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108화 (83/356)

< 낭만필드 - 108 >

“이제 진짜 마지막 경기다. 유종의 미를 확실하게 거두자고.”

며칠 뒤, 아약스는 이번 시즌의 진짜 마지막 경기를 준비했다.

AZ 알크마르와의 홈경기였다.

“이 제도가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어쩔 수 없다. 오늘 확실하게 이겨서 우리가 2위임을 보여주자.”

주필러 리그와 마찬가지로 에레디비지에에도 유럽 대항전 진출권을 놓고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리그 우승팀은 자동으로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진출권을 획득하고,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 진출권을 놓고 2위부터 5위 팀이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것이었다.

“AZ은 이번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지금 경기력은 그다지 좋지 않아.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

2위 팀과 5위 팀, 3위 팀과 4위 팀이 만나 각각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두 경기를 치렀다.

그 결과, 아약스는 이번 시즌 31경기 34골을 기록한 리그 득점왕 알폰소 알베스가 버틴 헤렌벤을 총합 4-1로 꺾었고, AZ 역시 트벤테를 꺾어 마지막 결정전에서 만나게 되었다.

리그 마지막 경기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AZ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분전 중이었지만, 아무래도 한창 좋을 때와는 경기력의 차이가 있었다.

‘1차전에서 지긴 했지만, 오늘이 홈경기니까. 충분히 이길 수 있겠어.’

AZ의 홈에서 치러진 1차전에서는 AZ가 2-1로 신승을 거두었다.

AZ의 입장에서는 홈에서 패배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아약스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원정에서 골을 뽑아내고 고작 한 골 차이로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챔피언스리그. 거긴 가야지.’

한 번 맛을 본 세계였다.

아예 불가능하다면 모를까, 여기까지 와서는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

“주, 코너킥을 준비합니다.”

전반전은 조용히 지나갔다.

하지만 아약스의 공격력은 계속 올라오고 있었고, AZ는 후반전 초반부터 힘이 부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주성배 선수의 코너킥은 이제 아약스의 강력한 공격 무기 중 하나가 되었죠? 이번 시즌, 코너킥으로 기록한 어시스트가 무려 네 개입니다.”

성배가 이번 시즌 기록한 어시스트는 총 열두 개.

그중 네 개가 코너킥을 통한 어시스트였다.

“열두 개의 어시스트는 이번 시즌 에레디비지에 풀백 중 단연코 가장 많은 어시스트 개수입니다. 리그에서도 무려 7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리그 어시스트 7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성배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어시스트만으로 두 자릿수를 찍어버렸다.

리그 어시스트 1위는 세 명이었는데, 개수는 10개였다.

7개면 포지션을 감안했을 때 놀라운 수치였다.

“수비수 중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올린 선수는 주성배 선수가 유일해요. 어시스트가 다섯 개가 넘은 것도 주성배 선수밖에 없습니다. 굉장한 공격력이죠?”

성배의 공격력은 이제 꽤 유명해졌고,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킥이 워낙에 좋다 보니 어시스트를 쌓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정도 어시스트면 유럽에서 활약하는 풀백 중 가장 많을 겁니다.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배의 코너킥에 아약스 홈팬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참... 다들 작다.’

하지만 성배는 난감함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 아약스는 포백을 들고 나왔고, 레프트백부터 엠마누엘슨, 베르마엘렌, 헤이팅아, 그리고 성배로 이루어져 있었다.

183cm의 성배가 포백 라인의 최장신이었다.

센터백인 두 선수는 모두 180cm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코너킥의 핵심은 센터백인데.’

일단 두 선수가 어디 있는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4-3-3 포지션의 세 공격수, 훈텔라르, 바벨, 페레즈가 180cm대 중반이었지만, AZ에는 190을 넘기는 두 선수가 있었다.

‘그래도 일단 올려주면 알아서 맞추겠지.’

그래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헤이팅아도, 베르마엘렌도.

그 작은 신장으로 상대의 거대한 공격수들을 상대하면서 공중볼을 곧잘 따내는 선수들이었다.

그들의 탄력이라면 지금 당장 보이지 않아도 볼이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주, 강하게 감아서 올려줍니다!”

오른쪽 측면에서 왼발로 코너킥을 올렸다.

볼은 멀리 돌아가다가 골대 쪽으로 휘어졌고, 192cm의 동크, 그리고 180cm의 헤이팅아가 볼을 향해 뛰었다.

‘미친. 저게 되나.’

성배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높이였다.

성배가 헤이팅아보다 3cm가 더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굉장한 탄력, 그리고 점프력이었다.

어느새 헤이팅아는 자신보다 12cm가 더 큰 동크보다 높은 곳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헤이팅아의 헤더! 헤이팅아가 아약스의 선취 골을 뽑아냅니다! 어마어마한 점프였습니다!”

12cm라는 엄청난 신장 차를 뒤엎고 볼을 따낸 헤이팅아의 헤딩 득점.

1-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한 아약스였고, 이대로 끝날 경우 아약스의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확정할 수 있는 골이었다.

“그리고 이걸로 주의 열세 번째 어시스트이자 이번 시즌 다섯 번째 코너킥 어시스트가 기록되었습니다.”

성배의 코너킥도 다시 한 번 그 위용을 드러냈다.

‘킥 하나로 제대로 뽕을 뽑는구나.’

성배의 가장 큰 장점을 두 가지 꼽으라면 역시 노련미로 대표되는 경험, 그리고 킥이었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에레디비지에를 거침없이 휘젓고 있었다.

‘앞으로 한 1, 2년만 지나면... 프리미어리그도 꿈은 아니겠어.’

기량만 따지면 지금도 프리미어리그에서 통할 자신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신체적인 준비가 아직 덜 되어 있었다.

나이 때문이었다.

신체적으로 조금만 더 올라온다면, 최소한 1년에서 2년 정도만 더 준비하면 충분히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

“여러분, 지금 이 소리가 들리십니까? 암스테르담 아레나는 이미 축제 분위기입니다. 승리를 확신한 아약스 팬들은 이미 목청껏 응원가를 불러주고 있습니다.”

5만 명이 넘는 관중들이 모인 암스테르담 아레나였다.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

이 경기가 끝나면 앞으로 두 달이 넘도록 경기가 없었기 때문에 아약스의 마지막 경기를 위해 모인 관중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아약스는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는 좋은 경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사실상 아약스가 승리했다고 봐야겠죠. 여기서 AZ가 한 골을 넣어준다면 연장전으로 돌입하겠지만, 그러기는 힘들어 보이네요. AZ 선수들의 발이 멈췄어요.”

지금 막 전광판의 시계가 멈췄다.

정규시간 90분이 전부 지난 것이었다.

2-0으로 아약스가 앞서고 있는 지금, 아약스의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마지막 공격일 것 같습니다. 아약스 선수들, 마지막까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모습입니다.”

선수들도 신이 났다.

시즌을 치르는 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고생했던 선수들이었다.

그래도 리그 1위와 한 골 차이의 2위를 차지했고, 챔피언스리그 진출권까지 따내게 된다면 그에 대한 보상은 받는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아약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이유였다.

‘이제 진짜 끝났네.’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은 이제 진짜로 손에 잡혀 있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방심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AZ 선수들의 발은 이미 예전에 멈춰있었고, 억지로 발을 떼는 수준이었다.

‘어차피 마지막인데 한 번 올라가 볼까.’

성배는 이런 플레이오프에 강했다.

로얄 앤트워프 시절에도 승격 플레이오프든 강등 플레이오프든 가리지 않고 항상 좋은 활약을 펼쳐주었다.

중요한 경기일수록 더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었고, 성배 자신도 플레이오프 경기만 치르면 몸이 더 가벼운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한 골 마지막으로 딱 넣고 끝났으면 좋겠는데.’

이제 멋진 마무리에 관심이 가고 있었다.

어차피 승리는 확정된 상황이었다.

시즌을 마무리하는 축포로 한 골 넣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었다.

“다시 헤이팅아에게 볼이 돌아갑니다. 아약스도 이제 템포를 죽이는 건가요?”

잠시 전방으로 투입되었던 볼은 다시 최후방의 헤이팅아에게 돌아왔다.

아약스 선수들도 슬슬 페이스를 조절하며 경기 종료 휘슬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마지막 경기인데 그럴 리 없지.’

앞으로 경기가 남아있다면 분명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이번 시즌의 마지막 경기였다.

그런 식으로 흘려 보낼 이유가 없었다.

“헤이팅아, 오른쪽의 주에게 패스합니다.”

헤이팅아의 패스가 성배에게 이어졌다.

성배의 시선과 누군가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렇지! 그렇게 움직여야지.’

성배가 볼을 잡기도 전에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선수가 있었다.

상대 수비수를 완벽히 속여내고 쇄도하기 시작한 그에게 성배는 논스톱 패스로 볼을 연결해 주었다.

“아, 스네이더! 스네이더! 뚫렸어요!!”

상대 수비수를 완벽하게 속여버린 스네이더였다.

그런 스네이더의 움직임을 편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훈텔라르가 밑으로 내려가는 모션을 취했다.

그런 훈텔라르에게 시선을 빼앗긴 AZ의 수비수들이 일제히 밀고 올라왔고, 그 틈에 쇄도한 스네이더는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 틈에 성배의 패스가 완벽히 이어졌다.

“볼 잡아냅니다! 득점 기회!”

돌파하는 스피드를 고려한 성배의 스루 패스는 완벽한 위치에서 스네이더의 발에 걸렸다.

한 번의 터치 이후에 바로 슈팅 동작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스네이더, 슈팅!!”

깜짝 놀란 골키퍼 배터만이 달려 나왔지만, 스네이더의 슈팅이 먼저였다.

몸을 날리는 배터만의 모습에서 마지막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던 스네이더는 가볍게 볼의 밑둥을 차올려 배터만의 몸을 넘겨버렸다.

“골! 골입니다! 후반전 추가 시간에 다시 한 번 아약스의 득점이 터집니다! 완벽한 득점입니다, 베슬리 스네이더!”

세 번째 골.

오늘 아약스는 시즌 마지막 경기를 완벽하게 치러냈다.

그리고 성배 역시 두 개의 어시스트를 추가하며 자신의 공격력이 남다름을 과시했다.

상황마다 찔러주는 패스들은 빛이 날 정도였다.

축구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 오늘 경기 두 번째 어시스트입니다. 시즌 열네 개째인데, 정말 대단합니다.”

“어지간한 공격수, 플레이 메이커 부럽지 않은 엄청난 활약을 펼쳐주었어요. 열일곱 개의 공격 포인트라니. 공격 포인트로 따지면 훈텔라르, 스네이더에 이어 팀 내 3위에요.”

코너킥을 찰 수 있었고, 이번 시즌 따라 특히나 코너킥 운이 좋았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열네 개의 어시스트는 어마어마한 성적이었다.

‘이번 시즌도 멋지게 마무리했어.’

3골 14어시스트의 성적.

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진출.

그리고 컵대회에서의 우승.

지난 생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번 생에서는 너무나 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직은 만족하지 말자. 더 이룰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

성배는 만족감으로 차오르는 가슴을 애써 억눌렀다.

많은 것들을 얻었지만, 이 정도에 만족하게 된다면 전생의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

아직 조금 더 보상받아야 했다.

< 낭만필드 - 108 > 끝

ⓒ 미에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