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78화 (53/356)

< 낭만필드 - 078 >

[IN - 22. 즈데넥 그리게라 / OUT - 5. 어비 엠마누엘슨]

“엠마누엘슨을 빼고 그리게라를 투입하는 케이테 감독입니다.”

선취골을 실점한 이후, 케이테 감독은 왼쪽 미드필더 자리에서 뛰던 엠마누엘슨을 빼고 중앙 수비수 그리게라를 투입했다.

“이건... 수비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보이네요. 아마도 지금 중앙 수비를 보고 있는 베르마엘렌과 스탐, 교체 투입된 그리게라가 쓰리백을 서고 헤이팅아와 주가 양쪽 윙백으로 올라갈 것 같죠?”

윙백이 원래 포지션인 엠마누엘슨을 빼고 풀백이 원래 포지션인 성배를 남겨놓았다는 것은 수비에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

크로스는 성배가 더 좋지만, 돌파력 자체는 엠마누엘슨이 조금 더 나았기 때문에 측면 공격을 포기하더라도 수비를 우선시하는 변화였다.

“라인 내리고 수비에 집중해. 골 넣어서 이길 생각하지 말고 지키란다.”

교체로 들어온 그리게라가 케이테 감독의 말을 전했다.

‘글쎄. 팬들이 납득할 수 있으려나.’

아직은 아약스가 본선에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약스의 서포터들은 어느 클럽을 만나도 공격적으로 거세게 몰아붙이는 아약스의 컬러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 수 아래의 클럽을 상대로 20분이 넘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라인을 내리는 이 결정을 팬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쨌든 본선은 올라가고 봐야 하니까. 팬들한테 욕 좀 먹어도 성적이 우선이지.’

성배 개인으로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여기서 만약 한 골 더 허용하고 패배하면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이 좌절되는 것이었다.

아약스가 챔피언스리그 예선에서 탈락한다?

텐 백을 사용하더라도 올라가야 욕을 덜 먹을 수 있었다.

이후 아약스는 완전히 수비적인 형태를 취했다.

볼을 빼앗아도 올라가지 않았고, 만들어서 전진하기보다 멀리 걷어내는 것을 위주로 경기를 운영했다.

“아약스도 상황이 급합니다. 공격에는 그다지 욕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죠?”

코펜하겐의 공격을 막아낸 그리게라는 천천히 만들어가지 않고 앞으로 길게 걷어냈다.

바벨과 훈텔라르, 투톱을 제외한 아약스 선수들은 볼을 따라가지 않았다.

[우우우우우--]

“아,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약스 팬들은 공격적인 축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거든요. 어떠한 강팀을 만나도 공격적인 축구를 포기하지 않는 아약스의 팀컬러를 사랑하는 서포터들이 이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볼을 빼앗아내고도 공격으로 연결하지 않는 아약스의 모습에 아약스 홈팬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아약스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지금은 승리가 급한 상황이니까요. 한 20분 정도 수비만 해서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올라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죠.”

충성도 높기로 유명한 아약스 홈팬들의 야유에 당황한 중계진은 급히 아약스 벤치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홈구장에서 야유라니... 이건 또 참신한 경험이네.’

전생에서 성배가 활약했던 로얄 앤트워프는 애초에 팬들의 기대감이 크지 않았기에 경험 많은 성배도 팬에게 야유를 받은 적은 없었다.

‘어쩌겠어. 지금 당장 이겨야 하는데.’

다행히 아직은 아약스 홈구장 암스테르담 아레나와 아약스 팬들에게 감정이 이입되기 전이어서 큰 타격은 없었다.

다만, 몇몇 어린 선수들은 타격이 있어 보였다.

“아, 홈팬들한테 야유받으면서 뛰어야 하나?”

대표적으로 베르마엘렌이 흔들리고 있었다.

크게 흔들리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불만을 보였다.

“그럼 뛰어야지. 반응보고 뛰냐. 선수니까 뛰는 거지.”

볼이 나간 사이 잠시 마주친 성배가 한 마디 해주었다.

“그건 그렇지만.”

뭐,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 이해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끄럽고 그냥 뛰어. 불만이면 네 일이니까 뛰어. 열심히 뛰라고 돈 받는 거니까. 볼 온다. 네 자리로 가라.”

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것과 경기를 뛰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었다.

선수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라운드 위에서 사력을 다할 의무가 있었다.

“코펜하겐이 다시 공격을 시작합니다. 경기 종료까지는 15분 정도가 남아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코펜하겐도 한 골을 더 넣고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 무섭게 달려들었고, 버티기도 쉽지 않았다.

‘차라리 맞불을 놓으면 좀 더 편할 것 같은데.’

아약스의 공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코펜하겐이 공격에 올인할 수 있었다.

차라리 기회가 있으면 역습을 전개하는 것이 수비하기 편할 것 같았다.

“허친슨, 크비스트에게 패스합니다!”

그때, 성배가 있는 측면으로 코펜하겐의 패스가 투입되었다.

‘안일하다!’

지금은 풀백이 아니라 윙백으로 측면을 막고 있었다.

그 말은 평소와 같이 수비수들과 라인을 짜고 있는 것이 아니라 터치라인으로 붙어서 수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패스는 끊을 수 있다고.’

풀백이었다면 달려와 진로를 막는 것에 그쳤겠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볼을 끊기 위한 수비를 할 수 있었다.

빠르게 달려간 성배는 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주, 태클로 볼을 끊어냅니다! 정확한 태클!”

몸을 날린 태클로 볼을 끊어낸 성배는 볼이 튕겨 나가지 않게 힘을 조절했다.

그리고 반시계방향으로 몸을 돌려 일어났다.

‘한 번 치고 올라가야겠다.’

상대 풀백의 오버래핑을 끊어냈기 때문에 코펜하겐의 측면은 비어있었다.

역으로 오버래핑을 시도할 기회였다.

“주, 스네이더에게 패스하고 위로 올라갑니다!”

일단 스네이더에게 볼을 맡긴 성배는 바로 코펜하겐 진영을 향해 빠르게 달려나갔다.

스네이더 역시 공격적인 선수였고, 아약스의 팀 컬러를 사랑하는 선수였기에 곧바로 성배의 앞에 볼을 배달해주었다.

“거침없이 측면을 파고듭니다! 주의 돌파!”

코펜하겐의 린데로스가 수비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스네이더에게 볼을 맡겨놓으면서 가속한 성배를 따라갈 스피드가 없었다.

[와아아아아!!!]

답답한 흐름에서 오랜만에 나온 아약스의 날 선 공격은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불만이 쌓였던 팬들은 성배의 돌파에 환호로 답해주었다.

‘여기까지군.’

성배의 돌파는 한겔란트의 태클에 막히며 마무리되었다.

마무리를 짓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코펜하겐 선수들을 긴장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

“주의 스로인. 스네이더가 받아 뒤로 돌립니다.”

돌파를 통해 한 번 몰아붙이긴 했지만, 여기까지였다.

성배의 스로인을 받은 스네이더는 다시 수비라인으로 볼을 돌렸다.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뭐, 저기 선수들도 놀라긴 했겠지.’

어차피 목적 자체가 득점 찬스를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배도 만족했다.

처음부터 코펜하겐 선수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주어 플레이를 위축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판단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남은 20분. 쉽지는 않을 거다.”

스탐이 정면을 응시하며 말했다.

20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짧지도 않았다.

특히, 아약스 선수들에게는 굉장히 긴 시간처럼 느껴질 것이었다.

코펜하겐 선수들은 짧다고 생각하겠지만.

***

“실버바우어, 슈팅! 스테켈렌부르크의 선방! 다시 코펜하겐이 볼을 잡습니다!”

아약스가 공격을 포기한 이후, 코펜하겐의 일방적인 공격이 펼쳐졌다.

한 수 위의 기량을 가지고 있는 아약스 선수들이 수비에 집중하고 있어서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계속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약스에게는 위협이었다.

‘정상적인 경기를 하라고. 잽도 계속 얻어맞으면 코피가 난다는 건 상식인데.’

성배도 슬슬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관중들은 여전히 야유를 보냈고, 동료들도 얼굴에서 짜증이 비쳤다.

“베르마엘렌, 볼 끊어냅니다! 측면의 헤이팅아에게... 아! 볼 빼앗깁니다! 그롱크예르!”

그때, 홈팬들이 야유할 때부터 흔들리던 베르마엘렌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수비진영에서 앞으로 전개하는 도중에 볼을 빼앗긴 것이었다.

‘큰일 났다!’

세 명의 센터백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앞으로 올라가던 중이었다.

박스 안에 있는 선수는 세 명의 센터백이 전부.

위기였다.

“그롱크예르, 계속 파고듭니다. 왼발로 크로, 아니, 페이크!”

헤이팅아가 끈질기게 따라붙어 몸을 날렸지만, 차분하게 속임 동작으로 헤이팅아를 떨쳐낸 그롱크예르는 오른발 크로스를 준비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 끌어!’

올라가다가 급히 움직임을 멈추고 다시 박스 안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수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크로스 올립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그롱크예르는 이미 크로스를 올렸고, 베르글룬트와 알라박, 실버바우어, 세 명의 코펜하겐 공격수가 박스 안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막아라. 일단 어떻게든 막아!’

아직 성배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 막 박스 안으로 진입하긴 했지만, 이미 다른 선수들은 볼을 따내기 위해 점프해 있었다.

볼 경합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일단 골대 앞까지 달린다.’

어차피 경합은 물 건너갔다.

일반적인 선수들이라면 여기서 멈추겠지만, 성배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점프한 선수들 사이를 헤집어가며 달렸다.

골대 앞까지 달려가 골라인을 지킬 생각이었다.

‘혹시나 볼이 굴절될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뒤에서 멈추면 더 할 일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럴 거라면 단 1%의 확률이라도 실점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서는 것이 옳았다.

“반대편으로, 알라박! 슬라이딩! 아!!”

볼은 스탐과 그리게라, 실버바우어와 베르글룬트의 머리에 모두 닿지 않고 반대편 골포스트 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알라박과 베르마엘렌이 함께 몸을 날렸다.

“슛! 아, 굴절!!”

알라박의 오른발에 먼저 닿아 골대 방향으로 날아가던 볼이 베르마엘렌의 허벅지에 맞으면서 굴절되었다.

볼의 진로가 꺾였다.

몸을 날린 스테켈렌부르크의 반대 방향이었다.

‘막을 수 있어!’

이제 이 슈팅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성배밖에 없었다.

스탐과 그리게라는 상대 공격수들과 뒤엉켜 점프했다가 착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스테켈렌부르크는 이미 그라운드 위에 누워있었다.

“골대로 빨려 들어가고, 주!!”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볼과 성배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성배가 막아내지 못하면 바로 실점이었고, 경기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실점은 곧 탈락이었다.

‘닿아라, 제발!’

사력을 다해 달려왔지만, 볼보다 먼저 골대에 도착하지는 못했다.

이제 시간을 조금만 더 끌면 골라인을 넘어갈 것 같았다.

안정적으로 막아내는 것을 포기한 성배는 곧바로 몸을 띄웠다.

‘닿아라, 닿아라!’

뒤로 누우면서 그라운드를 박차고 뛰어올라 다리를 들어 올렸다.

면적이 좁은 오른발 발등.

조금만 조준이 빗나가면 바로 실점이었다.

< 낭만필드 - 078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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