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127화 (102/356)

< 낭만필드 - 127 >

“하하하! 여러분! [매치, 더 데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하하하!!”

4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프리미어리그 하이라이트 및 분석 프로그램, 매치, 더 데이.

[매치, 더 데이]의 진행자이자 잉글랜드 역사상 A매치 최다 골 2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게리 리네커는 기분 좋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패널입니다. 이!안! 라!이!트!씨가 나와주셨습니다. 현역 시절 아, 스, 날의 레전드였죠?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반면, 패널로 출연한 라이트의 표정은 소태라도 씹은듯한 표정이었다.

“마지막으로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 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앨런 시어러 씨도 나와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그리고 시어러는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웃겨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지난주에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여전히 히죽거리는 표정으로 리네커가 라이트를 향해 물었다.

“뭘 어떻게 지냅니까! 이거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결국, 라이트가 폭발했다.

“아니,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십니까? 저는 이유를 영 모르겠는데 말이죠.”

“알았어요, 알았어! 지난주에 잘 못 지냈습니다!”

“왜 그랬죠?”

“으... 거너스가 스퍼스에게 패배했거든요. 됐습니까?”

리네커의 넉살에 라이트가 자폭하고 말았다.

리네커는 토트넘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라이트는 아스날의 레전드였다.

“네! 그렇습니다. 우선 지난주 수요일에 있었던 북런던 더비에서 승리한 토트넘과 첼시의 경기부터 보시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하이라이트로 넘어가는 리네커였다.

영상이 재생될 때까지 라이트가 리네커를 째려보았지만, 리네커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네, 잘 봤습니다.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토트넘이 첼시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었습니다. 먼저 이 경기에서 이득을 봤다고 할 수 있는 토트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영상이 끝난 뒤, 호스트인 리네커는 두 패널들에게 먼저 의견을 물어보았다.

리네커와 라이트의 설전을 메인으로 두기 위해서 시어러가 먼저 나섰다.

“우선 토트넘은 라모스 감독 체제 하에서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킨과 베르바토프의 투톱을 앞세운 공격은 여전히 강력하죠. 그런데 지난 아스날과의 칼링컵 경기와 오늘 경기를 살펴보면 수비진이 상당히 쓸만해 졌습니다.”

시어러는 토트넘을 다루면서 가장 먼저 수비진을 언급했다.

“특히, 이번 겨울에 영입한 주성배 선수는 라모스 감독의 신의 한 수가 될 것 같습니다. 이적 후 세 경기, 선발로 두 경기에 출전했는데, 두 경기 연속 Man Of the Match에 선정되고 있고, 두 골을 기록 중이죠.”

“맞습니다. 득점도 득점인데 기본적으로 수비수에게는 수비가 중요하거든요? 그 수비에서도 월콧과 라이트-필립스라는 만만치 않은 선수들을 잘 틀어막았어요.”

라이트 역시 성배의 칭찬에 끼어들었다.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에 아스날에 호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토트넘 선수들에 대해 적개심을 불태우는 건 아니었다.

“아, 저도 토트넘의 후반기 반등을 위한 키는 주성배 선수가 잡고 있다고 봅니다. 아스날전과 첼시전에서 보여주었던 롱패스와 세트피스 키커로서의 능력, 수비력, 오버래핑 등을 보면 이 선수가 아마 일을 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리네커도 두 사람의 말에 동의했다.

“물론 두 경기에서 보여준 이 선수의 활약이 세계 최고 레벨이었다거나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건 아닙니다.”

한 바퀴를 돌아 자신의 차례가 다시 돌아오자, 시어러가 일단 중심을 잡았다.

성배의 퍼포먼스는 분명 뛰어났지만, 아직 최고를 논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토트넘에 딱 맞고, 가장 필요했던 선수입니다. 중원이 약하고 수비라인이 취약했던 토트넘인데, 미드필드를 거치지 않아도 최전방에 패스를 공급할 수 있고 수비력이 좋은 주성배의 영입은 토트넘에게 안성맞춤이죠.”

세 사람이 성배를 극찬하는 이유는 토트넘에 딱 필요한 선수이고, 필요한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다.

칭찬은 칭찬이지만, 자신들이 칭찬하는 이유를 분명히 해둔 것이었다.

“맞습니다. 첼시전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킹이 수비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는 주성배 선수가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 이 부분입니다.”

영상을 동원해가면서 성배가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장면까지 포착해냈다.

“스무 살의 어린 선수가 자신보다 경험이 많은 선수들을 지휘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게다가 수비수인데도 오버래핑 시에 중원을 지휘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일단 그 장면들을 보고 다시 대화를 나눠보죠.”

두 번째 골을 만드는 과정에서 성배가 보아텡에게 플레이를 지시하는 모습을 비롯한 몇 가지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나이에 맞지 않는 영리함과 노련함을 가지고 있는 선수입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토트넘에 꼭 필요한 것들이었고, 토트넘이 후반기에 반등하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을 잘 살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첼시의...”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세 명이 전설들이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채널, 잉글랜드 축구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에서 성배의 플레이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그리고 토트넘의 후반기 키 플레이어로 성배를 선정했다.

잉글랜드의 수많은 축구 팬들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했고, 외국의 프리미어리그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완벽한 시작이었다.

***

첼시와의 원정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둔 토트넘은 확실히 기세를 탄 모습이었다.

이어진 23라운드 선덜랜드와의 홈경기를 2-0으로 잡아낸 토트넘은 3일 뒤, 아스날을 화이트 하트 레인으로 불러들였다.

“양 팀 모두 최근 일정이 친절한 편이었거든요? 아스날은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크레이븐 코티지, 다시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그리고 화이트 하트 레인까지. 최근 3주 동안 런던을 떠나지 않았고, 토트넘도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스탬포드 브리지를 거쳐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두 경기 째 치르고 있어요. 3주 동안 런던을 떠나지 않은 두 팀의 대결이죠.”

“확실히 이동 거리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두 팀 모두 컨디션은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동 거리가 팀 컨디션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았다.

런던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컨디션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이었다.

다만, 두 팀 다 같은 상황이라는 것 때문에 이것으로 메리트를 잡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스날과 토트넘의 상황을 살펴보면 아무래도 아스날보다는 토트넘이 조금 더 간절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스날은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해있고,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칼링컵의 의미가 크지 않습니다.”

아스날이 빅클럽 중에서는 돈을 풀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전체 클럽을 대상으로 비교하면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팀이었다.

토트넘도 만만치 않았다. 최근에는 차라리 토트넘이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고작 100만 유로가 채 되지 않는 칼링컵 우승 상금은 두 팀에게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는 뜻이었다.

“반면, 토트넘은 칼링컵 우승이 간절하죠. 유럽대항전 출전을 포기할 수 없는데, 지금 상황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건 칼링컵 우승이거든요?”

칼링컵을 대하는 두 팀의 온도 차이는 선발 명단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아스날은 파브레가스, 아데바요르, 플라미니, 클리시, 투레, 알무니아 등 주전 선수들의 절반 이상에게 휴식을 주었습니다. 북런던 더비라고는 하지만, 승리보다는 휴식, 어린 선수들의 경험을 더 우선시하는 모습입니다.”

“그런 부분도 있을 것이고, 홈에서 펼쳐진 1차전에서 2-0으로 패배했다는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거예요.”

홈에서 2-0으로 패배하고 원정에서 그 차이를 뒤집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승리할 확률이 높지 않다면, 2차전의 목적을 유망주들이 경험 쌓기와 주전 선수들의 휴식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완전히 대패하지만 않는다면.

“이와는 반대로 토트넘은 부상 당한 조코라와 최근 불안한 모습을 보인 로빈슨 골키퍼를 제외하면 베스트 일레븐이 그대로 출전했습니다.”

아스날이 칼링컵에 욕심이 없다는 것은 토트넘에게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프리미어리그를 지배하는 네 개의 클럽 중 가장 스쿼드의 두께가 얇은 팀이 아스날이었다.

4강전까지 올라올 저력이 있는 클럽 중 가장 상대하기 쉬운 팀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경기는 북런던 더비입니다. 단순히 선발 명단만 보고 우세를 판단할 수 없는 경기가 바로 북런던 더비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이 두 팀 간의 경기는 보이는 것만으로 승부를 예상할 수 없어요. 그래서 더 기대되네요.”

칼링컵 4강전에서 만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양 팀의 경기는 또 다른 4강전, 에버튼과 첼시의 경기에 비해 압도적인 관심을 끌고 있었다

심각한 부진에 빠졌지만, 베스트 멤버를 가동한 토트넘, 리그 우승을 노리고 있지만, 1.5진급 멤버를 가동한 아스날.

그리고 그 이상의 뭔가가 있는 북런던 더비.

적어도 오늘은 잉글랜드 축구 팬들의 관심이 이 경기에 쏠려 있었다.

***

‘반갑다, 월콧.’

성배는 다시 한 번 만나게 된 월콧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상대하기 어렵지 않은 선수였다.

‘오늘은 좀 심심하겠네.’

반대편 측면에는 아스날 부동의 주전, 알렉산드르 흘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반면, 아스날의 오른쪽 수비는 사냐, 왼쪽 수비는 트라오레였다.

아스날의 공격은 흘렙 쪽으로, 토트넘의 공격은 트라오레 쪽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전부 다 성배의 반대편 측면이었다.

‘오늘은 그럼 수비에 집중해야겠네.’

사냐의 공격력도 만만치 않은 만큼, 오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공격이 아닌 수비인 것 같았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상대와의 매치업에서 이겨내 활약해줄 선수들은 많았다.

‘매 경기 활약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

토트넘 이적 이후 두 경기 연속으로 골을 기록하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고 있었지만, 성배는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역할과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성배의 장점이었고, 그것을 놓칠 생각은 없었다.

“제나스, 중거리 슈팅!! 골! 골입니다! 제나스의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이 아스날의 골망을 가릅니다!!”

승리의 여신은 시작부터 토트넘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경기 시작 후 3분, 경기 시작과 동시에 물을 부어 놓은 컵라면이 채 익기도 전에 제나스의 오른발이 불을 뿜었다.

“이건 큽니다! 안 그래도 1차전에서의 0-2 패배 때문에 의욕을 상실한 아스날 선수들인데, 이건 타격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나스의 골로 아스날이 칼링컵 결승에 진출하기 위해선 원정에서 최소 세 골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건 치명적이야. 거의 끝났어.’

이번 실점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달려들면 토트넘 입장에서도 쉽지는 않겠지만, 선발 명단과 이런저런 상황들을 감안했을 때, 경기가 어려워지기보다는 더 쉬워질 확률이 더 높아 보였다.

< 낭만필드 - 127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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