해본 적 없는 벨기에였다.
이 벨기에를 FIFA 랭킹 1위로 이끌 수만 있다면, 그 중심에 선 자신은 분명 벨기에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생각해본 적도 없는 자리인데.’
애초에 가졌던 꿈은 이미 200% 초과 달성했다.
하지만 상황은 자꾸만 더 높은 자리를 노려보라며 성배의 등을 떠밀었다.
< 낭만필드 - 19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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