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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86화 (61/356)

< 낭만필드 - 086 >

“호날두 이번에도 돌파입니까?”

“잠시 숨을 좀 돌릴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요. 자존심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 뒤로 물러서서 재정비하는 것도 필요해요.”

초반에는 드리블을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호날두의 습관을 역이용해 수비해왔던 성배였다.

얕잡아봤던 성배에게 철저히 막히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호날두는 안 그래도 드리블 돌파에 치중된 플레이 스타일보다 더 드리블에 집중했고, 그 덕에 성배는 손쉽게 수비할 수 있었다.

“호날두의 드리블 돌파! 주성배! 태클로 또 한 번 끊어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거친 플레이로 일관하며 파울도 불사했다.

파울도 많이 불렸지만, 깊은 위치에서는 프리킥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고, 호날두는 점점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오!! 제기랄!!”

이번에도 휘슬은 불리지 않았고, 호날두는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태클이 조금 깊기는 했는데, 볼부터 건드렸다는 판정입니다. 휘슬은 불리지 않았습니다.”

“주성배 선수의 태클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죠? 영리한 수비에요. 오늘 주심이 휘슬을 자주 불지 않거든요? 주심의 성향을 파악해서 마음 놓고 거친 플레이로 호날두를 막아내고 있어요.”

주심의 성향은 이미 예전에 파악이 끝났다.

휘슬을 아낀다는 것을 파악한 이후, 성배는 조금씩 수위를 조절해가며 시험했고, 지금은 파울이 불리는 선을 파악한 상태였다.

덕분에 호날두만 계속 그라운드 위를 구르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짜증 내라. 흥분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져들 테니까.’

아직 스물한 살의 호날두는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이 미숙했다.

전성기가 되어도, 서른을 넘겨서도 다혈질로 분류되었던 호날두인데, 어릴 때는 더 심한 모습이었다.

‘오늘은 완승이네.’

그리고 성배는 맞대결에서의 승리를 확신했다.

***

‘저건 질리지도 않나...’

맨유의 승리가 확실해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0-2 상황에서 65분이 지났고, 아약스가 공격을 주도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러다 보니 맨유의 마지막 목표는 호날두를 살려주는 것뿐이었다.

“스콜스, 호날두에게 볼 투입합니다!”

이번에는 일대일 돌파가 아니었다.

장점인 스피드를 살리기 위해 스콜스가 볼을 잡고 있다가 호날두가 침투하자 볼을 찔러주었다.

‘너무 티 난다고.’

스콜스에게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맨유의 플레이 자체가 굉장히 뻔했다.

다른 선수들은 티 나지 않게 잘하고 있지만, 호날두의 모습에서 ‘아, 이 친구 위주로 플레이하겠구나.’하는 것이 느껴졌다.

‘빠르긴 진짜 빠르네.’

호날두가 침투하고 그곳으로 볼이 투입된다는 것은 눈치챘지만, 호날두가 너무 빨랐다.

스피드만큼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호날두의 어깨가 자신의 앞을 점하고 있었다.

‘벌크업하기 전에는 스피드도 괴물이었지.’

스피드 경쟁에서 밀린 성배는 옆으로 팔을 뻗었다.

벌크업하기 전의 호날두라면, 피지컬에서 밀릴 이유가 없었다.

‘제법이네.’

마른 몸이지만, 그래도 EPL 정상권의 윙어였다.

EPL에서 정상권으로 활약하는데 피지컬이 터무니없이 약할 리는 없었다.

‘이거 밀리겠는데?’

성배도, 호날두도 팔을 뻗어 서로의 유니폼을 잡아당기고 몸을 밀면서 볼을 향해 달렸다.

이미 호날두가 성배보다 앞에 있었기에 이대로 달리면 볼을 호날두에게 내줘야 했다.

‘어쩔 수 없네.’

그냥 무난하게 달리면 볼을 빼앗긴다.

그렇다면 무난하지 않은 수비를 해야 했다.

“주성배, 태클! 걸려 넘어집니다!”

태클을 시도하는 이상 여기서 무조건 돌파를 끊어내야 했기 때문에 팔로 호날두를 뒤로 당기면서 발을 뻗었다.

뒤로 당기는 힘에 저항하기 위해 앞쪽으로 힘을 주었던 호날두는 이후 성배의 다리에 걸리면서 앞으로 멀리 날아갔다.

‘아이고. 조금 늦었네.’

생각보다 호날두의 스피드가 빨랐다.

성배의 태클은 볼이 지나간 이후에 호날두의 발을 걸었고, 이번에는 휘슬을 피하지 못했다.

“이 더러운 새끼가!”

그런데 주심보다 먼저 성배를 향해 달려온 선수가 있었다.

호날두였다.

“뭐라고 했냐?”

성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더러운 새끼라고! 이딴 식으로밖에 못해?”

-퍽!

20여 분 동안 계속된 성배의 거친 플레이에 결국 폭발한 호날두가 날뛰기 시작했다.

‘호오, 손을 댔다, 이거지?’

“주심! 이게 뭡니까? 막 때리지 않습니까!”

분을 참지 못한 호날두가 두 손으로 성배의 가슴을 밀쳤다.

그리고 성배는 바로 주심에게 어필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너무 거칠게 플레이해서 잘못하면 옐로카드 받는다. 혼자는 못 받지.’

지금까지 두 차례 구두 경고를 받았던 성배였다.

구두로 경고를 받고도 백태클을 시도했으니 자신은 경고를 받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호날두와 함께 경고를 받는다면 억울하지 않을 것이었다.

“크리스! 참아! 뭐하는 거야!”

가까이에 있던 오셔와 캐릭이 달려와 호날두의 몸을 붙잡았다.

“주! 흥분하지 마.”

아약스에서도 베르마엘렌과 그리게라가 성배를 말렸다.

“주심! 방금 보셨지 않습니까? 호날두가 주를 때렸습니다!”

“아니, 그 전에! 오늘 주의 수비는 너무 거칩니다! 너무하다고요!”

그리고 양 팀의 주장인 헤이팅아와 스콜스는 주심에게 다가가 각자에게 유리한 부분을 어필했고,

“이게 뭐하자는 거야! 저게 축구야? 너무 거칠잖아!”

“축구 하면서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 이것도 못 버티면 축구 그만두라고 해. 베테랑이 그 정도 조언은 냉정히 해줘야지.”

골키퍼인 반 데 사르를 제외하고 필드 플레이어 중 최연장자인 맨유의 긱스와 아약스의 스탐은 서로 언쟁을 벌였다.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양 팀 선수들이 흥분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잠시 분위기가 어수선해졌습니다.”

“주성배 선수의 태클이 깊은 감은 있었지만, 저 정도로 흥분할 일은 아니었거든요? 오늘 주성배 선수의 수비에 막혀 원하는 대로 플레이가 되지 않아 짜증이 났던 것 같네요.”

평소였다면 맨유 선수인 호날두의 편을 들어줬을 중계진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호날두와 충돌한 선수는 성배였고, 박인진과 즐거운 모습으로 대화한 것, 그리고 어쨌든 핏줄은 100%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중계진이 편들어줄 선수는 정해져 있었다.

“저렇게 흥분하면 앞으로 플레이에 좋지 않거든요? 이렇게 되면 주성배 선수가 앞으로 수비하기가 더욱 편할 거예요.”

“하하, 아이들 싸움에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먼저 흥분하고 화내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그렇게 따지면 오늘 두 선수의 맞대결에서는 주성배 선수가 승리한 것 같습니다.”

박인진이 활약하는 맨유에서 확고하게 주전이라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

그래서 호날두는 한국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박인진과 같은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박인진을 벤치로 밀어내는 경우도 많아 싫어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중계진은 후자인 경우가 많았다.

박인진의 출전은 시청률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둘 다 경고로 끝내겠네. 하지만 또 이런 일이 있다면 바로 퇴장이야.”

주심은 성배와 호날두에게 각각 옐로 카드 한 장씩을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허!”

성배는 주심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고, 호날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양팔을 벌리며 물러났다.

‘쯧. 주심에게 잘 보이는 것도 능력이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뭐라도 한다.

주심에게 고개 숙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흥분하지 말고. 전까지 잘하고 있었으니까 이제 좀 깔끔하게 수비해.”

경고를 받은 성배가 흥분해 경기를 그르치지 않도록 스탐이 다가와 조언해주었다.

“걱정하지 마요. 경고 하나 정도는 각오하고 한 거니까. 경고 조심해서 수비하는 게 뭐가 어렵겠어요.”

다만, 어디까지나 성배의 계산 안에 있는 상황이었다.

경고를 조심하면서 수비하는 건 전반전에 보여주었었다.

어려울 것 없었다.

“대신 이제 과감한 태클은 좀 힘드니까 중앙에서 신경 좀 써줘요.”

그래도 아예 영향이 없을 수는 없었기에 센터백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참. 대단도 하다. 어딜 봐서 이게 열아홉이야? 야! 얘 열아홉 맞아?”

“저도 몰라요! 같은 벨기에 사람이라도 쟤는 열다섯에 왔다고요! 저도 여기서 얼굴 처음 봤어요!”

성배의 말에 어이가 없었는지 스탐이 베르마엘렌을 향해 성배의 나이가 열아홉이 확실하냐며 물었다.

베르마엘렌도 당연히 알지 못했다.

“맞아요. 한국 주민등록 제도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요. 최소한 생년월일은 확실해요. 아마도.”

“네가 기억하는 건 아니잖아? 네가 확인한 것도 아니고.”

“아니, 자기가 언제 태어났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있어요? 태어난 순간을?”

아니, 열아홉 맞다니까.

남들과는 조금 달라도 어쨌든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

‘쯧. 이제 포기했나.’

불과 몇 분 뒤,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유리 몸 루이 사하를 관리해주기 위해 솔샤르와 교체해주면서 호날두도 리처드슨과 교체한 것이었다.

“아, 호날두는 여기까지입니다. 퍼거슨 감독, 호날두를 벤치로 불러들입니다.”

“오늘 호날두 선수의 플레이는 별로 좋지 않았어요. 주성배 선수에게 완전히 막혀버렸죠? 세계 최고의 재능이라는 평가가 무색했어요.”

결국, 고집을 꺾은 것이었다.

경기 초반부터 막혔던 호날두를 살리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호날두는 성배의 수비를 뚫지 못했다.

게다가 흥분해서 성배의 몸에 손을 대고 옐로 카드까지 수집했으니, 머리를 식혀줘야겠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호날두의 옐로 카드와 주성배의 옐로 카드는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아약스와 맨유가 노리는 높이가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호날두는 윙어이고 주성배 선수는 풀백이기 때문에 그냥 가치는 비슷한 것 같네요. 다만, 호날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죠. 경기도 마음대로 안 풀리고, 경고까지 나눠 가졌으니까요.”

리처드슨과 교체되어 벤치로 돌아가는 호날두의 뒷모습이 초라했다.

성배와의 맞대결.

첫 대결인 오늘, 오늘은 성배가 확실한 승리를 거두었다.

‘잘 보셨습니까?’

성배는 호날두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이제 호날두에게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성배의 시선이 향한 곳은 맨유의 감독이자 세계 최고의 감독, 퍼거슨이 서 있는 벤치였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제 이야기 좀 해달라고요.’

퍼거슨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를.

경기 종료 후 인터뷰에서 자신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다고 한 마디 해주기만 해도 몸값을 올려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퍼거슨이었다.

***

[퍼거슨,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는 주성배.’]

[“주성배, 당장 EPL에서 뛰어도 통해.” 퍼거슨, 극찬!]

성배의 예상대로 퍼거슨의 입에서 성배에 대한 칭찬이 나왔다.

성배를 칭찬해야 호날두의 부진을 변명할 수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성배의 플레이를 인상 깊게 본 것인지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이것으로 성배에 대한 빅클럽의 관심이 조금 더 커진다는 것이었다.

[퍼거슨, 또 한 명의 한국인 선수에게 관심!]

‘흠. 아직은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네.’

그리고 한국에서도 기사가 나왔다.

한국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맨유의 감독, 퍼거슨의 발언들은 모두 기사로 전해졌다.

성배를 칭찬한 퍼거슨의 발언은 한국인 선수에 대한 관심으로 포장되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좋아진 것도 같고.’

아직 부정적인 의견이 조금 더 많았지만, 긍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았다.

성배와 박인진이 환하게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들이 캡쳐되어 기사로 나왔고, 그 기사들에서 특히 긍정적인 댓글들이 많았다.

‘역시. 도움이 되는군.’

성배의 예상대로였다.

‘이제 이걸 올려볼까?’

경기 후, 성배는 박인진과 만나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인증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지금.

그 사진들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릴 생각이었다.

‘지금 같은 분위기면 기자들이 알아서 퍼가겠지.’

아직 SNS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전이었지만, 미래에 인기를 끌 소셜 서비스들은 대부분 서비스를 시작한 상황이었다.

‘하나하나 다 퍼가 달라고. 무단으로 퍼가도 되니까.’

기자들이 다 똑같지, 뭐.

확신하건대, 하루, 늦어도 이틀 안에 이 사진들을 첨부한 기사가 작성될 것이었다.

< 낭만필드 - 086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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