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151 >
“예. 일단은 거절하겠습니다. 아직 이적을 생각할 때는 아니죠.”
[알겠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도... 겨울에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토트넘으로 이적한 지 불과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번 이적시장에서 성배의 영입을 시도한 클럽이 있었다.
비밀리에 접근해왔는데, 무려 바이아웃 금액을 지르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바로 맨체스터 시티였다.
“여하튼 대단하긴 합니다. 팬들이 좋아한다고 바로 그 큰 돈을 지르다니...”
[잠깐이나마 대리인과 대화해봤는데, 돈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다릅니다. 제 선수지만, 아직 2,300만 유로는 조금 아깝지 않냐고 물었더니, 1,500만 유로와 2,300만 유로가 무슨 차이냐며 웃더군요.]
현재 성배의 시장가격은 대략 1,300만 유로에서 1,600만 유로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프리미엄과 올림픽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인해 반년 만에 500만 유로 가량 오른 것이었다.
그런데 만수르는 2,300만 유로를 선뜻 제시했다.
“이것 참... 부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제가 볼 때는 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돈이 어디서 그렇게 나오는 건지... 저에게도 투자 정보 좀 달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하하.]
이번 이적시장에서 열심히 뛰어다닌 버크만은 드디어 독립에 성공했다.
버크만의 회사가 이렇게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성배의 투자가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한 회사를 정상 궤도로 올려놓을 정도의 금액을 투자한 성배는 한국에 가서 유소년 축구 센터까지 설립하고 왔다.
버크만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이런. 알랭, 자꾸 투자에 눈을 돌리시면 투자금 뺍니다. 하하. 일하세요, 일.”
[음... 이게 투자자의 횡포인 건가요? 리더가 되어보니 뼈저리게 느껴지는군요. 알겠습니다, 대주주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반대로 성배는 이번 이적시장에서 버크만의 능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나스리와 벤제마를 잡았던 버크만은 프랑스 밖으로 눈을 돌렸고, 그의 눈에 벨기에가 들어왔다.
올림픽을 통해 벨기에의 밝은 미래를 포착한 그는 아직 명성이 그렇게 높지 않은 벨기에 선수들을 공략했고, 두 명과 추가로 계약을 따냈다.
“그건 그거고, 성과가 좀 많던데요? 투자한 보람이 있습니다. 하하. 앞으로는 좀 덜 열심히 해도 될 것 같달까요.”
[아니, 그러시면 안 됩니다. 하하. 앞으로 2-3년은 주가 우리 회사의 에이스인데 덜 열심히 하다뇨.]
AZ에서 자리를 잡아가며 조금씩 빅클럽에 대한 꿈을 키우는 무사 뎀벨레와 지난 시즌 리그앙 네 경기에 출전하며 본격적인 프로생활을 시작한 에당 아자르였다.
아자르를 선택한 부분에서 성배는 무릎을 쳤다.
고작 네 경기에 출전한 아자르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 눈이 놀라웠고, 그가 왜 최고가 되었던 것인지를 알게 되었으며, 향후 꾸준히 들어올 배당금을 보았다.
“어쨌든 시작부터 굉장히 분위기가 좋습니다. 나스리도 그렇고, 벤제마에 무사도 잘 나가지 않습니까?”
[좋은 선수들이 저를 믿어준 거지, 제가 잘한 건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해야죠.]
“믿음직스럽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얼마든지요.]
사미르 나스리는 1,5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아스날에 합류했고, 벤제마는 여전히 수많은 빅클럽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뎀벨레 역시 슬슬 네덜란드를 떠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아자르는 성공이 보장된 슈퍼 탤런트였다.
버크만의 회사와 함께 성배의 투자금도 무럭무럭 자랄 일만 남았다.
***
2008/09시즌을 앞둔 여름 이적시장에서 태풍의 핵으로 떠오른 클럽은 단연 맨체스터 시티였다.
만수르의 구단주 부임 이후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맨시티는 클럽의 명성과 현재 전력 등의 한계로 월드클래스 선수를 많이 데려오지는 못했지만, 소정의 성과는 있었다.
99% 이상 첼시로 이적할 것이 확실시되었던 호비뉴를 하이재킹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첼시를 상대로 한 하이재킹은 예전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외에도 뱅상 콤파니, 조, 숀 라이트-필립스, 파블로 사발레타 등 괜찮은 선수들을 다수 영입하며 도약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또, 다니 알베스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는데, 이 이적 건은 성배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처음에 바르셀로나는 세비야에게 2,500만 유로를 제시했는데, 세비야는 “그 돈으로는 알베스의 축구화 한 짝밖에 사지 못할 것.”이라는 패기 돋는 발언을 남겼다.
풀백의 최고 이적료가 경신되었다는 것은 2,300만 유로의 바이아웃 조항을 보유한 성배에게 좋은 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이외에도 성배의 대표팀 동료 마루앙 펠라이니가 EPL의 에버튼으로 이적하며 벨기에 동년배 선수 중 성배와 콤파니에 이어 세 번째로 EPL에 입성했다.
올림픽 은메달 획득을 기점으로 ‘황금세대’라는 평가가 붙은 이번 세대는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성배의 소속팀인 토트넘에게 이번 이적시장은 악몽과도 같았다.
***
“아, 형.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별이네요.”
“그러게.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우리 둘이 같은 포지션인데 할 수 없지.”
이번 이적시장에서 토트넘의 선수단은 대폭 물갈이되었다.
지난 시즌 1군에서 활약했던 선수 중 무려 아홉 명이 팀을 떠났고, 새롭게 일곱 명의 선수가 1군에 합류한 것이었다.
팀을 떠나는 아홉 명의 선수 중에는 윤기표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아, 이거 큰일 났네. 프랑스어는 할 줄 모르는데.”
“뭐 어쩔 수 없죠. 프랑스도 외국인 많아서 영어 정도는 통할 거예요.”
윤기표는 리그앙의 발랑시엔으로 이적했다.
원래는 도르트문트로 이적했었지만, 한국 언론을 소개받으면서 약속했던 대로 버크만이 힘을 써준 결과였다.
마지막까지 도르트문트와 발랑시엔을 두고 고민한 윤기표는 주전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발랑시엔을 선택했다.
“근데 지금은 형이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문제죠.”
“네가 무슨 문제가 있어? 주전 자리도 확실하겠다, 연봉도 많이 받겠다, 아쉬울 게 없는데.”
계약서에 있는 대로 성배의 이번 시즌 주급은 52,000유로에 육박했다.
주급으로만 8,000만 원을 받는 것이었다.
게다가 윤기표와 심봉다의 이적으로 풀백 중 최고 연봉자가 되었고, 풀백 중에는 성배의 자리를 넘볼 선수가 없어졌다.
원래 이번 시즌부터 중용되어야 했던 에코토는 숨도 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거지.”
“하긴. 공격진이 심각하지. 호흡도 하나도 안 맞고.”
1군의 절반이 바뀌었는데 문제가 없을 리 없었다.
야심 차게 영입한 데이비드 벤틀리와 로만 파블류첸코,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가 부진하고 대거 바뀐 선수단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서 3라운드까지 1무 2패의 부진에 빠져 있었다.
“로비나 베르바토프만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로비까지는 몰라도 베르바토프까지 나간 게 타격이 커요. 심지어 베르바토프는 어떻게든 잡겠다고 공격수 영입할 생각도 안 하다가 발등에 불 떨어져서 급하게 파블류첸코 데려온 거잖아요. 아무래도 안 좋아요.”
지난 몇 시즌 동안 토트넘의 공격을 이끌어 주었던 로비 킨과 베르바토프가 한 번에 떠난 것은 가장 큰 타격이었다.
수비가 완전히 무너졌던 지난 시즌 전반기의 토트넘을 짊어지며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투톱이라는 찬사까지 받은 두 선수가 한 번에 떠났으니 타격이 없을 수 없었다.
“대런도 프리시즌의 폼이 아니고, 파블류첸코는 완전히 속은 것 같고. 방법이 안 보이네요.”
프리시즌만 하더라도 벤트의 맹활약 덕분에 걱정을 덜었지만, 정작 리그가 개막한 이후에는 벤트의 기세도 꺾였다.
파블류첸코는 유로 2008에서의 활약에 사기당했다고 해도 될 정도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봐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몰라. 나는 이제 모르겠다. 내일이면 내 팀도 아닌데 내가 뭐하러 신경 쓰냐. 나는 프랑스에 적응할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파.”
“... 그것도 그러네요.”
토트넘의 2008/09시즌.
시작부터 불안한 모습을 계속 노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선의 여지도 특별히 보이지 않았다.
***
“스토크시티, 스로인을 얻어냅니다.”
“스토크시티의 스로인은 조심해야죠. 여기는 인간 투석기를 보유하고 있는 클럽이거든요?”
2008/09 프리미어리그 8라운드.
토트넘은 스토크시티의 홈구장인 브리타니아 스타디움에서 원정 경기를 가졌다.
“역시나 로리 델랍이 스로인을 준비합니다.”
“토트넘 수비진, 긴장해야죠! 평범한 스로인이 아니에요!”
이번 시즌 챔피언십에서 승격한 스토크시티는 진귀한 공격 루트를 가지고 있었다.
프리킥 못지않은 스로인 세트피스 전술이 바로 그것이었다.
세트피스의 중심에는 40m가 넘는 거리까지 스로인으로 던질 수 있는 ‘인간 투석기’, 로리 델랍이 있었다.
‘이걸 어떻게 막아...’
이번 시즌을 통해 한 시즌에 스로인만으로 두 골과 여섯 개의 어시스트 기록까지 세우는 선수가 바로 델랍이었다.
그다지 강하지 못한 아일랜드에서도 A매치 출장 횟수가 열한 번에서 멈춰있는 그이지만, 이 스로인 하나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유니크한 선수로 만들어주었다.
“델랍, 롱스로인! 박스 안으로!”
델랍의 스로인은 가볍게 토트넘 페널티박스 안까지 날아왔다.
손으로 던지기 때문에 당연히 정확했고, 포물선이 아닌 직선이라 수비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의 팀’ 스토크 시티답게 190cm 중반의 송코, 킷슨, 시디베가 박스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킷슨, 헤더! 골! 골! 골! 놀라운 골입니다!”
“와우... 와우! 실제로는 처음 보네요!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정말 놀라운 골입니다! 멋지네요, 로리 델랍!”
델랍의 스로인은 정확하게 데이브 킷슨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팀의 주요 공격 루트인 만큼 킷슨은 이 스로인이 익숙했다.
가볍게 공중에서 방향만 바꿔버린 킷슨의 헤더는 고메스의 손끝을 스치며 토트넘 골망을 흔들었다.
‘어이가 없다, 진짜.’
눈앞에서 이 골을 지켜본 성배는 그저 고개를 젓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자신도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봤지만, 스로인을 갈고 닦을 생각은 결단코 해본 적도 없었다.
창던지기 선수 출신인 델랍 외에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무기였다.
“이것으로 스토크 시티가 다시 앞서나갑니다! 토트넘이 끝을 모르고 추락합니다! 리그 여덟 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악몽이 눈앞까지 다가왔습니다!”
“이전 일곱 경기에서 3무 4패에 그쳤던 토트넘인데, 여덟 번째 경기에서도 리드를 빼앗겼네요. 심지어 지난 라운드에 상대했던 헐 시티와 이번 라운드의 스토크 시티는 승격 팀인데요! 문제가 정말 심각하죠? 이제 칼을 들어야 해요. 이대로는 답이 없습니다.”
결국, 토트넘은 경기를 뒤집지 못했고, 리그 여덟 경기 연속 무승, 3무 5패의 성적으로 리그 최하위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토트넘 보드진은 칼을 빼 들 수밖에 없었다.
< 낭만필드 - 15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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