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156 >
토트넘은 아스날과의 북런던 더비 원정에서 믿을 수 없는 승리를 따냈다.
1-4까지 밀리다가 5-4로 역전해버린 말도 안 되는 승리.
극도의 부진에 빠져 있었던 토트넘은 볼턴과 아스날을 상대로 2연승을 거두면서 리그 19위에서 17위까지 뛰어올랐고, 강등권을 탈출했다.
아직 많이 부족했지만, 아스날과의 경기는 팬들을 비롯한 모든 관계자들에게 토트넘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경기였고, 절대 토트넘이 지금 위치에서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아스날전 MOM 주성배, 대체가 불가능한 토트넘의 보배.]
[새로운 스타 탄생! 가레스 베일, 25분간 1골 2어시스트 맹활약.]
아스날전 승리의 1등 공신은 한 골에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성배였지만,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선수는 역시나 가레스 베일이었다.
본격적인 윙어 역할로 처음 나선 경기에서 1골 2어시스트.
그것도 절대로 패배할 수 없었던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경기 분위기를 반전시킨 어시스트와 극적인 결승 골을 기록했으니 스타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베일과 주성배의 호흡이 기대되는 다섯 가지 이유.]
[토트넘, 왼쪽 날개에 부스터를 달다.]
[주성배와 베일, 토트넘을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아스날전에서 처음으로 가동되었고, 그것도 25분가량에 불과했지만, 성배와 베일의 호흡은 토트넘 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두 선수의 호흡으로 만든 득점은 베일이 프리킥을 유도해 성배가 성공시킨 프리킥 골을 제외하면 마지막 결승 골뿐이었다.
하지만 베일 투입 이후 성배와 모드리치, 베일의 호흡은 완벽했다.
이들에게 볼이 가면 일단 기대부터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베일의 1골 2어시스트와 성배의 1골 2어시스트 과정 모두 서로의 호흡이 긴밀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물들이었다.
프리킥 유도와 롱패스로 서로의 골을 어시스트한 직접 어시스트 외에도 시선을 끌어 레넌에게 패스할 공간을 만들어준 베일의 플레이나 모드리치와의 절묘한 패스를 통해 베일의 어시스트를 만들어준 성배의 플레이까지.
두 선수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경기였기 때문에 팬들의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곧이어 이런 팬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소식이 모든 스포츠지에 동시다발적으로 게재되었다.
[‘진짜 부자’ 만수르, “팬들이 원하는 선수는 무조건 영입.”]
[맨시티 휴즈 감독, “주성배는 정말 탐나는 선수.”]
[시티즌스, ‘Prophet’ 주성배 영입에 적극적인 지지 표시.]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즈인 더 시티즌스는 성배에게 큰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지난 시즌 [위클리 플레이어] 출연 당시의 발언이었다.
당시 성배는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들이 인상 깊었다.”라고 발언하면서 “그리 늦지 않은 시기에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어쩌면 내년일 수도 있다.”라고도 했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축구계의 역대 모든 구단주 중 압도적인 재산을 자랑하는 만수르가 맨시티의 구단주가 되었고, 적극적인 투자를 약속한 상황이었다.
그는 팬들의 의견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고, 팬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자신의 야망에도 어울리는 성배를 노리기 시작했다.
[맨체스터 시티, “주성배, 바이아웃이라도 질러서 데려갈 것.”]
2,300만 유로라는 풀백치고 엄청난 금액의 바이아웃에 안심하고 그저 주급을 깎았다는 것에만 만족했던 토트넘은 계약 후 1년도 되지 않아 불안에 떨어야 했다.
***
“커피나 한잔 하시겠습니까?”
“커피 좋죠. 그래도 너무 단 건 못 마십니다.”
“그럼 달지 않은 것으로 제가 우리 투자자님 한 잔 사드리겠습니다.”
아직 버크만의 회사는 살짝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살짝 어수선했고, 많은 금액을 투자한 성배도 가끔 신경 써주어야 했다.
“저는 간단하게 라떼로 하겠습니다.”
“예. 그럼 주문은 제가.”
버크만과 성배는 근처 까페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은 성배는 이상하게 분위기가 붕 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지금 뭐 하는 거 아닙니까? 2층 분위기가 좀 그런 것 같은데.”
“아, 그런 것도 같습니다. 확실히 분위기가 좀 붕 뜬 것 같기는 합니다.”
뭐 연예인이라도 와있는가보다.
라고 생각한 성배와 버크만은 괜히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한 잔 빠르게 마시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2층에서 PD 한 명이 카메라맨을 대동하고 등장했다.
“주성배 선수! 그리고 버크만 씨. 오랜만입니다.”
“어! 카터 씨 아니십니까? 아, 2층이 소란스럽다 했더니... 카터 씨 방송이었군요?”
버크만과 안면이 있는 PD였다.
그리고 성배와도 안면이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주성배 선수!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하하. 안 그래도 이번에 섭외 전화 한 번 드리려고 했는데요. 요즘 뜨거우시지 않습니까?”
성배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던 방송, [위클리 플레이어]의 PD였다.
“아니, 카터. 방송 중인데 이렇게 내려와도 됩니까? 게다가 이 카메라는 뭡니까?”
촬영 중에 PD가 자리를 비운 흔치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카메라맨까지 대동하고 나타났으니 버크만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도 주를 만나러 내려오는데 직급 낮은 친구들을 보낼 순 없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제가 직접 내려와야죠.”
“이런. 너무 금칠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직 그 정도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 말이죠. 뭐,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신다니 감사하기는 합니다.”
형식적인 감사를 표시하는 성배에게 PD가 다시 물었다.
“흠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잠깐 특별출연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음? 특별출연? 지금 누가 나와 있기에... 아!”
선수 한 명을 초대해 이슈에 대해 대화하는 [위클리 플레이어]에 특별출연을 해도 되는 건지, 도대체 누가 나와 있기에 특별출연을 부탁하는 것인지 고민하던 성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가레스군요.”
“맞습니다.”
며칠 전부터 [위클리 플레이어]에 출연한다고 긴장하던 베일의 모습이 떠올랐다.
프리미어리그 합류 이후 주전으로 활약한 적도 없었던 베일에게 일주일에 한 명만 선정하는 [위클리 플레이어] 출연은 꽤 긴장되는 일일 것이었다.
실제로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 있는 선수들을 괴롭히며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성배도 그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가레스는 잘하고 있습니까?”
“뭐, 처음치고는 굉장히 잘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주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전화연결이라도 해볼까, 했는데 이렇게 직접 나타나실 줄은 몰랐습니다.”
베일의 차례이기는 했지만, 잠깐 얼굴을 비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성배는 버크만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버크만 역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잠깐 얼굴만 비치겠습니다.”
“아, 그럼 감사하죠. 준비하실 것 있으시면 하시고 바로 올라오시면 됩니다.”
성배의 승낙에 PD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만수르와 휴즈 감독, 팬들까지.
맨시티의 강력한 구애를 받는 중인 성배였기에 할 말은 굉장히 많을 것이었다.
오늘은 대충 간만 보고 나중에 제대로 섭외했을 때를 위한 예고편 느낌으로 연출하겠다는 계획이 벌써부터 PD의 머릿속을 채웠다.
***
[깜짝스타 베일, “출전 기회를 준 레드냅 감독, 그라운드 위에서 기회를 만들어 준 주, 모드리치에게 감사한다.”]
[깜짝 출연 주성배, “베일과의 호흡이 기대돼.”]
[주성배, 이적설에 대해 입을 열다. “아직은...”]
[미녀 리포터 첼시와 주성배, 시선이 심상찮다? 설레는 시선 처리.]
“[위클리 플레이어]에서 하신 말씀대로 하면 되는 겁니까?”
“예. 아직은 굳이 떠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해리의 부임 이후 팀 분위기도 괜찮고, 가레스와 호흡을 맞추면 조금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남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 않습니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팀의 부진으로 인해 이번 겨울, 팀을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베일의 등장으로 인해 살짝 생각이 달라지는 중이었다.
굳이 시즌 중반에 떠나기보다는 여름에 떠나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위력적인 측면 플레이어 베일과의 호흡은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뭐, 가레스와의 호흡은 굉장히 좋은 것 같았습니다. 둘의 호흡만 제대로 맞으면 기록도 잘 쌓일테고 몸값도 좀 더 높아질 겁니다.”
“그겁니다. 레넌은 좋은 선수지만 오른쪽에서 뛰어야죠.”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1골 2어시스트를 기록한 성배는 9라운드까지 1골 3어시스트에 불과했다.
사실 공격 포인트 자체는 적지 않은 편이었지만, 대부분이 세트 피스에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필드 플레이에서 성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확연히 줄어 있었다.
벤틀리의 영입으로 인해 왼쪽에 자리 잡은 레넌과의 호흡이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적하면 또 새롭게 호흡을 맞춰야 하고, 시즌 도중에 전술에 녹아드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일단 이번 시즌은 마친다고 생각해주시죠.”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이고 앞으로도 기회는 많았다.
지금 당장은 빅클럽 행을 서두르는 것보다 빅클럽 입성 전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높여두는 것이 중요했다.
빅클럽 한 곳의 단독 입찰이 아니라 몇 개의 클럽이 경쟁을 벌이도록 만들어야 했고, 다시 튕겨 나오더라도 최대한 높은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했다.
***
아스날을 상대로 드라마틱한 역전승을 이루어낸 토트넘은 기세에 확실하게 올라탔다.
레드냅 감독은 단점도 많은 감독이었지만, 최소한 팀 장악력과 카리스마만큼은 떨어지지 않았다.
모래알처럼 흐트러져 있던 토트넘의 조직력은 감독 교체라는 강수와 레드냅 감독의 카리스마로 어느 정도만큼 수습되었다.
스쿼드만큼은 절대로 나쁘지 않은 팀이었기에 분위기가 수습되자 다음 라운드에서 리그 1위를 달리던 리버풀을, UEFA컵에서는 디나모 자그레브를 꺾어냈다.
3연승을 달린 토트넘의 순위는 어느새 14위까지 치고 올라갔고, 7위 에버튼을 승점 3점 차이까지 추격했다.
[Prophet!! Prophet!! Prophet!!]
그리고 12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와의 원정 경기를 치르기 위해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 도착한 토트넘 선수들은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깜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뭐야?”
“주! 이 정도였어?”
그리고 그들이 아무리 놀랐다고 하더라도 성배만큼 놀랄 수는 없었다.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터져 나온 맨체스터 시티 서포터들의 열렬한 콜에 어안이 벙벙했다.
‘화이트 하트 레인 못지않은데?’
이 정도 환호면 토트넘의 홈구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은 물론이고 더 큰 규모의 암스테르담 아레나, 심지어 A매치 홈경기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자신의 스타일을 자평하자면 내 팀 선수일 때는 믿음직하지만, 내 팀이 아니면 얄밉기 그지없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원정에서 이런 환호를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이야, 립서비스 한 마디 해줬다고 이 정도야? 맨시티 팬들이 그동안 쌓인 게 많긴 많았구나.”
성배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맨체스터 시티가 앞으로 부자 구단이 되는 것도 알고, 선수에 대한 대우가 좋아지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이적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 팬들을 미리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했던 말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반응이 좋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여기서 내가 골이라도 넣거나 어시스트라도 하면, 그래도 이렇게 환호해주려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약해지지는 않았다.
아니, 자신을 더 탐내게 하고 싶었다.
< 낭만필드 - 15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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