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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92화 (67/356)

< 낭만필드 - 092 >

감독은 관리직이었다. 감독을 괜히 매니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행여나 부진의 책임이 전적으로 선수들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감독이라면 그 선수 관리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팬을 건드린 것은 최악의 수였다.

팬들의 야유 때문이라고 부진의 책임을 팬들에게 돌린 순간 이미 팬들과 대립각을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프로 스포츠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인 팬들과 대립각을 세운 순간, 케이테 감독의 입지는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케이테 감독, 팬들에게 사과. “경솔한 발언이었다.”]

[감독의 사과에도 여전히 뿔난 팬들, 감독 사퇴 요구.]

[(단독) 아약스, 감독과 선수 간 불화 징후 포착!]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기만 했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내뱉었던 변명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논란이 되어 돌아오면서 당황한 케이테 감독은 바로 사과하며 진압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화가 난 팬들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고, 여전히 팬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게다가 성적마저도 케이테 감독을 도와주지 않았다.

PSV에게 패배하고 트벤테와 무승부에 그친 것도 모자라 하위권 클럽인 스파르타 로테르담에게까지 0-3의 대패를 당했다.

이후 빌렘에게 6-0의 대승을 거두며 겨우 한숨을 돌렸었지만,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두 경기에서 1승 1무를 기록하며 살얼음판을 걷던 도중, 지난 경기에서 10위의 비테세에게 4-2로 또 대패하고 말았다.

당연히 케이테 감독의 전술적인 선택과 선수 기용 문제에 대해서 비난이 폭주했다.

한 수 아래의 클럽을 상대로 지나치게 수비적이었던 스파르타와의 경기나, 반대로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던 비테세와의 경기가 타겟이 되었다.

또한, 경기력이 좋고 지난 시즌에 좋은 활약을 선보였던 페레즈나 로잘레스, 로젠베리를 중용하지 않은 것도 비난의 대상이었다.

이들을 대신해 중용한 바벨이나 자신이 영입한 가브리, 로저 등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기에 더욱 큰 비난을 받았다.

***

전반기를 마친 아약스 선수단은 3주간의 꿀맛 같은 휴식을 맞이했다.

12월 30일로 휴식 전 마지막 라운드인 20라운드 경기를 치렀고, 겨울 이적시장 개방과 동시에 3주 동안 일정이 없었다.

하지만 비테세와의 졸전 이후로도 11위에 올라있는 NEC 원정 경기에서까지 무승부에 그쳤다.

팀 분위기는 당연히 최악이었고, 팬들의 비난도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따라서 휴식 기간에도 아약스 선수단은 다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훈련에 매진했다.

휴식을 충분히 취하기는 했지만, 훈련을 거르지는 않았다.

“저, 헹크. 잠깐만.”

훈련을 위해 모인 상황에서 코치가 베우스만테른 감독을 따로 불렀다.

“무슨 이야기길래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굳이 선수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대화하는 이유가 궁금한 베르마엘렌이었다.

“뻔하잖아.”

하지만 성배는 이미 대충 눈치를 챈 상태였다.

내일이면 겨울 이적시장이 열렸고, 이 시기쯤 되면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음? 뻔하다고? 뭔데?”

말은 안 했지만 내심 궁금했는지 톰 데 뮬도 끼어들었다.

“주변을 봐. 마커스가 없어.”

마커스 로젠베리.

지난 시즌 아약스의 공격을 이끌었던 로젠베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뭐?”

“무슨 소리야, 갑자기.”

이렇게까지 말을 해줘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 양들을 위해 성배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훈련 불참. 아무래도 이적하려는 것 같다.”

로젠베리는 페레즈, 로잘레스와 함께 페레즈 감독의 반대편에 서 있는 대표적인 선수였다.

지난 시즌, 32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넣었었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훈텔라르가 영입되기 전까지는 팀 내 NO.1 스트라이커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훈련 불참이라고? 그런 건가?”

사실 이적을 추진할 만도 했다.

4위로 시즌을 마쳤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지난 시즌, 아약스의 공격을 이끌며 분투했던 로젠베리였다.

그랬던 그가 이번 시즌에는 후보로 강등되어 스무 경기 중 아홉 경기밖에 나서지 못했으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예상했다는 얼굴인데...’

순진한 어린 양들에게 냉정한 이 세계의 뒷모습을 일부 알려준 성배는 다른 선수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로젠베리와 같은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던 마우로 로잘레스, 그리고 이들의 대표격인 페레즈의 표정을 살핀 것이었다.

두 선수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셋이 다 나가면 문제가 커지는데.’

훈텔라르와 바벨. 이 두 선수가 아약스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다.

이들 세 선수 모두 현재는 백업으로 활약하는 중이었다.

당장 큰 타격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최소한 두 명은 영입해야겠네.’

하지만 세 명이 떠나면 당장 아약스의 공격진에 심각한 구멍이 생기는 상황이었다.

훈텔라르와 바벨의 투톱을 제외하면 남는 공격수는 이들 세 명과 니콜라 미테아 한 명밖에 없었다.

미테아는 지난 시즌 한 경기 출전에 그쳤던 선수이고, 이 세 선수와 비교하면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였다.

“후우, 오늘 훈련은 전술 코치가 맡아서 해주기로 했다. 가벼운 전술 훈련이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열심히 하도록.”

“예에.”

케이테 감독은 인사 후 바로 감독실로 향했다.

감독이 인사를 건네고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인사를 받아주는 선수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완전 콩가루 팀워크야.’

팬들의 비난도 케이테 감독을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건 정신적인 압박감에 그쳤다.

케이테 감독을 실질적으로 힘들게 만드는 것은 선수들과의 불화였다.

‘그러게 왜 자꾸 선수들 탓을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드나.’

경기력이 그다지 좋지 못할 때마다, 팬들의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케이테 감독은 꾸준히 선수들에게 그 탓을 돌려왔다.

당연히 선수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시즌 초반, 아약스의 컬러를 포기하고 수비적인 전술을 선택했던 케이테 감독의 결정에 불만이 있었음에도 묵묵히 따랐던 선수들이었다.

이후 팬들의 비난이 계속되면서 중심을 잃고 전술이 이리저리 흔들렸을 때도 참았던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참았음에도 계속되는 케이테 감독의 변명에 이제 선수들도 더 이상은 참지 않았다.

‘아직 늦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은 선을 넘지 않았다.

불만은 있지만 대놓고 감독의 지시에 반발하거나 하는 선수들은 거의 없었고, 아직 팀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것이라 이해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성배가 봤을 때, 앞으로 심해지면 더 심해졌지, 좋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감독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야.’

성배는 케이테 감독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수석 코치나 전술 코치로서의 역량은 분명 뛰어난 사람이었다.

자신의 철학과 팬들의 비판 사이에서 갈등하며 흔들렸을 때 급하게 내놓은 전술들도 완성도는 조금 떨어졌지만, 그 안에 있는 전술적 의미들은 선명했다.

‘조금만 더 큰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사람의 그릇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한 팀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팀에 쏟아지는 비판과 비난에 정면으로 맞서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각오가 부족했다.

항상 자신이 아니라 외부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 했고, 인터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수들과 팀, 팬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차라리 바르셀로나에서 계속 수석코치를 했다면...’

그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감독이 아니었다.

수석코치나 전술코치로 남았다면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코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물 건너갔다.

감독직을 맡았던 사람이 다시 코치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이미 한 팀을 자신의 마음대로 운영했던 사람이... 어떻게 다시 코치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분명 준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이미 마음이 떠나기 시작한 선수들을 다시 돌려세울 수 있으려나.’

이번 위기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선수들의 마음을 다시 잡을 수만 있다면 케이테 감독의 앞길도 탄탄대로일 것이었다.

하지만 타고난 사람의 성격과 그릇의 크기를 바꾸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

‘후우... 긴장되는데.’

무엇보다 애초에 성배는 지금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과 정신이 없었다.

팀 내 분위기가 좋지 않고 감독과 선수들 간의 불화가 일어난 것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나 지금 괜찮나? 음... 머리가 조금 뜬 것 같기도 한데.’

집을 나서기 전, 성배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복장과 외모를 점검했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동양인치고는 이목구비가 뚜렷해 준수하게 생겼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계속 뭔가가 거슬렸다.

‘멋지게 하고 가야지. 미니도 어릴 때는 얼굴 뜯어먹고 살았으니까.’

드디어 자스민을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3주의 휴식 기간을 맞아 안트베르펀을 자주 왔다 갔다 할 생각이었다.

만난 이후에 다시 잘해볼 생각이 들었을 때, 관계를 발전시킬 시간이 필요했고, 자스민이 프랑스로 떠나기까지 반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에 더 미룰 시간이 없었다.

‘후우, 후우...’

차를 타고 안트베르펀으로 향하는 시간이 영원과도 같이 느껴졌다.

고작 두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불과했지만, 수많은 생각이 성배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첫 만남에 대한 기억들과 설렘이 가득했던 연애 초반.

워낙 오래된 일이었기 때문에 인상 깊었던 몇 가지의 기억들만 떠올랐지만, 그 몇몇 사건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 반을 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어렵다, 어려워.’

안트베르펀으로 향하는 내내 헛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자스민에 대한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 우스웠다.

‘다른 모든 일은 망설임 없이 진행하고 있으면서... 이런 중요한 일에 우유부단해지다니.’

무언가를 바꾸기 시작한 것은 이른 나이에 벨기에 진출을 결정했을 때부터였다.

그 첫 결정도 망설이지 않았다.

안더레흐트 입단, 스폰서 선정, 이적 등 여러 가지 일들을 거침없이 수행해왔고, 미래에 대한 대략적인 플랜도 짜놓은 상황이었다.

‘귀화할 때도 이렇게 고민하지는 않았는데.’

심지어 국적을 바꾸는, 쉽지 않은 결정을 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망설이지는 않았다.

헤르만과 어떤 인연을 쌓아나갈지 결정했을 때도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는데, 자스민과의 인연에 대한 고민은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만나보면 대충 결론이 나오겠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자스민을 만나러 가는 이유는 이제 더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을 빨리 내리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얼굴을 직접 보고 대화도 나누어보고 몇 번 만나보면 오히려 더 쉽게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은 직접 마주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과연 이번에 우리는 어떻게 될까?’

이번 생에서 자신과 자스민은 어떤 사이가 될지.

성배는 그것이 너무 궁금했다.

또한, 너무 불안했다.

< 낭만필드 - 092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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