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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153화 (277/356)

< 낭만필드 - 153 >

“파브레가스, 나스리에게 넘겨줍니다! 나스리, 측면 쪽으로!”

파브레가스의 패스가 나스리에게 연결되었다.

나스리는 측면을 향해 사선으로 움직이면서 침투했다.

센터백 도슨은 아데바요르의 움직임에 묶여있었고, 어쩔 수 없이 성배가 움직여 나스리를 막아 세웠다.

“나스리, 측면으로! 월콧, 달려듭니다!”

어쩔 수 없었다.

예상한 플레이지만, 당해줄 수밖에.

‘빌어먹을.’

성배에게 막혀있던 월콧은 나스리의 움직임으로 인해 만들어진 공간에서 오랜만에 신나게 달렸다.

스피드가 붙은 월콧은 성배도 쉽게 막을 수 없었다.

어느새 골라인 근처까지 파고든 월콧이 오른발을 들었다.

‘크로스까지는 안 되지.’

그래도 성배 역시 빠른 선수였다.

곧 월콧을 따라잡은 성배는 크로스가 올라가기 직전에 몸을 날렸다.

월콧의 크로스가 아주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아데바요르와 반 페르시 투톱은 위협적이었다.

그들이 플레이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이런.’

성배에 두 경기 연속으로 꽁꽁 묶였던 월콧이었다.

오늘 경기에서도 후반전 15분,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도 잉글랜드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특급 유망주였다.

“반대로 접고 올라갑니다! 중앙으로! 슈팅!”

성배의 태클을 피해 중앙으로 올라간 월콧은 왼발로 슈팅을 시도했다.

허들스톤의 백업은 살짝 늦고 말았다.

“빗맞았습니다! 반대편에서 반 페르시!!”

월콧은 스피드 외의 부분에서는 아직 부족함이 많은 선수였고, 특히 슈팅이 아쉬운 편이었다.

이번 슈팅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빗맞아서 골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빗맞은 슈팅이 절묘한 패스로 둔갑해버렸다.

“슈팅! 골! 골입니다! 들어갑니다! 반 페르시, 리그 5호 골! 경기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반 페르시의 슈팅이 골망을 갈랐다.

오늘 경기 첫 번째 골이자 세 번째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것이었다.

반 페르시가 미쳐 날뛰고 있었다.

‘젠장. 월콧이 거기서 페인트를 쓸 줄이야.’

월콧의 페인트는 성배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기본적으로 아직 경험이 적은 월콧은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침착하게 움직이기보다 급하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자신이 멀지 않은 곳에서 따라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페인트로 따돌리기보다 빠르게 처리하려 할 것이라 판단했고, 그것은 오판이었다.

‘그래도 프리미어리거다, 이거지.’

중앙의 수비가 헐거워지는 바람에 자신이 맡은 측면뿐 아니라 중앙까지 신경 써야 했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최근 몇 달 동안 너무 잘 나가서 잠시 잊고 말았던 것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함께 뛰고 있는 선수들은 자신보다 훨씬 더 재능이 넘치는 선수들이라는 것을.

‘16년 전에 시작했다는 거. 그게 내 장점일 뿐이다. 건방 떨지 말자, 주성배.’

너무 건방져졌다.

자신은 언제나 언더독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야 했다.

뭐라도 된 것처럼 건방을 떨었다가는 순식간에 몰락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오래, 오래가자, 주성배. 넌 타고난 그릇이 작아서 멈추면 전부 넘치고 말아.’

월콧에게 실점한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어차피 3-1로 끌려가는 것이나 4-1로 끌려가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한 골을 내주고 문제점을 깨달았다면 오히려 남는 장사였다.

이번 실점은 해이해진 태도를 버리고 정신적으로 다시 재무장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었다.

‘팬들이 굉장히 열 받겠는데...’

하지만 아스날과의 북런던 더비에서 4-1까지 격차가 벌어진 것은 조금 심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칼링컵 4강 2차전에서 5-1로 승리했을 때 기뻐했던 만큼 격분할 것이 분명했다.

‘음... 집까지 탱크라도 타고 가야 하나.’

성배는 지금 심각했다.

***

[IN - 16. 가레스 베일 / OUT - 5. 데이비드 벤틀리]

세 골 차이까지 점수 차가 벌어지자, 레드냅 감독은 포지션을 옮긴 베일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윙어로서는 아직 거친 부분들이 많았고, 어색해 했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 기용하려고 했지만, 이보다 더 시험하기 좋은 무대는 없었다.

‘생각대로만 풀리면 분명 좋은 모습을 보여줄 텐데.’

베일의 윙어 전향은 원래 역사보다 1년 정도 빠르게 이루어졌다.

레프트백 포지션에서 성배가 든든히 버텨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해. 경기 후반이고, 베일은 투박하지만, 엄청난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니. 냅다 뛰기만 해도 위협적일 수 있어.’

벤틀리가 베일과 교체되어 나가면서 왼쪽으로 옮겨와 있던 레넌이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비싸게 데려온 벤틀리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내주고 왼쪽으로 옮겨가야만 했던 레넌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대략 2년 정도 뒤.

세계적인 양 날개로 인정받았던 좌 베일, 우 레넌의 측면 조합이 완성된 것이었다.

‘아직은 좀 부족하지만...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충분히 해낼 수 있겠지.’

윙어로서의 움직임을 완성시키지 못한 베일이지만, 그 재능만큼은 찬란했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달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기만 한다면, 왼쪽 측면을 자기 집처럼 헤집고 다닐 수 있을 것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달려. 공간은 내가 어떻게든 만들어줄 테니까 공간이 보인다, 그러면 바로 뛰어. 너는 뛰기만 해. 볼은 나나 다른 동료들이 연결해 줄 거다.”

수비적인 역할을 맡아 윙어로 출전한 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공격적인 역할을 주문받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베일에게 다가간 성배는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을 확 줄여주었다.

자신이 해야 하는 플레이가 명확하면 아무리 자기 포지션이 아니더라도 헤매지 않고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만 하면 되는 건가? 다른 건 필요 없고?”

베일의 흔들리던 동공이 점차 고요해졌다.

붕 떠 있던 느낌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다른 거, 뭐? 당연히 필요하지. 수비진을 조금 더 흔들어서 내가 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면 좋겠고, 중앙으로 수비수들을 끌고 가서 측면에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고, 필요할 때는 중앙으로 움직여서 득점 기회도 만들었으면 좋겠지. 그런데, 할 수 있어?”

성배의 말에 베일은 침묵했다.

정말로 베일이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윙어의 역할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고, 중앙보다는 측면에 힘을 준 토트넘이었기에 윙어의 역할이 더욱 중요했다.

“그러니까. 너한테 그런 거 기대 안 해. 너는 빠르니까 그냥 공간이 보이면, 뛸 수 있겠다, 싶으면 달려. 루카나 나나 패스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 뛰다 보면 네 앞에 볼이 도착해 있을 거다. 그다음에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역할은 나랑 루카가 나눠서 맡아줄 테니까.”

아직 부족한 베일이라지만, 그 스피드 하나로도 충분했다.

그는 공간을 헤집어주는 역할만 해주면 끝이었다.

나머지는 성배와 모드리치.

두 명의 영리한 선수들이 보완해줄 것이었다.

“오케이. 좋아.”

베일도 마음을 다잡은 듯 동공의 떨림이 멈춰 있었다.

“그러면 뒤는 좀 잘 닦아달라고.”

“오냐.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말 외에 다른 멋진 말이 생각나지 않네.”

베일의 장난기 어린 말에 미소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네 뒤는 내가 닦아줄 테니 마음대로 날뛰어봐.”

베일과 성배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

“허들스톤, 측면에서 올라가는 주에게 볼을 넘깁니다.”

베일의 투입 이후, 토트넘은 조금씩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홈에서 세 골 차이로 앞서나가기 시작한 아스날이 조금 방심한 탓도 있었다.

하지만 왼쪽 측면에서 부지런히 달리며 수비진을 헤집고 있는 베일의 역할도 결코 작지 않았다.

‘그렇지. 그렇게 움직이라고!’

성배의 눈에 베일의 움직임이 들어왔다.

모드리치가 왼쪽으로 내려와 주고 성배가 측면을 타고 올라오면서 왼쪽 측면에 공간이 생겨났다.

공간이 생기기만을 기다리던 베일이 이 상황을 놓칠 리 없었다.

“주에게서 모드리치. 모드리치, 지체하지 않고 측면으로!”

모드리치는 성배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했다.

성배가 모드리치에게 패스한 이유는 측면에서 파고드는 베일에게 직접적으로 패스를 건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패스 루트가 막힌 상황에서 베일을 향해 가장 깔끔한 패스를 넣어줄 수 있는 선수는 모드리치였고, 성배의 선택은 정확했다.

“베일에게 연결, 중앙으로 파고듭니다!”

성배와 모드리치는 베일을 확실하게 백업해주었다.

두 선수의 움직임은 베일이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베일은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확실하게 수행했다.

“골라인까지 빠르게 돌파!”

패스가 베일의 발밑에 정확히 도달했다.

모드리치가 측면으로 빠지면서 아스날의 데니우손 역시 측면으로 빠져나왔다.

그렇게 아스날의 중앙 수비가 헐거워졌고, 경기가 잘 풀려서 신이 난 베일은 그런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중앙으로 치고 올라가는 베일을 데니우손을 비롯한 아스날 선수들은 막지 못했고, 어느새 골라인 근처까지 뚫리고 말았다.

“베일, 중앙으로 꺾어주고, 벤트!!”

아스날 수비수들이 일부러 베일의 앞길을 열어주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편안하게 골라인까지 돌파해 들어간 베일은 중앙으로 볼을 꺾어주었고, 벤트를 비롯한 양 팀 선수들은 볼을 향해 몸을 날렸다.

“벤트! 알무니아! 그대로... 골라인 넘어갑니다! 골! 골입니다! 대런 벤트, 만회 골을 터뜨립니다! 4-2, 토트넘, 드디어 한 골을 추가했습니다.”

볼을 향해 일제히 몸을 날린 선수들은 어떻게든 먼저 볼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다.

갈라스와 실베스트리, 그리고 벤트가 몸싸움을 벌였고, 승자는 이대일의 사투를 벌인 벤트였다.

벤트의 발에 맞은 볼이 아스날 골문으로 향했고, 알무니아는 어떻게든 다리를 뻗어 건드리는 것까지 성공했지만, 볼의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교체 투입된 베일이 한 골을 만들어냅니다! 엄청난 돌파였습니다.”

“원래 풀백이 자신의 포지션인 베일 선수를 윙어로 투입한 레드냅 감독의 판단이 정말 좋았어요! 굉장히 현명한 선택이었고, 선수는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완벽합니다.”

베일의 투입과 함께 조금씩 경기 주도권을 회복하던 토트넘은 드디어 만회 골을 넣으며 추격을 시작했다.

벤트 역시 5호 골을 넣으면서 토트넘 공격진에서 그나마 제 몫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어필했다.

“베일의 투입 이후 경기 분위기가 애매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토트넘의 플레이가 활발해지는 느낌입니다.”

“정말 빨라요. 풀백으로 뛸 때도 그 스피드만큼은 프리미어리그 최고라는 평가였는데, 윙어로 나와서 마음 놓고 뛰니까 정말 위력적이네요. 낯선 위치에서 뛰어야 하는 베일이 마음 놓고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주, 모드리치의 플레이도 정말 멋져요. 이렇게 멋진 호흡이 왜 이제야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그래 봐야 이제 겨우 세 골 차에서 두 골 차로 따라간 것에 불과했고, 경기 시간도 20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베일의 재발견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오른쪽에서 출전하는 벤틀리가 부진하고 그 덕에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 레넌까지 덩달아 부진한 것이 현재 토트넘의 측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베일이 왼쪽 윙어 자리를 차지해준다면 레넌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었다.

프리미어리그 최고를 다투는 두 명의 스피드 스타가 만들어낼 측면 플레이도 기대를 모았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하지만 성배는 이 경기를 이렇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

베일의 교체 투입 이후 움직이는 것이 확실히 편해졌다.

오늘 경기에서 특별하게 활약하지도 못했고, 네 번째 실점 상황에서 월콧을 놓치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하나만 걸려라.’

이 경기, 어떻게든 뒤집고 말겠다.

그리고 북런던 더비 원정에서 확실한 임팩트를 남기고 말겠다.

북런던 더비. 원정 경기. 4-1로 끌려가던 상황.

임팩트를 남기기에는 지금처럼 좋은 상황도 없었다.

< 낭만필드 - 153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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