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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121화 (96/356)

< 낭만필드 - 121 >

[계약 조건]

급료      : 주급 45,000유로 (약 6,750만 원)

계약 기간 : 이적이 성사된 날 - 2011년 6월 30일

계약금    : 60만 유로 (약 9억 원)

부가 옵션

바이아웃  : 2,300만 유로 (약 345억)

출전 수당 : 7,000유로 (약 1,050만 원)

승리 수당 : 15,000유로 (약 2,250만 원)

연간 15% 급료 인상 보장

아약스 시절의 계약에 비해 성배의 주급은 두 배 이상 뛰었다.

이제는 주급과 수당으로만 연간 수십 억 이상을 벌어들이는 탑클래스 선수가 된 것이었다.

게다가 성배의 자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은퇴할 때쯤에는 거의 구단 하나를 인수할 수 있을 정도의 자산을 가지게 될지도 몰랐다.

“계약 조건은 만족스러우십니까?”

계약을 마치고 사진까지 찍은 뒤, 두 사람은 단장실에서 나왔다.

계약은 당연히 버크만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다.

그래서 버크만은 성배에게 계약에 만족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습니다. 특히 바이아웃 조항이 마음에 듭니다.”

사실 바이아웃 조항을 책정하기 위해서 성배는 상당히 많은 양보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풀백에게 2,300만 유로라는 거금을 지불할 클럽도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이 시기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개인적으로는 꼭 바이아웃 조항을 넣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정도 이적료를 지불할 클럽이 있을까요?”

버크만의 말이 맞는 이야기였다.

미래를 보고 오지 않은 이상, 풀백에게 2,300만 유로의 바이아웃은 사치였다.

“몇 년 안에 이 프리미어리그라는 시장은 전 세계 자본이 모이는 전쟁터가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2,300만 유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겠죠.”

전 세계 자본이 모여 돈으로 전쟁을 펼치게 되는 곳이 프리미어리그였다.

성배가 걱정할 것은 2,300만 유로의 바이아웃이 실현 가능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2,300만 유로를 투자하고 데려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진정한 고민거리였다.

“그 몇 년이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게 과연 주급 2, 3천 유로를 포기할 만큼의 가치가 있겠습니까?”

2005/06시즌 종료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파트리스 에브라.

그가 이적 당시 받았던 주급이 43,000유로 수준이라고 알려져있었다.

실제로는 얼마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하는 아닐 것이었다.

버크만은 그 당시 에브라보다 현재 기량은 위에 있고, 잠재력은 살짝 아래로 평가되는 성배의 계약 기준을 그 수준에서 잡았다.

많은 클럽이 달려들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경쟁을 붙여서 50,000유로까지 한 번 찍어볼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바이아웃을 고집하는 성배 때문에 45,000유로까지 낮춘 것이었다.

45,000유로의 주급만으로도 토트넘 선수 중 주급 순위 7위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수비수 중에서는 레들리 킹과 윤기표에 이어 세 번째.

레들리 킹은 부상으로, 윤기표는 라모스 감독에 의해 입지가 작아진 상황에서 수비수 중 실질적인 주급 1위나 마찬가지였다.

주전 자리는 맡겨놓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곧 옵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버크만을 보며 대답한 성배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어느새 화이트 하트 레인을 빠져나온 두 사람의 뒤로 거대한 경기장이 보였다.

“어떻습니까?”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뜬금없이 어떠냐고 묻는 성배에게 버크만이 되물었다.

“멋지지 않습니까?”

화이트 하트 레인.

1899년에 완공되어 현재까지 토트넘이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기장이었다.

“암스테르담 아레나가 더 멋진 것 같습니다. 이건 좀 낡은 느낌이네요.”

일반인들은 당연히 그렇게 느낄 것이었다.

암스테르담 아레나는 네덜란드의 자존심인 아약스이 홈구장이며, 네덜란드와 암스테르담을 대표하는 경기장이었다.

반면 화이트 하트 레인은 런던을 연고로 하는 수많은 팀들의 홈구장 중 하나일 뿐이었다.

36,000여 명에 그치는 수용 인원 역시 암스테르담 아레나보다 현저히 적었다.

“틀렸습니다, 알랭.”

하지만 성배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옅은 미소를 짓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제 눈에는 화이트 하트 레인이 열 배는 더 멋져 보입니다. 알랭, 여기는 잉글랜드, 그리고 프리미어리그입니다.”

***

메디컬 테스트가 결정되었을 때부터 버크만은 성배의 잉글랜드 생활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충실했고 부상에 민감했던 성배가 메디컬 테스트에서 떨어질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정식 입단 계약을 마치기 전에 집과 차를 비롯해 런던 생활을 위한 것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토트넘에 온 걸 환영한다.”

광고 모델로 계약한 회사 중에는 자동차 회사 역시 있었다.

가격이 엄청난 스포츠카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고급형 세단의 끝자리 정도는 되는 차량이 지급되었고, 성배는 벨기에에서 처음 산 차량을 처분했다.

그리고 그 차를 타고 처음으로 화이트 하트 레인에 출근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선배님. 인진이 형한테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화이트 하트 레인에 도착한 성배를 가장 먼저 반겨준 선수가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풀백으로 손꼽히는 선수, 윤기표였다.

“반가워. 진짜 반갑다. 안 그래도 좀 외로웠거든.”

오랜 타향살이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던 윤기표였다.

그 시기를 함께 보낸 박인진과 종종 만나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시즌 중에는 바쁘고 서로 간의 거리도 있었기 때문에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귀화하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16년을 살았던, 한국말이 통하는 성배의 합류에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5년도 넘게 유럽에서 생활하셨는데 아직도 외로우세요?”

성배는 이미 극복한 종류의 감정이었다.

20년의 유럽 생활로 인해 더 이상 외로움은 느끼지 않았다.

어쩌면 느끼지 않는다기보다는 이미 생활처럼 익숙해져서 굳이 꺼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었다.

“당연하지. 고작 5년인 거니까. 벌써 얘네들 나이로도 서른이 훌쩍 넘었는데, 그중에 고작 5년이지.”

대륙도, 인종도, 사용하는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한국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몇 가지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당연히 현지 적응 실패였다.

적응 문제는 선수가 제 기량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했고, 지금 이렇게 외로움을 토로한다고는 하지만 성공적으로 적응한 선수가 바로 윤기표였다.

“하긴, 뭐. 그렇긴 하죠.”

길지 않은 거리였지만, 훈련장까지 걸어가면서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박인진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인지 윤기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평소에도 자신에게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고,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고도 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고 자부하는 몇몇 경기에 대한 내용을 전부 다 알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아무리 성배라고 하더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와, 저도 다 기억 못 하는 걸 기억하시네요? 이거 좀 감동인데요.”

박인진을 만났을 때만큼이나 윤기표를 만난 지금도 떨렸다.

같은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영상을 봐도 윤기표의 영상을 더 많이 봤었다.

그런 선수가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경기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동했다는 사람의 표정이 아닌데?”

다만, 그때와 비교하면 성배의 위상이 상당히 많이 오른 상황이었다.

이미 윤기표의 전성기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같은 크기의 감동이라고 하더라도 표현되는 수준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했다.

“에이, 설마요. 아무리 제가 한국을 떠났어도, 인진이 형이랑 선배님은 제 우상이나 마찬가지인데요.”

한국에서 축구한다는 선수 중 박인진과 윤기표의 팬이 아닌 선수가 있기나 할까.

성배 역시 두 선수의 팬이었다.

자신이 응원했던 위대한 선수를 뛰어넘었고, 그 선수가 자신을 높이 평가해주고 있었다.

이보다 기쁜 일은 잘 없었다.

“진짜로 감동했으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윤기표는 성배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려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윤기표의 성격이라면 터무니없는 부탁을 할 리 없었기에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크로스. 솔직히 내가 크로스가 좀 약해. 이것 좀 배워보자.”

오른발잡이 레프트백에 라이트백 위치에서도 무난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선수가 윤기표였다.

이것이 윤기표를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게 해주었다.

하지만 아리랑 크로스라 불릴 정도로 맥없는 크로스와 왼발로 크로스를 올리지 못한다는 약점은 여전했고, 라모스 감독 부임 이후에 전력에서 제외되는 원인이 되었다.

“크로스라...”

그런 윤기표가 성배의 크로스를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레프트백과 라이트백을 가리지 않고 활약하는 것은 같았지만, 성배는 윤기표와 반대로 왼발과 오른발 크로스 모두 치명적인 무기로 인정받고 있었다.

‘서른이 넘었는데 이게 될까?’

윤기표 정도 되는 선수라면 직접 시범을 보이거나 시간을 투자해서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단지 몇 마디 말로 조언해주는 정도면 충분할 것이었다.

‘문제는 우리가 경쟁자라는 건데...’

자신의 우상이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상황.

물론 굉장히 기뻤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포지션을 두고 경쟁하는 선수에게 이런 것을 가르쳐주어도 될까, 하는 생각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윤기표에게 크로스가 장착된다면 분명 쉽지 않은 상대가 될 것이었다.

‘그래도 내년이면 이적하니까.’

반년 뒤, 윤기표는 토트넘을 떠나게 될 것이었다.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윤기표를 처분하려 했던 라모스 감독이 시즌 종료 후에 도르트문트로 이적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피지컬도 하락세야.’

게다가 피지컬이 하락하면서 스피드도 떨어져 슬슬 상대 공격수와의 수싸움에서 지고 들어가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제는 나와 경쟁하기에는 좀 늦기도 했고.’

윤기표는 성배와 꼭 10년 차이가 났다.

자신은 이제 스물한 살이었고, 윤기표는 곧 서른한 살이 되었다.

점점 더 성장할 자신과 점점 더 실력이 떨어질 윤기표.

성배는 굳이 윤기표를 견제하지 않기로 했다.

심정적으로 자신의 우상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싶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알겠어요. 대신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는 못하고, 시간 날 때마다 봐드릴게요.”

“고맙다. 진짜.”

두 선수는 마주 보며 웃었다.

국적과는 별개로 상당히 많은 공통점과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선수들이었기에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순식간에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

2008년 1월 5일, 화이트 하트 레인.

[IN - 13. 주성배 / OUT - 2. 파스칼 심봉다]

드디어 성배가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첫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내가 몰랐던 세계, 내가 알던 세계와 레벨이 다른 세계가 열리는 건가.’

벨기에 2부 리그 출신이지만, 주필러 리그에 대해서는 충분히 잘 알고 있었고, 전성기 때는 전생의 기량으로도 활약할 수 있었던 리그였다.

에레디비지에는 분명 수준이 조금은 더 높았지만, 4-5개의 클럽을 제외하면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는 달랐다.

지금부터는 진짜 세계 최고의 무대가 펼쳐지는 것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불확실한 것들을 재미있어하게 된 건지.’

하지만 성배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성배가 투입되면서 왼쪽 풀백으로 경기에 나섰던 윤기표가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효율만을 따졌다면 성배가 라이트백으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성배의 위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효율도 중요하지만, 선수의 자존심도 중요했고 라모스 감독은 자신이 전력 외로 판정한 윤기표가 아닌 성배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로 했다.

‘내가 기표 형님을 밀어내다니.’

선수들도 당연히 일련의 과정이 어떤 뜻인지 알고 있었다.

라모스 감독은 성배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었다.

이번 한 번의 기용만으로 토트넘 선수들 역시 성배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지.’

팀을 위해 희생할 생각은 없었다.

팀을 위했다면 자신이 나서서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가리지 않겠다고 말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성배는 레프트백 자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설사 그 상대가 자신의 우상인, 아니, 우상이었던 윤기표라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 낭만필드 - 121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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