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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174화 (128/356)

< 낭만필드 - 174 >

‘이건... 애매하네.’

일단 반더레이켄 감독과 싸울 필요는 없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월드컵 예선 6차전을 앞둔 반더레이켄 감독은 콤파니를 선발 명단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성배의 표정은 이번에도 애매했다.

‘4-5-1이라... 그래, 차라리 이게 낫겠어.’

콤파니를 투입해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반더레이켄 감독과 성배의 생각이 같았다.

그리고 지난 경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중원을 강화한 것 역시 좋았다.

비첼과 펠라이니, 무딩가이의 중원은 바로 전 경기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었다.

약점을 보완하는 것보다 장점을 강화하는 쪽이 나을 수 있었다.

‘측면보다는 중앙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인데...’

다만 수비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로 전 경기에서 네 골을 허용하는 동안 가장 큰 지분을 차지했던 시몬스가 여전히 중앙 수비수로 출전한 것이었다.

베르마엘렌이 왼쪽으로 옮기고 성배가 오른쪽으로 옮기면서 비어버린 중앙 수비수 한 자리가 시몬스의 것이었다.

‘차라리 스튜어트를 오른쪽에 넣고 토마스를 중앙으로 넣는 게 낫지 않았으려나.’

어디까지나 성배의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팀을 운영하는 건 감독의 역할이고, 감독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은 분명했다.

다만 성배의 생각과는 다를 뿐이었다.

‘오늘도 못 이기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들 텐데.’

이미 벨기에 내에서는 반더레이켄 감독의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메이저 대회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고, FIFA 랭킹도 암흑기에 빠진 벨기에보다 낮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상대로 2-4 대패를 당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만약 오늘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반더레이켄 감독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확률이 높았다.

***

경기 초반이지만 일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무딩가이, 펠라이니, 비첼 세 명이 중원에 포진하면서 지난 경기와 달리 중원에서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은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다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공격진은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주도권을 빼앗아 오지도 못했다.

“미시모비치,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빠집니다! 위험합니다! 무딩가이가 따라가지만, 그 전에 크로스!”

이비세비치가 빠진 상황에서 제코와 함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공격을 이끌고 있는 미시모비치의 활약이 눈부셨다.

지금도 중원에서 무딩가이를 가볍게 따돌리고 측면으로 빠지면서 중앙으로 위협적인 크로스를 올렸다.

‘젠장. 망했어.’

성배의 눈에 제코와의 몸싸움에서 또 한 번 밀려나는 시몬스가 보였다.

바로 전 경기에서 시몬스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쏠쏠한 재미를 봤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였다.

오늘도 제코는 의식적으로 시몬스를 공략했다.

‘제발 하나만 막아라.’

믿을 것은 이제 골키퍼밖에 없었다.

이미 제코의 머리에 닿은 볼이 골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고, 스틴슨은 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제코의 헤더! 아!... 들어갑니다. 제코에게 또 한 번 실점하고 말았습니다! 제코, 이번 유로 예선 여섯 경기에서 여섯 골을 기록하는 엄청난 활약!”

성배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모두가 인정하는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 최고의 선수 제코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제코의 헤더는 스틴슨이 어떻게 손을 써 볼 기회도 없이 그대로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아... 토트넘이 궤도에 오르니까 이젠 또 벨기에가 말썽이군. 입에서 욕이 떨어지질 않아.’

자신이 속해있는 두 개의 팀이 번갈아서 속을 썩였다.

겨우겨우 토트넘을 제 궤도로 돌려놓으니 제 궤도에 오른 줄 알았던 벨기에가 궤도에서 이탈해버린 상황이었다.

이래저래 속이 쓰렸다.

“시몬스의 센터백 기용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수비력이 나쁜 건 아닌데, 상대 장신 공격수를 전혀 막아내지 못해요. 아무래도 나이가 있고, 피지컬의 하락이 눈에 띄는 상황이기 때문에 상대가 피지컬이 좋은 타겟 스트라이커를 보유했을 경우에는 중앙 수비 역할이 버거워 보여요.”

걱정했던 대로 시몬스는 제코를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낮게 깔리는 패스와 제코의 돌파는 잘 막아주었지만, 공중볼 한 번에 바로 무너졌다.

“제코, 헤더! 아... 다시 한 번 들어갑니다. 선취 골을 허용한 지 고작 3분 만에 또다시 실점합니다.”

“공중볼에 전혀 대처가 안 되고 있어요! 지역 방어를 포기하고 아예 콤파니를 전담으로 붙이든지, 시몬스를 빼고 다른 수비수를 기용하든지 하는 변화가 필요해요. 시몬스는 제코를 막을 수 없어요!”

전반 12분에 선취 골을 허용한 벨기에는 고작 3분 뒤인 전반 15분, 두 번째 골을 실점했다.

이번에도 측면에서의 크로스에 이은 제코의 헤더를 막아내지 못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시몬스의 제공권을 구멍이라 판단하고 끈질기게 시몬스 쪽을 노렸다.

‘망했어.’

그렇다고 전반 15분에 선수를 교체할 순 없었다.

세 장밖에 없는 교체카드가 날아가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만약 교체하게 되면 시몬스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이 된다는 것이었다.

33세의 베테랑으로 A매치에만 70회 출전한 시몬스를 그렇게 대접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첩첩산중이군.’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파악되었는데,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이래저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

“미시모비치가 볼을 소유합니다. 전방을 살피는 미시모비치. 벨기에 수비진, 긴장해야 합니다.”

제코가 두 골을 넣으면서 공격의 선봉에 서서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그런 제코의 활약 뒤에는 미시모비치가 있었다.

팀의 공격을 조율하는 사령관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주었고, 벨기에 수비진은 그가 볼을 잡을 때마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악!!”

“아악! 위험한 태클! 비첼, 너무 거친 태클이었습니다! 주심, 급하게 달려옵니다!”

미시모비치가 다시 한 번 뭔가 만들어내려던 순간, 비첼의 태클이 그를 덮쳤다.

높이 떠올랐다가 떨어진 미시모비치는 고통으로 괴로워했다.

“주심, 과연... 아, 단호하게 레드 카드를 꺼냈습니다. 비첼, 퇴장당하고 맙니다.”

“아아...”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서 이제 수적인 열세까지 안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선수들은 주심을 둘러싼 채 항의했고, 중계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음... 뭐라 할 말은 없네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요. 퇴장이 맞습니다. 주심이 정확한 판단을 내렸어요.”

느린 그림으로 자세히 살펴본 중계진은 그저 주심의 판단이 옳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자국 선수라 할지라도 도저히 커버해줄 수 없는 파울이었다.

“태클이 양발로 거칠게 들어갔습니다. 미시모비치 선수,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어린 선수라서 순간적인 감정을 참아내지 못한 것 같네요.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면 물론 흥분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분노를 연료로 삼아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줘야지, 분노를 표출하면 안 되죠. 미성숙한 플레이였어요.”

양발을 모두 세우고 스터드가 보이게 들어간 아주 위험한 태클이었다.

다행히 먼저 몸을 띄웠던 것인지 미시모비치의 부상은 심해 보이지 않았지만, 굉장히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래저래 엉망이네.’

흘깃 바라보니 반더레이켄 감독은 머리를 싸매고 가만히 서있었다.

이미 경기를 포기한 듯 보였다.

비첼의 퇴장으로 인한 전술의 변화를 지시해야 할 상황인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 지면 그만두기로 정해져 있기라도 한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손을 놓을 리 없었다.

비공식적인 루트로 협회와 감독 개인 간에 이야기가 오갔을 확률도 충분했다.

‘마땅히 할 게 없기도 하고.’

지금 어떻게 변화를 줄 방법도 없었다.

비첼의 퇴장으로 미드필더의 숫자가 한 명 줄었지만, 미드필더 숫자를 충원할 수도 없었다.

지난 경기와 달리 오늘은 양쪽 윙어가 모두 공격 자원인 미랄라스와 뎀벨레였고, 수비를 빼서 중원을 채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래저래 상황은 점점 암울해져만 갔다.

“경기 끝났습니다. 미랄라스가 한 골을 만회하며 1-2까지 따라갔지만, 결국 더 이상의 골은 나오지 않았고, 1-2,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게 또 한 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2연전 결과는 2전 전패.

내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했던 선수들과 팬들 모두에게 충격적인 결과였다.

“스페인은 별개로 놓고, 아르메니아와 에스토니아도 빼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터키, 그리고 벨기에가 2위 싸움을 벌일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 중요한 경기에 2연패라니. 2010 남아공 월드컵도 조금씩 멀어지네요.”

이번 2연패는 타격이 너무 컸다.

일정의 절반이 끝난 5차전까지 2승 1무 2패로 아쉬운 성적을 거뒀던 벨기에는 후반기 첫 경기에서마저 패배하며 2승 1무 3패로 플레이오프 진출권에서도 멀어졌다.

남은 네 경기가 굉장히 중요했다.

***

[르네 반더레이켄 감독, 결국 경질! 후임 감독은?]

[칼을 빼든 벨기에 축구협회, 대책은 있나.]

결국, 반더레이켄 감독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경질되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2연전에서 전패, 또한 선수단에서 불만의 소리가 조금씩 새어나오는 것도 경질의 이유였다.

[반더레이켄 전 감독, 현장에서 은퇴한다! 행정직 전환 예정.]

[“너무 지쳤다. 이젠 쉬어야 할 때.”, 반더레이켄 전 감독, 담담히 심경 밝혀.]

이로써 반더레이켄 감독은 벨기에를 메이저 대회 본선에 올려놓겠다던 본인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감독 커리어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KAA 헨트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해 스탕다르 리에쥬, 안더레흐트, 헹크 등 주필러 리그 내 명문 클럽을 거의 다 돌고 독일의 마인츠나 네덜란드의 트벤테 등에도 진출했던 반더레이켄 감독의 커리어는 여기까지였다.

53년생으로 55세의 젊은 감독이었지만, 감독직에 대한 열정을 잃었고, 무엇보다 너무 많이 지쳐있었다.

반더레이켄 감독의 경질이 발표된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후임 감독에게로 쏠렸다.

선수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좋지 않은 벨기에 대표팀.

커리어를 쌓으려 한다면 이만큼 좋은 기회도 없었다.

[벨기에, 일단 베우스만테른 대행 체제로.]

[프랭키 베우스만테른 감독 대행 체제, 월드컵 본선 복귀를 이룰 수 있을까.]

시장에 나와있는 마땅한 감독 후보를 찾지 못한 벨기에 축구협회는 일단 감독 대행 체제를 선택했다.

현재 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던 베우스만테른을 감독 대행으로 올린 것이었다.

감독이 물러나면서 코치진도 함께 물러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베우스만테른은 감독 대행직을 수락한 덕에 일단 한고비를 넘겼다.

성배에게도 익숙한 인물이었다.

성배가 안더레흐트에서 활약하던 시절, 안더레흐트의 감독을 맡았던 베우스만테른이 대행이라도 일단 감독으로 취임한 덕분에 적어도 낯설지는 않았다.

벨기에도 이제는 정말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남은 네 경기에서 한 번이라도 패한다면 다음 라운드 진출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베르카우테른 감독의 리더십, 그리고 벨기에 축구 협회의 빠른 정식 감독 인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했다.

< 낭만필드 - 174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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