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65화 (40/356)

< 낭만필드 - 065 >

성배의 어시스트에 이은 콤파니의 헤딩 득점으로 선취골을 뽑아낸 안더레흐트는 이후 체력이 떨어진 스탕다르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금방 추가 골을 기록하며 사실상 승부를 마무리지었다.

[IN - 5. 올리비에 데샤흐트 / OUT - 16. 주성배]

‘아...’

그리고 베우스만테른 감독은 성배를 데샤흐트와 교체해주었다.

승리가 확실시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탕다르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에 노출된 성배를 계속 경기에 뛰게 할 필요는 없었다.

‘이해는 되지만... 아쉽네. 그래도 우승이 결정되는 경기인데.’

이해는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쓸데없이 부상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쯤에서 빠지는 것이 나은 선택이었다.

다만,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에 그라운드 위에 있을 수 없다는 건 조금 아쉬웠다.

“부탁할게요.”

“알았다.”

성배가 주전 자리를 차지한 이후, 데샤흐트와의 관계는 당연히 좀 서먹해졌다.

그래도 성배가 안더레흐트에 오래 남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나쁘지는 않을 수 있었다.

“수고했어요. 정말 좋은 경기력이었어요.”

“감사합니다.”

데샤흐트와 교체되어 벤치로 돌아온 성배를 베우스만테른 감독이 가장 먼저 맞이해주었다.

등을 두드려주면서 칭찬을 건넨 감독은 다시 그라운드에 집중하고, 코치가 타월과 물병을 전해주었다.

“멋있는데? 역시, 빅리그로 갈 선수는 뭐가 달라도 다른가?”

먼저 벤치로 돌아와 쉬고 있던 음펜자가 웃으며 반겨주었다.

우승이 거의 90% 이상 확정된 상황이다 보니 벤치의 분위기는 밝았다.

“됐어. 비행기 태우지 말라고.”

“차갑긴.”

우승을 눈앞에 둔 순간,

성배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과거로 회귀한 이후, 처음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자신의 손에 쥐어지기 직전이었다.

“첫 우승이지?”

옆에서 음펜자가 말을 걸어왔다.

그라운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성배가 낯설다는 표정이었다.

“당연하지. 풀 시즌 뛰는 것 자체가 처음인데 언제 우승해봤겠어.”

벨기에로 건너오기 전에도 우승 경험은 없었다.

중학교 시절, 전국대회 8강에 올랐던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심지어, 초등학교 시절에도 우승 경험은 없었다.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다 한 번쯤은 있다는 지역 대회 우승 경험도 없었다.

‘준우승이라면 모를까...’

성배가 다녔던 학교들은 청주에서도 최강이 아니었다.

준우승만 다섯 번 가량 기록했을 뿐이라 만약 이대로 경기가 끝나게 된다면 우승 경험 자체가 처음이었다.

“손에 힘 빼.”

첫 우승을 기대하며 경기에 집중하던 성배에게 다시 한 번 음펜자가 말을 걸었다.

“뭐라고?”

손에 힘을 빼라니? 벤치에서 편하게 쉬고 있는데 도대체 뭔 소리인가 싶다가, 자신의 손을 보고 이해했다.

“네가 여기서 그렇게 긴장한다고 뭐가 변하냐?”

내려다보니, 하얘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이 보였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참나... 겨우 주필러 리그 우승이 뭐라고.’

이번 생에서 자신은 훨씬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빅리그에서 오래오래 살아남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된다면 강팀에서 활약하는 것이 목표였다.

‘고작 이 정도에 이렇게 긴장하면 안 되지.’

주필러 리그 우승.

우승 트로피는 분명 대단하지만, 그래도 이걸로 손이 하얘지는 건 너무 작은 그릇의 느낌이었다.

“고맙다. 긴장이 좀 풀리네.”

음펜자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렸다.

그에 성배는 감사를 표시했다.

“긴장이 풀렸다... 뭐, 아닌 것 같지만 조금은 나아진 것 같네.”

음펜자가 보기에는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지만,

굳이 더 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말 한마디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성배가 교체되어 나온 이후에도 경기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미 한 명 적은 숫자를 보완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던 스탕다르 선수들은 체력이 바닥났고, 우승을 눈앞에 둔 안더레흐트 선수들을 막아낼 수 없었다.

-삑!! 삐--익!!

[와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렇게 경기가 종료되었다.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과 함께 안더레흐트 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덮었다.

“으아!! 해냈어요!! 우승입니다, 우승이에요!!”

가장 먼저 베우스만테른 감독이 날뛰었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우승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윌리스 전 감독의 후임으로 감독이 된 베우스만테른이었다.

분명 우승에 대한 압박감이 심했을 것이었다.

“아아, 수고하셨습니다, 감독님.”

이는 베우스만테른 감독 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 코치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두 사람은 공동체.

감독의 목이 날아가면 자신의 목도 날아가는 것이었다.

“으아아악!! 우리가 이겼다!!”

“야, 빨리 준비해!! 이럴 시간 없어!!”

우승이 기쁜 것은 선수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선수들이 경기를 뛰는 목적은 돈도 물론 큰 이유이지만, 우승 트로피에 대한 욕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된 선수들이 기뻐 날뛰는 것도 당연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림과 함께 동료들은 모두 일제히 손에 물병 하나씩을 들고 그라운드로 뛰쳐나갔다.

벌써 벤치와 가까운 위치에 있던 선수들은 물벼락을 맞아 젖은 몸으로 벤치를 박차고 뛰쳐나온 선수들과 함께 미쳐 날뛰는 중이었다.

“주!! 뭐해!! 빨리 와서 이거 들어!!”

마찬가지로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라운드로 뛰쳐나가려던 음펜자가 성배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컵에다 따라 마시기 위한 거대한 물통을 들기 위해 낑낑대고 있었다.

“잠깐만. 나는 잠깐 여기 있을게.”

“... 그래, 뭐. 알아서 해라. 어이, 조나단!! 이거 좀 같이 들자!!”

성배의 표정을 본 음펜자는 두 번 말하지 않고 바로 다른 선수를 찾았다.

일단 지금은 혼자 있게 해주는 것이 났겠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상하게 차분하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관중들과 동료들이 모두 환호하던 그때, 성배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빠르게 뛰던 심장도 지금은 심장이 뛰고는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잠잠해졌다.

다만, 성배 자신이 직접 확인하지 못한 표정은 무너져있었다.

장난기가 넘치는 음펜자가 조용히 물러나 주었을 정도로.

‘이제 이곳에서는 더 할 게 없구나...’

안더레흐트 유소년 클럽 입단.

안더레흐트 1군 계약.

주필러 리그 데뷔.

벨기에 귀화와 U-19, A대표팀 선발.

마지막으로 주필러 리그 우승까지.

성배의 계획 중 벨기에에서 해야 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

더는 벨기에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다.

“뭐해!! 빨리 나와!!”

그라운드 위에서 한창 다른 선수들과 우승을 자축하던 콤파니가 성배를 향해 소리쳤다.

“알았어. 간다, 가.”

대충 마음을 가다듬은 성배도 웃으며 동료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일단 지금은 우승을 즐길 시간이었다.

***

2005/06시즌 주필러 리그는 안더레흐트의 우승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두 경기에서 1승 1무를 거둔 안더레흐트는 2승을 거둔 스탕다르 리에쥬에게 승점에서 5점을 앞서며 최종 우승,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권을 획득했다.

“2005/06 주필러 리그 베스트 일레븐, 수비수 부분!! 첫 번째 수상자는, 안더레흐트의 뱅상 콤파니!!”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시즌을 정리하는 시상식이 열렸다.

리그 MVP, 최다 득점상, 최다 어시스트상, 베스트 일레븐, 베스트 감독상 등 각자의 위치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친 선수들에게 트로피가 돌아가고 있었다.

“역시, 뱅상.”

성배도 이 자리에 참여했다.

일단 베스트 일레븐 후보에는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왜. 너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콤파니의 수상이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성배에게 음펜자가 말했다.

“나? 뭐, 글쎄?”

이번 시즌 주필러 리그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펼친 레프트백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

성배를 제외하면 지난 룩셈부르크와의 친선 경기에서 선발로 나섰던 레오나르도 정도가 있었고, 성배와 함께 벨기에 레프트백 포지션의 미래라 불리는 포코뇰리는 시즌 초반 석 달 정도를 부상으로 날렸다.

“글쎄는 무슨 글쎄. 이번 시즌에 레프트백 중에는 그렇게 뛰어난 선수가 없었잖아?”

그랬기에 별로 베스트 일레븐 수상에 대한 생각이 없어 보이는 성배를 음펜자가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주면 받는 거고, 안 주면 안 받는 거지.”

물론, 성배도 수상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별로 관심이 없을 뿐이었다.

주필러 리그에서는 우승을 차지하면서 하고 싶었던 것을 모두 다 이루었고, 베스트 일레븐 수상은 그저 덤이었다.

‘그래도 받으면 좋겠지. 어쨌든 이적시장에서 도움이 될 테니까.’

그래도 2005/06 주필러 리그 베스트 일레븐 수상.

이 경력은 이적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될 것이었기에 받으면 좋긴 좋을 것 같았다.

“... 네 번째 수상자는!! 안더레흐트의 주성배!!”

음펜자의 예상대로 베스트 일레븐 레프트백 자리는 성배의 것이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아아, 그래. 대단하네. 역시, 국가대표.”

우쭐대는 음펜자에게 영혼 없는 칭찬을 건넨 성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2부 리그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개인상을 수상하는 순간이었지만, 우승을 차지할 때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회귀하기 전, 16년의 프로생활 동안 성배가 받은 트로피는 단 한 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회귀 후, 성배는 데뷔 1년 반 만에 리그 우승 트로피와 베스트 일레븐 트로피, 두 개의 트로피를 받으며 전생을 넘어섰다.

“축하해요. 앞으로도 좋은 활약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트로피를 건네주는 시상자에게 감사를 건네고, 트로피를 받아들었다.

막상 손에 쥐고 보니, 이게 또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축하한다. 너도 받는구나.”

첫 번째로 호명되어 이미 무대 위에 올라와 있던 콤파니도 축하해주었다.

“그래. 너도 축하한다. 뭐, 굳이 축하할 필요가 있나. 당연한 건데.”

콤파니의 베스트 일레븐 수상은 사실 놀랍지도 않았다.

지난 두 시즌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었던 콤파니는 이번 시즌에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수비를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뭐, 네 덕분이지. 공격에서 많이 흔들어주니까 수비하기 편해졌거든.”

“그딴 공치사는 됐네. 수준 맞는 곳으로 빨리 꺼져버려.”

확실히 조금 더 큰 무대가 필요한 선수였다.

“하하, 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빨리 꺼져버리라고.”

지금 뛰고 있는 곳에 비해 자신의 수준이 훨씬 높다는데 싫어할 선수는 없었다.

콤파니 역시 성배에게 같은 뜻으로 돌려주었다.

‘흠... 다행이네. 그래도 콤파니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확실하겠지.’

처음부터 자신을 높게 평가하던 콤파니였다.

향후 콤파니가 어디까지 성장하는가를 생각한다면, 분명 지금의 자신은 꽤나 쓸만한 수준일 것이었다.

‘남들이랑 비슷한 속도로만 크자.’

다른 어린 선수들이랑 비슷한 속도로만 성장하면 성공이었다.

지금 수준을 감안하면 빅리그에서 살아남는 것 정도는 간단히 성공할 테니.

“이번에 이적할 건가?”

“그게 여기서 할 얘기라고 생각해서 묻는 건 아니겠지.”

언젠가 콤파니에게 살짝 흘리긴 할 것이었다.

그래야 기자들이나 다른 클럽에 소식이 흘러들어갈 테니까.

다만, 지금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 낭만필드 - 065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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