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114화 (89/356)

< 낭만필드 - 114 >

-뻥!

-뻥!

한산한 훈련장에서 누군가 볼을 차는 소리가 울렸다.

‘이 정도면 이번 시즌 프리킥은 가져올 수 있겠지.’

소리의 주인공은 성배였다.

팀 훈련을 마친 뒤에도 훈련장에 남아 프리킥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크로스로 올려주는 프리킥 말고 직접 득점을 노리는 프리킥까지 내가 가져와야 해.’

지난 시즌에는 스네이더가 아약스의 전담 프리키커였다.

성배는 자신이 있는 측면에서의 코너킥과 크로스로 올라가는 프리킥을 전담해서 처리했을 뿐이었다.

‘빅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나라도 무기가 더 있어야겠지.’

성배의 성장세는 이제부터 한풀 꺾일 타이밍이었다.

무시무시했던 기세는 한풀 꺾이고, 나이에 따른 신체 능력의 성장과 다음 리그에 대한 적응으로 성장 속도가 정해질 것이었다.

성배의 현재 기량에 대한 기대치는 빅리그의 준수한 풀백 정도.

그것만으로도 같은 세대의 선수들보다 한 발자국 앞의 출발선에 서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정확한 킥은 여러 공격 루트를 만들어줄 수 있어.’

킥의 중요성은 몇 번을 이야기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성배가 가지고 있는 정확한 롱패스는 최후방에서 한 번에 상대 수비라인을 무너뜨리는 공격 루트를 만들어주었다.

정교한 코너키커의 합류는 코너킥 득점력을 높여줄 수 있었다.

정교한 프리키커의 합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프리킥 득점력까지 갖춘다면... 킥만으로도 이미 빅리그 클럽들의 관심을 받겠지.’

-뻥!

그렇게만 된다면 주성배라는 단 한 명의 선수를 영입하는 것만으로도 세트피스 전술의 반이 완성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강한 전력을 갖춘 팀이라고 하더라도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시즌이 기회다. 지금까지는 보여줄 기회가 없었지만.’

스네이더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2,000만 유로로 시작했던 이적료는 아약스가 NFS(Not For Sale)을 선언하면서 2,700만 유로까지 치솟았다.

스네이더에게도, 아약스에게도 큰 이득이 된 거래였지만, 성배에게 기회를 준 거래이기도 했다.

‘스네이더가 맡았던 프리킥만 가져올 수 있으면 환상적일 텐데.’

프리킥을 도맡아서 처리하고 한 시즌 5골에서 10골 사이만 넣어주는 것이 성배가 생각하는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전 유럽에서 프리킥으로만 10골 정도 넣으면 무조건 세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었다.

성배는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뻥!

‘이 정도 킥이면 충분히 노려볼 수 있어. 너무 정석적인 게 흠이기는 하지만, 그건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면 돼.’

포르투갈전에서 보여주었던 프리킥 득점이 그 예였다.

자신이 찰 수 있는 프리킥은 먼 쪽 골포스트를 보고 인프런트로 감아차는 것뿐이었지만, 상황에 따라 그렇게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경쟁자는 마땅히 없어. 나만 잘하면 돼.’

아약스는 스네이더의 이적료와 리버풀로 이적한 바벨의 이적료를 합쳐 3,850만 유로를 벌었다.

그리고 결국 팀을 떠난 페레즈와 한 시즌 활약으로 350만 유로를 안겨 준 데 뮬의 이적료 등을 더하면 총 4,500만 유로가량을 벌어들인 아약스였다.

하지만 스네이더를 대체할 키커는 영입하지 않았다.

‘이건 나에게 맡기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어.’

키커를 영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존 선수 중 한 명에게 그 역할을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자신 말고는 생각나는 선수가 없었다.

‘일단 기회는 잡았어.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기만 하면 돼.’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시즌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었다.

-뻥!

-뻥!

훈련장에서는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볼 차는 소리가 울렸다.

“으, 으, 으으...”

그렇다고 프리킥 훈련에만 올인하는 것은 아니었다.

순수한 파워가 부족한 성배 입장에서는 벌크업보다 더 시급한 것이 신체 밸런스와 유연성이었다.

근육이 없어도 몸싸움에서 쉽게 밀리지 않도록, 그리고 근육량이 늘어도 스피드가 크게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것들에도 프리킥 못지않은 시간을 투자했다.

“더! 조금 더! 조금만 더!”

지난 시즌이 시작하기 전, 성배는 피지컬 보완에 중점을 두고 몸을 키웠었다.

유연성과 신체 밸런스를 잃지 않도록 많은 신경을 쓰면서 훈련했지만, 아무래도 어느 정도는 잃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중점을 두는 것은 잃은 것을 회복하고 더욱 키우는 것이었다.

“아, 아!”

끊임없이 앓는 소리가 성배의 입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이게, 뭐 힘들다고, 그렇게, 비명을 질러?”

성배와 함께 훈련을 진행하던 선수가 성배를 구박했다.

다부진 체격의 이 선수는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루이스. 네가, 특이한... 악! 거지, 내가 이상한 건 아냐.”

이번 시즌을 앞두고 바벨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아약스에서 750만 유로라는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 야심 차게 영입한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즈였다.

“뭐, 그렇다고 치자고.”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어서 진심으로 때릴 뻔했다.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는 듯했다.

‘그래. 네 프리킥 내가 먹는 거로 퉁치자.’

원래대로였다면 몇 달 뒤부터 프리킥을 도맡아 해결하기 시작해 아약스의 메인 프리키커가 될 선수였다.

그 기회 뺏은 것으로 퉁쳐주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그럴 힘이 없었다.

182cm와 85kg의 신장은 성배와 비슷했고, 힘에서 이길 자신도 없었다.

***

시즌을 앞두고 선수단도 어느 정도 정리가 완료되었다.

프리시즌 매치들에서 그다지 좋은 결과를 보이지는 못했지만, 아약스였기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바벨을 대신해 왼쪽과 중앙을 오가며 세컨드 스트라이커 역할을 수행할 수아레즈와 톰 데 뮬을 대신해 오른쪽에서 활약할 루케의 영입은 최고의 한 수였다.

수페르-데포르 시절, 그러니까 데포르티보가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양강 구도의 프리메라리가에서 그들을 위협했을 시절 에이스로 활약했던 루케는 팀 내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으며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의 이적료 총합이라고 해봐야 1,500만 유로.

스네이더, 바벨 이적료의 1/3에 불과했다.

“으음...”

케이테 감독이 선수단을 둘러보며 뜻 모를 소리를 냈다.

이제 이번 시즌 첫 공식전 경기인 슬라비아 프라하와의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을 준비해야 하는 아약스였다.

지난 시즌 체코 시노트 리가의 우승팀이기는 하지만, 아약스와 비교하면 분명 전력의 차이가 있는 클럽이었다.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 오늘은 자율적으로 훈련하도록. 지금 중요한 건 몸을 만드는 거니까.”

케이테 감독은 자율 훈련을 지시했다.

선수들은 본격적인 시즌의 시작을 앞두고 전술을 점검해야 하는 상황에서 떨어진 자율 훈련 지시에 놀란 모습이었다.

“저, 전술적으로 가다듬을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선수단 구성이 적잖이 바뀌어서 공격이나 수비 전술 모두 완벽하지 않은데요.”

주장인 헤이팅아가 총대를 메고 나섰다.

주성배-스탐-그리게라-헤이팅아로 구성되었던 포백 라인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주성배-베르마엘렌-베르통헨-헤이팅아로 바뀌었다.

플레이 메이커로 팀의 중심을 잡아주었던 스네이더가 빠졌고, 핵심 공격수 바벨도 이적했다.

수아레즈와 루케, 롬메달, 데 용 등 중요한 역할을 맡아주어야 하는 신입생들도 많았다.

자율 훈련은커녕 지옥 훈련을 시행해도 모자란 시점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 아냐. 그런 것들은 앞으로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어. 지금은 한 시즌을 풀로 치를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 내 말대로 해.”

하지만 케이테 감독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확신에 찬 케이테 감독의 말에 헤이팅아는 물론이고 다른 선수들 입을 열 수 없었다.

선수들이 당황하는 사이, 케이테 감독은 집무실로 들어가버렸다.

“...이게 뭐지?”

이 상황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헤이팅아가 허탈한 듯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이해한 선수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뭐하자는 거지? 누가 봐도 지금은 전술을 가다듬어야 할 시기인데.’

아무리 좋은 선수를 모아봤자 호흡이 맞지 않으면 중위권 클럽들에게도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 기량으로 커버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뜻이었다.

에레디비지에에서 가장 좋은 선수단을 갖춘 아약스지만, 이 상태로는 좋은 성적을 장담할 수 없었다.

“됐고!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변하는 건 없으니 시킨 대로 자율 훈련이라도 열심히 하자고.”

슬슬 은퇴를 준비하면서 팀 내 비중을 줄여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신적인 기둥이 되어주고 있는 스탐이 선수들을 일깨웠다.

스탐의 말대로 선수들끼리 웅성거려 봐야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개인 훈련이라도 하는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될 것이었다.

‘확실히 뭔가 이상해.’

지난 시즌, 욕은 많이 먹었지만, 전술적으로는 여러 가지 시도를 했던 케이테 감독이었다.

줏대 없이 흔들렸고, 팀의 색깔과 전통을 고려하지 못했을 뿐, 전술적으로 많이 고민했고, 참신한 시도들도 많이 했음이 보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열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재기하려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이번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지난 시즌은 케이테 감독에게 악몽과도 같았을 것이었다.

세계 최고의 명문 중 한 곳인 FC 바르셀로나에서 수석코치까지 역임하며 탄탄대로를 걸었던 커리어는 아약스에서 꺾였다.

전술과 같은 부분들은 초보 감독의 실수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선수단 장악 능력, 언론 대처 능력 등에 심각한 문제를 노출한 것은 꽤 큰 문제였다.

앞으로 다른 클럽에서 그를 감독으로 선임하려 할 때, 한 번 더 고민할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열의가 없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 이상했다.

축구계에서의 은퇴, 적어도 현장에서의 은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주! 뭐해! 같이 훈련하자!”

성배의 상념은 베르통헨이 성배를 부름으로 인해 깨졌다.

베르통헨을 돌아보니 이미 베르마엘렌과 헤이팅아와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나 빼놓고 셋이서 무슨 이야기하는 거야. 내가 이번 시즌 핵심인데.”

베르마엘렌과 베르통헨은 풀타임 선발이 처음이었다.

특히 베르통헨은 거의 데뷔 시즌이나 마찬가지였다.

주장인 헤이팅아와 풀타임 3년 차에 접어든 성배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불렀잖아.”

아니꼽지만 반박은 못 하겠다는 듯 베르통헨이 썩은 표정으로 말했다.

“개인 훈련하라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불안해. 우리끼리라도 호흡을 좀 맞춰보자고.”

주전급 포백 라인을 이렇게 모은 것은 헤이팅아의 생각인듯했다.

은퇴를 대비하는 스탐과 유벤투스로 이적한 그리게라.

지난 시즌 주전 센터백 두 명이 모두 빠졌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얀, 얀은 주랑 같은 쪽에 있으니까 주한테 많이 배워. 포지션이 달라서 많은 걸 가르쳐주지는 못하겠지만, 호흡 맞추고 라인 잡을 때는 주의 지시를 받도록 해.”

성배와 고작 2개월 차이의 베르통헨이지만, 프로 데뷔 시기는 2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성배는 기성 선수들 못지않은 노련함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선수였고, 베르통헨은 유망주 수준을 넘지 못했다.

헤이팅아의 지시에 따라 아쉬운 대로 전술을 맞춰보기 시작한 수비수들이었다.

하지만 시즌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낭만필드 - 114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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