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133화 (273/356)

< 낭만필드 - 133 >

[블-루스! 블-루스! 블-루스!]

[스-퍼스! 스-퍼스! 스-퍼스!]

영국 축구의 성지라 불리는 웸블리 스타디움.

9만 석의 관중석을 가득 메운 첼시와 토트넘 양 팀의 팬들은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자신들의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램파드에게 이어지지만, 우드게이트의 압박!”

양 팀은 그런 팬들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우승 트로피까지 차지하기 위해 최고의 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첼시는 최근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조 콜, 발락 등을 빼고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램파드와 테리를 선발로 내보냈다.

토트넘 역시 가벼운 부상을 당했다가 회복한 킹과 우드게이트, 조코라를 내보냈는데, 이들의 활약상이 현재까지의 경기 흐름을 결정하고 있었다.

“램파드, 감당하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패스!”

첼시의 램파드와 테리는 아직 경기 감각을 되찾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토트넘의 복귀자들은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부상 전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느리다.’

램파드의 패스는 성배가 마크하고 있는 라이트-필립스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우드게이트의 압박에 고생했고, 그것을 피하고자 볼을 빼준 것이었기 때문에 패스의 정확도가 조금 떨어지는 편이었다.

“주! 중간 차단! 볼 빼냅니다!”

그렇게까지 심각한 실수는 아니었고, 그냥 평범하게 라이트-필립스에게 이어질 수 있는 패스였다.

하지만 성배의 가장 큰 장점은 계산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성배의 계산으로는 충분히 빼앗을 수 있는 볼이었다.

‘충분히 되겠다.’

볼을 빼낸 성배는 일단 패스를 미루고 빠르게 전방으로 치고 올라갔다.

공격적으로 밀고 올라가려던 첼시는 아직 수비를 위한 대형을 갖추지 못했고, 성배가 직접 달릴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있었다.

“주, 빠르게 치고 올라갑니다!”

지금 패스하는 것도 좋겠지만, 진형을 갖추기 전에 서둘러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었다.

성배는 직접 치고 올라가는 것을 선택했다.

수비수들이 자리 잡을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미켈이 성배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 명 정도는 제쳐볼까?’

성배는 미켈의 움직임을 살피며 패스와 돌파,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했다.

태클과 일대일 마크 능력이 좋은 선수였지만, 발이 느렸기 때문에 일단 조금이라도 앞설 수 있다면 돌파할 수 있었다.

‘좋아.’

미켈을 앞에 둔 성배는 잠깐 속도를 늦췄다.

성배가 속도를 늦췄기 때문에 미켈도 따라서 속도를 줄였고, 성배는 그 타이밍에 옆으로 치고 나갔다.

“뚫어냅니다! 미켈의 수비를 뚫고 올라가는 주!”

일단 한 번 제쳐낸 이상 미켈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성배의 스피드를 쫓아올 수 없는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한 골 넣어봐.’

미켈을 뚫어낸 성배는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았다.

미켈을 뚫은 것까지는 좋은 플레이였지만, 여기서 돌파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조금 더 볼을 끌면 첼시 수비진도 라인 정비를 끝낼 것이었다.

“전방으로 긴 패스! 로비 킨!!”

첼시가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첼시의 수비 라인은 위로 올라와 있었다.

성배의 인터셉트 이후 빠르게 라인을 내리고 있었지만, 토트넘 공격수들도 견제해야 했기 때문에 내려가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었다.

성배의 패스는 올라온 수비진의 뒷공간을 노렸다.

“로비 킨, 트래핑 이후 슈팅!! 아! 체흐! 체흐가 막아냅니다! 체흐의 엄청난 선방!”

성배의 패스와 로비 킨의 침투, 볼 터치, 그리고 마무리까지 모든 플레이가 완벽했다.

발이 느리고 아직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은 테리의 뒷공간을 노려 침투한 로비 킨은 정확히 날아온 성배의 패스를 받아 슈팅까지 이어갔지만, 체흐의 벽을 뚫지 못했다.

“지난 시즌의 끔찍했던 부상 이후 체흐가 예전보다 못하다는 말이 많은데, 그래도 체흐는 대단한 골키퍼예요! 지금 이런 장면들을 보면 알 수 있죠!”

지난 시즌 레딩과의 경기에서 헌트의 무릎에 두개골이 눌려 선수생명이 아닌 진짜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체흐는 럭비 선수들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헤드기어를 쓰고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복귀 이후에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골키퍼라는 평가를 받던 때와 비교하면 약간 떨어지는 기량을 보였다.

그래도 체흐는 체흐였고, 그보다 나은 골키퍼는 거의 없었다.

“패스는 완벽했어! 신경 쓰지 마!”

“오케이! 걱정 마!”

회심의 패스가 체흐의 선방에 막혔지만, 성배의 패스는 완벽했다.

우드게이트도 박수를 쳐주면서 성배의 패스를 칭찬했고, 성배 역시 충분히 칭찬을 들을만했던 패스였다고 자평했다.

‘골이 되지는 않았지만... 얻은 게 없진 않아.’

발이 느린 존 테리의 뒷공간은 노릴만하다는 것, 그리고 오늘 그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최강의 수비를 자랑하는 첼시지만, 그 속에서 테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았다.

잉글랜드 최고의 커맨더형 수비수인 그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첼시의 수비도 충분히 뚫어낼 수 있었다.

‘테리, 한 번 해보자고.’

한 번의 패스만으로도 테리의 컨디션을 확인한 성배는 그의 뒷공간을 노리기로 했다.

리그에서는 두 팀 사이에 많은 클럽이 있었지만, 후반기로만 따지면 토트넘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토트넘의 공격진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았다.

***

“조코라, 왼쪽의 말브랑크에게! 빠르게 뒤돌아서 주에게 빼줍니다!”

전반적으로 토트넘이 아주 약간이지만 주도해서 분위기를 끌고 가는 상황이었다.

전문가와 팬들 모두 첼시가 유리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반대였다.

‘한 번 뛰어봐.’

그리고 성배의 롱패스는 토트넘의 중요한 공격 옵션으로 활약했다.

토트넘은 베르바토프와 킨의 개인 기량을 앞세워 공격하다가 레넌과 말브랑크의 측면을 활용하기도 했다.

또, 제나스의 패싱을 활용하다가 성배의 롱패스를 이용하기도 하는 토트넘의 변화무쌍한 공격은 첼시 수비진을 흔들었다.

“그라운드를 반으로 자르는 대각선 패스! 레넌에게 이어집니다!”

아마 과학적인 방법으로 성배가 시도한 패스를 모두 표시하면 그라운드의 8할 이상이 색칠될 것이었다.

압박이 덜한 최후방이 성배의 위치였기 때문에 시야도 나쁘지 않았다.

이 시야는 정확한 킥과 더불어 성배의 롱패스를 위력적으로 만들어주었다.

“레넌의 돌파! 브리지가 따라가지만 버겁습니다!”

가벼운 부상으로 인해 콜이 출전하지 못했고, 첼시의 왼쪽 측면은 웨인 브리지가 막고 있었다.

눈에 띄는 장점도, 눈에 띄는 단점도 없고 전반적인 능력치가 높은 밸런스형 플레이어에 잉글랜드 국가대표이기도 한 좋은 선수였다.

하지만 성배의 패스로 인해 달릴 수 있는 공간이 생긴 레넌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측면에서 크로스! 베르바토프, 헤더!! 또 한 번 막아냅니다! 체흐의 선방!”

“오늘 정말 좋은데요? 체흐가 두 골을 막아냈어요!”

첼시가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수비진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데 체흐도 큰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이번에도 굉장히 위협적인 토트넘의 슈팅을 손끝으로 걷어내며 실점을 막아냈다.

“주가 합류한 이후로 레넌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전반기까지만 하더라도 레넌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성배가 합류한 후반기부터는 레넌의 컨디션도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레넌과 같은 선수들은 직접 드리블하는 것보다 먼저 달리고 볼을 이어받는 것이 더 위력적이거든요? 그런데 주가 합류한 이후부터 그런 플레이가 더 자주 나올 수 있게 되었어요. 레넌의 플레이가 살아날 수밖에 없죠.”

공간을 만들어내 달리면 성배의 패스가 정확히 날아왔다.

스피드 스타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없었다.

베르바토프와 킨의 조합만으로도 전반기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했던 토트넘은 레넌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공격력이 더 강해진 모습이었다.

“아직 경기의 승패를 예상하기는 힘들지만, 확실히 토트넘의 기세가 좋습니다.”

“9년 만의 우승을 노리고 있는 토트넘이거든요? 오랫동안 우승이 없었으니 얼마나 벼르고 있었을까요? 기세가 굉장하네요.”

아직 득점은 없었지만, 토트넘이 계속해서 우위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9년 만의 우승 트로피 획득도 꿈은 아닐 것 같았다.

***

“에시앙! 버텨냅니다! 밀리지 않고 굳건히 버티는 에시앙!”

하지만 첼시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아주 살짝 밀리고는 있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런 것이고 팽팽하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상황이었다.

적어도 승부의 추를 확 놓치지는 않고 있었다.

“에시앙, 전방으로 볼 투입합니다! 드록바!”

에시앙과 드록바.

각자의 포지션에서 최강의 피지컬을 소유하고 있는 아프리카 출신의 이 두 선수가 첼시의 선봉장이었다.

“드록바와 우드게이트의 경합!”

우드게이트를 등지고 볼을 받아낸 드록바는 팔을 뻗어 우드게이트를 밀어내면서 억지로 몸을 돌렸다.

우드게이트의 피지컬도 나쁘지 않았지만, 드록바를 상대하기에는 손색이 있었다.

“조코라까지 달려듭니다! 두 명 사이를 힘으로 뚫어내는 드록바! 아! 넘어집니다!”

-삐-익!

“파울! 파울이 선언됩니다! 드록바, 혼자 힘으로 두 명의 힘을 버텨내며 프리킥까지 얻어냈습니다!”

“정말 대단한 힘이네요! 두 선수의 압박을 견뎌내면서 프리킥까지 얻어내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프리킥을 얻어낸 드록바는 동료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참... 여기가 빅리그는 빅리그구나. 저런 선수도 있다니.’

TV를 통해서 잘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본 드록바는 거의 괴물이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이런데, 직접 맞닥뜨린 선수들은 과연 드록바와 부딪힐 때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직접 부딪혀볼 생각은 없고.’

우드게이트와 조코라가 함께 달라붙어도 어떻게 하지 못한 선수였다.

꼭 자신이 해야 하는 상황만 아니라면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첼시의 프리킥입니다. 드록바와 램파드가 킥을 준비합니다.”

“굉장히 좋은 위치에서의 프리킥이죠? 충분히 득점을 노려볼 수 있어요. 로빈슨 골키퍼도 조심해야 합니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프리킥을 얻어낸 드록바는 첼시의 프리킥 전담 키커이기도 했다.

위협적인 위치에서의 파울로 프리킥을 허용한 토트넘 선수들은 긴장한 채 드록바의 프리킥에 대비했다.

“휘슬 울리고, 드록바, 달려듭니다! 슈팅!”

드록바의 프리킥은 반대편 골포스트를 향해 멋지게 감겼다.

그리고...

“로빈슨, 날았습니다! 아! 골! 골입니다! 볼은 로빈슨의 손을 외면했습니다! 드록바, 선취 골을 터뜨립니다!”

첼시가 선취 골을 기록하며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좋지 않아.’

토트넘이 조금이나마 우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조금씩 그 차이가 벌어지던 상황이었다.

첼시의 수비진은 토트넘의 다양한 공격 루트에 당황하며 흔들리던 중이었고, 조금만 더 두드리면 골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시작해야겠네.’

하지만 드록바의 선취 골은 흔들리던 수비진의 중심을 잡아줄 것이었다.

30분을 공들인 토트넘의 공격 작업은 단 한 번의 프리킥으로 원점으로 돌아갔다.

< 낭만필드 - 133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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