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146화 (114/356)

< 낭만필드 - 146 >

“일단 우리 선수들, 세계 최강이라는 브라질에게 아직은 전혀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성배는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해 중국 땅을 밟았다.

벨기에의 올림픽 첫 상대는 브라질이었다.

브라질 모든 대표팀에 참가하고 있는 노예, 알렉산드르 파투를 중심으로 마르셀루, 하피냐, 루카스, 안데르송 등이 중심을 이루고 와일드카드로 치아구 시우바와 디에구, 호나우지뉴가 합류해 있었다.

와일드카드 유력 후보였던 호비뉴가 불참하는 등 이름값이 아쉽다는 평가도 받고 있었지만, 조 1위는 무난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외계인...’

하지만 벨기에 올림픽 대표팀 역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유로 예선 막판, 벨기에의 약진을 이끌었던 수비진이 그대로 올림픽 대표팀에 이식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따라 라이트백으로 경기에 나선 성배는 외계인, 호나우지뉴를 상대하게 되었다.

‘오늘, 내 몸값은 한 번 더 올라간다.’

성배는 자신이 있었다.

2006년을 기점으로 축구에 대한 흥미를 잃고 조울증 확진을 받은 뒤, 바르셀로나 에이스 경쟁에서 패배하고 팽 당한 호나우지뉴는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울 시기 역시 1년 뒤인 2009년으로 지금의 호나우지뉴는 자기관리에 실패해 신체가 급격하게 무너져 있었다.

‘당신을 잡고 더 높은 곳으로 가주지.’

성배에게는 다시 없을 기회였다.

아무리 몰락했어도 외계인의 이름값은 남아있었다.

지금이 그를 잡아낼 최적의 시기였다.

“안데르송, 측면으로 전개합니다! 그가 볼을 잡았습니다! 외계인, 호나우지뉴!”

돌파는 없었다.

신체 밸런스와 스피드를 잃은 호나우지뉴는 베컴과 같은 스탠딩 윙어화 되어 있었다.

발재간에 이은 빠른 패스로 먹고살았기 때문에 집중만 한다면 막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헛다리, 이후 바로 크로스!”

‘뭐냐!’

하지만 이름값뿐인 선수는 아니었다.

썩었지만 준치였던 것이었다.

호나우지뉴는 순식간에 이뤄진 헛다리 개인기를 통해 성배의 반응을 알아보았고, 움직임 없이 침착하게 지켜보는 것을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크로스를 선택했다.

“콤파니, 헤딩 클리어!”

다행히 브라질은 제공권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고, 호나우지뉴의 크로스가 위력을 발휘할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쉽게 먹혀주지는 않겠다, 이건가?’

하지만 성배에게는 의미가 달랐다.

헛다리 후 크로스로 이어간 호나우지뉴의 움직임에 반응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비록 크로스를 내줘도 상관없는 상황임을 인식하고 있었고, 신경을 덜 쓴 것도 맞았지만, 조금 더 긴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에르나네스, 중앙의 디에구에게. 디에구, 반대편으로 열어줍니다!”

호나우지뉴가 계속해서 신경을 거스르고 있었지만, 정작 성배를 힘들게 하는 선수는 호나우지뉴가 아니었다.

“마르셀루, 빠르게 올라갑니다!”

성배를 힘들게 하는 선수는 마르셀루였다.

압도적인 스피드와 화려한 테크닉, 날카로운 돌파력을 겸비한 그는 오른쪽 측면의 수비를 맡은 성배를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었다.

‘징하다, 진짜.’

스피드와 돌파력의 마르셀루, 정확하지만 허를 찌르는 패스의 호나우지뉴.

게다가 두 선수 모두 테크닉은 압도적이었다.

성배에게는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절호의 찬스이기도 했지만, 힘든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주가 따라붙습니다! 아! 뒤로 빼주고, 호나우지뉴에게!”

‘아오!’

빠르게 돌파해 들어가는 마르셀루를 쫓아가던 성배는 다시 호나우지뉴를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두 선수 모두 크로스에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절대 놓칠 수 없었다.

“호나우지뉴, 크로스, 하지 않고 돌파!”

논스톱으로 크로스를 올릴 것처럼 다리를 들어 올렸던 호나우지뉴는 성배가 따라붙자 바로 볼을 접었다.

성배가 급하게 속도를 줄이고 다시 따라붙는 동안 몇 미터 정도를 내달린 호나우지뉴는 다시 크로스를 준비했다.

“태클! 앞에 떨어지고, 주가 걷어냅니다.”

하지만 성배도 만만치 않았다.

순식간에 흐트러진 밸런스를 수습한 뒤 다시 따라붙었고, 몸을 날리는 태클을 시도했다.

호나우지뉴의 크로스는 성배의 발에 맞고 두 선수 사이에 떨어졌고, 누운 채로 다리를 휘두른 성배가 먼저 볼을 걷어냈다.

‘기회다!’

태클을 시도하면서 그라운드 위에 누웠던 성배는 상황을 파악하고 순식간에 몸을 일으켰다.

마르셀루의 오버래핑이 보여주는 위력은 분명 엄청났다.

호나우지뉴와 함께 성배에게 큰 부담을 지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별명은 ‘돌아오지 않는 풀백’.

성배는 지체하지 않았다.

“시몬스에게, 그리고 다시 주!”

와일드카드로 합류한 시몬스가 볼을 따냈고, 벌떡 일어나 달려나가던 성배에게 돌려주었다.

마르셀루의 자리.

그러니까 브라질의 왼쪽 측면은 텅 비어 있었다.

“전방으로 한 번에 넘겨주는 패스! 데 뮬이 달려갑니다!”

성배의 패스는 빈공간을 향해 달려가던 데 뮬에게로 향했다.

깜짝 놀란 브라질 센터백 알렉스 시우바가 막아보려 했지만, 데 뮬의 돌파와 성배의 패스가 먼저였다.

“데 뮬에게 이어졌고, 그대로 빠른 크로스!”

데 뮬의 크로스가 브라질의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170cm대에 불과한 단신, 미랄라스, 뎀벨레 투톱이 볼을 따낼 수 있도록 낮고 빠르게 감아준 크로스였다.

“미랄라스, 헤더!! 아! 헤난 골키퍼가 막아냅니다!”

미랄라스의 머리에 닿으며 플레이를 마무리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득점으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브라질의 헤난 골키퍼가 몸을 날려 미랄라스의 슈팅을 막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벨기에의 저력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 멋진 플레이였다.

“골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좋았어요.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마르셀루의 뒷공간을 노린 주의 패스는 정말 멋지네요.”

경기 초반, 넘치는 자신감으로 과감하게 달려들던 브라질 선수들의 기세를 꺾어 놓을 필요가 있는 상황이었다.

벨기에가 보여준 조금 전의 위협적인 공격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이제 조금 얌전해지려나?’

마르셀루도 본인의 약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성배가 그 약점을 제대로 후벼 파버린 것이 조금 전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하도 많은 지적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마르셀루로서는 전처럼 과감하게 공격해 들어오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젠 내 차례야.’

마르셀루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공격력 역시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마르셀루의 수비는 발암 물질로 이미 유명했다.

그의 수비력이 성장하는 것은 2-3년 뒤였다.

***

“뒤에서 올라오는 주에게 패스하는 펠라이니. 주, 다시 한 번 오른쪽 측면을 노립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마르셀루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있어요. 한 수 위의 기량으로 맞대결에서 우세를 점합니다!”

마르셀루는 분명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선수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동갑내기인 성배보다 한 수 아래일 수밖에 없었다.

선수에게 기량과 잠재력만큼이나 중요한 경험이라는 것을 가지고 시작한 성배였고, 아직 유망주 수준인 동갑내기 선수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유리한 출발이었다.

“데 뮬, 내려오면서 볼 받아주고 다시 돌려줍니다! 주의 빠른 돌파!”

데 뮬 혹은 펠라이니와의 연계를 통한 공격작업이 성배가 보여주는 공격작업의 기본이었지만, 직접 돌파도, 빠른 크로스도 활용해가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격을 전개했다.

경험이 적은 마르셀루는 성배의 다양한 무기에 헤맬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계속 상대하면서 마르셀루의 표정을 지켜본 성배였다.

마르셀루는 지금 굉장히 흔들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다른 무기를 들고나오는 성배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한 것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났다.

당연히 공격에서도 헤맬 수밖에 없었다.

성배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격언을 실행하는 중이었다.

“골라인까지 지체 없이 파고듭니다! 크로스, 아니고 접었습니다!”

골라인을 나가기 바로 전에 크로스를 시도할 것처럼 발을 들어보았다.

마르셀루는 여지없이 걸려들었다.

크로스를 막기 위해 발을 들어 올린 마르셀루를 남겨두고 유유히 반대 방향으로 돌아나간 성배는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슈팅 기회!”

박스 안까지 들어온 성배에게 슈팅 기회가 주어졌다.

정확한 킥을 보유한 성배라면 감아서 직접 득점을 노려볼 수 있는 위치였다.

‘그래, 와라.’

위험한 상황임을 인지한 시우바가 성배를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같은 시우바라도 치아구가 아닌 알렉스였다.

“슈팅, 아니고 접었습니다!”

간단한 슈팅 페인트에 속아 몸을 날린 시우바는 성배에게 간단히 제쳐졌다.

그러면서 조금 더 좋은 위치까지 올라온 성배를 향해 이번에는 루카스와 마르셀루, 두 선수가 달려들었다.

“다시 한 번 페인트, 바로 슈팅!!”

하지만 두 선수 역시 페인트에 속아 넘어갔고, 성배는 그들의 태클을 피해 아주 살짝 바깥쪽으로 볼을 빼놓은 뒤 눈 깜짝할 사이 슈팅으로 이어갔다.

‘제대로 감겼어.’

도움닫기 할 공간도, 시간도 없었다.

심지어 디딤발마저도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파워가 떨어지는 슈팅이었지만, 그런 페널티 정도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성배의 킥이었다.

“골! 골입니다! 들어갔습니다! 주의 멋진 슈팅! 반대편 골대 상단 구석으로 정확히 감기면서 빨려 들어갑니다! 벨기에의 올림픽 첫 번째 득점은 수비수인 주의 발끝에서 나왔습니다!”

“엄청난 슈퍼, 슈퍼, 슈퍼 플레이에요! 혼자서 네 명을 제치고 넣은 골이죠! 마르셀루, 시우바, 그리고 다시 한 번 마르셀루, 마지막으로 루카스까지! 브라질 수비진은 네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주성배 선수의 볼을 빼앗지 못했어요!”

성배의 슈팅은 그림처럼 반대편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슈팅이 이루어지기까지의 플레이와 거의 제자리에서 발만 휘둘러 시도한 슈팅 장면, 마지막의 완벽하게 감겨 들어가는 슈팅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멋진 장면이었다.

“예상을 깨고 벨기에가 먼저 리드를 잡아 나갑니다! 상황이 괜찮게 흘러갑니다.”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이번 올림픽 대표팀은 정말 크게 일 한 번 낼 겁니다. A대표팀의 강력한 수비라인이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그대로 가동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죠. 유로 예선 막판의 돌풍을 이끈 주와 벨기에 최고의 재능인 콤파니가 뭔가 해줄 겁니다.”

벨기에의 세대교체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유로 예선에서 증명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번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어린 선수들이었다.

“A대표팀의 핵심 중원 자원인 펠라이니도 있고 시몬스도 와일드 카드로 합류했어요. 미랄라스, 뎀벨레도 유로 예선 마지막 다섯 경기에서 세 골씩을 몰아넣었던 선수고요. A대표팀 핵심 선수들 대부분이 그대로 올림픽 대표팀에 이식되었으니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밖에 없죠!”

수비라인의 네 명 이외에도 베스트 일레븐 중 일곱 명이 A대표팀 부동의 주전이었고, 두 명은 선발과 후보를 오가며 쏠쏠히 활약 중이었다.

여기에 골키퍼 프로토와 수비형 미드필더 시몬스가 와일드카드로 합류, 벨기에 올림픽 대표팀의 선발 명단에는 A대표팀 선수들이 그대로 포진해 있었다.

“지금까지는 분위기가 굉장히 좋습니다. 첫 경기부터 브라질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팬들의 기대대로 벨기에 올림픽 대표팀은 첫 경기부터 축구왕국 브라질을 상대로 선취 골을 넣었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경기 분위기는 완벽했다.

성배의 득점은 벨기에의 뜨거운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 낭만필드 - 146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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