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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150화 (118/356)

< 낭만필드 - 150 (6권) >

성배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처리한 미랄라스는 가볍게 득점에 성공했다.

2-1로 벨기에가 리드를 잡은 순간이었다.

균형도 무너졌고, 수적인 열세까지 떠안게 된 이탈리아의 올림픽은 거기서 끝났다.

이탈리아를 잡아낸 벨기에는 4강에서 코트디부아르를 꺾고 올라온 나이지리아와 만났다.

오뎀윙기, 오바시, 오비나, 아니체베 등 세대교체 된 나이지리아 A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이 포진한 나이지리아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건 벨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벨기에 선수들은 나이지리아를 맞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고, 강력한 수비를 앞세워 버티다가 성배의 롱패스에 이은 미랄라스의 한방으로 승리를 가져왔다.

결승 진출이었다.

“올림픽이 시작될 때부터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아르헨티나와 드디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금메달을 기대해봐도 되겠습니까?”

“글쎄요. 솔직히 말해서 쉽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이길 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승전을 앞두고 벨기에 언론들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모든 벨기에 선수들이 인터뷰에 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더 바쁜 선수와 덜 바쁜 선수는 있기 마련이었다.

이번 올림픽 대표팀의 최고 스타인 성배는 더 바쁜 쪽이었다.

“메시를 비롯해서 아게로, 리켈메, 마스체라노 등을 앞세운 아르헨티나의 기세에 브라질도 0-3으로 무너졌습니다. 브라질과 무승부를 거뒀던 우리는 다를 거라 믿어도 되겠습니까?”

아르헨티나는 이번 올림픽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올림픽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던 유럽이나 남미의 국가들조차 이번 올림픽의 아르헨티나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는 중이었다.

“축구는 가위바위보가 아닙니다. 우리가 브라질과 비겼고, 아르헨티나가 브라질을 이겼다고 해서 우리가 아르헨티나에게 패배하는 것은 아니죠.”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불렸던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을 3-0으로 박살 내버렸다.

또 다른 4강 멤버였던 벨기에와 나이지리아는 두 팀에 비하면 한 수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기 때문에 언론들은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사실 성배도 아르헨티나가 힘든 상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야, 지금 이 상황에서 이렇게 가면 어떡하자는 거야.”

“나라고 가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니지. 팀에서 합류하라고 하고 이적도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가는 거지, 나도 마음 같아서는 결승전 뛰고 싶다.”

벨기에에게는 악재가 겹쳤다.

벨기에 수비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 콤파니가 팀에 합류하기 위해 돌아가게 된 것이었다.

“며칠만 있다가 이적에 합의했으면 좋았을 텐데.”

“시즌도 벌써 시작했는데 이것도 오래 끈 거지. 어쩔 수 있나.”

콤파니는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이적을 단행했다.

함부르크는 비싼 이적료를 들여 영입했지만, 2년 동안 크고 작은 부상으로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콤파니를 처분하고 그 돈으로 전력을 보강하려 했다.

콤파니를 영입한 클럽은 맨체스터 시티였다.

“그건 그렇고, 우리 팀 팬들이 너를 엄청 좋아하더라. 네 예언대로 되었다면서.”

“하하, 예언은 무슨. 립서비스했던 게 운 좋게 맞아떨어진 거지.”

이번 여름, 맨체스터 시티는 모든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전 구단주였던 태국의 전 총리, 탁신 친나왓이 클럽을 매각했고, 이를 인수한 사람은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통칭 만수르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역대 축구 구단주 중 압도적으로 많은 재산을 가진 부호 중의 부호였다.

“진짜 뭐 알고 이야기한 건 아니지?”

“당연하지. 내가 뭐라고 그걸 미리 알았을까.”

인수와 함께 적극적인 투자를 약속한 만수르로 인해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은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탁신의 재산도 적은 편이 아니었고, 투자에 인색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투자한 금액은 프리미어리그 평균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만수르는 달랐다.

이번 이적시장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지만, 이미 다음 이적시장부터는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었다.

“어쨌든 요즘 난리야. 어차피 수비도 불안한데 이왕 영입할 거면 너를 데려와달라고 한다더라.”

“그거 고맙네. 만수르면 돈도 많이 주겠지.”

지난 시즌, [위클리 플레이어]에서 맨체스터 시티의 부흥을 예언한 성배였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성배에게 예언자, 선지자라는 뜻의 [Prophet]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장난으로 그렇게 불렀던 맨시티의 팬들은 이제는 진심으로 그 별명을 불렀다.

맨시티 소속의 선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배에게 큰 애정을 보내주었다.

마치 행운의 상징처럼 여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 돈도 많이 주겠지. 혹시 기회가 닿으면 한 번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오랜만에 같이 뛰자고.”

“됐다. 눈앞에 닥치기 전까지는 생각 안 하련다. 같이 뛰는 건 좋겠네. 오랜만에.”

아직 토트넘에 합류한 지 반년 밖에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다음 이적을 생각하기에는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TV에 나가서 그런 말을 왜 했는데.’

어디까지나 ‘아직은’이었다.

***

“메시, 중앙으로 치고 들어옵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성배는 왼쪽 측면을 파괴하는 메시의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원래 포지션대로라면 저기서 메시와 마주 상대하고 있었겠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성배의 자리는 오른쪽이었다.

베르마엘렌과 베르통헨, 두 선수가 커버할 수 있고, 포코뇰리라는 나쁘지 않은 선수가 있는 왼쪽에 비해 오른쪽은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메시, 벼락같은 슈팅! 베르마엘렌이 몸으로 막아냅니다!”

게다가 콤파니의 귀국으로 베르마엘렌이 중앙으로 자리를 옮기고 왼쪽 측면을 포코뇰리에게 맡기면서 메시가 더욱 활개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포코뇰리는 나쁘지 않은 선수였지만, 딱 그 연령대에 어울리는 선수였다.

이미 바르셀로나의 에이스 역할을 하는 메시를 막아낼 정도는 되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메시와 비벼볼 수 있을 텐데.’

솔직히 금메달은 못 따고 상관없었다.

은메달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성과였고, 자손 대대로 물려주면서 자랑할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본격적으로 포텐을 터뜨리기 전의 메시를 만나 한 번이라도 막아봤다는 자랑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호날두가 메시보다 한 수 위라고 우겨야겠네.’

메시가 본격적으로 포텐을 터뜨리면서 세계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 시즌은 2008/09시즌이었다.

지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렵겠지만, 어렵게라도 막아볼 수 있는 선수였다.

전성기에 도달하기 전의 호날두는 한두 번 막아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 호날두를 세계 최고라 밀어주기로 지금 결정했다.

“다시 후방에서 아르헨티나가 볼 잡았습니다. 마스체라노, 리켈메에게. 리켈메가 날카롭게 전방을 주시합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펠라이니의 장악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마스체라노만큼은 아니었다.

가투소와 팽팽하게 경쟁했던 것은 그는 하락세에 있었고, 펠라이니는 상승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상승세까지 끝나고 전성기에 접어든 마스체라노는 아직 펠라이니가 상대할 수 없는 선수였다.

“리켈메의 날카로운 공간 패스! 아게로가 잡아서 바로 슈팅! 아... 골입니다. 아게로의 멋진 슈팅. 아르헨티나에게 선취 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리켈메 선수의 공간 패스가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아게로 선수의 퍼스트 터치도 정말 아름다울 정도네요. 이런 골은 뭐... 어쩔 수 없죠. 이건 실점해도 어쩔 수 없는 골이죠.”

마스체라노의 비호를 받는 리켈메는 그야말로 게임을 지배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게 게임을 지배하는 선수가 메시라면 리켈메는 암중에 숨어서 게임을 조종하고 있었다.

에이스 메시와 플레이메이커 리켈메의 힘에 벨기에의 전의는 꺾여만 갔다.

“왼쪽으로 전개! 디 마리아와 주가 마주합니다.”

이번 대회의 최대 수혜자는 메시가 아닌 디 마리아였다.

처음 대회에 참가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디 마리아의 역할은 백업 공격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회가 진행되면서 아르헨티나의 바티스타 감독은 디 마리아를 밀어줬고, 지금에 와서는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다.

“디 마리아, 과감한 돌파 시도!”

‘아무리 그래도 너는 안 돼.’

하지만 결승에서 성배를 만났고 이번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꽁꽁 묶였다.

메시를 막아낼 기회가 사라져 분노한 성배의 수비에 고전한 것이었다.

디 마리아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어깨로 거칠게 밀고 들어갑니다! 디 마리아, 중심을 잃었고, 주, 깔끔하게 볼 빼냅니다.”

디 마리아의 단점은 피지컬이었다.

180cm에 65kg.

일반인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마른 몸을 가진 디 마리아는 피를 토하다시피 하며 피지컬을 보완한 성배의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주, 중앙으로 연결합니다.”

‘영광인 줄 알아라. 진심으로 상대해주는 거니까.’

전생에서는 바라볼 수 없을 정도의 대스타였던 디 마리아.

1,000억의 몸값을 자랑했던 디 마리아가 자신의 앞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이번 대회의 깜짝 스타인 디 마리아에 비해 자신은 그 전에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이게 바로 인생 역전인가.’

프리미어리그 무대도 밟았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몸값도 1,000만 유로를 넘겼다.

과거의 자신이 16년 동안 모은 금액은 지금 재산의 1%도 되지 않았다.

성배는 이제야 주섬주섬 일어나는 디 마리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디 마리아가 이렇게까지 볼품없었나.’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디 마리아였기 때문에 멋져보였다.

심지어 저 빼빼 마른 덩치가 커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경기가 어느 정도 진행된 지금은,

그냥 볼품없이 마른 몸이었다.

- 삑! 삐-익!

“저. 유니폼. 나랑. 바꾸다.”

경기가 끝났다.

성배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메시에게 다가가 유니폼을 내밀었다.

결승전이 열리기 전부터 계속 메시의 유니폼은 자신의 것이라 말해온 성배였기 때문에 동료들은 메시의 유니폼을 노리지 않았다.

“그래. 좋아.”

간단한 영어로도 충분히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유니폼을 교환한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경기 끝났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축구 결승전, 세르히오 아게로의 선취 골을 마지막까지 지켜낸 아르헨티나가 벨기에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합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이어 두 개 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웁니다.”

“비록 패배하기는 했지만, 우리 벨기에 선수들도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대회 시작 전까지만 하더라도 8강을 목표로 잡았었는데, 선수들은 경기를 통해서 우리들의 무지를 일깨워주었죠. 금메달보다 멋진 은메달입니다.”

이변은 없었다.

아니, 벨기에가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이변이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더 이상의 이변은 없었다.

아게로의 득점을 마지막까지 지켜낸 아르헨티나는 모두의 예상대로 다시 한 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이 대수냐. 벨기에는 축구 종목에서 메달권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축제 분위기일 텐데.’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동메달.

1920년, 홈에서 펼쳐진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금메달.

그리고 88년 만에 획득한 올림픽 메달이었다.

4년 전에도 따냈던 아르헨티나의 금메달보다 훨씬 더 귀중했다.

‘... 엄청 반짝거리네.’

메달을 보고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이윽고 성배의 목에 은빛으로 밝게 빛나는 메달이 걸렸다.

장식장을 채울 물건이 또 하나 늘어났다.

< 낭만필드 - 150 (6권)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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