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189 >
“알랭.”
“예? 왜 부르십니까?”
계약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온 성배가 버크만을 불러세웠다.
성배는 어느새 뒤로 돌아 구단 건물과 함께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뜬금없이 어떠냐고 묻는 성배에게 버크만이 되물었다.
반사적으로 되물은 버크만은 뭔가 이 상황이 낯설지 않음을 느꼈다.
“멋지지 않습니까?”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
2002년, 맨체스터 시가 영연방 경기대회를 개최하면서 지은 4만5천석 규모의 경기장이었다.
메인 로드 스타디움은 80여 년 동안 사용되면서 많이 낙후되었고, 이후 250년 임대로 사실상의 영구 계약를 체결하여 새로운 홈 구장이 된 경기장이었다.
“그렇습니다. 멋지군요. 이번에는 일반인들이 봐도 이 경기장이 훨씬 더 멋져 보일 겁니다.”
“역시... 그렇죠?”
성배와 버크만은 서로를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 * *
[주성배, 벨기에 축구 역사상 최고 연봉 기록 세워!]
벨기에 대표팀 부동의 레프트백, 주성배가 드디어 일을 냈다.
맨체스터 시티와의 계약으로 벨기에 국적을 가진 축구선수 중 역대 최고 연봉 기록을 새로 썼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의 상징인 웨인 루니를 제치고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23세 이하 선수 중 최고 주급 선수가 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의 23세 이하 선수 중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 바이에른 뮌헨의 마리오 고메즈에 이어 세 번째 고액 주급자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스타 플레이어 가뭄에 시달려왔던 현지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
23세 이하 선수 중 레알 마드리드와 협상을 벌이고 있는 카림 벤제마가 주성배보다 위로 올라갈 것이 확실시되지만, 그래도 엄청난 규모의 계약이었다.
연령 제한 없이 수비수들의 주급만 따지면 7위로, 첼시의 존 테리나 애쉴리 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오 퍼디난드, 바이에른 뮌헨의 필립 람, 바르세로나의 다니 알베스, AC 밀란의 알레한드로 네스타 바로 다음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지난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열렬한 구애를 펼쳐왔던 맨체스터 시티가 화끈하게 실탄을 쏟아부었다는 평가.
물론, 주성배의 현재 기량이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것이 아니고, 맨체스터 시티의 압도적인 자금력 덕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국 프로는 성과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맨체스터 시티가 돈이 많아도 그 정도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면 이런 계약을 안겨줄 리도 없다.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이하 만수르)은 사업 수완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인물.
기분에 취해 이런 거대 계약을 성사시킬 위인이 아니다.
계약 규모와 맨체스터 시티의 열렬한 구애는 입단식에서도 증명되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주성배의 입단식에는 무려 4만여 명의 팬들이 관중석을 가득 메우고 주성배의 입단을 축하했다.
이례적으로 구단주 만수르까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입단식에서 주성배는 “자신을 향한 맨체스터 시티 팬들의 환호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라면서도 “아직 부족한 나에게 이렇게 큰 투자를 한 것은 맨체스터 시티를 한 단계 더 위로 끌어 올려달라는 뜻인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그 바람을 들어줄 자신이 나에게는 있다”며 자신감도 숨기지 않았다.
벨기에의 역사를 새로 쓴 주성배의 활약상과 다음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성적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ㄴ 와... 주급 11만 유로 수준이라던데, 도대체 연봉이 얼마냐. 진짜 제대로 성공했구나.
ㄴ 지금 내가 본 저 이름들이 정말 주와 비슷한 주급을 받는 선수들이 맞아? 말도 안 돼... 솔직히 말해서 주가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좋은 선수가 될 거라는 건 알았지만.
ㄴ 솔직히 11만 유로는 너무 오버 페이야. 맨체스터 시티가 아니었으면 주에게 이 돈을 투자할 팀은 없지. 개인적으로는 7만 유로 정도가 적당하지 않나, 싶은데.
ㄴ 위에 친구야, 7만 유로라니. 수비수가 공격 포인트 20개 가까이 올리는 데다가, 본업인 수비력도 확실한데, 고작 그걸로 되겠어? 내가 볼 때, 맨체스터 시티가 아니더라도 9만 유로까지는 문제없어.
ㄴ 7만이고 9만이고 11만이고 다 의미 없고, 나는 그냥 다음 시즌 맨시티가 기대된다. 주가 마킹된 레플리카는 당연히 살 거고. 어차피 주 때문에 토트넘 응원했는데, 주도 이적하고 뱅상까지 있으니 무조건 맨시티 빨아야지. 그런데... 주도 그렇고 뱅상도 그렇고 등번호가 애매한데? 이거 다음 시즌에 무조건 바뀌겠다. 그래도 사야겠지?
ㄴ 내가 볼 때 주의 13번은 몰라도 뱅상의 33번은 무조건 바뀐다. 저 등번호에 만족할 선수들이 아니야.
성배의 계약은 잉글랜드와 벨기에, 그리고 한국까지. 세 나라에서 모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벨기에 역사상 최다 주급인데 한국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박인진의 주급을 한참 뛰어넘은 그 규모에 한국 네티즌들은 벨기에보다 더 큰 불판을 지펴놓고 놀았다.
23세 이하 선수 중 세계 3위, 수비수 중 세계 7위의 고액 주급자가 된 성배는 이제 실력과는 별개로 화제성과 몸값만으로는 확실하게 월드클래스에 올라섰다.
* * *
“흠...”
성배는 자신의 앞에 놓인 자동차를 보며 턱을 매만졌다.
‘이걸 타도되는 건가...’
성배는 계약 직후 맨체스터 시티 담당자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아, 혹시나 아직 맨체스터에 머물 곳을 구하지 않으셨다면, 굳이 구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월세로 들어가세요. 1년이나 2년만 더 있으면 구단주께서 멋진 펜트하우스를 선물해주실 겁니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차도 굳이 사실 필요 없습니다. 구단주께서 재규어의 신모델로 선물해주실 겁니다. 재규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하나 사시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지금 타고 계시는 차를 보니 차에 까다로운 분은 아닌 것 같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혹시 가족분들에게 선물하시고 싶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한 대는 추가로 나갑니다.]
그 외에도 혜택이 수두룩했다.
전 좌석이 퍼스트 클래스인 선수단 전용기, 필요할 때마다 내주는 에티하드 항공의 퍼스트 클래스 티켓, 맨투맨 방식 개인 요리사 및 의료진의 24시간 서비스, 초호화 라커룸 시설이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었다.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 근처에 팬들을 위한 펍을 구입하고, 스타 셰프를 고용하고, 좌석에 히터 의자를 설치하고, 모노레일을 시티 오브 맨체스터 바로 앞까지 끌어오는 것은 팬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유스 선수의 가족들을 위한 초호화 아파트, 오페라 하우스, 카지노, 호텔, 셰익스피어 극장 등은 심지어 맨체스터 시를 위한 것이었다.
‘생활이 너무 갑자기 편해졌어.’
담당자의 조언대로 성배는 맨체스터 중심에 위치한 호화 주택을 얻었다.
어차피 맨체스터 시티를 떠나면 집이 필요 없고, 떠나지 않을 거라면 펜트하우스가 제공되기 때문에 굳이 집을 살 필요가 없었다.
돈이라면 이전에도 충분히 많았고, 넘칠 만큼 있었지만,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주어진 것들은 만수르가 제공해준 것이었고, 자신의 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잘 받으셨나.’
가족에게 주어지는 한 대의 재규어는 아버지에게 보내드렸다.
이미 좋은 차 한 대를 사드렸지만, 이번에 받은 차량은 그 이상의 것이었다.
어머니가 타시던 차를 팔고 전에 사드린 차량과 이번에 보내드린 차량을 두 분이 몰았으면 했다.
‘...공무원이신데 눈치 보이시려나.’
공무원이라는 특성상 너무 좋은 차를 몰기에는 눈치가 보이시겠지만, 그건 두 분이 알아서 하실 테고, 어차피 공짜인데 부모님 외에는 드릴 분도 없었다.
‘정 뭐하면 나중에 유빈이가 유학 와서 타도되겠지.’
유빈이도 어느새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이제 반년 정도 뒤면 졸업할 것이었고, 바로 유학을 와서 반년 정도 어학원에 다니다가 대학에 들어갈 것이었다.
그때 유빈이가 몰고 다니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뭐, 확실히 비싼 게 좋긴 좋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타보는 고급 세단이었다.
확실히 비싼 값을 하긴 했다.
* * *
“드디어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셨습니다. 1년 전부터 맨체스터 시티 팬들의 이적 요청이 끊이질 않았는데요, 그 이유는 알고 계시죠?”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첼시 양께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나가서 했던 말 때문이었죠.”
성배의 맨체스터 시티 이적이 계속해서 화제의 중심에 있었으니, 수많은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프리랜서 축구 칼럼니스트로서 TV 리포터로도 활동하는 첼시와의 인터뷰도 있었다.
“맞아요. 그런데 그 날 그 발언과 맨체스터 시티의 인수, 그리고 팬들의 뜨거운 반응까지. 일련의 과정이 정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거든요? 혹시 의도하신 건 아니죠?”
확실히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발언 이후 몇 개월 뒤 클럽이 인수되고 이후 1년 내내 이어진 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맨시티에 합류해 기록적인 규모의 계약을 맺은 과정은 누군가 시나리오를 쓴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음모론 수준이지만, 혹자들은 성배가 무슨 엄청난 정보통을 가지고 있어서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성배의 출신지가 한국인 것을 들먹이며 북한의 정보단체가 성배를 돕고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하하, 설마 그렇겠습니까? 그저 운이 좋았죠.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라는 클럽은 모르는 사람이 봐도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클럽이었습니다. 확인하셨지 않습니까? 팬들의 그 뜨거운 열기와 애정을. 이런 클럽에는 하늘에서도 행운을 내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역시 그렇겠죠? 누군가 예상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겉으로 거론한 사람은 주가 처음인데요, 솔직히 다른 팀, 그것도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노리는 토트넘 소속의 선수로서 하기 쉬운 말은 아니었잖아요? 그 발언의 의도가 따로 있었나요?”
최근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핫한 선수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첼시가 던지는 질문들도 굉장히 많았다.
첼시는 벨기에와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만, 잉글랜드 팬들은 잘 모르는 한국을 떠나 벨기에 국적을 따게 된 일화라든지, 한국에서의 일들,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거치며 있었던 일화들을 어떻게 알았는지 상세히 물어보았다.
“와우. 저보다 저를 더 잘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 저도 잊고 있던 일화들이 술술 나오네요.”
인터뷰가 끝났을 때, 성배는 첼시가 준비한 질문들에 혀를 내둘렀다.
“사실 제 고향이 맨체스터거든요. 지금도 따로 방송 일 없을 때는 맨체스터에 있어요. 그리고 시티즌이기도 하고요.”
이름과 달리 첼시는 맨체스터 토박이,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였다.
“지난번에 그 발언을 하셨을 때부터 팬이었어요. 그래서 시티에 합류하신 게 정말 기뻐요.”
첼시의 반응은 여타 맨체스터 시티 서포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도유망한 칼럼니스트의 응원이라... 나쁘지 않지.’
이 바닥에서 나름 유망주로 꼽히는 칼럼니스트가 바로 첼시였다.
풋볼 칼럼니스트가 쓴 한 편의 글이 꽤나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반가운 일이었다.
< 낭만필드 - 18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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