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068 >
“아약스 암스테르담... 좋은 선택입니다.”
성배가 버크만에게 내민 종이는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명문, 아약스가 건넨 것이었다.
“아무래도 여러 조건을 봤을 때, 지금 여기 포함되어있는 클럽 중에는 아약스가 제일 나아 보입니다.”
과거에는 유럽을 지배했고, 전력이 많이 떨어진 지금도 매 시즌 리그 우승을 다투는 네덜란드 최고의 명문, 챔피언스리그에 개근 중인 아약스는 분명 좋은 클럽이었다.
“맞습니다. 아약스 정도의 클럽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 혹시나 빅리그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그다음 레벨의 리그에서도 믿고 영입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약스 출신의 유망주라면 믿고 영입하는 클럽들도 많았다. 에레디비지에보다 프랑스나 포르투갈 등을 선호했던 이유는 결국 다시 리턴할 때를 걱정한 것인데, 아약스라면 걱정 없었다.
“또한, 원래부터 유망주들을 키워서 빅리그에 공급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유망주의 이적에 적극적이라는 것도 아약스가 좋은 선택인 이유입니다.”
이적 과정에서 클럽과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아약스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였다.
보통은 선수의 몸값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마음이 떠난 선수들을 붙잡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골치가 아프므로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제가 걱정하는 건 아약스에 토마스가 있다는 겁니다. 지난 시즌에 주로 레프트백으로 나왔고, 아약스가 심혈을 기울여 키우는 유망주니까 쉽게 빠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약스라는 클럽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클럽이 매력적이라고 해서 바로 이적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이적할 경우, 어떤 선수와 주전 경쟁을 벌여야 하는지, 자신의 자리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했다.
베르마엘렌이 버티고 있는 아약스는 주전 보장을 받을 수 있을지 아직 확실치 않았다.
“안 그래도 그 부분은 이제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다음 시즌부터 베르마엘렌을 중앙으로 고정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
버크만의 말처럼 왼쪽과 중앙을 오가던 베르마엘렌이 중앙으로 고정될 시점이 되기는 했다.
“엠마누엘슨은 어떻습니까?”
어비 엠마누엘슨.
수비력은 아직 부족하지만, 공격력에서 인정을 받으며 팀 차원에서 경험을 쌓아주고 있었다.
“엠마누엘슨은 지난 시즌부터 거의 미드필더 자원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차근차근 생각할수록 아약스행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스쿼드 자체는 에레디비지에를 넘어 다른 리그의 강팀들과도 한 번 붙어볼 만했기 때문에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프랑스 쪽에서는... 랑스랑 모나코가 괜찮은 것 같네요. 둘 다 저를 필요로 하는 클럽이니까.”
“맞습니다. 두 팀 모두 주전 레프트백을 떠나보낸 클럽들이니까요.”
지난 시즌까지 주전 레프트백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이 이적한 두 클럽이었다.
아수-에코토를 토트넘으로 떠나보낸 랑스와 에브라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떠나보낸 모나코.
두 팀 모두 성배를 필요로 했다.
“일단 이 세 개 클럽을 놓고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세 팀 다 괜찮으니 다음은 조건으로 놓고 결정하도록 하죠.”
성배는 자신이 고른 세 개 팀 중 어디로 가도 상관이 없었다.
물론, 세세하게 들어가면 선호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계약조건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차이에 불과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시작하겠습니다.”
이적을 위한 작업은 이제부터였다.
세 개 클럽 외에도 다른 클럽들과 대화를 나누며 경쟁을 붙여 몸값을 올리고, 종국에는 가장 마음에 드는 조건을 제시한 클럽으로 이적한다.
다행히 경쟁을 붙일 클럽이 많아져 몸값 올리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팀에서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굉장히 많은 팀들이 끼어들었기 때문에 안더레흐트 입장에서도 욕심이 날 것이었다.
“안더레흐트는 이런 장사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적정선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망주를 이적시키는 일.
안더레흐트의 전문이었다. 하루 이틀 해본 것도 아니고, 선수의 가치와 상대 클럽의 상황 등을 따져 적절한 가격을 책정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뭐, 다행이겠죠. 자! 그러면 잘 부탁합니다.”
“이번에도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그때까지 개인적으로 하실 일들만 처리하고 계시면 됩니다.”
자신 있게 미소 짓는 버크만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그렇다면 이적에 대한 걱정은 접고, 다음 시즌에도 좋은 활약을 펼치기 위한 준비에만 몰두해야 할 것이었다.
***
“우, 우욱!!”
집에서 혼자 식사를 챙기던 성배가 입을 막으면서 식탁을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갔다.
“욱!! 우웨엑!!”
변기를 붙잡고 속을 비워낸 성배는 숨을 몰아쉬다가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그리고 세면대에 서서 입을 헹군 뒤, 다시 식탁에 가 앉았다.
“빌어먹을... 진짜 욕 나오네.”
욕은 나오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칼과 포크를 든 성배는 맛없는 스테이크를 잘랐다.
성배가 구토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본격적으로 피지컬을 신경 쓰기 시작하면서 몸에 맞지 않는 육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욱!!”
간도 되어있지 않은 두꺼운 스테이크.
아무리 채소와 함께 먹는다고 해도 도저히 이 맛을 참을 수 없었다.
유럽 생활도 햇수로 20년 가까이 되어가면서 육식 위주의 식생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젠장,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오른손에 들린 나이프가 의미없이 스테이크 위를 지나다녔다.
입에서 노린내가 나는 것도 같고, 고기 냄새가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왜 밥을 먹는데 구역질까지 해가면서 먹어야 하냐며 불평은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으으...”
신음을 내뱉으며 스테이크 한 조각을 또 잘라내 입으로 가져갔다.
“우욱!!”
여지없이 헛구역질이 튀어나왔다. 식사라고는 하지만 하루 할당량을 정해놓고 먹고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먹어야만 했다.
“으... 저건 또 어떻게 다 먹냐...”
성배의 눈에 여전히 팬 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스테이크 두 장이 들어왔다.
식생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성배는 이번 비시즌 기간부터 몸을 제대로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작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면서 벌크업을 해도 스피드와 탄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몸의 밸런스와 유연성을 잡아주는 훈련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된 벌크업을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고기 위주의 식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하루에 스테이크 열 장 가까이 꾸역꾸역 몸 속에 쑤셔넣는 중이었다.
“으, 으으... 토하겠다, 이거.”
식사를 끝낸 뒤, 음악을 틀고서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볼이나 덤벨 등 간단한 기구들은 집에 준비되어있었다. 어느새 필라테스와 요가, 크로스핏 등을 꾸준히 해온 지도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기에 능숙하게 동작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볼이랑 멀어지려니까 힘드네, 이거.’
이번 비시즌 중에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필라테스 등의 유연성 운동을 제외하면 거의 운동을 하지 않았다.
벌크업의 기본은 단백질 중심의 식생활과 웨이트 트레이닝, 그리고 휴식이기 때문이었다.
운동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근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어서 벌크업에 중점을 두고 있을 때는 훈련량을 줄여야 했다.
‘이걸로 트래핑 할 수 있나?’
다만, 전생에서부터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볼을 찼을 정도로 열심히 훈련한 성배이기 때문에 낯선 것은 사실이었다.
오죽하면 필라테스와 요가를 위해 준비한 짐볼을 보면서 트래핑이나 슈팅 연습이 될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헉... 헉...”
먹었던 것이 대충 소화가 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피지컬을 키우기 위해 고용한 개인 피지컬 트레이너와 함께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에 돌입했다.
물론 성배도 훈련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이제 더 이상 2부 리거가 아닌 만큼 더 뛰어난 전문가가 필요하기도 했고, 관리해줄 사람도 필요했다.
“자, 자!! 숨 그렇게 몰아쉬지 말고!! 천천히!!”
성배의 피지컬 트레이닝은 코어 근육 강화와 근육의 질 개선, 그리고 부상 방지를 위한 웨이트로 이루어졌다.
벌크업의 목적도 조금은 있었지만, 벌크업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코어 근육을 강화해서 버티는 힘을 키우고 같은 양의 근육으로도 더 큰 힘을 낼 수 있도록 질을 높이면 굳이 벌크업을 하지 않아도 맥없이 밀려나는 일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마무리 운동하고 끝낼까요?”
“허억, 허억... 예.”
웨이트 트레이닝은 이 트레이닝을 받기 싫어서 선수생활을 그만두는 사람도 많을 정도로 살인적인 운동량과 고통을 자랑했다.
처절한 실패 이후 회귀했기 때문에 축구와 관련된 부분에서만큼은 남들보다 훨씬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성배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늘도 무사히 끝냈구나.’
매번 운동이 끝날 때마다 무사히 하루를 넘겼다는 것에 감사했다.
두꺼운 스테이크 열 장을 먹는 것부터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속은 항상 더부룩하고, 훈련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지만, 하루하루 개선되고 있을 근육의 질과 강해지고 있을 코어 쪽 근육을 생각하며 힘들게 버텨나가는 중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면 내일 또 뵙죠.”
웃으면서 내일 보자고 인사를 건네는 피지컬 트레이너의 머리에서 왜인지 모르게 뿔이 보인 것 같았다.
“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다시 한 번 필라테스와 요가로 몸을 풀어주면서 마무리 운동까지 마치고 나서야 겨우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비시즌 중에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성배의 일과였다.
“아아, 김치찌개 먹고 싶다!! 얼큰한 라면이 먹고 싶다!! 칼칼한 육개장도 먹고 싶다!!”
아무 맛도 없는, 비계도 없이 오직 살코기로만 이루어진 스테이크를 하루 열 장씩 뜯어먹고 있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먹는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것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굉장했기 때문에 성배도 꽤 스트레스가 쌓인 상황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핸들을 두들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그나저나 어머니 오시면 어떡하지? 어머니랑 유빈이한테 맛있는 것 좀 사드려야 할 텐데... 그렇다고 둘이서만 드시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고...’
가족들이 휴가차 왔을 때, 운동한다고 자신만 먹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할 것이었다. 어머니랑 유빈이도 자신의 눈치를 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고생한 걸 버릴 수도 없고.’
운동은 그 무엇보다 관성이 중요했다.
꾸준하게 해줘야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가족들이 왔다고 열흘 정도를 거르면 다시 처음부터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었다.
‘아쉽지만... 고기 요리만 같이 먹고 다른 건 같이 못 먹겠네.’
어쩔 수 없었다.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비시즌이라고 해서, 휴가라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 낭만필드 - 06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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