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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74화 (49/356)

< 낭만필드 - 074 >

“벌써 선발로 나오네? 꽤 기대받고 있나 봐?”

마지막 프리시즌 매치에서 처음으로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된 헤이팅아가 말했다.

“당연하지. 주전으로 쓰려고 데려온 건데. 나 아니면 토마스인데, 토마스 쓸 거였으면 나한테 주급을 이만큼 주지는 않았겠지.”

성배의 주급이 베르마엘렌보다 살짝 높았다.

주전으로 쓰기 위해 데려온 것일 수밖에 없었다.

“에이, 재미없다. 긴장되거나 그러지는 않아? 우리 막둥이?”

헤이팅아는 자기도 고작 스물두 살밖에 안 된 주제에 성배를 꼬박꼬박 막둥이라고 불렀다.

실제 나이로 따지면 88년생인 반 더 비엘과 89년생인 아니타가 더 어렸지만, 합류한 시점이 기준이라면서 계속 막내 취급을 하고 있었다.

장난에 반응을 하지 않고 신경조차 쓰지 않는데, 그것에서 오히려 재미를 느끼는 듯했다.

“긴장은 무슨. 3부 리그 팀 상대로 긴장하면 어디에 써먹을까.”

마지막 프리시즌 경기였다. 당연히 아약스보다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로 전력을 점검하는 차원이었다.

스페인 3부 리그 세군다 B 소속의 바달로나가 아약스의 상대였다.

성배는 아약스 합류 후 처음으로 선발 출전했다. 오른쪽의 헤이팅아, 중앙의 그리게라와 스탐.

“그러고 보면 오늘 라인이 이번 시즌 주전 포백 라인인가?”

“그럴 확률이 높지.”

그리고 왼쪽의 성배.

이 라인이 이번 시즌 가동될 아약스의 주전 포백 라인이었다.

여기에 베르마엘렌과 이번 시즌 영입된 라이트백, 오가라루가 왔다 갔다 하게 될 것이었다.

“아, 나도 센터백이 편한데. 재능이 많은 것도 죄야, 죄.”

지난 시즌 주전 라이트백으로 활약했던 트라벨시가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고 스탐이 합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센터백은 물론 좌우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 가능한 헤이팅아가 오른쪽으로 이동한 상황이었다.

체코 대표팀에서 라이트백으로 활약하는 그리게라는 센터백으로 두고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센터백으로 활약하는 헤이팅아를 라이트백으로 옮긴 결정에 대해 말이 나오고 있었지만, 케이테 감독은 뚝심으로 밀었다.

또, 루마니아의 오가라루를 영입하긴 했지만, 백업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였다.

“왜. 멀티 포지션이 얼마나 좋은데. 어느 클럽을 가도 벤치에만 앉아있을 일은 없겠지.”

커리어를 시작할 때부터 주목받는 유망주로 활약했던 헤이팅아와 성배의 차이였다.

기약 없이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거나 벤치에도 앉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포지션에서 뛰는 게 낫지. 벤치에 앉지 않을 클럽으로 가면 되는 거고.”

겪어봐야 알지, 겪어보지 못하면 아무리 말해도 모를 것이었다.

“알았는데, 감독님한테 말해보던가.”

“에이, 말이 그렇단 거지. 야콥이랑 즈데넥을 밀어내긴 아직 좀 그렇잖아? 하하.”

아무리 헤이팅아가 주목받는 네덜란드 국가대표 유망주라지만, 스탐과 그리게라에게는 아직 손색이 있었다.

“그럼 그냥 내보내 주는 거에 감사하고 뛰어.”

이게 지금 누구 앞에서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건지.

“... 우리 막둥이는 거침없는 입을 가지고 있네. 하, 하하...”

헤이팅아를 가볍게 제압한 성배는 슬슬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비록 바달로나의 전력이 한참 약하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더욱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할 필요가 있었다.

***

‘내가 수비수인지 공격수인지 모르겠네.’

스페인에서 치러지는 경기.

바달로나의 홈구장에서 치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자신들의 진영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력 차가 심하기는 하니까. 이해는 되지만...’

어차피 아약스를 초청한 것은 네임밸류가 있는 클럽을 초청해 입장권 수익을 늘려보겠다는 뜻이고, 경기의 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텐 백 축구를 하는 것이겠지.

굉장히 이성적인 판단이지만, 적어도 그 덕분에 마땅히 할 게 없어진 성배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뒤로 돌려라, 좀.’

그렇다고 일방적인 공격을 하면서 득점포를 터뜨리고 있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기량 차이가 있어도 열 명의 수비는 쉽게 뚫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뒤로 한 번 빼고 가자!!”

그때, 하프라인 바로 아래까지 올라와 있던 스탐이 외쳤다.

플레이메이커는 스네이더이지만, 뒤에서 조율하는 스탐의 말을 쉽게 넘길 리 만무했다.

‘좋아. 다시 뒤에서 시작하자고.’

오늘 경기에서 눈도장을 찍으려면 오버래핑이나 롱패스로 공격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라이언, 어비. 자리 잘 잡고 있네.’

자신에게 볼이 이어지면 곧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미리 동료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패스를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선수는 세컨 스트라이커 라이언 바벨과 왼쪽 윙어 어비 엠마누엘슨.

누구에게 줘도 충분히 바달로나의 수비진을 찢어버릴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그때, 성배에게 볼이 연결되었다.

‘라이언이 낫겠어.’

성배는 바벨에게 볼을 주는 것이 나으리라 판단했다.

두 선수 모두 스피드는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 수비가 밀집되어 있다면 피지컬까지 갖추고 있는 바벨이 더 위력적일 것이었다.

-뻥!

성배의 롱패스는 이제 꽤 유명했다.

어지간한 클럽들은 전부 다 알고 있었고, 당연히 팀 동료들도 기대하고 있었다.

‘침투 좋다.’

후방에서 볼을 돌리고 있을 때도 공격수들이 패스를 기대하고 열심히 움직여주었다.

지금도 최후방에서 볼이 돌고 있었음에도 열심히 움직여주었던 아약스 공격수들이었고, 바벨도 성배가 좋은 패스를 줄 거란 기대감에 공간을 찾아 들어갔다.

“나이스 킥! 패스 좋아!”

세계 최고 레벨에서 수없이 많은 경기를 뛰었던 스탐조차 성배의 패스를 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아쉽게도 성배의 패스가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측면을 파고드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두터운 바달로나의 수비진을 뚫지 못하고 크로스가 걸린 것이었다.

“주! 주! 빨리 올라와!”

왼쪽 측면에서의 코너킥으로 아약스가 다시 공격을 전개할 타이밍이었는데, 앞에서 선수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더니 성배를 불렀다.

“뭔데요?”

지난 시즌까지 바르셀로나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던 가브리.

그 가브리가 성배를 불렀다.

“베슬리가 코너킥 한 번 차보라는데? 뭐, 네 킥 좋은 건 다 아니까. 방금 패스도 마음에 들었나 봐.”

아약스의 코너키커는 스네이더였다.

성배와 마찬가지로 양발을 다 잘 쓰는 선수였기 때문에 양쪽 코너킥을 모두 담당하고 있었는데, 왼쪽 코너킥을 성배에게 양보한 것이었다.

‘이건 기회다.’

성배는 눈을 빛냈다.

물론, 프리시즌 경기이기 때문에 한 경기 정도 기회를 줘보는 것에 불과했다.

앞으로도 계속 성배가 코너킥을 담당할 확률은 높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코너킥을 맡아야 스네이더가 맡는 것보다 공격력은 더 강해져.’

하지만 성배에게도 경쟁력은 있었다.

코너킥 시 필드 위에 스네이더가 있는 것이 성배가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세트피스 상황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네이더랑 큰 차이만 나지 않으면 돼.’

‘스네이더보다 조금 부족해도 쓸만한 킥만 보여주면 코너킥은 내 거'라고 속으로 다짐하면서 코너 플래그를 향해 움직였다.

‘일단 제공권은 확실히 우리가 우위에 있어.’

야프 스탐. 이 한 선수만으로도 갑자기 자신감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추가로 그리게라, 훈텔라르에 박스 바깥에서 대기 중인 스네이더까지.

‘하나 만들어보자.’

왼쪽 한정이라도 코너킥을 전담한다는 건 굉장히 큰 기회였다.

공격 포인트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풀백이 안정적으로 어시스트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수비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안전하게 갈까?’

볼을 놓고 코너킥을 준비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했다.

안전하게 스탐의 머리를 보고 올려줄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견제가 덜한 다른 선수에게 넘겨줄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골을 만드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나중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골을 만드는 것보다 자신의 코너킥이 쓸만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러려면 평범하지만, 위력이 있는 킥을 보여줘야 했다.

-삑!

‘야콥에게 가자.’

결국, 무난하게 스탐을 향해 올려주기로 했다.

-뻥!

스탐은 무조건 옳았다.

골을 잘 넣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제공권 자체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워낙 편한 상황에서 헤딩이 이루어지다 보니 아무리 골결정력이 없어도 위력적인 슈팅이 나왔다.

골키퍼도 기량이 부족했던 만큼, 스탐의 강력한 헤딩은 곧바로 상대 골망을 흔들었다.

“역시 킥 잘 차네! 이런 킥, 매일 보여달라고.”

득점에 성공해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스탐은 마찬가지로 축하해주기 위해 달려온 성배의 킥을 칭찬했다.

“하하, 킥은 자신 있죠. 맡겨만 준다면 얼마든지요.”

그러니까 왼쪽 코너킥은 나한테 넘기라는 이야기 좀 해달라고.

스탐의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스탐이 밀어주기만 한다면 스네이더든 케이테 감독이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감독이 알아서 하는 거지. 이대로라면 가능성은 있겠네.”

“그러니까 자신 있다니까요. 하하.”

왼쪽 윙어인 엠마누엘슨은 킥이 좋은 선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측면에서의 프리킥도 성배의 것일 확률이 높았다.

‘확실히 킥에 집중한 건 최고의 선택이었어.’

정확한 킥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나니 확실히 플레이가 편해졌다.

전생에서 부상으로 인해 다른 무기를 전부 다 잃어버린 뒤, 피나는 노력으로 장착한 것이었는데, 이제야 빛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어도 역시... 하나만 뛰어나서는 못 살아남는 동네구나.’

솔직히 말해서 킥 하나만 놓고 보자면 아직 전생을 완전히 따라잡지는 못했다.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는 올라왔지만.

스페셜 리스트가 살아남기 점점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맞았다.

***

“왼쪽은 이대로 가면 되겠군.”

“그러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활약이야.”

케이테 감독과 스피에크만 수석코치는 성배의 활약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코너킥도 맡겨볼까?”

케이테 감독은 성배의 활약에 살짝 고무되어 있었다.

케이테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선임된 신임감독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수석코치로 있다가 아약스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 자신의 팀을 의욕적으로 꾸렸다.

그 과정에서 영입된 선수가 바르셀로나 출신 가브리와 루마니아 국가대표 오가라루, 그리고 성배였다. 자신이 데려온 선수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그것도 좋겠지. 오른쪽은 베슬리에게 맡기고 왼쪽만. 베슬리도 코너킥을 누구에게 넘겨줄 수만 있으면 공격에 참여하는 게 위력이 더 좋으니까..”

스피에크만 역시 케이테 감독이 부임하면서 함께 이동한 케이테 사단이었기 때문에 아약스 선수단에 대한 파악이 아직 덜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신임 감독들이 전임 감독의 색채를 지우고 싶어서 이런저런 변화를 주고는 했다.

성배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좋아. 그럼 주에게 왼쪽 코너킥을 맡기는 쪽으로 고민을 좀 해보자고.”

경기를 지켜보며 끊임없이 뭔가를 필기하던 스피에크만 코치가 또 펜을 들었다.

성배가 원하던 대로 일이 풀리고 있었다.

“이번에 국가대표, 주도 선발됐지?”

4일 뒤, 유로 2008 예선일정이 잡혀있었다.

“그래. 주, 토마스, 톰도 소집이야. 어차피 바로 옆 나라에서 하니까 컨디션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좀 아쉽군... 중요한 시기인데. 합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팀에 합류한 지 며칠 되지 않았고, 시즌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국가대표 소집 때문에 또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 아쉬웠다.

“어쩔 수 없지.”

“누가 어쩌겠다고 했나. 아쉽다는 거지.”

성배의 이탈을 아쉬워하는 케이테 감독.

이 모습만 봐도 케이테 감독이 성배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낭만필드 - 074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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