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159화 (283/356)

< 낭만필드 - 159 >

“중앙에 베르바토프, 그리고 테베즈!”

호날두는 보다 정확한 크로스를 위해 중앙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중앙의 공격수들과 가까워질수록 정확한 크로스를 올릴 수 있는 것이 당연했고, 이를 막기 위해 성배와 우드게이트가 달려들었다.

“호날두, 크로스!”

성배와 우드게이트가 다가옴에 따라 호날두도 급해졌다.

베르바토프는 몸싸움을 즐기지 않는 성격답게 좋은 자리에서 살짝 물러나 있었고, 테베즈는 자신보다 20cm 가까이 큰 도슨에게 막혀 있었다.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크로스를 미룰 수 없었다.

“주, 우드게이트! 주, 한발 앞서 걷어냅니다! 멋진 태클!”

성배의 태클은 다행히 늦지 않았다.

호날두의 크로스를 발끝으로 겨우 걷어낼 수 있었고, 볼은 골라인을 넘어갔다.

“후욱, 후욱...”

중심이 무너졌음에도 억지로 몸을 움직여서 그런 것인지 종아리에 살짝 뻐근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막아냈다는 것에 만족했다.

“이런. 완전히 제낀 줄 알았는데.”

“후욱... 그렇게... 쉽진 않지.”

호날두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어주었다.

조금 전에 당한 굴욕으로 속은 들끓고 있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으, 으윽...”

“뭐야? 왜 이래?”

호날두를 보며 미소 짓던 성배는 호날두의 당황하는 표정에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리고 따라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 우드게이트 선수, 부상인 것 같은데요? 손목을 부여잡고 있어요.”

“아, 그런 것 같습니다! 괴로운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상은 안 되는데요.”

성배와 함께 몸을 날렸던 우드게이트가 손목을 부여잡고 그라운드 위를 구르는 중이었다.

태클을 하는 상황에서 우드게이트와 접촉했던 부위는 정강이 부위였고, 그나마 무릎이나 발 같은 부위에서 점으로 부딪힌 게 아니라 정강이 부분에서 선으로 부딪힌 것이었다.

충돌에서 부상을 당할 이유는 없었다.

“조나단! 어이! 조나단! 괜찮아? 왜 그래?”

“손, 손목! 꺾인 것 같아, 크윽...”

손목 쪽이라면 태클을 위해 땅을 짚을 때 잘못 짚었을 확률이 높았다.

숨을 쉬는 것과 비슷한 빈도로 몸을 날리는 수비수들은 거의 하지 않는 실수였다.

“어떻게 된 거야?”

호날두 역시 상황을 궁금해했다.

걱정스럽다는 표정 역시 지었다.

서로 상대 팀으로 만났지만, 같은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부상은 굉장히 민감하고 예민한 부분임을 알았다.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깐만.”

성배는 무릎을 꿇고 우드게이트의 손목을 만져보았다.

아무래도 운동선수였기에 대충 부상이 심각한지 아닌지 정도는 만져봐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게 심각하진 않은 것 같은데, 내일이면 좀 붓겠네.”

손목을 만져 본 뒤, 성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 심각한 부상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우드게이트의 심각한 유리몸 기질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경기는 뛰지 못할 것 같았다.

“내일 붓는다고? 그 정도면 그래도 심각하진 않아서 다행이네.”

물론 다행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팀의 주장이자 수비의 핵심인 킹이 빠진 상황에서 기량만 따지면 킹에 크게 밀리지 않는 우드게이트까지 빠지는 것이었다.

수비에서의 타격이 심각했다.

“음...”

“그래도 오늘 경기는 힘들겠지? 이런, 우리에겐 최고의 상황이군. 경미한 부상이지만 오늘 경기는 뛰지 못한다는.”

복잡한 성배의 표정에 호날두는 미소를 지었다.

같은 선수가, 그게 아무리 상대 선수라도 부상 당하길 바라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상대의 핵심 선수가 아주 경미한 부상을 당해 경기에서 빠지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었다.

“뭐, 내가 팀닥터는 아니니까. 전문가가 봐야 알겠지.”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그맣게 희망을 걸어보았다.

한창 분위기가 좋은 시기였다.

여기서 맨유를 상대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면 분위기를 타고 확 올라갈 수 있었다.

“조나단이 빠지면 마이클이나 톰이 나오려나. 좀 편해지겠네.”

우드게이트는 현재 토트넘 수비진에서 킹, 성배와 함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선수였다.

우드게이트가 빠지고 누군가 투입된다면, 전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아, 주성배 선수. 교체 사인을 보내네요. 우드게이트 선수가 더 이상 뛰기 힘들다는 의사를 전한 모양이에요.”

결국, 우드게이트는 성배에게 교체 사인을 보내달라 부탁했다.

아직 팀닥터의 진단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고통으로 인해 선수 본인이 더 이상 뛰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면 교체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성배는 벤치를 향해 교체 사인을 보냈고, 벤치에서는 급하게 선수를 준비시켰다.

‘오늘도 계속 얻어맞다가 끝날지도 모르겠다.’

수비가 안정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공격력이 있어도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뒤가 안정되지 않았는데 앞이 잘 풀리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베일, 레넌, 모드리치 조합의 파괴력과는 별개였다.

‘오랜만에 제대로 붙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맨유만 만나면 이상하게 일이 꼬였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괜찮은 타이밍이었는데, 또 예상치 못한 악재로 경기가 꼬여가는 듯했다.

[IN - 22. 톰 허들스톤 / OUT - 39. 조나단 우드게이트]

그래도 도슨이 버텨주는 것이 다행이었다.

2006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킹과 함께 토트넘의 중앙 수비라인을 책임져주었던 도슨이었다.

비록 우드게이트가 영입되면서 주전에서 밀리긴 했지만, 킹과 우드게이트가 유리몸의 대명사처럼 된 상황이었기에 출전 횟수는 그 둘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2006 월드컵 당시 대표까지는 아니어도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도슨이라면 적어도 제 몫은 해줄 것이었다.

‘너무 눈치를 보는데. 지금이라면 차라리 내가 오른쪽으로 가고 촐루카가 중앙으로 옮겨가는 게 나을 텐데.’

촐루카의 원래 포지션은 라이트백이지만, 193cm의 장신을 활용해 중앙에서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라이트백 자리에서는 좋은 수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느 장신 수비수들처럼 스피드와 민첩성이 떨어진다는 약점을 가진 선수였다.

‘톰이 중앙 수비수로 나서는 것보다 촐루카를 옮기고 내가 오른쪽으로 가는 게 호흡도 나을 거고 움직임도 좋을 텐데.’

허들스톤은 원래 수비형 미드필더가 자기 포지션인 선수였고, 당연히 기존 수비수들과의 호흡도 그리 좋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성배가 생각하는 베스트는 촐루카가 중앙으로, 자신이 오른쪽으로 옮겨가고 레프트백으로 에코토가 출전하는 그림이었다.

‘에코토도 나쁘지 않아. 내가 있다는 게 불운이지만.’

원래는 이번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했을 에코토였다.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허들스톤의 센터백 출전보다는 나은 선택일 것이었다.

‘내 눈치를 너무 보는 거지.’

이건 레드냅 감독이 성배의 눈치를 본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에코토를 괜찮게 평가하는 레드냅이었다.

성배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에서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리 없었다.

아직 선수단 장악이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뭐, 상관없나.’

맨유와 제대로 붙어보는 것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지만,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왼쪽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굴러볼 수 있겠어.’

왼쪽에 남았기 때문에 호날두와 계속 상대할 수 있었다.

솔직히 원래 성배의 성격으로는 피할 수 있다면 무조건 피하는 것이 어울렸다.

지금도 피하고 싶은 마음 역시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호날두를 상대하면 붙어보고 싶은 마음 역시 만만치 않게 커졌다.

‘이쯤에서 한 번 바닥을 보는 것도 좋겠지.’

너무 일이 잘 풀리고 있기도 했다.

한 번쯤 확실한 위치를 파악할 필요도 있었다.

***

“다시 한 번 오른쪽으로! 호날두, 볼 잡았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요 공격 루트는 당연히 오른쪽이었다.

또 한 명의 에이스 루니가 빠진 상황에서 호날두가 버티는 오른쪽으로 공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반대편의 박인진이 원래의 공격적인 스타일에서 점점 헌신적인 스타일로 바꾸고 있다는 것 역시 하나의 이유였다.

“주성배 선수가 제대로 자리 잡은 이후에는 집중적으로 공략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요, 굉장히 오랜만에 이런 경험을 하는 걸 거예요.”

막 데뷔했던 시점, 그러니까 안더레흐트에서도 초반 몇 경기 정도를 제외하면 상대에게 집중적으로 공략당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벨기에에서도, 네덜란드에서도, 심지어 잉글랜드에서도 입성과 동시에 리그 정상급의 활약을 펼쳤던 성배였다.

그래서 지금 생소한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제길. 막기 힘들다는 게 더 화가 난다.’

오른쪽 공격에 집중하는 건 상관없었다.

막아내기만 하면 상대에게 오히려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상대의 에이스가 오른쪽에 있다면 당연히 오른쪽 공격에 집중하는 것이 맞았고, 이런 거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만큼 값싼 자존심이 아니었다.

하지만 막아내기 힘들다는 사실은 성배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호날두, 속도를 내기 시작합니다. 주,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붙습니다!”

호날두의 돌파를 잘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것부터 성배의 계산에서 어긋났다.

의도대로라면 이렇게 스피드가 붙지 않아야 했다.

둘이 같이 전속력으로 달리면 진행 방향에 대한 선택권이 있는 선수, 그러니까 볼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선수는 필연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볼을 가진 선수는 호날두였다.

‘고작 두 살 차이인데!’

고작 두 살 차이.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경력은 십수 년의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 2년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었다.

“백 숏! 가볍게 제쳐내는 호날두!”

그리고 선택권을 가진 호날두의 개인기 한 번에 성배는 돌파를 허용하고 말았다.

왼발이 앞에 나온 상황에서 점프한 호날두는 발의 위치를 바꾸지 않으면서 앞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뒤에 있던 오른발이 볼의 옆에 도착했을 때, 인사이드로 볼을 차서 진로를 바꾸었다.

함께 달려가던 성배는 이 빠른 방향전환에 대응할 수 없었다.

“호날두, 중앙으로 내려갑니다!”

측면으로 향하던 상황에서 안쪽으로 방향을 꺾었으니 당연히 중앙을 향해 움직이게 되었다.

호날두의 중거리 슈팅은 굉장히 위협적이었고, 이대로 편하게 보내준다면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었다.

‘젠장. 편하게는 못 간다.’

호날두의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잠시 균형을 잃었지만, 성배의 바디 밸런스도 훌륭한 편이었다.

순식간에 균형을 되찾은 성배는 호날두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어느새 중앙까지! 호날두, 득점 찬스!”

왼발 각도이지만, 호날두의 왼발 역시 오른발 못지않게 위협적이었다.

“허들스톤의 태클! 간단하게 피해냅니다!”

센터백 허들스톤의 태클이 너무 빨랐지만, 다행히 조코라가 허들스톤의 자리를 채워주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 자식이!’

급하게 호날두를 따라가던 성배의 앞에 누워버린 것이었다.

성배는 허들스톤 때문에 진로가 막혔고, 피하든, 멈추든, 점프를 해서 넘어가든 어쩔 수 없이 시간의 로스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 낭만필드 - 159 > 끝

ⓒ 미에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