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97화 (72/356)

< 낭만필드 - 097 >

[주! 오늘 마커스 송별회 하기로 했는데, 시간 되면 잠깐 들르는 게 어때?]

성배가 자스민과의 일로 인해 머리가 아플 때도 축구계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약스에도 변화가 있었다.

케이테 감독과 지속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던 선수 중 마커스 로젠베리가 팀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팀을 떠나게 되었지만, 지난 몇 시즌 동안 팀을 위해 좋은 활약을 펼쳐 준 로젠베리를 위한 송별회가 마련되었고, 헤이팅아가 성배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결국, 떠나기로 한 건가?”

로젠베리의 이탈은 성배에게도 굉장히 아쉬운 일이었다.

184cm의 작지 않은 키에 북유럽 출신답게 강한 피지컬을 갖춘 로젠베리는 상당한 제공권 장악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조금만 더 중용되었다면 성배의 크로스를 쏠쏠히 받아먹어 줄 선수였다.

[그래. 그런데 베르더 브레멘으로 간다고 하니까 마커스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이지.]

아약스에서 케이테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팀을 떠나기로 한 로젠베리를 데려간 클럽은 독일의 베르더 브레멘이었다.

분데스리가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밀어내고 전반기 1위를 달리고 있는 베르더 브레멘으로의 이적은 전화위복의 대표사례로 꼽힐 수 있는 결과였다.

“그러니까. 그 정도로 능력 있는 선수인데 왜 썩히고 있는 건지.”

[능력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 다만, 헌터랑 라이언이 네덜란드 내에서는 워낙 이름값이 높은 친구들이라.]

정말 아쉬운 선수가 로젠베리였다.

스웨덴 국가대표 공격수.

사실 최근 아약스의 이름값을 봤을 때, 스웨덴 국가대표 공격수 정도면 무조건 주전으로 뛰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필이면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최고의 공격수 유망주 두 명과 같은 팀이 되었고, 홈 버프에 밀리면서 팀을 떠나고 말았다.

[어쨌든. 그러니까 올 거지? 지금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성배에게 송별회 참석을 제안하는 헤이팅아였지만, 성배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됐어. 내가 거길 왜 가. 마커스랑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로젠베리와 성배가 함께 뛴 기간은 겨우 반 시즌.

그나마도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마커스가 백업으로 밀린 이후였기 때문에 친해질 기회도 별로 없었다.

[하긴. 뭐 그것도 그런가.]

헤이팅아도 바로 인정했다.

“그렇지. 그러니까 알아서 잘 보내줘. 이적해서도 잘하라고 한 마디 전해주고.”

로젠베리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가 딱 적정선이었다.

그래도 한때나마 같은 팀에서 활약했던 사이이니 앞길을 축복해주는 정도.

그 정도가 전부였다.

***

3주의 짧은 휴식을 취하고 복귀한, 성배를 포함한 아약스 선수들은 다시 태세를 정비하고 후반기 일정에 집중했다.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마커스 로젠베리와 마우로 로잘레스 등이 결국 팀을 떠났다.

하지만 다행히도 케이테 감독과 불화설이 돌았던 선수 중 가장 중요한 선수였던 페레즈는 팀에 잔류하면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페레즈마저 팀을 떠났다면 후반기의 공격진 운용이 정말로 힘들어졌을 것이었기에 천만 다행이었다.

로젠베리와 로잘레스의 빈자리는 NAC 브레다에서 브라질 U-21 대표 출신 세컨드 스트라이커 레오나르도를 영입하며 메웠다.

다행히 선수들의 이탈을 최소화하면서 겨울 이적시장을 버텨냈지만, 아약스의 분위기 자체는 그리 좋지 않았다.

전반기 막판에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고, 감독과 선수단, 감독과 팬들의 관계도 불안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약스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유럽 대항전 출전권 획득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 예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약스는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4연승을 달렸다.

이후 세 경기에서 2무 1패를 당하며 주춤하기도 했지만, 경쟁자들도 나란히 부진하면서 1위와 승점 차이가 거의 없는 3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촤-악!

“나이스 태클! 레프트!!”

여러 가지 불안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약스가 후반기에 약진할 수 있는 이유가 된 겨울 이적시장 영입 선수 한 명이 중원에서 코쿠를 압박하며 에인트호벤의 공격을 끊어냈다.

‘확실히 전투력은 엄청나네.’

볼을 끊어낸 것을 확인하고 측면을 통해 위로 올라가며 볼을 요구한 성배였다.

저 태클을 보고 있자면 한 경기 중에도 몇 번씩 깜짝깜짝 놀랐다.

‘어쨌든 저 세 선수가 모여있으니 그림은 되는구나.’

패스를 받아 볼을 잡고 있는 스탐과 볼을 빼앗긴 코쿠.

그리고 이번 겨울에 아약스로 합류한, 방금 코쿠의 볼을 빼앗은 에드가 다비즈.

네덜란드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이 세 선수가 함께 앵글에 잡히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패스!”

그리고 자신은 그 전설들과 함께, 같은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전성기에서 내려와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점이기는 했지만, 자신은 이제 시작이었다.

***

[IN - 9.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 OUT - 14. 마누엘 다 코스타]

‘혹시 오늘 경기는 리그 경기가 아니라 네덜란드 레전드 매치라도 되는 건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또 한 명의 레전드가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불성실함과 좋지 않은 멘탈이 어디까지 선수를 추락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선수, 클루이베르트였다.

아무래도 현재 에레디비지에에서 가장 강력하고 유명한 두 팀이었기에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레전드들이 많이 찾았다.

‘PSV도 급할 수밖에..’

전반전, PSV는 아약스의 훈텔라르와 스네이더에게 벌써 두 골을 허용하면서 0-2로 끌려가고 있었다.

부동의 핵심 센터백이자 세트피스 공격의 중심인 알렉스의 부상과 주전 공격수 아루나 코네, 주전 라이트백 얀 크롬캄프까지 핵심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주춤한 PSV였다.

덕분에 수비형 미드필더인 벨기에 국가대표 시몬스가 센터백으로 경기에 나섰고, 코쿠도 방금 교체된 다 코스타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센터백으로 내려갔다.

오죽하면 중국에서 레프트백 순 시앙을 임대해와야 할 정도로 수비진이 무너져 있었다.

게다가 하필 이 시기에 최근 라이벌 관계를 형성 중인 아약스를 만나면서 홈에서 험한 꼴까지 보고 있었다.

“자, 자!! 정신 차리고!! 전반기에 진 거 제대로 갚아주자고!!”

주장인 헤이팅아가 소리쳤다.

전반기, 홈에서 PSV에게 당한 패배는 아약스에게 꽤 큰 타격을 안겨주었다.

그렇기에 PSV와의 원정 경기를 벼르고 있었던 아약스 선수단이었고, 지금까지도 만족스러웠지만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퍼-억!

“뛰어!”

다시 시작된 PSV의 공격은 이번에도 다비즈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거친 태클로 볼을 빼낸 다비즈가 크게 소리쳤다.

‘확실히 믿음직해...’

볼을 빼앗은 다비즈가 가브리에게 볼을 넘겼고, 가브리는 왼쪽 측면을 타며 출발한 성배에게 다시 볼을 주었다.

‘오늘은... 오른쪽이다!’

성배의 롱패스는 이제 경지가 올라 있었다.

회귀 후를 기준으로 데뷔 초창기부터 꾸준히 밀었던 주력 무기이기도 하고, 아직 공격수들의 전방 압박이 트렌드가 되기 이전이라 활용하기도 편했다.

다가올 현대 축구의 트렌드 변화에 살아남기 위해 나머지 무기들은 최대한으로 아끼는 중임에도 롱패스의 위력 덕분에 평가는 점점 올라가기만 했다.

‘역시. 순 시앙은 안 돼.’

구멍이 난 수비진을 보완하기 위해 임대한 순 시앙이지만, 에레디비지에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오늘 오른쪽 윙어로 나선 선수가 스네이더였기 때문에 경기 내내 아약스의 공격을 이끄는 선수가 되어 순 시앙을 괴롭혔다.

‘불쌍하네.’

같은 레프트백이었기 때문에 더욱 안쓰러웠다.

별것 아니었던 시절, 자신도 저렇게 탈탈 털려본 경험이 많았다.

같은 레벨에서는 드리블 돌파에 장점을 보이지 못하는 스네이더였다.

성배도 드리블 돌파에 한해서 만큼은 스네이더를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순 시앙을 상대로는 스네이더도 호날두였다.

“다시 뒤로!”

스네이더의 크로스는 누구의 머리에도 닿지 않고 반대편 측면으로 흘렀다.

엠마누엘슨이 볼을 잡았고, 뒤에서 대기하던 성배는 대각선 방향으로 뛰어들어가면서 손을 들었다.

‘헌터, 라이언, 베슬리...’

안타깝게도 PSV의 수비에는 구멍이 많았다.

코쿠는 물론 대단한 선수이지만 전문 수비수는 아니었고, 시몬스도 마찬가지였다.

순 시앙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포백을 이루는 선수 중 원래 주전이었던 선수는 알시데스가 유일했다.

-뻐-엉!

‘그래도 오늘은 오른쪽이지.’

하지만 전문 수비수도 아닌 선수들 사이에서도 가장 큰 구멍은 왼쪽의 순 시앙이었다.

순 시앙의 수비를 따돌리고 박스로 진입한 스네이더를 보며 가볍게 오른발 로빙 패스를 넣어주었다.

‘그렇지.’

성배의 로빙 패스는 PSV 수비의 머리를 넘어 스네이더에게 투입되었다.

스네이더는 허리를 숙여 머리를 쭉 빼내면서 헤더를 시도했고, 고메스가 지키고 있는 PSV의 골문을 다시 한 번 열었다.

아약스의 세 번째 득점이었다.

“오늘 아주 제대로인데? 이렇게까지 좋아도 되는 건가?”

골을 넣은 스네이더가 세리머니를 마치고 성배를 향해 달려왔다.

전반전에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던 스네이더는 득점까지 기록하면서 오늘 경기의 MVP 자리를 예약해 놓았다.

“솔직히 PSV가 너무 안 좋았지. 부상으로 빠진 선수들도 너무 많고.”

냉정히 말하면 오늘의 PSV는 PSV가 아니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렇다고 진짜로 PSV가 아닌 것은 아니었지만.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확실하게 밟아주자고. 일단 지금 1위 팀이니까.”

1위 PSV. 2위 AZ. 3위 아약스. 4위 트벤테.

상위 네 개 클럽의 승점 차이는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앞으로 한 경기 한 경기가 우승 경쟁의 분수령이었기 때문에 상대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면 확실히 후벼 파주어야 했다.

‘네 개인가.’

이번 어시스트로 성배의 리그 어시스트는 네 개가 되었다.

챔피언스리그와 KNVB 컵대회를 더하면 일곱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세 개의 득점을 포함해 총 10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게 되었다.

3골 9어시스트의 지난 시즌에 이어 에레디비지에에서도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연착륙에 성공한 것이었다.

‘다음 레벨로 넘어갈 길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빠른 성장이었다.

사실 풀백이라는 포지션이 수비적인 포지션이기는 하지만, 공격력의 중요성이 절대 작지 않은 포지션이기도 했다.

에레디비지에의 선수들을 막으면서 어려움을 느꼈던 적은 수아레즈나 파르판 정도밖에 없었고, 공격에서도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통해 증명해냈다.

‘여기서 한 2년 정도는 있어야 할 줄 알았는데.’

애초에 성배가 생각했던 2년이라는 시간은 에레디비지에에 적응하고 정상급 풀백으로 인정받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서너 곳의 명문 클럽을 제외하면 나머지 클럽들과 아약스의 수준 차이가 생각보다 심했다.

결국, 합류 후 반 시즌을 조금 더 지난 시점에서 이미 리그 정상급의 풀백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아직 스무 살 생일이 지나지 않은 열아홉의 어린 나이, 그에 어울리지 않는 풀타임 두 시즌의 많은 경험.

성배의 가치는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이번에 떠날까...’

생각보다 빠른 성장은 생각보다 빠른 고민을 불러왔다.

< 낭만필드 - 097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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