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145 >
[전 영원중 축구부 선수들, “성배를 이해할 수 있다.”]
[“나라도 기회만 있다면 그랬을 것.” 전 동료들의 변호.]
[동료들이 입을 모아 변호하는 주성배의 학창 생활, 과연 어땠을까.]
[석영균 청주 FC 2군 코치,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추측과 루머만이 무성한 출국 전의 트러블에 대해서 성배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입을 열 사람이 성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 축구계에서의 활동이 걱정되었을 정도의 트러블이라면 분명 축구계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그렇다면 팀 동료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기자들이 그들을 찾아갔고, 이 선택은 적중했다.
그들을 찾아 인터뷰를 따내고 기사까지 올리는 데 걸린 시간은 이틀이 채 되지 않았다.
...
- 감독과의 트러블이었나?
: 예. 아마도 그랬던 것 같아요. 자세한 이야기는 저도 잘 모르지만, 성배가 벨기에로 건너간 이후에도 틈만 나면,
“그 자식, 한국 축구계에는 절대 발도 들여놓지 못할 거다. 정 안 되면 직접 나서서라도 그렇게 해준다.”
라고 하셨어요. 솔직히, 사전 합숙 때는 조금 이상했지만, 원래 성배는 굉장히 순하고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친구였거든요. 그래서 ‘또 한 명 찍혔구나.’라고 생각했죠.
...
“한국 축구계에는 절대 발도 들여놓지 못할 거다.”
이 대목이 결정적이었다.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 높은 사람들의 횡포에 치를 떨었고, 이 발언의 앞뒤 사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성배의 중학교 시절을 알고 있는 전 동료들이 나서서 회귀 전의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하고 의리있는 성격에 대해 증언하면서 석영균 감독에 대한 옹호 의견은 힘을 잃었다.
...
- 본 기자가 취재한 학창시절 동료들의 발언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가 바보같이 착했고, 감독은 물론 선배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할 정도로 순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서 지켜본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주성배의 학창시절에 대한 루머는 일말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일 수밖에 없다.
...
여론은 성배의 편이었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있었던 기자회견으로 인해 팬들의 호감도가 최고점을 찍은 상황에서 이런 기사들이 나왔으니 성배의 편일 수밖에 없었다.
축구협회와 석영균 감독, 한국 유소년 축구 시스템 등 언제나 욕을 먹어왔던 한국 축구계의 소위 말하는 ‘갑’들에 대한 비난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성배로 대변되는 축구 선수, 특히, 유망주들, ‘을’에 대한 동정론이 힘을 얻었다.
성배의 선택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이 줄었고, 성배를 안쓰럽게 여기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났다.
‘이번 시즌까지만 잘 마치고, 유소년 축구 센터가 성공적으로 시작하면... 한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겠어.’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뗀 성배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류 뭉치가 꽤 두껍게 쌓여 있었다.
한국 기업들에서 제시한 광고 및 후원 계약서였다.
‘미안하긴 하지만. 지난 생에서 당신 덕분에 바닥으로 떨어졌던 그 느낌은 도무지 잊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석영균 본인에 대한 원망과 증오, 분노는 상당 부분 희석된 상태였다.
자스민에 대한 마음도 정리했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눈물지었던 엘리자베스를 잃은 슬픔도 이제는 세 번에 한 번 정도만 눈물을 흘렸다.
석영균에 대한 감정 따위가 남아있을 리 없었다.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라 사회와 정의, 후배들을 위한 거라고 해두지, 뭐.’
사실 그런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전생에서 석영균의 혹사와 방치로 인해 부상이 심해지고, 그로 인해 선수생활에 크게 손해 봤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이렇게까지 잘해줄 줄은 몰랐는데.’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나타난 성배의 전 동료들.
특종 냄새를 맡은 기자들은 초인과 같은 능력을 발휘한다지만, 지나치게 빨랐다.
사실, 성배의 부탁을 받아 버크만이 준비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거라 확신했던 성배는 버크만에게 자신의 한국 생활에 대해 발언했을 때, 가장 신뢰도가 높은 전 동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버크만은 윤기표를 통해 친해진 한국 기자들에게 이를 전했고, 이미 한 달 전부터 이들을 찾아다녔으니 빠른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고교 시절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끝낸 친구들이겠지. 도움이 많이 됐어.’
선수생활을 여전히 이어나가고 있는 동기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공격하는 주체가 감독이고 협회이다 보니 그들은 나설 수 없었다.
전면에 나서준 동료들은 고교생활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마친 친구들이었다.
‘역시. 당한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어. 이럴 줄 알았지.’
이들을 찾아다닌 또 한 가지의 이유는 전생의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름 괜찮은 유망주라 평가받았던 선수 중에서도 석영균 감독 때문에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던 선수가 꽤 있었고, 이들의 발언은 석영균의 신뢰도를 낮추는데 크게 한몫 거들었다.
‘쯧쯧. 당신도 이제 끝이군.’
석영균은 1년 전부터 청주FC 2군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번에 졸업하고 청주FC에 합류할 진현필이 가장 잘 따르는 지도자였기에 구단 측에서 영입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구단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거물급 유망주 진현필의 스승이라 할지라도 안고 가기 힘들었다.
안고 간다고 하더라도 끈은 다 떨어질 것이었고, 지도자로서 성장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
[현 청주FC 2군 코치 석영균, 입시 비리 연루 의혹!]
[석영균 코치, 긴급 체포! 입시 비리 및 금품 요구.]
[검찰, 석영균 코치에게 구속영장 발부.]
[한국 학원 스포츠, 이대로 괜찮나?]
그리고 또다시 며칠 뒤, 성배가 벨기에 출국을 며칠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사건 하나가 제대로 터져버렸다.
고등학교 감독 시절, 학부모에게 금품을 요구해 그 돈으로 대학에 청탁을 넣은 것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몫을 떼먹은 혐의로 석영균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이었다.
‘이건 진짜 KO펀치네.’
이번 일은 성배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성배도 모르게 진행된 일이었던 것이었다.
‘누구 한 명이 제대로 칼을 갈았나 본데.’
아마 성배가 찾아다녔던 전 동료 중 한 명의 작품일 것이었다.
대한민국 축구계에서는 실력만큼이나 돈과 정치도 중요했다.
실력이 있어도 돈이 없고 인맥이 없으면 프로생활은 물론이고 대학 진학마저도 힘든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당한 동료들, 혹은 부상으로 꿈이 좌절된 동료들 중 한 명의 작품으로 보였다.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긴 하지.’
석영균은 지금 본인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선수 출신이기는 했지만, 미미한 커리어로 은퇴했고, 초등학교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런 관심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
안 좋은 쪽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이제는 진짜로 끝났다.’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풀백인 성배를 쫓아낸 주범으로 찍혀서 욕이란 욕은 다 듣고 있었던 석영균에게 이번 사건은 치명타였다.
그를 욕했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축구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국가대표 경기 결과만 찾아보는 일반인들에게조차 그의 이름이 각인되었다.
이제 축구계에는 그가 발붙일 자리가 없다고 봐야 했다.
‘깔끔한 마무리야.’
석영균은 이제 완벽하게 끝났다.
문제가 제기된 시점이 안 좋았고,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성배가 너무 거물이 되어 나타나버렸다.
그렇게 약해진 틈을 타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옛 제자가 독한 마음을 품자, 순식간에 모든 것이 끝난 것이었다.
문제 제기부터 몰락까지 이어진 그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이제 여기도 내 홈그라운드가 되겠어.'
한국에는 이제 성배의 위치를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한국도 성배의 활동 무대가 된 것이었다.
찜찜했던 폭탄은 석영균이지, 일개 유망주에 불과한 진현필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아, 접니다. 주성배.”
성배는 바로 자신의 일을 대신 맡아서 처리해주고 있는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터뷰와 기자회견 거절 의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자신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좋았다.
이미 여론은 자신의 편이었다.
***
[프리미어리거 3인방, 유소년 축구 센터 건립한다. “한국 유소년 축구계 혁신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후배들에게는 나의 전철을 밟게 하지 않겠다.” 주성배, 발 벗고 나선다.]
[이름은 세 사람의 중간 이니셜 딴 K.I.S FC로 결정.]
그리고 쐐기가 박혔다.
한국 유소년 시스템의 문제로 쫓겨나듯 떠났다는 것이 진실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유소년 축구 센터 건립 소식은 결정타였다.
기자들은 자신이 겪은 설움을 후배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라며 성배의 의도까지도 알아서 만들어주었다.
성배는 어느새 윤기표의 NO.2 자리까지도 위협하며 박인진의 인기를 빠르게 뒤쫓고 있었다.
“에휴,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다가 가네. 이게 뭐니, 속상하게.”
의도했던 모든 일을 해결한 성배는 마음 편히 벨기에로 다시 출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렇지 않았다.
3년 만에 귀국한 성배는 기자회견과 뒤이어 연달아 터진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거의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항상 꾸준히 해오던 운동을 제외하면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언론과 마주하거나 언론을 피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제 다 해결됐잖아요. 내년부터는 조금 더 오래 있다가 갈 수 있을 거예요.”
“하아, 1년을 또 어떻게 기다리지?”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와 유빈이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아예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모를까, 집에서 같이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제가 비행기 표 보내드릴 테니까, 올림픽 기간에 중국으로 오세요. 이번에는 제가 유럽에 없으니 중국으로 오시면 되겠네요.”
8월 초부터 말까지 이어지는 베이징 올림픽에 성배 역시 참가했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잉글랜드로 돌아가 팀에 합류해야 했지만, 대회 중간중간, 그리고 종료 후 하루 이틀 정도는 함께 보낼 시간이 있을 터였다.
“어, 좋다. 그럴까?”
혜진의 표정은 순식간에 밝아졌다.
성배조차도 자신과 함께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인지, 중국 여행을 시켜준다고 해서 그런 것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어머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 저 지금 출국하는데요?”
“그래서, 뭐? 너는 매일 나가 있잖아. 그게 뭐 특별한 일이라고.”
순식간에 180도 돌변한 혜진의 태도에는 천하의 성배라 할지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유빈아?”
“응! 키야, 역시 오빠를 잘 둬야 한다니까? 일 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이라니. 정작 외교관인 아빠는...”
“유빈아! 아빠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출국이고 나발이고 여전히 대책 없이 밝은 가족들의 모습이 어이없기도 했지만, 이내 성배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야! 그렇게 오빠한테 고마우면 초코파이 한 박스라도 보내줘 봐라. 인진이 형이랑 기표 형은 그런 거 엄청 받는다고. 괜히 팀 동료들한테 눈치 보이니까 너라도 친구들 동원해서 보내줘 봐.”
“택배비 비싸던데...”
“오! 생각은 했나 보네? 감동인데?”
“무슨 착각을 하는 거야. 유럽 여행간 친구한테 택배 보낸 건데. 어쨌든. 택배비만 주면 그 정도는 해줄게. 여행도 시켜주는데 그 정도야 해줄 수 있지.”
성배도 그사이에 합류해서 한동안 바보짓을 즐겼다.
오랜만에 유빈이와 투닥거리니 한결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역시. 이게 아쉬웠던 거지.’
가족들과 웃고 떠드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비행기 시간도 점점 다가왔다.
“그래. 잘 다녀오고. 이제는 굳이 말 안 해도 알아서 잘하겠지만.”
성배가 한국을 떠나 생활한 지 벌써 5년하고도 반이 지났고, 혼자 독립해서 생활한 지도 2년 반이 지났다.
이제는 익숙해진 이별이었다.
“알았어요. 비행기 표 보낼 테니까 휴가 기간만 맞춰 놓으세요.”
“알았어. 유빈이랑 상의해서 정해볼게.”
“아, 아버지도 이번에는 시간 좀 비워보세요.”
“오냐, 알았다. 한 번 맞춰볼게.”
“너도 시간 되면 오든지. 남아서 그림 하나라도 더 그리는 게 낫겠다 싶으면 너 알아서 하고.”
“시끄러! 꼭 가서 한국 응원할 거다!”
성배의 한국 일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라운드 바깥의 생활에서 많은 것을 얻은 일정이었고, 이제는 본업으로 돌아갈 때였다.
< 낭만필드 - 14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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