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136 >
첼시를 잡고 칼링컵 우승을 차지한 토트넘을 두고 언론들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누가 봐도 불리한 경기였고, 그 차이는 리그 3위와 리그 11위라는 양 팀의 순위에서부터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명승부를 펼쳐 보이며 9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기 때문에 더더욱 화제가 되었고, 토트넘의 반격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엘라누의 스루 패스! 오누오하에게! 슈팅! 골! 골입니다!! 오누오하, 팀의 두 번째 골이자 역전 골을 터뜨립니다! 2-1로 앞서나가는 맨체스터 시티!”
“아, 토트넘! 오늘도 패배하면 또다시 연패입니다! 최근 다섯 경기 기록으로 살펴보면 1승 4패에요!”
하지만 9년 만의 우승과 함께 다음 시즌 UEFA컵 진출권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은 토트넘은 그 이후의 경기들에서 거짓말 같은 부진을 이어갔다.
바로 다음 라운드였던 버밍엄과의 28라운드 경기에서 1-4 대패, PSV와의 UEFA컵 16강 1차전에서 0-1 패배, 웨스트햄을 중간에 4-0으로 잡아내며 연패 행진을 끊었지만, UEFA컵 2차전에서도 0-1로 패배했다.
오늘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도 무기력한 경기를 펼치며 선취 골을 넣고도 두 골을 내리 내준 상황이었다.
‘다들 맥이 빠졌어.’
경기를 뛰고 있는 성배도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매번 상황에 맞는 플레이로 팀에 도움을 주었던 성배지만, 동료들의 플레이가 어딘가 나사 하나씩 빠져있는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 모티베이션이라는 게 중요한 건데.’
칼링컵 우승으로 토트넘 선수들은 남은 시즌을 열심히 뛰어야 하는 이유를 잃어버렸다.
물론, 경기마다 최선을 다해서 뛰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넘어서 심리적인 간절함이 사라진 것이었다.
‘우승 트로피도 얻었고, UEFA컵 진출권도 받았고, 강등은 절대 당할 일 없고,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은 솔직히 힘들고. 선수들을 하나로 묶을 목표가 없어.’
욜 감독 시절 완전히 무너졌던 팀이 라모스 감독 부임 이후 조금씩 살아났고, 성배가 합류한 이후부터 탄력을 받아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기력은 칼링컵 결승에서 폭발했고, 그 이후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이번 시즌은 도저히 답이 안 보이네.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하는 건가.’
동료들의 나사 빠진 플레이에 불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성배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남은 기간은 내 몸값을 올리는 데 집중해야겠지.’
성배에게는 아주 강력한 모티베이션이 있었다.
전생에서의 한을 풀겠다는 것이었다.
팀의 우승 트로피보다 자신의 성공이 먼저였다.
토트넘만 해도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빅클럽이지만, 스물한 살의 나이에 여기까지 도달하고 나니 점점 욕심이 커져만 갔다.
‘토트넘도 좋은 곳이지만, 욕심은 내봐야지.’
칼링컵 우승 트로피로 그런 성배의 의욕을 꺾을 수 없었다.
벌써부터 토트넘 팬들 사이에서는 부진한 선수단을 질타하는 와중에 로비 킨과 베르바토프, 킹, 성배까지. 네 선수에게만은 비판이 아닌 환호를 보내주고 있었다.
‘빅클럽 문턱 한 번만 밟아봤으면 좋겠네.’
주필러 리그를 목표로 했던 성배의 바람은 빅리그를 넘어 빅클럽까지 옮겨갔다.
‘후보로 한 시즌 다섯 경기만 나가도 좋으니까.’
지금은 후보 자리에도 만족할 수 있었지만...
회귀 이후 자신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아마 나중에는 그 정도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
“마켈렐레, 왼쪽의 조 콜에게!”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1-2 패배를 당하며 최근 5경기 4패의 부진을 이어가던 토트넘은 다음 라운드에서 다시 한 번 첼시를 만났다.
거함 첼시와 두 달 만에 세 번째 만나는 것이었다.
“조 콜, 중앙으로 접고 들어가면서 슈팅!! 골! 골입니다!”
그리고 첼시는 부진에 빠져든 토트넘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칼링컵 결승에서 자신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토트넘에게 제대로 복수하는 중이었다.
“조 콜의 득점으로 토트넘과의 격차를 벌리는 첼시! 어느새 3-1입니다!”
토트넘의 홈구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의 경기였지만, 토트넘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드록바와 에시엔, 조 콜에게 득점을 허용한 토트넘은 프리킥 상황에서 우드게이트가 한 골을 만회하는 데 그치며 두 골 차의 리드를 내주고 말았다.
“토트넘, 홈팬들 앞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최근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요! 불과 한 달 전에 첼시를 잡아내고 칼링컵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팀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토트넘의 경기력이 완전히 바닥을 찍은 것은 아니었다.
버밍엄과 PSV에게 패배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바닥을 찍었던 경기력은 부진이 계속되는 와중에 조금은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만난 팀들이 홈에서만큼은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맨체스터 시티와 프리미어리그 최강팀 중 하나인 첼시라는 것이 문제일 뿐이었다.
‘오늘쯤 해서 하위권 클럽 하나 잡았으면 탄력을 받을 수 있었는데.’
성배의 플레이는 오늘도 나쁘지 않았다.
첼시의 오른쪽 공격을 맡은 칼루는 언제나처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오늘은 성배의 체력도 멀쩡했다.
체력만 멀쩡하다면 칼루의 활동량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었다.
‘그래도 첼시에게는 좋은 기억밖에 없으니까. 오늘도 한 건 해볼까.’
그리고 전반 11분에 있었던 우드게이트의 득점 과정에서 프리킥을 통해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도 성배였다.
프리미어리그 진출 이후 3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동안 첼시에게 세 경기에서 2골 1어시스트, 아스날에게 두 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런던 연고의 빅클럽은 성배의 커리어를 위한 제물이었다.
“램파드의 패스를 끊어내는 킹! 심봉다에게 빠르게 패스합니다! 토트넘의 역습 시도!”
경기가 전반적으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역습을 주문한 라모스 감독이었다.
이는 그랜트 감독의 첼시가 두 골 차이의 리드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덕분이기도 했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역시 무서운 사람이었다.
“심봉다가 전방으로 길게 투입! 레넌이 볼 잡았습니다.”
토트넘이 역습을 시도할 때는 레넌과 킨이 전방으로 돌격하는 역할을 맡았고, 성배는 때에 따라서 역습으로 이어지는 롱패스를 넣어주거나 이들과 함께 달리는 역할을 맡았다.
베르바토프와 말브랑크, 제나스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아 전방으로 달리는 선수들을 향해 볼을 뿌려주었다.
‘중앙으로 가!’
이번 상황에서 성배의 역할을 돌격조였다.
수비 라인에서 칼루를 마크하던 성배는 볼을 빼앗음과 동시에 전방으로 뛰쳐나갔고, 말브랑크에게 중앙으로 움직이라는 사인을 보냈다.
어차피 돌파력보다는 테크닉으로 먹고 사는 말브랑크의 위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측면 수비수를 자신이 데려오면서 그를 자유롭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중앙에서의 수적 우위는 덤으로 따라왔다.
“중앙으로 빠르게 투입! 제나스에서 말브랑크에게!”
성배가 왼쪽 측면으로 빠르게 올라오면서 첼시의 라이트백 페레이라는 성배를 마크할 수밖에 없었다.
말브랑크에게는 미켈이 붙었지만, 미켈이 도착하기 전에 제나스의 패스가 먼저 연결되었다.
‘따돌리고 들어간다.’
성배는 자신을 막아선 페레이라의 자세를 유심히 살폈다.
전성기에서 점점 내려오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쓸만한 기량을 갖춘 선수였다.
하지만 전성기 때도 스피드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조금 빨리 하락세를 맞이한 지금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쯧, 스물아홉에.’
왼발을 왼쪽으로 뻗으며 측면으로 파고들 것처럼 페레이라를 속인 성배는 그 틈을 노려 중앙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하체와 상체를 동시에 이용하는 평범한 페이크였고, 성배의 민첩성은 준수한 수준에 불과했지만, 페레이라는 이를 따라오지 못했다.
“말브랑크, 반대편으로 띄웁니다! 주, 머리로 재차 중앙으로!”
성배의 돌파에 맞춰서 말브랑크가 볼을 투입해주었다.
페레이라가 바짝 붙어 방해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서 어찌어찌 중앙으로 볼을 투입할 수 있었다.
다만 패스라기에는 헤딩이 낮고 빨라서 처리하기 까다로워 보였다.
“베르바토프! 베르바토프!! 아, 골! 골입니다! 베르바토프의 배에 맞고 들어갑니다!!”
성배를 향한 말브랑크의 패스에 쿠디치니는 급히 측면으로 움직였고, 바로 중앙으로 넘어간 볼에 반응하지 못했다.
반응하지 못한 것은 베르바토프도 마찬가지였는데, 다행히 베르바토프의 배에 맞고 골대 안으로 흘렀다.
“쿨한 장면은 아니지만, 어쨌든 골입니다! 베르바토프, 리그 13호 골을 기록하면서 첼시에 한 골 차로 따라붙습니다!”
“하하하, 재미있는 장면이네요. 토트넘에게 행운의 여신이 붙은 건가요? 만약 이게 행운의 여신 덕분이라면, 첼시도 남은 시간 동안 안심할 수 없겠어요!”
모양이 조금 빠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전광판의 숫자가 1에서 2로 바뀐 것만 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득점에 어시스트를 기록한 주성배 선수는 첼시전 세 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에 이어 2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첫 시즌부터 첼시의 천적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네요. 다른 팀도 아니고 단단한 수비로 유명한 첼시를 상대로 세 경기에 2골 2어시스트라니. 이건 어지간한 공격수들도 달성하기 힘든 기록이에요.”
프리미어리그 입성 2개월 만에 리그에서 첫 어시스트를 기록한 성배였다.
그리고 잉글랜드에서 기록한 여섯 개의 공격 포인트 중에 네 개의 공격 포인트를 첼시전에서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두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성배를 욕심냈던 첼시 관계자들은 두 달이 지난 지금, 성배의 얼굴만 봐도 고개를 저었다.
“사실 주성배 선수가 이적시장에 나왔을 때, 유력한 클럽 중 하나가 첼시였거든요? 첼시는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선수를 잡아야 했던 것 같네요.”
베르바토프의 득점으로 화이트 하트 레인이 다시 뜨거워졌다.
경기를 거의 포기했던 팬들과 선수들도 다시금 힘을 내기 시작했다.
***
[토트넘의 무서운 뒷심! 막판에 폭발하며 승점 1점 획득!]
[두 팀 합쳐 여덟 골의 골 잔치! 새로운 라이벌 구도?]
베르바토프의 만회 골을 기점으로 토트넘의 경기력이 살아났다.
불타오른 관중들의 응원 덕분에 분위기를 탄 토트넘은 언제 무기력한 경기를 했냐는 듯 첼시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허들스톤이 곧이어 동점 골을 터뜨렸고, 조 콜에게 추가 골을 허용한 이후 경기 종료 직전에 로비 킨까지 득점 행진에 가세하며 4-4, 화끈한 골 잔치의 마침표를 찍었다.
승리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첼시를 상대로 패색이 짙었던 경기를 따라붙어서 무승부를 거둔 것은 큰 성과였다.
최근 다섯 경기 1승 4패의 부진에 빠져있었던 토트넘이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평가가 많았고, 토트넘 선수들의 사기도 크게 올라갔다.
[주성배, 첼시 잡는 저승사자 등극! 어시스트 두 개 폭발!]
[‘벨기에산 런던클럽 킬러’ 합류에 토트넘 팬들, 함박웃음.]
그리고 지난 경기들을 통해 자그마한 화제가 되었던 성배의 능력은 수면 위로 올라와 공식 홈페이지 메인을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첼시와 아스날을 상대로만 여섯 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고 여러 사이트의 메인을 장식한 성배를 지켜보는 시선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 낭만필드 - 13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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