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103화 (78/356)

< 낭만필드 - 103 >

“나이스! 드디어 한 건 하는구나.”

넉 달 만에 터진 데 뮬의 득점포였다.

후반기 첫 득점으로 시즌 3호 골을 기록한 것이었다.

받은 기회에 비해 활약상이 좋다고 보기에는 무리였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 득점을 올려주었다.

“역시 패스는 끝내주는 놈이야.”

수비진에서 길게 연결해준 것이었기 때문에 골 세리머니에 함께할 수는 없었다.

다만, 성배와 가까이에 있었던 다비즈가 다가와 등판을 가격했다.

“하하, 제가 또 패스 하나는 끝내주죠.”

기분이 좋았고, 축하해주는 것, 칭찬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분 좋게 넘어갈 수 있었다.

‘기분 안 좋아도 별수 없고.’

네덜란드산 진공청소기.

좋은 말로 하면 그렇고 나쁜 말로 하면 네덜란드산 싸움꾼, 혹은 미친개로 표현할 수 있는 선수가 다비즈였다.

다비즈가 ‘툭’ 치면 ‘휭’ 하고 날아갈 성배였기에 기분이 나빠지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잘했어. 역시 패스 하나는 기똥차다.”

헤이팅아였다.

“진짜 킥은 죽여준다. 와, 대단하네.”

베르마엘렌이었다.

‘어째, 하는 말들이 전부 킥에 대한 칭찬뿐이네.’

사실 이번 플레이에서 성배 자신이 가장 만족했던 부분은 볼을 끊어내는 과정이었다.

상대 공격수가 빠르게 달려와 경합을 시도했음에도 밀려나지 않았고, 오히려 상대를 밀어냈다는 것.

비시즌의 치열한 훈련과 그 이후에도 이어진 피지컬 보강이 효과가 있었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하긴. 다른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알겠어.’

피지컬 보강은 어디까지나 개인 훈련이었다.

그리고 사실, 자신을 숨기는 것은 성배의 장기였다.

전생에서야 워낙 약점이 크고, 확실하고 치명적이어서 아무리 잘 숨겨도 들켰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별짓을 다 해가면서 숨기려 노력했다.

그렇게 키운 능력은 다른 장점들도 많아진 지금에 와서야 빛을 발했고, 성배의 진정한 능력을 파악하기 힘들게 했다.

‘어쨌든 피지컬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어.’

에레디비지에를 벗어나 EPL이나 분데스리가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는 아직 힘들었다.

하지만 살아남는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었다.

신체의 성장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을 뿐, 이대로만 한다면 몇 년 뒤에는 상위 리그에서도 통할 정도의 피지컬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아주 좋아. 지금까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목표를 상향 조정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

“수고했다, 다들.”

데 뮬의 득점이 터진 순간, 성배의 예상대로 거기서 게임은 끝이 났다.

한창 신을 내려고 하는 와중에 성배의 패스 한 번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스파르타 선수들은 의욕을 잃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페레즈의 골이 완벽하게 스파르타를 무너뜨렸다.

5-2.

고전한 것 같았지만, 결국 아약스의 대승이었다.

감독과 감정이 좋지 않은 선수단이지만, 승리한 날이었기에 서로를 격려할 수 있었다.

“다른 경기는 어떻게 됐어?”

벤치로 돌아온 헤이팅아는 가볍게 땀을 닦아낸 뒤 바로 대기하던 선수들에게 달려가 물었다.

33라운드.

마지막 34라운드 경기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나머지 경쟁 팀들의 33라운드 결과가 궁금했던 것이었다.

“AZ은 헤렌벤한테 3-1로 이겼어. 승점은 여전히 같아.”

벤치에서 대기했던 마두로가 대답해주었다.

“그럼... 아직도 AZ가 우리보다 위에 있네.”

압도적인 골 득실을 자랑하는 AZ였다.

32라운드까지 승점 69점으로 동률이었으니, 똑같이 승리를 거두었다면 여전히 AZ가 아약스보다 위에 있었다.

“그런데 PSV가... 위르테흐트랑 비겼어.”

전 라운드까지 1위에 올라있었던 PSV의 무승부 소식.

이에 선수단 사이에 웅성거리는 소음이 생겨났다.

“잠깐, PSV가 지난 라운드까지 71점 아니었나?”

헤이팅아가 입을 열기 전, 스테켈렌부르크가 먼저 나서서 말을 받았다.

기억이 확실하다면.

PSV가 71점이었다면 이번 라운드 무승부로 72점이 된 것이었다.

“맞아. 71점이었지. 오늘 경기 끝나서 이제 72점.”

지난 라운드까지 승점 69점이었던 AZ과 아약스가 오늘 승리를 거두면서 72점이 되었다.

AZ은 골 득실에서 아약스에 앞서며 여전히 앞서나갔다.

그리고 지난 라운드까지 71점이었던 PSV는 무승부에 그치며 72점.

‘승점 72점이 세 팀...’

마지막 한 라운드를 남겨놓고 승점에서 동률을 이룬 팀이 세 팀이나 나온 것이었다.

유래를 찾아봐도 흔히 찾기는 힘들, 그런 상황이었다.

“잠깐만. 지난 라운드까지 PSV 골 득실이 몇이었지?”

불현듯 무언가 생각난 듯 헤이팅아가 외쳤다.

AZ가 승리를 거두었다기에 당연히 3위를 유지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PSV까지 승점이 같다면, 꼭 3위라는 보장은 없었다.

“중계 내용을 전해 들은 결과, PSV가 3위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럼... 우리가 2위?”

갑자기 TV에 나오는 리포터 말투를 사용한 마두로에게는 아무도 신경을 나눠주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아약스가 2위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응. 우리가 2위래. 우리가 오늘 +3해서 47, PSV는 오늘 0이라서 여전히 +46.”

아약스가 2위, PSV가 3위.

순위가 바뀌었다.

33라운드까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PSV는 결국 주전 선수들의 부상 이탈을 극복하지 못하고 3위까지 떨어져 버렸다.

“참고로 AZ는 +53. 다음 경기에서 AZ가 이기면 거의 무조건 우승이라 봐야지.”

아약스와 골 득실 6골 차, PSV와는 7골 차.

이 정도의 차이를 한 경기로 극복하는 것은 어렵다고 봐야 했다.

“그건 일단 승점 동률부터 만들고 이야기하자고. 다음 경기부터 먼저 신경 써. 대충 결과 알았으면.”

성배는 이미 라커룸으로 돌아갈 채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AZ는 이겼고, PSV는 비겼다.

골 득실 차이는 이 정도다.

그 정도 확인이 끝났으면 더 알아야 할 것은 없었다.

“하긴. 벌써부터 골 득실 신경 써서 뭐하나. 당장 다음 경기 못 이기면 꽝인데.”

성배의 뜻을 알아챈 헤이팅아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황이 이렇게 된 만큼, 아직 우승이 어쩌고저쩌고 거론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세 팀 중 어느 팀이 우승 트로피를 차지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왕이면 AZ가 좀 퍼져줬으면 좋겠는데.’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매 경기 전력으로 달려온 AZ였다.

33라운드까지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까지는 이해해줄 테니 남은 마지막 경기에서라도 좀 퍼지길 바랄 뿐이었다.

‘이왕이면 KNVB 컵도.’

PSV를 제외한 두 팀은 더블을 노리는 경쟁자였다.

어떻게든 우승을 차지할 수만 있다면 더블을 기록할 확률 역시 높아질 것이었다.

‘2년 연속 우승이라... 욕심은 나는데 말이지.’

전생에는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던 우승.

2년 연속 우승이 눈앞에 와있었다.

참을 수 없었다.

***

‘빌렘이라. 이거 좋지 않은데.’

다음 경기를 대비해 정보를 수집하던 성배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약스의 마지막 경기 상대는 빌렘.

빌렘은 승점 30점으로 15위에 올라 있었다.

‘시즌 막판에는 우승 경쟁하는 팀보다 강등 전쟁을 벌이는 팀이 더 무섭지.’

에레디비지에는 한 시즌을 마치고 두 개의 클럽이 강등을 당하는 시스템이었다.

15위의 빌렘은 여유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에레디비지에의 시스템이 들어갔다.

18윈는 바로 강등, 16위와 17위는 강등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하는 것이었다.

강등 플레이오프에 참가한 두 팀과 에이스터 디비지에에서 올라온 여섯 팀이 두 개조로 나뉘어서 최종 강등팀 하나를 정하게 되었다.

‘빌렘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야. 강등권 팀들이랑 얼마 차이가 안 나니까...’

빌렘의 승점은 30점.

16위와 17위를 차지하고 있는 엑셀시오르, RKC와는 고작 승점 3점 차이였다.

마지막 경기에서 그들도 총력전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이건... 별로 좋지 않군.’

아약스 입장에서는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세 개 팀의 승점이 같아서 골 득실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사력을 다해야 하는 팀을 만난다는 것은 그리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강등권이지만 어쨌든 1부 리그에서 오래 버틴 팀이니까 최소한의 저력은 있을 텐데.’

빌렘은 흔한 중하위권 클럽이었지만, 나름 1부 리그에서 오래 버텨온 클럽이었다.

아약스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저력은 있었다.

이런 클럽이 사력을 다한다는 것은 대량 득점을 노리는 아약스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AZ랑 PSV는 어느 클럽이랑 붙나...’

이럴 때는 경쟁자들의 상대 팀도 중요했다.

핵심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은 PSV, 그리고 최근 기세가 좋지만 언제 퍼져도 이상하지 않은 AZ였기에 상대가 조금만 잘 해줘도 아약스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PSV는 비테세, AZ은 엑셀시오르라...’

비테세는 리그 12위, 엑셀시오르는 리그 16위였다.

아약스의 상대인 빌렘은 리그 15위.

상대하는 클럽의 전력만 따지면 PSV가 가장 불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반대였다.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지만, 대진은 PSV에게 웃어주네. 우리만큼이나 AZ도 힘들 것 같고.’

PSV의 상대인 비테세에게는 동기부여라는 것이 없었다.

굳이 마지막 경기까지 열심히 뛸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물론, 시즌을 마무리하는 경기였기 때문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겠지만, 확실한 동기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승리해서 UEFA 컵 진출을 노려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패배한다고 강등이 위험한 것도 아니었다.

‘PSV가 가장 위험해. AZ은 분위기가 좋아서 위험하고.’

상황은 PSV에게, 기세는 AZ에게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아약스는 대진에서 PSV에게 밀리고, 기세에서 AZ에게 밀리는 달갑지 않은 상황에 부닥쳐있었다.

***

‘후우... 이게 잘 될 수 있을까?’

드디어 빌렘과의 리그 마지막 경기날이 밝았다.

아약스 선수단 전체에 심상치 않은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특히 성배가 심하게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평소 성배의 모습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이상하게 다른 선수들은 그런 성배의 모습을 보며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비형 미드필더라니...’

성배의 오늘 보직은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안더레흐트 시절, 교체나 경기 중 포지션 이동으로 몇 번 경험해본 적은 있었지만, 선발로 나서는 것은 처음이었다.

헤이팅아와 베르마엘렌, 엠마누엘슨으로 쓰리백을 구성한 케이테 감독은 성배를 다비즈와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시켰다.

‘공격에 힘을 준 포지션이라는 건 알겠는데...’

공격력이 좋은 엠마누엘슨을 풀백의 역할을 하는 센터백으로 내리면서 오랜만에 페레즈를 선발로 내보냈다.

훈텔라르와 바벨이 투톱, 왼쪽에 페레즈, 오른쪽에 가브리, 중앙에 스네이더와 다비즈, 그리고 성배였다.

‘내 패스를 죽이기는 아깝다는 거지?’

분명 겉으로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전술이었다.

하지만 고작 며칠의 준비로 완성시키기에는 성배의 수비형 미드필더 경험이 너무 적었다.

피지컬이 좋지 않은 성배를 다비즈가 보디가드 역할로 지켜주면서 롱패스를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구상 자체는 훌륭했지만, 훈련량이 충분치 않았다.

케이테 감독의 전술적 역량과 함께 문제점 또한 보여주는 선택이라 평가할 수 있었다.

< 낭만필드 - 103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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