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143 >
“아, 이 자식이 우리나라에 있었으면 수비 걱정은 한시름 덜 텐데.”
윤기표의 넋두리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대표팀에 합류한 박인진과 윤기표 역시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훈련 중 시간을 낸 두 사람과 성배는 조용하고 인적이 뜸한, 그리고 프라이버시가 잘 지켜지는 식당에서 식사 자리를 가졌다.
“아우,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형들 하고 다니는 거 보면 그렇게는 못 살겠네요. 아이고, 피곤해.”
어느 정도 피곤해질 거라 예상하고 팬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장소로 약속 장소를 정한 것이었는데, 그런데도 죽을 뻔한 성배였다.
매번 이런 일을 견뎌낼 자신이 없어졌다.
“왜? 벨기에는 안 이래? 너도 벨기에에서는 알아주는 스타잖아.”
“뭐, 아니라고는 안 할게요.”
굳이 겸손 떨 필요는 없었다.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으니까.
“이 자식. 처음엔 안 이랬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건방졌지?”
“형이 오냐오냐, 해줘서 그래.”
헛웃음을 터뜨리는 윤기표의 옆에서 박인진이 깐족거렸다.
“어쨌든. 벨기에에서는 안 이래요. 물론, 저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지는 않죠. 적어도 바깥을 못 돌아다닐 정도는 아니에요.”
공항에서도 기자들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앓았던 성배는 입국한 이후에도 팬들 덕분에 또 한 번 홍역을 앓았다.
이제 겨우 입국 3일째인데, 다음번 입국이 걱정될 정도였다.
“뭐, 그건 그거고. 왜요? 한국 대표팀이 많이 안 좋아요?”
윤기표가 성배에게 이런 식으로 아쉬운 소리를 건넨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거의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에휴. 안 좋아. 그나마 하대욱 감독님이 부임하시고 나서 좀 좋아지고는 있는데, 그래도 아쉽지.”
2002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을 선임해 대박을 냈던 한국 대표팀은 이후 코엘류,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베어벡 등 연속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다.
하지만 히딩크 때와는 달리 축구협회가 전면에 나서는 외국 감독 체제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었다.
결국, 자신의 색깔을 입히려는 어정쩡한 능력치의 외국인 감독과 선임해놓고 신뢰와 인내를 잃은 축구협회의 동침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열일곱 번의 A매치에서 7승 4무 6패를 기록한 성적이 이를 증명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시아 팀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절대로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특히 바레인에게 패배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그래도 제가 간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게다가 한국도 레프트백 자원은 괜찮잖아요.”
한국 대표팀의 왼쪽 풀백으로는 윤기표와 강대준이 있었다.
윤기표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강대준 역시 지난 시즌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와 UEFA컵을 제패한 제니트 소속으로 중용되고 있는 좋은 선수였다.
“대신 라이트백이 약하잖아.”
윤기표라는 한국 역사상 최고의 풀백과 강대준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할 만한 풀백이 동시에 등장한 레프트백과 달리 라이트백에는 마땅한 선수가 없었다.
K리그로 복귀한 성진곤이 있었지만,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기량의 하락세가 확연했고, 진영환은 수비력의 문제가 심했다.
중요한 건 이 두 선수가 그나마 제일 잘 나가는 선수라는 것이었다.
“저도 레프트백인데요?”
“야, 너는 좀 다르잖아. 기표 형은 라이트백으로 뛸 수만 있는 수준이고, 너는 라이트백으로 뛰어도 레프트백만큼 하니까.”
“저기.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한데, 은근히 기분 나쁘다?”
박인진의 말처럼 윤기표의 라이트백 소화 능력이 뛸 수만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레프트백으로 뛸 때와 비교하면 손색이 있는 건 확실했다.
IF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도 없었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었다.
만약, 성배가 귀화를 하지 않았다면, 대표팀의 라이트백 고민은 없었을 것이었다.
“아아, 뭐, 이미 지나간 일 계속 말해서 뭐해요. 우리 생산적인 이야기나 하자고요.”
“생산적인 일이라... 지난번에 말했던 그거?”
“네. 이제 슬슬 계획을 잡아봐야죠. 2008년이 가기 전에 기공식 들어가기로 했으니까요.”
성배와 박인진, 윤기표 세 사람은 한 가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중이었다.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성배와 박인진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박인진은 아마추어 시절, 굉장히 어려운 길을 걸어온 선수였고, 성배 역시 다소 각색해서 전하기는 했지만, 평탄한 아마추어 생활은 아니었다.
성배의 이야기를 듣고 동질감을 느낀 박인진이 말을 꺼냈고, 평탄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했지만, 평소 한국 축구의 미래에 대해 항상 고민하던 윤기표가 가담했다.
앞으로 성장할 유망주들을 생각하니 오랜만에 마음이 약해진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해득실을 따졌을 때, 이득이 더 클 것 같다는 이유로 성배도 동참한 프로젝트였다.
“일단 수원에 하나, 원주에 하나, 청주에 하나. 이렇게 세우기로 한 거지?”
“응. 원주가 춘천보다 나은 것 같지?”
“원주는 상승세고 춘천은 하락세니까 원주가 낫겠죠.”
세 선수 모두 이런 사업적인 부분에는 재능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컨설팅을 받았고, 직접적인 업무는 전문가들에게 맡겨놓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의견을 제시할 뿐이었고, 어쨌든 결정은 세 선수가 해야만 했다.
그나마 미래를 알고 있는 성배의 의견이 가장 많이 채택되고 있었다.
“내 고향에 세우고 싶지만. 그건 안 되겠지?”
“형, 거긴 너무 시골이야.”
“아니, 시골까지는 아니라고!”
“저기, 형. 군이면 시골이에요.”
세 선수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다름 아닌 유소년 클럽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채범진 축구교실처럼 어린 아이들이 재미있게 축구를 배우면서 재능을 찾는 클럽을 계획하는 것이었다.
박인진이 성장한 수원에 하나, 성배가 성장한 청주에 하나를 세우기로 했고, 안양에서 성장했지만 가까운 수원이 더 큰 도시였기 때문에 윤기표가 태어난 강원도에서 제1의 도시인 원주에 하나를 오픈할 계획이었다.
성배가 참여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축구 센터를 운영하게 된다면 안 그래도 호의적으로 돌아서 있는 한국 내의 여론을 확실하게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왔던 유소년에 대한 투자는 헤비한 축구팬들까지도 자신의 편으로 돌려세울 수 있을 것이었다.
‘솔직히 필요하기도 하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이지만, 전생에서 감독의 방치로 인해 부상을 키우고 커리어가 끝장날 뻔했던 성배였다.
다른 건 몰라도 유망주들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는 일인데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어차피 한국에서의 이미지를 개선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마음에 드는 일을 진행하고 싶었다.
“네, 네. 제일 거지인 제가 참아야죠, 네, 네.”
안타깝게도 세 선수 중 가장 적은 돈을 투자한 선수가 윤기표였다.
가정이 없는 나머지 두 선수와는 달리 가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인진은 일본과 네덜란드, 그리고 맨유에서 받은 연봉도 적지 않았고 광고 수익이 엄청났다.
성배는 연봉에서도, 광고에서도 박인진에게 밀렸지만, 전가의 보도인 미래 정보를 이용한 투자 수익이 상당했다.
그리고 이 유소년 축구 센터 건립과 관련해서 일이 생각대로만 풀린다면, 여기 투자한 금액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각대로만 풀리면 벨기에와 함께 한국에서도 여러 경로의 수익이 따라올 것이었다.
“네. 그러면 대주주인 제 의견에 따라주시죠. 하하.”
성배가 가장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얼굴마담은 어디까지나 박인진이었다.
박인진이 한국에서 가장 인기도 많았고, 자신보다 선배였다.
자신은 한국 국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박인진을 앞세우고 조력자로 남는 것이 가장 좋은 효과가 나올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자, 어차피 우리가 대략 의견만 정리해주면 전문가분들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그것보다, 이름부터 정하자고.”
윤기표의 명쾌한 정리에 성배와 박인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세한 것을 모르는 세 사람이 아무리 고민해봤자 이렇다할 결론은 나오지 않을 것이었고, 전문가들에 의해 쓰레기통 직행일 것이었다.
“그럼 이름은 뭘로 할까? 다들 생각해놓은 거 있지?”
이름 이야기가 나오자 세 사람의 눈빛이 번뜩였다.
세 사람의 이름값을 감안하면 한국 최고의 유소년 축구 센터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런 센터의 이름을 짓는 것이니 욕심이 나는 것도 당연했다.
“내가 제일 큰 형이니까 먼저 말해보면... LPJ 어때? 그냥 우리 성 이니셜로 딴 건데.”
“왜 형이 제일 앞인 건데?”
“아니, 그냥... 찬물에도 위아래가 있으니까.”
역시나 태클이 들어왔다.
“인진이 형이 얼굴마담이고, 인진이 형 쪽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니까 제일 앞에 두죠. 보통 ‘JIN’이라고 부르니까 J, 기표 형은 'KI'라고 부르니까 K, 저는 ‘JU’라고 부르니까 J. 해서 JKJ 어때요?”
“그건 입에 붙질 않잖아.”
“그러면 성배가 제일 많이 투자했으니까 제일 앞에 두고, 형이니까 기표 형 두 번째에 두고 마지막에 나로 해서 세 명 이니셜로 JYP. 어때?”
“이상해! 무슨 연예인 이름 같잖아!”
“형, 그건 좀... 패러디 같잖아요. 진지한 건데...”
새로 시작하기 위해 이름을 정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 아예 우리 이름 같은 거 다 빼버리고 한국 유소년들을 위한 거니까 코리아의 K를 넣을까?”
“그건 너무 나라에서 하는 것 같잖아요.”
“그리고 성배는 벨기에 국적인데 이름에 한국을 넣는 것도 좀 이상해.”
의외의 곳에서 암초를 만난 세 사람이었다.
세 사람은 이후 자리를 옮겨가며 의논을 이어갔지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
“괜찮겠어? 기자들 장난 아닐 텐데...”
며칠 뒤 아침, 성배는 아침부터 정장을 차려입고 외출을 준비했다.
주말을 맞아 일주일 만에 다시 모인 가족들도 늦잠을 포기하고 성배를 배웅해주기 위해 일어나 있었다.
바쁜 일주일을 보내고 겨우 쉬는 날이었음에도 누구 하나 졸린 기색이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잉글랜드 기자들에 비하면 별것 아니에요.”
오늘은 성배의 기자회견이 예정된 날이었다.
아주 자잘한 인터뷰를 제외하면 귀화 이후 처음으로 한국 언론과 대면하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래도 민감한 질문들이 많을 텐데.”
특히 혜진의 걱정이 가장 심했다.
평소에는 쿨하고 나사 하나 빠진듯한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 혜진이었지만, 그녀는 어머니였다.
아들이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 나가는 것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뭘. 처음 우리한테 와서 귀화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당연히 올 수밖에 없는 날이었어. 오히려 이런 날이 오지 않았으면 그게 더 문제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뜻이니까.”
“정답이네요, 아버지. 하하.”
솔직히 이 자리는 성배가 의도한 자리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날이 오는 것은 당연했고, 이날을 위해 꽤나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다.
그래서 성배 자신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는데, 가족들이 긴장하고 있었다.
“어쨌든. 아버지 말대로 저는 지금 되게 기분 좋아요. 이유가 뭐였든지 간에 국적을 바꾼 선수인데도 이렇게 기자회견 자리까지 만들어 주잖아요. 제가 듣기로는 기자회견 규모도 엄청 크다고 하던데, 이 정도면 성공한 거죠.”
성배의 기자회견 규모는 굉장했다.
참가하는 기자들도 엄청났고, 취재하는 매체의 숫자도 굉장히 많았다.
한국 언론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이기 때문이었지만, 성배의 인지도가 낮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 그럼 이만 갔다 올게요.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쉬고 계세요.”
성배는 상큼한 미소와 함께 방을 나섰다.
가족들은 그런 성배의 뒤를 쫓아 나왔다.
“다녀오겠습니다. 자, 너도 들어가서 좀 더 자. 보니까 너 너무 못 자더라. 나보다 더 바쁜 것 같냐.”
“지금 내 걱정 할 때냐? 오빠 걱정이나 하시지.”
학교 수업을 마친 후에도 학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유빈이의 모습이 안타까워 한 말이었지만, 유빈이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기특하긴.’
“알았으니까 들어가서 더 자. 아이고, 이 머리 푸석푸석한 거 봐라.”
“으으! 시끄러! 안 그래도 스트레스인데!!”
유빈이와 마지막으로 한바탕 푸닥거리를 마친 성배는 현관문을 열고 진짜로 집을 나섰다.
“갔다가 올게요! 편하게 좀 주무시고 계세요! 이따 저녁 맛있는 거 해주시고요!”
성배는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 보인 뒤, 차에 올랐다.
‘자, 한 번 해볼까?’
첫 기자회견 당일.
앞으로 한국에서의 활동을 결정할 중요한 날이었다.
< 낭만필드 - 14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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