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154화 (278/356)

< 낭만필드 - 154 >

만회 골이 터진 이후, 드디어 토트넘의 공격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방심했던 아스날 선수들은 당황했고, 토트넘 선수들이 기세를 타고 거칠게 나서기 시작하면서 밀리는 모양새였다.

“데니우손, 측면으로 길게 빼줍니다!”

‘욕심이 과하다.’

데니우손이 월콧을 향한 공간 패스를 시도했다.

토트넘이 만회 골이 터진 이후부터 아스날이 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분위기를 가져오기 위한 회심의 패스를 시도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급했다.

‘고맙다. 무리해줘서.’

자신의 패스를 받은 월콧이 스피드를 활용해 좋은 장면을 만들어주기만을 바랐을 뿐, 앞뒤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패스였다.

성배는 깔끔한 태클로 볼을 끊어냈고, 제나스에게 연결하며 공격작업을 시작했다.

“아스날, 정신을 못 차립니다! 데니우손의 패스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저기서 왜 월콧에게 패스를 하나요? 월콧에게 향하는 패스 코스는 주의 수비에 모두 막혀있었거든요? 오히려 바로 앞에서 대기하던 파브레가스와 나스리에게 주는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었어요.”

데니우손의 패스가 월콧을 향하는 순간, 어이가 없다는 듯 휘청이는 파브레가스와 나스리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파브레가스와 나스리.

기량에 비해 조합의 시너지는 작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월콧에게 주는 것보다는 훨씬 위협적이었을 것이었다.

“자, 다시 토트넘입니다. 제나스, 다시 주에게. 주, 전방을 주시합니다.”

제나스에게 패스하고 위로 움직인 성배는 다시 볼을 돌려받았다.

패스가 빠르게 이루어지면 역습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볼은 무조건 성배에게로 향했다.

‘저기다가 뿌리면 받을 수 있으려나.’

분명 성배의 패스는 정확했다.

하지만 친절하지는 않았다.

상황에 따라 친절하게 발밑에 떨어뜨려 주는 패스도 종종 뿌려주었지만, 기본적으로 성배의 패스는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야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거침없이 전방으로! 베일!”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베일은 측면으로 빠져 있었지만, 성배의 패스는 중앙 부근으로 향했다.

베일의 빠른 스피드를 믿어본 것이었다.

덕분에 그는 발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뛰어 올라가야 했다.

“베일이 먼저 따냅니다! 실베스트리, 태클! 걸려 넘어집니다!”

-삐-익!

분명, 실베스트리의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성배가 실수한 거라고 생각했던 실베스트리는 마음 편히 볼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실수가 자신의 실수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베일, 정말 빠르네요! 저 볼을 베일이 잡아내나요? 대단한 스피드네요, 정말로.”

볼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그림자가 생겨났다.

어느새 올라온 베일의 그림자였다.

점프해서 먼저 볼을 따낸 베일을 보면서 당황한 실베스트리는 발을 뻗었고, 뒤늦은 태클에 베일이 걸려 넘어졌다.

토트넘의 프리킥이었다.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토트넘입니다. 그리고 토트넘에는 프리킥하면 어디서도 빠지지 않는 선수 한 명이 버티고 있습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린 순간부터 원정 응원을 나온 토트넘의 팬들과 벤치의 레드냅 감독, 코칭스태프와 선수단까지.

모두의 마음속에 기대감이 자리 잡았다.

“주성배, 이제 주성배 선수가 뭔가를 보여줄 시간이죠.”

지난 시즌 프리킥 득점 6골.

토트넘에는 지난 시즌 기록한 어시스트까지 포함하면 프리킥 상황에서만 10개 이상의 공격 포인트를 올렸던 성배가 키커로 대기하고 있었다.

프리킥 상황에서의 토트넘이 위협적인 이유였다.

“직접 해결할 거지?”

“아무래도 그게 낫겠지. 오른발로 감으면 해볼 만할 것 같은데.”

성배는 모드리치의 물음에 골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토트넘의 프리키커 자리는 성배가 확고하게 지키고 있었다.

슈팅 파워가 엄청난 허들스톤과 나름 정확한 킥을 가진 베일도 있었지만, 성배를 위협할 수는 없었다.

“일단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중앙에서 대기하고 있어 봐. 여의치 않으면 밀어줄 테니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네. 됐고, 잘 차서 한 번 넣어보라고.”

성배의 말에 모드리치는 ‘픽’하고 웃으며 성배의 등을 쳐주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키커가 슈팅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고, 지난 시즌까지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프리키커로 활약했던 모드리치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진짜 여의치 않으면 주려고 했건만.’

하지만 성배는 과한 욕심을 내지 않는 선수였다.

과한 욕심을 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확률이 높은 방향을 선택해서 조그마한 것이라도 얻어내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해결해야겠지.’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모드리치가 저런 반응이라면 어쩔 수 없이 직접 해결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왼쪽 측면으로 빼주는 방법도 있었지만, 아직 베일에게 그런 움직임까지 기대할 수는 없었다.

“자, 토트넘으로서는 이번 기회를 꼭 살리고 싶을 텐데요.”

“이번에 만약 득점이 이루어진다면, 한 골 차이거든요? 경기 종료까지는 이제 15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한 골 차이라면 아무도 모릅니다.”

토트넘에게는 매우 중요한 프리킥이었다.

두 골 차이에 남은 시간은 15분.

이런 기회 한 번 한 번이 매우 소중했다.

‘침착하게...’

성배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경기의 흐름과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비상한 눈치를 가진 성배가 이번 프리킥의 중요성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성배는 자신이 노리는 위치를 알무니아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면서 골대를 노려보았다.

“주심의 휘슬이... 바로 달려들어서 슈팅!!”

이미 준비를 마치고 있었던 성배는 주심의 휘슬과 동시에 볼을 향해 달려들었다.

보통 휘슬 이후 1-2초의 시간을 두고 달려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인 것이었다.

미묘한 차이지만, 아스날 선수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라!’

어차피 성배가 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없었다.

중앙으로 크로스 혹은 반대편 골대를 노리는 인프런트 킥.

이 두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때그때의 임기응변이었다.

다양한 무기가 없기에 임기응변으로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고, 지금처럼 타이밍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반대편으로! 알무니아! 막지 못합니다! 골! 골입니다! 주의 프리킥 득점으로 한 골 차까지 따라붙는 토트넘! 점점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 박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득점이었다.

굉장히 잘 감겨 들어간 프리킥이었지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알무니아가 아스날 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골키퍼이긴 했지만, 그래도 반사신경과 선방 능력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한 박자를 빼앗아내지 못했다면, 이번 프리킥은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었다.

“주, 드디어 프리킥 득점을 개시합니다! 지난 시즌 무려 여섯 개의 프리킥을 성공시켰던 선수인데, 드디어 첫 번째 프리킥 득점이 나왔습니다!”

“이제 시작이죠! 벌써 개막 이후 석 달 동안이나 프리킥 득점이 없어서 조금씩 팬들의 비난이 나오고 있었는데, 드디어 한 골이 나오네요! 한 골만 나오면 다음은 바로바로 나오죠!”

토트넘에게도 중요한 득점이었지만, 성배에게도 매우 중요한 득점이었다.

개막 이후 석 달 동안이나 프리킥을 성공시키지 못했었기에 프리키커 교체에 대한 요구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오늘처럼 중요한 경기, 지금처럼 중요한 순간에 골을 넣어주었으니 한동안은 안심할 수 있을 것이었다.

“드디어 터졌네.”

“아아, 그러게. 이제 좀 살겠어.”

자리로 돌아온 성배를 향해 우드게이트가 웃으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지난 몇 달간 마음고생 한 성배를 알고 있었기에 동료들 모두 축하해주었다.

성배의 킥은 토트넘의 주요 공격 옵션이었기 때문에 성배의 프리킥 감각이 살아난 것은 토트넘에게도 좋은 소식이었다.

“이번 득점으로 한 골 차까지 따라붙은 토트넘입니다. 아스날의 승리로 싱겁게 끝날 것 같았던 경기가 재미있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이제 아스날도 정신 차려야죠! 방심했나요? 홈경기에서 4-1에서 4-3까지 추격을 허용하다뇨! 아스날답지 않아요!”

아스날은 리그 3위, 토트넘은 볼턴을 잡으며 한 계단 상승해 리그 19위에 자리해 있었다.

하지만 북런던 더비라는 특수성은 순위를 단순한 숫자로 만들어버렸다.

4-1에서 4-3.

토트넘의 거센 추격으로 경기 역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

토트넘의 만회 골로 한 골 차까지 좁혀진 이후 아스날의 선택은 골문을 조금 더 단단하게 잠그는 것이었다.

그리고 토트넘은 그 골문을 조금 더 거세게 두드렸다.

분위기를 탄 토트넘의 공격은 거셌고, 위협적이었지만, 아스날의 수비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결국, 90분 정규 시간도 몇 초 남지 않았을 때, 스코어는 여전히 4-3이었다.

“모드리치의 패스가 베일에게 이어집니다. 윙어로는 처음 출전한 베일인데, 굉장히 위협적인 모습을 많이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스피드를 활용한 베일의 돌파는 지친 아스날 수비진을 효과적으로 공략했다.

안 그래도 체력이 떨어졌을 시간인데 베일의 스피드를 계속해서 따라가기까지 했던 사냐는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베일도 베일인데, 베일의 활약에서 주와 모드리치, 두 선수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플레이가 먼저 공간으로 달리고 패스를 받아주는 식이거든요? 공간이 없으면 위력이 반감되는데, 공간이 없을 때가 없어요. 주와 모드리치 덕분이죠.”

베일이 볼을 잡았지만, 지금은 일단 멈춰있는 상황이었다.

마땅히 할 것이 없었던 베일은 다시 볼을 성배에게 돌려주었다.

“베일, 주에게 다시 돌려주고, 앞으로 달립니다!”

볼을 치운 베일은 다시 공간을 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베일의 움직임에 많이 데였던 아스날 수비진은 베일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었고, 마크맨인 사냐를 비롯한 모두가 그 움직임에 반응했다.

“주, 박스로 볼 투입합니다! 아, 반대편!!”

‘너무 베일한테만 신경 쓴 거지.’

성배의 앞에서 한 명의 공격수에게만 대놓고 집중한다는 것은 한 골을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모두 베일의 움직임에 집중했을 때, 성배는 시야를 넓혀 반대편으로 열어주었다.

“레넌의 침투!!”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베일 못지않은 스피드 스타, 레넌이 파고들었다.

라이트백 촐루카가 성배와는 달리 공격보다 수비에 능력치가 집중된 선수였기에 베일 만한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뿐, 윙어로서는 아직까지 레넌이 한 수 위였다.

“그대로 발리 슈팅!”

무서운 스피드로 마크맨을 가볍게 따돌린 레넌의 앞에 성배의 패스가 도착했다.

레넌이 시도한 발리 슈팅은 정확한 임팩트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빗맞아 바운드 된 것이 오히려 복이 되어 막기 까다로운 슈팅이 되었다.

“골! 골! 골! 들어갔습니다! 갈라스가 볼과 함께 그물을 흔들며 실점을 자축합니다! 말도 안 됩니다! 동점! 동점이 되었습니다! 토트넘, 무섭습니다! 20분 동안 세 골을 터뜨리면서 4-1까지 벌어졌던 경기를 원점으로 돌립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네요! 전광판을 보세요! 시계가 멈췄어요! 정규 시간 종료와 동시에 토트넘의 동점골이 터졌어요!!”

레넌의 슈팅은 몇 번의 바운드 끝에 골망을 흔들었다.

갈라스가 마지막까지 막아보려 몸을 날렸지만, 볼과 함께 그물에 걸렸을 뿐이었다.

“주! 주입니다! 주가 경기를 동점까지 끌고 왔습니다!”

“세 번째 득점, 그리고 네 번째 득점을 어시스트! 주, 왜 자신이 토트넘의 핵심인지를 증명하는 모습! 대단합니다!!”

베일이 시선을 끌어준 사이 레넌을 노린 성배의 패스는 플레이에서 군더더기 하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두 명의 스피드 스타와 이들을 완벽하게 활용하는 패서가 있을 때, 어디까지 위력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완벽해! 동점이야, 동점이라고! 이 경기가 동점이 되었다고!”

큰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나섰지만, 이어지는 활약에 고무된 베일이 가장 먼저 뛰어왔다.

골을 넣은 레넌보다도 먼저였다.

“아직 부족해.”

하지만 성배는 여전히 냉정했다.

“이 경기. 이겨야겠다.”

해이해진 정신을 다잡게 해주기는 했지만, 자존심과는 별개였다.

자신을 맥없이 무너뜨린 월콧과 그 어이없는 슈팅을 어시스트로 만들어준 반 페르시, 그리고 아스날.

홈경기, 게다가 4-1로 앞서던 상황에서 4-5로 패배하는 굴욕을 안겨줄 기회였다.

그리고 승리하기만 한다면 이 약발로 팬들의 비난을 한동안 피할 수 있었다.

절대 놓칠 수 없었다.

< 낭만필드 - 154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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