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099 >
“오른쪽 측면을 타고 돌파하는 콰레스... 아! 주가 어깨 싸움을 시도합니다!”
전반전 종반부터 콰레스마의 움직임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움직임을 읽기 시작한 성배가 바짝 따라붙었기 때문이었다.
‘움직임만 읽어내면... 별것 아니지!’
그리고 콰레스마는 특유의 독특한 움직임이 읽히면 할 수 있는 것이 확 줄어드는 선수였다.
약점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기복이 심하다는 것, 팀플레이에 서툴다는 것도 큰 약점이었지만, 가장 큰 약점은 따로 있었다.
“그대로 날아가는 콰레스마! 주, 콰레스마를 상대로 피지컬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볼을 빼냅니다!”
바로 형편없는 피지컬이었다.
기본적으로 드리블을 즐겨하고, 다른 드리블러들에 비해 스피드가 부족하다는 것 때문인지, 콰레스마의 피지컬은 좋아질 기미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뛰어나지 못한 스피드가 더 죽을까봐 걱정하는 듯했다.
전생에서의 성배와 비교해도 크게 차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신체접촉이 일어나면 이미 실패인 선수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움직임을 읽히고 따라잡히면 이미 끝나는 스타일.
변칙적인 드리블과 얄미운 방향전환 등을 통해 상대 수비수와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꺼리는 것이 콰레스마였다.
피지컬의 단점을 극복해야 했지만, 장점이 무뎌지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했고, 그 결과,
수비수에게 패턴을 읽혀 접근을 허용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쯧.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정도가 최대였는데. 너는 아무것도 안 해도 그 정도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노력을 안 하다니.’
자신의 장점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이 큰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의 형편없는 피지컬까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콰레스마는 주의 수비에 완벽히 막히는 모습입니다.”
“든든하네요. 주는 세계 축구의 꼭대기를 향해 멈추지 않고 전진하고 있어요.”
경기 초반 보여주었던 콰레스마의 모습은 분명히 컨디션이 좋을 때의 모습이었다.
컨디션만 좋으면 월드클래스의 기량을 보여준다는 콰레스마지만, 결국 성배에게 완전히 막힌 것이었다.
성배의 기량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이제 좀 뛰는 건... 젠장!’
콰레스마의 움직임은 이제 성배의 손안에 있었다.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콰레스마였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움직임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성배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골치 아프게 되었는데...’
중앙으로 움직이던 콰레스마가 자신의 생각보다 더 깊숙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자리를 옮긴 호날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포르투갈이 스위칭 플레이를 시작하네요! 호날두도, 콰레스마도 모두 양 측면에서의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들이거든요?”
호날두와 콰레스마.
포르투갈의 공격을 이끄는 두 선수가 스위칭 플레이를 시작한 것이었다.
“각자 본인의 자리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벨기에 수비를 유린했던 두 선수인데, 스위칭으로 또 한 번 흔들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만약에 콰레스마의 날카로움이 무뎌지면서 억지로 선택한 것이라면 기존의 플레이보다 무딜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만약 제대로 준비된 전술이라면, 벨기에가 버티기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정상급 윙어 두 명이 잦은 스위칭으로 경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력적인 전술이 될 수 있었다.
둘의 정신없는 움직임에 수비수들이 흔들릴 것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텐데...’
호날두와 콰레스마의 스위칭은 생각만 해도 위협적이었다.
오늘의 콰레스마는 분명 베스트였다.
‘칼이 잘 막아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콰레스마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패턴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벨기에에서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였다.
호프킨스가 콰레스마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미안하게도 전혀 들지 않았다.
***
“포르투갈어는 할 줄 모를 테고. 영어는 좀 할 줄 아나?”
스위칭 플레이를 시작하면서 오랜만에 성배를 마주한 호날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영어? 대화할 정도는 되지.”
왜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화 정도야 못할 것 없었다.
“일단 고맙다는 말은 해두려고. 덕분에 꽤 좋아졌거든.”
대화를 하면서도 두 선수는 꾸준히 움직임을 가져갔다.
더 좋은 위치를 잡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방해할 수 있는 위치를 잡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면서도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고맙다, 라. 그런 이야기까지 들을 필요가 있나 싶은데. 그냥 최선을 다해서 막았을 뿐인데 말이지.”
사실 성배는 살짝 버거웠다.
호날두의 움직임은 콰레스마만큼 변칙적이지는 않았지만, 순간순간 특유의 운동신경을 활용해 방향을 전환할 때마다 버거움을 느꼈다.
하지만 대화를 멈춰 자신에게 여유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도 안 될 일이었다.
“어쨌든 덕분에 꽤 좋아졌다고. 그래서.”
마침 호날두에게 볼이 연결되었다.
“오늘은 내가 보답을 좀 해줄까 하는데.”
호날두의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였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고.’
그 뜨거운 전의가 느껴지는 호날두의 눈빛에 성배는 그저 그러지 말라고, 속으로만 부탁할 뿐이었다.
“쁘띠, 호날두에게! 빨리 붙어야죠!”
호날두와 콰레스마가 정신없는 스위칭으로 벨기에 수비진을 흔들고, 그사이에 생긴 공간을 포르투갈 미드필더들이 노리기 시작하면서 경기는 더욱 더 포르투갈 쪽으로 기울었다.
‘젠장. 티아고!’
수비진이 흔들리는 동안 비어있는 공간으로 침투한 호날두 주위의 공간이 너무 넓었다.
하지만 호날두를 막으러 가면서도 중앙 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티아고에게도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
다른 파트너들과 기량에서 꽤 차이가 났기 때문에 반 바이텐, 그리고 성배의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호날두! 빠르게 돌파합니다!”
‘젠장...’
하지만 다른 선수에게 신경을 쓰면서까지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전반기에 만났을 때는 아직 호날두가 각성하기 이전이어서 다른 선수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문제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호날두는 다른 선수가 되어있었고, 성배를 대신해 다른 선수들을 맡아줘야 하는 다른 동료들은 아약스의 선수들이 아니었다.
‘뱅상, 토마스, 야콥, 욘... 보고 싶다!!’
티아고에게 신경이 분산된 동안 빠르게 치고 올라간 호날두를 급히 따라가는 성배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지금 없는 동료들을 그리워하면서 사력을 다해 호날두를 쫓았다.
“호날두, 크로스!!”
하지만 호날두는 성배가 쫓아올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한 박자 빠른 크로스에 타이밍을 놓친 성배는 그저 볼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다시 위치를...’
포르투갈이든 벨기에든 선수의 머리에 맞고 떨어지는 볼도 처리할 생각을 해야 했다.
호날두의 크로스를 막지 못한 성배는 당황하지 않고 바로 다음 플레이를 이어갔다.
그리고 볼에 시선을 집중했다.
“반대편으로 길게! 아, 콰레스마!!”
호날두의 크로스는 높고 길게 반대편을 향해 날아갔다.
‘근육텐’이라고 불리며 세트피스 공격력과 제공권 능력에서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반 바이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반 바이텐의 머리를 넘긴 크로스는 반대편에서 쇄도하던 콰레스마를 향해 떨어졌다.
“다이빙 헤더!! 아...”
콰레스마가 중앙으로 이렇게 깊숙이 파고드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피지컬이 강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박스 안 깊숙이 파고든 것은 호프킨스의 수비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들어갑니다. 아, 포르투갈의 두 번째 득점이 나왔습니다. 이건 좀 좋지 않은 실점인 것 같습니다.”
호프킨스의 피지컬은 성배보다도 한 수 위였다.
하지만 피지컬만 좋다고 콰레스마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느린 발과 무딘 축구 지능이라는 약점을 가진 호프킨스가 콰레스마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건 무리였다.
어렵지 않게 중앙으로 파고든 콰레스마는 다이빙 헤더로 포르투갈의 두 번째 득점을 기록했다.
“지금 실점은 굉장히 타격이 큰데요. 포르투갈의 강점인 양 측면 공격의 날카로움을 꺾고 희망을 찾으려던 시점에서 스위칭 플레이를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하고 득점까지 올린 것이거든요?”
성배가 콰레스마를 잡아내면서 그나마 희망을 이어갔던 벨기에의 심장에 비수가 꽂히는 한 방이었다.
‘확실히 아직은 무리야.’
콤파니와 베르마엘렌이 빠졌고, 그것이 큰 타격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벨기에라는 팀 자체의 한계가 나타난 경기였다.
공격에서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수비수들이 고생하고 빈틈을 만들어 줄 일도 없을 것이었다.
다수의 유망주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수비 포지션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에 아직 팀으로서 완성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뭐, 어쩔 수 없지. 금방 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니까.’
어차피 벨기에가 본격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2012년이 지나서였다.
아직 5년이 더 넘게 남아있었고, 자신의 존재로 인해 그 시기를 앞당길 자신도 있었다.
‘그래도 기분은 더럽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무력한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자존심이 있을 자리는 없었겠지만, 지금의 성배는 조금씩 자존심을 찾아 나가는 시점이었다.
언제든 필요하다면 가슴 깊이 숨겨둘 수 있는 것이 자존심이었지만, 그라운드 위에서만큼은 본인의 실력에 대해 자신감과 자존심을 갖게 된 것이었다.
***
-삑! 삐-익!
벨기에에게는 너무나 길었던 나머지 30분이 흐르고, 드디어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경기 종료 휘슬과 함께 벨기에 선수들은 고개를 푹 떨구거나 그라운드 위에 주저앉았다.
[포르투갈 4 : 0 벨기에]
전광판에는 처참한 스코어가 적혀있었다.
포르투갈의 홈팬들은 시원한 대승에 신나서 큰 소리로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다.
몇 안 되는 벨기에 원정 팬들은 그나마 있던 팬들의 반수 정도가 경기장을 떠났고, 나머지 팬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젠장. 기분 더럽네.’
수도 없이 패배했고, 전생과 더하면 승리한 경기만큼이나 패배한 경기가 많았지만, 패배라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고.
“수고했어. 오늘은 내가 이긴 것 같지?”
호날두가 먼저 유니폼 교환을 요구하며 다가왔다.
오늘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콰레스마와 함께 벨기에를 완전히 박살 내버린 호날두였다.
호날두는 전반기의 호날두가 아니었고, 벨기에는 아약스가 아니었다.
성배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 잘했다.”
성배도 마주 유니폼을 벗어주었다.
어쨌든 호날두 정도의 선수가 자신에게 이 정도로 신경을 쓴다는 것이 만족스럽다는 마음도 있었다.
전반기 챔피언스리그에서 자신에게 꽁꽁 틀어막혔던 것이 꽤 큰 임팩트로 남은 것 같았다.
“앞으로는 어떤 선수를 만나도 절대 그런 경기 없을 거야. 어디 가서 자랑해도 좋아. 그 호날두를 완전히 발라버린 적 있다고 말이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해 보였다.
물론, 앞으로 천적으로 유명해질 애슐리 콜을 비롯해 호날두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경기도 많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호날두를 막아낸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리가. 너야말로 어디 가서 주성배를 완벽히 뚫어냈었다고 자랑해도 좋아. 앞으로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성배도 쉽게 지지 않았다.
자신이 자신을 평가할 때는 냉정해야겠지만, 다른 선수들에게는 절대 약해 보이면 안 되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훗. 그러든가. 또 보자고. 다음 경기도 맞대결이니까.”
석 달 뒤인 6월.
유로 예선 7차전도 포르투갈과 벨기에의 경기였다.
‘몇 년만, 몇 년만 기다려라. 조금만 더 지나면 절대 내 앞에서 그렇게 건방질 수 없을 테니까.’
등을 돌려 포르투갈 벤치로 돌아가는 호날두를 보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콤파니, 베르마엘렌, 베르통헨.
곧 벨기에 부동의 수비라인이 될 이들과 함께 호날두를 완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줄 날이 빨리 오기를.
< 낭만필드 - 099 > 끝
ⓒ 미에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