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134화 (274/356)

< 낭만필드 - 134 >

“베르바토프를 향한 주의 롱패스! 에시앙! 끊어냅니다! 램파드와 조코라! 조코라가 다시 따냅니다! 전방의 제나스에게 해스하지만, 이번에는 미켈의 커트!”

“중원에서부터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네요! 정말 물고 물리는, 누가 이길지를 가늠할 수 없는 치열한 대결입니다!”

드록바에게 선취 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토트넘도 쉽게 물러나지는 않았다.

토트넘의 오늘 경기력은 상당히 좋았고, 선취 골을 내주긴 했지만, 리드를 빼앗긴 것일 뿐 토트넘의 경기력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

“첼시도 드록바의 득점을 기점으로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선취 골로 분위기를 탄 첼시의 경기력은 제 자리를 찾아갔다.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분명 평소보다 못한 부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분위기라는 것은 마력이 있어서 조금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고, 첼시의 경기력은 컨디션이 좋은 토트넘에 밀리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토트넘, 이대로는 힘들어요! 리그와 칼링컵, FA컵, 챔피언스리그까지 모두 노리고 있는 첼시와는 달리 토트넘에게는 칼링컵과 UEFA컵이 전부거든요?”

중원에서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이 펼쳐지면서 경기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양 팀 모두 이렇다 할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중원에서만 볼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골이 필요해...’

지금 토트넘에게 부족한 것은 단 한 가지.

골이었다.

한 골만 넣을 수 있다면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은 토트넘이 첼시에 우위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었다.

‘자리를 비우기에는 좀 부담스럽지만... 어쩔 수 없지.’

벨레티는 공격력만큼은 알아주는 선수였지만, 뒷공간이 자주 빈다는 단점이 있었다.

지금 첼시 수비진에서 노릴 곳이라고는 노출은 되지만 노리기는 쉽지 않은 테리의 뒷공간과 벨레티의 뒷공간 밖에 없었다.

‘라이트-필립스는 나머지들이 알아서 잘 해주겠지.’

우드게이트와 킹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라이트-필립스를 두 사람에게 맡기고 조금 깊숙이 올라가도 그들이라면 별문제 없이 막아줄 수 있을 것이었다.

‘지금은 할 수밖에 없어.’

토트넘의 주요 공격 루트였던 투톱을 활용한 공격과 성배의 롱패스를 활용한 측면 윙어들의 돌파에 첼시 선수들이 슬슬 적응해가고 있었다.

뭔가 다른 공격 루트가 필요했고, 성배와 심봉다는 공격력도 만만치 않은 풀백들이었다.

‘2차전을 시작해보자고.’

자신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통해 분위기를 바꾸고 첼시 수비진들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오른쪽에서 돌파를 시도하는 라이트-필립스! 다시 한 번 주와 맞닥뜨립니다!”

라이트-필립스는 완전 죽을 맛이었다.

경기 시작 전까지만 하더라도 먼저 성배를 찾아와 오늘은 지난번과 다를 것이라며 전의를 불태웠는데, 정작 경기가 시작되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가치를 조금 더 보여줘야죠. 이대로라면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이후의 잉글랜드 대표팀에 라이트-필립스의 자리는 없어요!”

유로 2008 본선 진출 실패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든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세대교체를 진행했다.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드는 스물여섯의 나이지만,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밀려날 수도 있는 상황.

라이트-필립스도 급한 상황이었다.

‘너를 밟고 올라간다.’

반면, 성배에게는 그런 라이트-필립스가 최고의 상대였다.

자신이 현재 속해 있는 리그가 펼쳐지는 국가이면서 축구 종가이기도 한 잉글랜드의 국가대표 윙어를 시종일관 지워버리는 것은 성배의 평가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무리하지 말고 포기해.’

라이트-필립스는 성배의 옆으로 거칠게 밀고 들어왔고, 성배는 그런 라이트-필립스를 놓치지 않았다.

서로를 어깨로 밀쳐내며 측면에서 보기 드문 거친 몸싸움을 펼친 끝에 성배가 조금씩 앞을 잡아가고 있었다.

“주가 경쟁에서 승리합니다! 볼을 빼앗고 그대로 전진!”

라이트-필립스는 신체 밸런스가 좋아 몸싸움에서 잘 밀려나지 않았지만, 절대적인 힘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라이트-필립스가 무리해서 시도한 돌파였고, 성배의 피지컬이 그런 돌파에 뚫릴 정도로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엔 아니야.’

오늘 경기에서 계속 보여주었던 것처럼 패스하려는 듯 발을 들어 올린 성배를 보며 에시앙이 달려들었다.

패스를 방해하기 위해 한쪽 발을 들고 달려든 에시앙의 태클을 가볍게 피한 성배는 순식간에 속력을 붙여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대로 올라가면서 앞으로 패... 아닙니다! 접고 직접 돌파 시도! 주, 빠르게 치고 올라갑니다!”

“빠릅니다, 빨라요!”

성배의 스피드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했다.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빈도만 따지자면 아약스 시절보다 분명 줄어들었지만, 빈도가 줄어든 만큼 영양가는 더 높아졌다.

타이밍을 정확히 포착해 올라간 덕분이었다.

“미켈까지 제쳐냅니다! 위력적인 돌파!”

예상치 못한 성배의 돌파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미켈까지 앞길을 내주었다.

미켈은 발이 느렸고, 미켈을 피할 공간은 많았다.

볼을 툭 차 놓고 달리는 성배의 질주를 미켈의 느린 발은 따라오지 못했다.

‘지금이다!’

미켈을 제치기 위해 먼저 차 놓은 볼을 따라가는 선수는 성배 외에도 한 명이 더 있었다.

라이트백으로 첼시의 오른쪽 측면 수비를 맡은 벨레티가 볼을 따내기 위해 달려왔다.

‘무조건 따낸다.’

이것만 따내면 측면은 무주공산이었다.

여기까지 잘 와놓고 마지막 순간에 막힌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닿아라!’

순간적으로 보폭을 너무 넓혀서 다음 플레이가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 볼을 따내는 것이 먼저였다.

‘됐다!’

성배는 벨레티보다 한발 앞서 볼을 건드렸다.

건드린 볼은 벨레티의 다리를 지나 첼시 진영으로 굴러갔고, 뒤늦게 벨레티의 다리가 뻗어왔다.

‘고맙다.’

-터-억!

“으아악!!”

먼저 볼을 건드렸지만, 성배의 상태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보폭을 너무 넓혀서 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것이었다.

마침 그 순간에 벨레티가 발을 뻗었고, 성배는 뒷발을 끌어와 벨레티의 다리에 걸었다.

-삐-익!

“파울! 파울입니다! 주의 돌파를 막아내지 못한 벨레티가 파울로 끊었습니다.”

당연히 파울이 선언되었다.

벨레티는 한발 늦게 다리를 뻗었고, 그 다리가 성배의 진로를 방해한 것은 사실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의도적으로 파울을 얻어낸 느낌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어도 충분히 파울이 선언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토트넘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네요. 이 정도 위치라면 위협적인 세트피스를 만들어내기 좋거든요?”

킹과 우드게이트를 포함한 토트넘의 장신 선수들이 일제히 첼시 진영으로 넘어왔다.

첼시 역시 드록바와 아넬카 등 장신 공격수들을 내려서 토트넘의 세트피스에 대비했다.

“주가 프리킥을 준비합니다. 굉장히 날카로운 킥을 차는 것으로 유명한 선수지 않습니까?”

“예. 주의 프리킥은 이미 유명하죠. 프리킥뿐만 아니라 코너킥, 페널티킥, 필드 플레이 중의 롱패스 등 모든 킥을 잘 차는 선수예요. 첼시가 위험한 지역에서 프리킥을 내주지 말아야 하는 이유죠.”

이번에도 역시 성배가 프리킥을 준비했다.

‘일단 분위기는 마련이 됐는데.’

과감한 돌파 한 번으로 분위기 전환에는 성공했다.

그리고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까지 얻어냈다.

여기서 만회 골까지 넣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완벽할 수 없었다.

-삐-익!

주심의 휘슬이 울렸지만, 성배는 서두르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몇 번 발을 구르던 성배는 이내 눈을 빛내며 빠르게 달려들었다.

“주, 프리킥! 짧게 제나스!”

성배의 선택은 박스 중앙에서 직접적으로 경합을 붙이는 것이 아니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린 이후 2선에서 제나스가 빠르게 침투했고, 성배는 볼의 밑부분을 찍어서 제나스에게 볼을 연결해주었다.

“제나스, 브리지! 아! 뭐죠? 제나스, 주심에게 어필합니다!”

2선에서 빠르게 침투하는 제나스를 브리지가 막아섰고, 제나스의 전진은 브리지에게 막혔다.

하지만 제나스가 주심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어필했고, 곧 휘슬이 울렸다.

“아! 핸드볼 파울이 선언된 겁니까? 핸드볼인가요?”

주심이 페널티박스 안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오른팔을 뻗어 페널티 스팟을 가리켰다.

토트넘의 페널티킥이었다.

“페널티킥! 페널티킥입니다! 토트넘, 페널티킥을 얻어냈습니다!”

“아, 첼시. 아쉽네요. 느린 화면으로 살펴보면... 아! 맞았네요. 브리지의 손에 살짝 닿았어요. 페널티킥이 맞습니다.”

손등에 살짝 닿은 것에 불과했지만, 분명 핸드볼 파울이 맞았다.

특히나 손에 닿지 않았다면 브리지의 옆구리를 통과했을 각도였고, 제나스의 침투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페널티킥이 선언될 수밖에 없었다.

“첼시 선수들, 힘들겠지만, 진정할 필요가 있어요. 흥분하면 오히려 더 힘들어질 뿐이에요.”

당연히 첼시 선수들은 주심에게 달려가 항의했다.

하지만 주심은 바로 앞에서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단호하게 대처했다.

이내 상황은 정리되었고, 베르바토프가 페널티킥을 처리하기 위해 키커로 나섰다.

‘이거면 됐어. 분위기는 다시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과감한 오버래핑을 선택한 자신의 돌파가 프리킥을 얻어냈고, 결과적으로 만회 골까지 만들어낸 상황이었다.

일단 크게 한 건 했고, 자신의 몫은 충분히 해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번 시즌에도 우승컵 하나는 가져가야지.’

더불어 한 시즌당 한 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기록이 3년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만들어졌다.

동점골을 터뜨린 이후, 당장이라도 추가골을 넣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첼시는 역시 첼시였다.

토트넘이 잠시 분위기를 타서 거세게 몰아붙였음에도 불구하고 첼시 선수들은 잠시 몸을 웅크려 거센 공격을 전부 다 받아냈다.

-삑! 삐-익!

그리고 주심이 후반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이걸로 정규시간 90분이 모두 끝났습니다. 첼시와 토트넘, 토트넘과 첼시 중 칼링컵 우승 트로피를 차지할 주인공은 이제 연장전에서 가려지게 되었습니다.”

“양 팀 모두 좋은 경기를 펼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네요. 양 팀 감독들과 선수들은 환영하지 않겠지만, 저는 연장전으로 경기가 넘어가서 좋은데요? 하하.”

양 팀이 모두 한 골씩을 기록했을 뿐으로 많은 골이 터진 경기는 아니었지만, 두 팀의 경기력이 괜찮았다.

골이 많이 터지지는 않았고, 중원에서 주도권 싸움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기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결승전에 어울리는 경기였다.

“어쨌든 이번 경기는 결승전이고, 우승컵의 주인은 가려져야 합니다. 우승컵의 주인이 가려지게 될 연장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광고 후 다시 돌아옵니다.”

후반전이 끝난 뒤, 각 팀의 벤치는 바빠졌다.

90분의 전후반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이미 지쳐있었고, 급히 그들을 회복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다리에 달라붙어 마사지를 시작했다.

“자, 자! 이제 거의 다 왔다! 조금만 더 가면 우승컵은 우리 거라고!”

라모스 감독이 뭐라고 떠들었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 낭만필드 - 134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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