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137화 (105/356)

< 낭만필드 - 137 >

ㄴ 키야! 정의구현!! 돈으로 클래스를 사려 했던 졸부들에게 제대로 정의 구현해주는구나! 통쾌하다!

ㄴ 돈시 놈들 ㅋㅋ 정의의 철퇴를 얻어맞았군. 돈시도, 안습날도 주성배를 못 막는구나! 박인진이랑 형, 동생 하면서 잘 지내더니, 역시 박인진 도우미였어. 맘에 든다, 쟤.

ㄴ 역시, 돈으로 처바르는 클럽 수준이 그렇지.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결정적인 순간 못 버티거든. 그게 클래스지. 우리 맨유처럼. 안습날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걔네도 결국 못 막았지만.

ㄴ 아니... 굳이 따지자면 주성배가 이상하게 첼시에 강할 뿐인 거 아님? 다른 클럽이랑 할 때도 잘하기는 하지만, 첼시만 만나면 완전 날아다니던데.

ㄴ 그러니까 그게 첼시의 한계라는 거지! 맨유 봐봐! FA컵에서 완전히 발라버렸잖아. 그때는 주성배도 박인진한테 막혀서 아무것도 못 했음. 결론은 그게 클래스 차이.

‘...그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한국 대표팀이었지.’

잠시 투자 현황도 확인할 겸 컴퓨터를 켰던 성배는 오랜만에 한국 인터넷 반응을 살펴보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종료 창을 눌렀다.

자신에 대한 칭찬이 대부분이었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팀을 상대로 잘한 건 맞지만, 왜 그걸 또 맨유랑 결부시키는지.’

성배도 해외축구 팬이었고, 우상처럼 생각했던 박인진과 함께 맨유를 좋아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좋아하는 클럽은 자신과 스타일이 비슷한 레이튼 베인스의 에버튼이었고, 전체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클럽은 필립 람의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한국 인터넷상의 반응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애초에 이 경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막판에 각성해서 동점을 만든 건데. 왜 맨유랑 첼시한테 관심이 쏠리는 건지.’

이 경기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토트넘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축구팬들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모든 기사에 대한 반응은 맨유로 통했고, 맨유의 우승 경쟁자인 첼시, 아스날, 리버풀 등을 욕하는 것으로 통일되었다.

‘그래도 반응은 호의적인 편이네.’

그나마 건질 것이 있다면, 한국 팬들의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박인진, 윤기표와는 자연스럽게 친분이 깊어졌다.

당연히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반응도 빨라졌고.’

그리고 그렇게 관심이 쌓여서 이제는 개인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리면 30분도 되지 않아 바로 기사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배가 궁금하다기보다는 박인진과 윤기표의 사생활이 궁금한 것이었지만, 성배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기사가 다 몇 개야. 진짜 많이 컸다, 주성배.’

당장 이번 경기에 대한 기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첼시와의 경기에서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는 내용의 기사는 도저히 그 수를 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스타가 된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었다.

박인진이나 윤기표 같은 선수와 비교하면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규한과 비슷한 인지도를 가지게 된 수준이었고, 순수하게 응원하는 팬을 따져보면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해.’

하지만 그 정도로도 처음에 바랐던 것을 이미 넘어섰다.

이 이상을 바랄 생각은 없었다.

‘다행이네.’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한국 팬들의 반응과 그에 따른 가족들의 문제는 이제 접어두어도 될 듯싶었다.

***

“하하, 빨리 독립을 해야지, 하나하나 챙기려니까 죽겠습니다, 아주.”

성배와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던 버크만이 끙끙 앓았다.

안 그래도 독립을 준비하면서 함께할 선수들을 알아보고 그들에 대한 자료들까지 준비해 파악하느라 바쁜 상황에서 성배의 스케줄까지 따라다니느라 힘들기도 할 것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독립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버크만이 바쁜 것은 당연했다.

새롭게 자신의 회사를 만드는 것인데, 그 일이 쉽게 이루어질 리는 없었다.

“역시 위로는 안 해주시는군요. 하하하.”

“이런, 위로가 필요하셨던 겁니까? 어떻게, 지금이라도 해드리면 되나요?”

별로 내용은 없는 대화였다.

하지만 최근 두 사람의 대화는 항상 일과 관련되어 있었고, 성배도 적지 않은 돈을 투자했기 때문에 딱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의 가벼운 대화가 기꺼웠다.

‘빨리 자리 잡아서 이것저것 좀 해달라고.’

버크만이 자리만 빠르게 잡아준다면 자신에게도 큰 이득이 될 것이었다.

어차피 버크만의 능력을 생각하면 그 정도 돈은 아깝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성배의 목표는 돈이 아닌 성공이었고, 그 정도 투자로 성공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그나저나 놀랐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이 어디서 난 겁니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투자했던 게 대박이 났다고. 조금 더 오래 묵혀두라고 했는데, 제가 투자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그냥 뺐습니다. 무서워서요.”

안더레흐트 시절부터 돈을 버는 족족 생활비만 남기고 투자했던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그렇게까지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박인진이나 윤기표가 현재까지 번 금액을 더한 것보다 많은 금액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성배는 주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었고, 미래의 지식으로도 언제쯤 떨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마침 돈이 필요한 상황이 되자, 절반 정도만 남기고 전부 버크만에게 재투자했다.

“이야, 그런 정보가 있었으면 저에게도 좀 알려주지 그러셨습니까? 독립을 몇 년 늦추는 한이 있었더라도 저도 투자했을 텐데요. 전문가가 더 넣어두라고 했는데 아깝지 않으십니까?”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고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알랭에게 투자하는 게 훨씬 현명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뭐래도 제 전공은 축구거든요. 투자로 번 돈은 운이 좋았던 것뿐이죠.”

버크만에게 투자한 것은 버크만의 빠른 성공을 위한 것이기도 하면서 그에게 마음의 짐을 지워놓자는 의미도 있었다.

지금 버크만의 반응을 보면 성공한 것 같았다.

“부담스럽네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 정도로는 안 되죠, 하하하.”

버크만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점에서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성배였고,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 더 끈끈해졌다.

“안녕하십니까, 주성배입니다.”

촬영장에 도착한 성배는 촬영을 준비하는 촬영진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건넸다.

모든 사람과 인사를 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이동하는 동선에서 보이는 사람들에게만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평생 운동만 해온 운동선수 중에는 이 정도하는 선수도 흔치 않았다.

“촬영 내용은 간단합니다. 미리 질문지는 받으셨죠?”

“예. 받았습니다.”

성배가 출연하는 방송은 잉글랜드 내에서 적지 않은 인기를 끌고 있는 [위클리 플레이어]라는 방송이었다.

정확히는 [위클리 풋볼]이라는 방송의 한 코너였는데, 그 주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 혹은 가장 화제가 된 선수를 초청해 인터뷰하는 형식이었다.

“제가 나와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여기는 대단한 분들이 나오시는 프로그램 아닙니까?”

“뭐,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주의 활약도 어디 가서 빠지는 건 아니기도 하고요.”

실제로 매주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만 초청한다면, 이 프로그램에 나올 수 있는 선수의 숫자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매주 비슷한 선수들이 출연하면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 사라지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활약상과 더불어 화제가 된 선수들이 주로 출연했고, 가끔은 활약상이 전혀 고려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다행입니다.”

담당 PD와의 대면을 마친 성배는 대기실로 이동해 메이크업을 받았다.

자스민의 동영상을 찍을 때 가볍게 한 적은 있었지만, 방송용 메이크업은 회귀한 뒤에야 경험해볼 수 있었다.

‘참... 별것 아닌 선수1이었는데. 진짜 출세했다.’

두세 명의 스태프가 달려들어 머리도 만져주고 메이크업도 해주고 있었다.

그 손길을 받으면서 성배는 새삼 자신이 얼마나 출세했는지를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전생에서는 방송 출연은커녕 신문사 인터뷰도 거의 없었다.

안트베르펀 지역지에서 작게 인터뷰한 적은 있었지만, 전국 단위로 넘어간 적은 없었다.

‘몇 번 했다고 그새 익숙해졌네.’

여전히 어색하기는 했지만, 몸을 맡기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안더레흐트 시절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했을 때는 어찌할 줄을 몰라서 스태프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던 것을 떠올리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첼시와 아스날을 만나면 이상할 정도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시는데요, 주성배 선수 본인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위클리 플레이어] 촬영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프로그램 중간에 10분 정도 방송되는 코너였기 때문에 준비된 질문도 많지 않았고, 녹화 시간도 길어질 리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진행자의 질문에 대답만 하면 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몸도 편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상하게 두 팀만 만나면 플레이가 잘 된다는 생각은 저도 하죠. 그런데 그 이유는 저도 몰라요.”

“그런가요? 그래도 너무 막 그러지는 마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기사를 확인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거든요.”

“예? 왜... 아!”

[위클리 플레이어]의 진행자는 TV 리포터 겸 프리랜서 축구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스물여섯의 젊은 여성이었다.

빼어난 외모에 지적인 이미지, 그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매력까지 더해져 축구팬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첼시였다.

첼시 D.올슨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눈치채셨죠? 아침에 일어나서 ‘토트넘 풀백 주, 첼시 격파!’라거나 ‘첼시 초토화! 주성배 맹활약.’ 이런 기사들을 보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깜짝 놀란다구요.”

“음... 그러니까 제가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요? 하하하.”

아무래도 아름다운 여성이 귀엽게 투정을 부리자 성배의 분위기도 풀어질 수밖에 없었다.

잘 때를 제외하면 항상 행동거지에 주의를 기울이고 하나의 행동이라도 꼬투리 잡힐 만한 것은 하지 않는 성배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안더레흐트 시절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셨던 경기도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였어요. 그리고 이후에도 호아킨, 가르시아, 호날두 등 뛰어난 선수들을 상대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시면서 명성을 얻으셨죠.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힘이 넘치시나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모든 경기를 똑같이 생각하려고 노력하지만, 제 생각대로 잘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강팀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마음에 드네요.”

벨기에 귀화에 관한 이야기나 국가대표 발탁과 관련된 이야기 등 굵직굵직하게 중요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녹화 시간이 거의 끝나갔다.

대략 녹화 시작 후 50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프리미어리그에서 상대해본 선수와 클럽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선수는 누구고 클럽은 어딘가요? 역시 첼시?”

“가장 인상 깊었던 선수는 역시... 테베즈겠네요. 나름대로 기량에 만족한 이후로는 처음으로 옴짝달싹 못 하는 기분을 느꼈거든요. 가장 인상 깊었던 클럽은 역시 맨...”

‘잠깐만.’

인터뷰가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가벼운 질문에 대답하던 성배는 순간적으로 말을 끊었다.

뇌리를 스치는 어떤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성배 선수?”

“아, 죄송합니다. 모든 팀을 대상으로 하자면 당연히 토트넘과 그 팬들이 가장 인상 깊었지만, 상대해본 클럽으로 제한한다면 가장 인상 깊었던 팀은 맨체스터 시티였어요.”

“맨체스터 시티요? 의외의 대답이네요.”

당연히 토트넘의 최대 라이벌인 아스날이나 성배 본인이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첼시, 그도 아니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첼시였다.

‘맨...’을 들었을 때는 당연히 맨유일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성배의 의도 역시 그랬었고.

“물론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다투는 빅클럽들도 인상 깊었죠. 하지만 그들은 제 생각대로였어요. 굉장히 강했고, 팬들도 열광적이었죠.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는 외국인인 제가 생각했던 것과 현실의 차이가 가장 큰 클럽이라서 굉장히 인상에 깊게 남았습니다.”

“생각과 현실의 차이라는 게 어떤 뜻인가요?”

“음... 시티의 팬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사실 시티는 해외 인지도가 그리 높은 클럽이 아니죠. 하지만 직접 시티를 만나 보니 와우, 분위기가 엄청나더라고요. 특히나 팬들의 열기는 놀라울 정도였어요.”

실제로 같은 도시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인지도를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 클럽이 맨체스터 시티였다.

하지만 맨체스터로 무대를 한정하면 시티의 팬도 유나이티드 팬 못지않게 많았다.

3부 리그로 떨어졌을 때도 평균 관중 수가 3만 명을 넘어설 정도였으니 그 충성심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이었다.

“그런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죠. 확신컨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맨체스터 시티가 프리미어리그 경쟁 구도에 변화를 일으킬 겁니다.”

이런 말은 함부로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성배는 믿는 구석이 있었고,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어쩌면 당장 내년이 될 수도 있겠죠.”

말을 마치며 가볍게 미소 짓는 성배의 머릿속에서는 이 발언의 영향력을 계산하고 있었다.

< 낭만필드 - 137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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