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180 >
“저거 보여? 나는 네가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인지 토트넘 선수인지 헷갈린다.”
리그 37라운드, 토트넘의 상대는 맨체스터 시티였다.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펠라이니와 만나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던 성배였는데, 이번 경기에서는 콤파니와 만나게 되었다.
“보기 좋네.”
성배와 콤파니의 시선이 경기장 2층 관중석에 걸린 플래카드 쪽에 가서 닿았다.
[Prophet!! 우리가 대신해서 예언 한마디 하지. 당신은 다음 시즌 시티의 하늘색 유니폼을 입게 될 거야.]
맨체스터 시티 서포터들은 여전히 성배에 대한 애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오히려 더욱 강해졌다.
지난 겨울 이적시장 기간에 만수르가 빵빵한 이적 자금을 안겨주었고, 만수르와 휴즈 감독이 직접 관심을 표현했으며, 자신들이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음에도 성배를 영입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원했다.
돈이 생겼지만, 쉽게 영입되는 선수는 매력없었다.
“그러니까 이제 좀 그만 튕기고 이적하는 게 어때? 어차피 지난번에도 바이아웃 제시해서 개인 협상권을 얻었던 거로 아는데, 너만 결정하면 바로 이적이잖아.”
“한 번 튕겼다, 한 번. 한 번 튕겼는데 다들 왜 이렇게 보채는 건지.”
구단 역사상 거의 최초로 돈이 많은 상황이었다.
팬들도 그동안의 설움을 씻어내기 위해 자신들이 원하는 선수의 이름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냈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카 등 비현실적인 선수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아게로, 제코, 배리 등 현실적인 선수들의 이름도 거론되었다.
그리고 이런 후보 중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선수는 예상외로 성배였다.
성배에 대한 맨체스터 시티 팬들의 사랑은 비정상적일 정도였다.
“그래서 온다는 거야, 안 온다는 거야.”
“몰라. 상황을 봐야 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니까 제일 조건이 좋은 쪽으로 갈 거다.”
아무리 친분이 깊은 콤파니라지만, 굳이 상세히 이야기해 줄 필요는 없었다.
여기서 자신이 맨체스터 시티로 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다면, 어떻게든 맨체스터 시티 보드진에 전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연봉 협상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래, 뭐.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신인 때부터 알아서 잘해왔는데.”
성배가 말하지 않기로 했으면 어떻게 해도 들을 수 없었다.
일찌감치 대답 듣기를 포기한 콤파니는 주제를 바꿔 벨기에 국가대표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펠라이니도 그랬지만, 최근 벨기에 선수들의 관심은 오로지 월드컵 무대 복귀에 있었다.
***
“중앙의 아일랜드에게 연결됩니다. 아일랜드, 오른쪽의 엘라누에게!”
오른쪽 윙어로 출전해 성배와 상대하게 된 엘라누는 아일랜드로부터 볼을 건네받았다.
둥가 감독 체제의 브라질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기량은 확실한 선수였다.
그러나.
“엘라누의 돌파를 비교적 어렵지 않게 막아내는 주! 중앙의 허들스톤에게 빼줍니다.”
원래 포지션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인 엘라누는 균형 감각은 좋았지만, 전생의 성배보다도 힘이 약했다.
그리고 중앙 자원이어서 그런지 스피드도 전문 윙어들보다는 떨어졌다.
뛰어난 드리블 테크닉과 번뜩이는 패스 센스는 엄청났지만, 돌파로 성배를 뚫어낼 정도는 아니었다.
“엘라누의 부진이 길어지네요. 부상으로 빠져있던 동안 아일랜드에게 포지션을 빼앗긴 이후 계속 내리막이죠?”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부동의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엘라누였다.
하지만 자신을 영입한 에릭손 감독이 경질되고, 부상으로 빠진 동안 아일랜드가 급성장, 연속 골을 기록해버린 탓에 자리를 잃고 말았다.
아일랜드에게 밀린 뒤, 측면으로 빠지려 해도 오늘 경기에서는 빠졌지만, 한 자리를 확보한 호비뉴, 그리고 나머지 경쟁자 보지노프와 페트로프, 라이트-필립스까지.
만만한 선수가 없었고, 출전 기회는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제 컨디션도 아니야.’
게다가 선수 본인의 컨디션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팀 훈련에서 코치와 언성을 높이는가 하면 공식 행사가 있었을 때는 나머지 선수들 모두 정장을 입고 참석했을 때, 혼자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결국, 최근에는 휴즈 감독에게도 반기를 들었고, 꾀병을 부리며 훈련에 불참하는 등 팀과 결별 수순을 밟고 있었다.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수비는 힘들지 않겠어.’
오늘 경기에서는 최소한 수비에서 어려움을 겪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엘라누에게서 시선을 뗀 성배는 반대편 측면으로 눈을 돌렸다.
“촐루카에게 투입. 촐루카, 앞으로 밀어줍니다. 레넌, 브리지와 대치합니다.”
성배의 시선이 닿은 곳은 맨체스터 시티의 왼쪽 측면, 그러니까 브리지가 선발로 출전해있는 곳이었다.
자신이 맨체스터 시티로 합류하면 주전 경쟁을 펼칠 브리지가 맡은 왼쪽 측면이었다.
‘확실히 다재다능한 선수야.’
크로스면 크로스, 태클이면 태클, 대인 마크면 대인 마크, 스피드면 스피드, 피지컬이면 피지컬, 이외에도 체력이나 활동량, 심지어 제공권까지도 갖춘 브리지였다.
드리블 스킬이나 돌파력도 나쁘지 않았다.
괜히 잉글랜드 국가대표가 아니었다.
‘그런데... 확실히 이렇다 할 장점도 없군.’
브리지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바로 ‘최고의 2위’였다.
큰 단점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렇다 할 장점도 없었다.
모든 부분에서 뛰어났지만, 확 튀는 자신만의 색깔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것 때문에 첼시와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애쉴리 콜을 상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밀려났다.
보통 브리지 정도의 기량을 갖춘 선수가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면, 어느 정도 경쟁이 되어야 했는데, 경쟁도 없이 밀려나게 된 데에는 자신만의 색깔이 없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충분히 승산이 있겠어.’
물론, 그렇다고 할지라도 브리지가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괜히 ‘최고의 2위’라 불리는 것은 아니었다.
비아냥이 섞인 닉네임이지만, 최소한 잉글랜드 레프트백 중 2위 자리는 굳건히 지킨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복도 심한 편이고, 나한테는 킥이 있으니.’
브리지의 최대 단점은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배는 브리지에게 없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뛰어난 후방 빌드업 능력과 정확한 킥을 보유한 성배는 팀의 공격 전술을 다양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잉글랜드 NO.2 자리도 얼마 안 남았지.’
브리지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인 잉글랜드 대표팀 레프트백 자리도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80년생 동갑내기인 콜과 자신보다 네 살이 더 어린 베인스가 점점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경기 외적인 이유로 브리지를 밀어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1년, 늦어도 2년 안에 브리지는 몰락하게 되어 있었다.
‘그 사건도 있고.’
잉글랜드를 넘어 전 세계 축구 팬들을 경악에 빠뜨린 그 사건도 있었다.
포지션 경쟁자인 브리지가 한 번에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 그 사건.
맨체스터 시티에 걱정 없이 합류할 수 있는 이유였다.
***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습니다! 토트넘, 주의 결승 골에 힘입어 맨체스터 시티를 2-1로 잡아냅니다. 승점 60점으로 에버튼에 이어 리그 6위 자리를 유지, UEFA컵 플레이오프 출전권 획득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킨의 리그 9호 골과 성배의 리그 5호 프리킥 골을 묶어 두 골을 득점한 토트넘은 보지노프의 만회 골로 따라붙은 맨체스터 시티의 추격을 막아내며 승리를 거두었다.
2-1로 승리를 거두며 승점 3점을 따냈고, 마찬가지로 승리를 거둔 에버튼과 승점 60점 동률을 이어나갔다.
똑같은 승점 57점을 기록 중이었던 아스톤빌라는 강등이 유력한 리그 19위 미들스브로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무승부에 그쳤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아스날과의 홈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면서 우승을 확정했다는 소식도 들어왔습니다. 2008/09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입니다.”
36라운드까지 리버풀에게 승점 6점 차로 앞섰던 맨유는 37라운드에 1점을 추가, 리버풀과의 승점 차를 4점으로 유지했다.
마지막 한 경기 만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승점 4점 차로 달아나며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프리미어리그 3연패의 금자탑과 함께 리버풀의 리그 우승 기록과 동률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자, 이제 리그 우승팀도 결정되었고, 챔피언스리그 진출팀도 결정되었습니다. UEFA컵 진출팀 세 팀 역시 결정되었습니다. 남은 건 토트넘과 아스톤빌라의 UEFA컵 플레이오프 진출권 경쟁과 웨스트 브롬과 함께 강등될 두 클럽을 정하기 위한 선덜랜드, 헐 시티, 뉴캐슬, 미들스브로의 경쟁입니다.”
2008/09시즌도 마지막 경기만을 앞둔 프리미어리그는 마지막 마무리만을 남겨두었다.
리그 운영진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라운드까지 강등팀이 결정되지 않았다.
흥행에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리버풀을 만난 토트넘은 안필드 원정에서 토레스와 베나윤에게 실점을 허용하며 1-2로 패배했다.
카윗의 맹활약에 성배도 1인분 이상은 하지 못했다.
로비 킨이 자신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않고 내버린 리버풀을 상대로 분노의 활약을 펼쳐 보였지만, 승부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리버풀에게 패배하며 시즌을 승점 60점으로 마무리한 토트넘은 뉴캐슬의 자책골에 힘입어 1-0 신승을 거둔 아스톤빌라에게 승점 1점이 밀려 7위를 기록, UEFA컵 3차 예선으로 떨어졌다.
비록 UEFA컵 플레이오프 진출 티켓은 놓쳤지만, 10라운드까지 강등권을 전전했던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리고 리그 우승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고, 준우승은 리버풀, 그리고 첼시와 아스날이 각각 3위, 4위로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했다.
5위 에버튼이 UEFA컵 플레이오프 출전권을 따냈으며, FA컵 우승팀과 준우승팀이 모두 자력으로 유럽대항전 티켓을 따낸 덕분에 6위 아스톤빌라가 UEFA컵 플레이오프 출전권을 가져갔다.
그리고 칼링컵 우승팀 맨유가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덕분에 리그 7위 토트넘이 UEFA컵 3차 예선 출전권을 얻어냈다.
이번 시즌, 활짝 웃은 클럽이 있으면 눈물을 흘린 클럽도 있었다.
리그 반대편에서는 마지막까지 강등권 탈출을 위한 전쟁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신기하게도 강등 탈출 경쟁을 펼치던 네 개 클럽들은 모두 상위권 클럽과 상대했고, 거짓말같이 모두 패배했다.
18위 뉴캐슬과 19위 미들스브로, 20위 웨스트 브롬이 강등의 아픔을 맛봤다.
가장 눈에 띄는 강등팀은 단연 뉴캐슬이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노리는 강팀이었던 뉴캐슬은 계속된 무리한 투자와 지나친 현장 간섭이 독이 되어 강등의 치욕을 맛봤다.
아스톤빌라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무승부만 거두어도 강등을 피할 수 있었던 뉴캐슬은 더프의 자책골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성배는 이번 시즌 리그에서 5골 11어시스트, 시즌을 통틀어서 6골 1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네 시즌 연속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와 함께 프리킥만으로 6골을 넣는 훌륭한 킥 능력까지 증명했다.
지난 시즌에 비해 스탯은 아주 미세하게 떨어졌지만, 프리미어리그 풀타임 첫 시즌에 이런 엄청난 성적을 찍어준 성배에게 수많은 클럽들의 관심이 몰려들었다.
< 낭만필드 - 18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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