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187 >
물론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이런 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 것이 전부였다.
구단을 운영한다는 것이 FM 게임하는 것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섣불리 뛰어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문가를 고용해 실무를 맡기고 자신은 최종 결제 및 자금 지원 정도의 역할만 맡으면 또 생각보다는 쉬운 일이기도 했다.
“오! 로얄 앤트워프? 좋네. 그래도 로얄 앤트워프는 거의 700에서 800만 유로 정도는 들 텐데? 운영까지 하려면 우리 둘이 합쳐서 1억 유로는 있어야 하지 않나?”
“그 정도는 5년이면 만들 수 있어. 너도 이번 시즌 활약한 거 보니까 1, 2년 뒤면 1년에 그 정도 인수금액은 우습게 벌겠던데, 뭘.”
EPL,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의 파워였다.
맨체스터 시티의 핵심 선수로 자리만 잡는다면 1년만 딱 벌어도 인수 금액이 떡 하고 떨어졌다.
‘로얄 앤트워프라... 팬들에게는 항상 감사하지.’
로얄 앤트워프에 대한 감정을 정리했지만, 그때 팬들이 보내준 성원은 여전히 고마웠다.
팀에서 오래 뛰었다는 것만으로 로얄 앤트워프의 팬들은 성배에게 많은 성원을 보내주었다.
물론, 그 크기는 벨기에 국적의 핵심 선수들에 비해 작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성배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기댈 곳도 없고 앞날도 불투명한 데다가 사생활에서도 악재가 겹쳤던 성배가 16년이나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에는 팬들의 성원도 큰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었다.
‘선수로서는 아니지만... 구단주로서 로얄 앤트워프의 유니폼을 입고 주필러 리그로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과거의 잔재, 그리고 과거에 남은 미련 중 하나였다.
로얄 앤트워프를 주필러 리그로 올리는 것.
은퇴 후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축구계를 떠나면 뭘 해도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돈을 많이 버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생활할 생각이었다.
감독도 좋고, 구단주도 좋으니 일단 축구계에 남는 것이 지금의 계획이었다.
‘뭐, 은퇴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으니...’
은퇴까지는 10년도 더 넘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지금 굳게 다짐했던 마음도 바뀔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지금 할까 말까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구단 인수 계획 정도는 10년 뒤 엎어버릴 확률이 높았다.
즉, 지금 깊게 고민하는 건 심력 낭비였다.
“머리 아프다. 어차피 나중 일이니까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그것보다 중요한 대화를 해보자고.”
콤파니도 그것을 느꼈는지, 대화 주제를 바꿨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해야 할 성격의 주제였다.
“그것도 괜찮지. 이것보다 더 중요한 주제가 뭔데.”
“이번에는 맨시티로 합류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한 대화면 될까?”
뭔가 데자뷰가 느껴졌다.
안더레흐트 시절 시즌을 끝내고 이적을 준비할 때도 이렇게 끈질기게 물어왔었는데, 여전히 콤파니는 자신의 거취에 관심이 많았다.
“끈질긴 녀석. 너는 나보다 더 내 이적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당연하지. 다시 한 번 너랑 같이 뛰게 될지도 모르는데. 웨인도 좋은 선수지만, 아무래도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네가 같이 뛰기에는 조금 더 편하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콤파니는 이상하게 성배를 높게 평가해왔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입단 직후에도 이상하게 성배를 높게 평가했고, 데뷔전 때부터 국가대표 경험이 없는 성배의 귀화를 설득하기도 하는 등 꾸준히 성배에게 믿음을 보여왔다.
“뭐, 그건 나도 인정하지. 너랑 내가 같이 뛰면 그 공간만큼은 단단하겠지.”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성배 역시 콤파니와 호흡을 맞출 때 자신의 기량 이상을 발휘했다.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신뢰가 워낙 단단하다 보니 플레이하면서 딜레이도 없었고, 정확히 자신의 할 일을 해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말해봐. 이적하는 거야, 마는 거야?”
“글쎄. 일단은 긍정적으로 진행 중이다.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적시장이 열림과 동시에 이미 맨체스터 시티가 바이아웃 금액을 제시한 상황이었고, 레알 마드리드와 리버풀, 첼시 역시 일정 금액을 제시했다.
다만, 맨체스터 시티가 바이아웃을 제시한 것과는 다르게 호날두, 카카, 사비 알론소, 카림 벤제마를 동시에 노리는 레알 마드리드는 바이아웃을 제시하지 않았다.
리버풀 역시 글렌 존슨 쪽으로 더 무게를 두었고, 첼시는 보싱와와 이바노비치를 믿어볼 생각인 듯했다.
기본적으로 맨체스터 시티와 돈으로 경쟁할 수 있는 레알 마드리드는 여유가 없었고, 리버풀은 자금에 한계가 있어 글렌 존슨 쪽에 비중을 둔 상황.
첼시는 대체자원이 일단 있었기에 그 정도 돈을 쏟아부을 생각이 없었다.
즉, 성배가 지금 이적한다면 그 종착지는 매우 높은 확률로 맨체스터 시티라는 뜻이었다.
“호오! 그거 좋은 소식인데?”
“뭐,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지만 마. 어차피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을 테니까.”
이미 성배는 어느 정도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다.
***
['Prophet', 드디어 맨체스터에 강림? 본격 협상 돌입!]
[토트넘, ‘주성배 지키기’에 주력. 재계약 카드 꺼낼까.]
['Prophet', 주는 왜 시티 팬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가.]
성배가 맨체스터 시티와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했다는 소식은 잉글랜드를 뜨겁게 달구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런던과 맨체스터의 일부를 뜨겁게 달구었다.
지난 시즌을 통해 토트넘 축구의 핵심으로 떠올랐고, 성배가 빠지면 토트넘의 축구 자체가 흔들린다는 것이 증명되었기에 토트넘 역시 필사적이었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정신을 차려 좋은 경기력으로 이번 시즌을 기대하게 했던 토트넘이었다.
레드냅 감독과 구단 역시 이번 시즌을 구단의 숙원 사업인 챔피언스리그 진출의 적기라 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팀의 핵심 선수이자 모든 전술의 시발점 역할을 해주는 성배가 다른 팀도 아니고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필사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토트넘, 주와 재계약 위해 주급 7만 유로 제시!]
[압도적인 돈의 힘! 맨시티, 주에게 주급 9만 유로 제시!]
하지만 돈으로 하는 경쟁은 맨체스터 시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토트넘도 돈이 없는 클럽이 아니었지만, 맨체스터 시티는 그 차원이 달랐다.
모든 클럽들은 돈을 무한정으로 쓸 수 없었기에 선수단 전체의 연봉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했다.
토트넘도 마찬가지였다.
내부적으로 선수단 연봉 상한선이 존재했고, 이를 철저히 지켜야 했다.
그런데 성배를 잡기 위해 맨체스터 시티와 비슷한 계약을 제시하면 클럽에서 정한 연봉 체계가 무너졌고, 다른 선수들과 계약할 때도 성배의 계약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 토트넘은 절대로 맨체스터 시티와 비슷한 규모의 계약을 제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는 달랐다.
만수르의 압도적인 재력 아래 무섭게 전력을 강화하는 맨체스터 시티는 애초에 주급 체계와 연봉 상한선의 기준이 다른 팀들과의 비교를 거부했다.
아직 클럽의 명성과 위치가 경쟁 클럽들보다 턱없이 낮은 맨시티는 당연히 그 차이를 돈으로 메웠다.
영입된 선수들이 받는 주급이 다른 클럽의 위상이 비슷한 선수들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첼시와 주전 라이트백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조제 보싱와는 45,000유로 수준의 주급을 받고 있었는데, 맨체스터 시티의 백업 라이트백인 파블로 사발레타는 63,000유로의 주급을 받았다.
돈으로 붙었을 때, 토트넘이 이길 가능성은 0%에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그냥 0%였다.
[이적시장의 기준을 무너뜨리는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시티의 폭주, 이대로 괜찮나?]
[자본에 오염되는 스포츠의 순수성. 맨시티 자중해야.]
그런 토트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은 비슷한 처지의 다른 클럽들이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노리는 선수들은 모두 A급 이상이었다.
즉, 위상의 차이는 크지만, 우승을 노리는 빅클럽들과 같은 선수들을 노린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빅클럽도 전력 보강을 하기 위해 맨체스터 시티와 자금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돈을 풀면 풀수록 지금까지 프리미어리그를 지배해왔던 빅4 역시 돈을 풀어야 했고, 이는 예년보다 재정 지출이 커진다는 것을 뜻했다.
이것이 못마땅한 이들 클럽은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을 통해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적인 영입을 비난하는 논조의 기사들을 게재했다.
이들을 응원하는 팬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일수록 이들 팬들이 나서서 여론을 비판적으로 몰아갔다.
[돈의 유혹에 넘어가는 선수들, 축구를 시작할 때의 열정은 어디로 갔는가.]
[돈에 신의를 판 그들. 아데바요르와 테베즈의 미래는?]
[이익만을 좇는 주성배. 이번에도 1년 반 만에 이적?]
프로 선수라면 이적을 결정할 때 당연히 돈을 고려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맨체스터 시티와 연결되고 있는 선수들은 필요 이상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아데바요르의 경우 아스날 시절 이런저런 문제로 선수단의 기강을 해치고 불화를 일으켜 비난받을 만했지만, 아데바요르를 이적시키기로 결정한 것이 벵거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돈 때문에 배신하는 것처럼 기사가 나왔다.
테베즈 역시 복잡한 계약 문제와 선수 소유권 문제로 인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먼저 완전 영입을 포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좇아 팀을 배신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테베즈가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이적 과정에서 맨유와 퍼거슨 감독을 비난한 것이지, 이적을 결정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고 성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안더레흐트에서 1년 반, 아약스에서 1년 반을 뛰고 토트넘으로 이적한 성배는 마침 토트넘에서 1년 반을 뛴 시점이었다.
실제로 성배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조금 더 큰 리그, 조금 더 큰 클럽으로 이적을 선택한 것은 맞았다.
물론, 팀을 자주 옮기면 또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영입을 노리는 클럽 측에서 살짝 꺼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선수라면 당연한 것이었다.
팀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더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팀에 남은 스콜스나 긱스, 토티, 제라드 등은 물론 칭송을 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프로라면 성배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었다.
이것으로 비난받아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주성배, “비난은 신경 쓰지 않는다. 프로라면 당연한 것.”]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할 것.” 맨체스터 시티의 약진 예상인가, 토트넘 잔류 암시인가.]
['Prophet', 맨체스터 입성! 시티 서포터즈 수천 명이 마중나와.]
그리고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성배는 맨체스터에 도착했다.
‘오길 잘했어.’
성배가 맨체스터에 도착해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 내린 그때, 주변에는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팬들 수천 명이 마중 나와 환호를 보내주고 있었다.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준 성배는 돈과 성적이라는 삭막한 이유 이외에도 맨체스터 시티를 사랑할 이유가 또 하나 있음에 감사했다.
< 낭만필드 - 18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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