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063 >
“마이크 코치. 어떻게 생각해요? 다음 경기에 주를 내보내도 될 것 같나요?”
우승 트로피를 놓고 다투는 리그 2위, 스탕다르 리에쥬와의 32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고민 중인 베우스만테른 감독이었다.
그의 앞에는 열여덟 개의 빈칸 중 두 칸이 비어있는 종이가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그게 가장 낫지 않겠습니까? 누가 뭐래도 주는 현재 팀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선수 중 한 명입니다.”
마이크 코치의 말에서 그 빈칸이 성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콘세이상은 만만한 선수가 아니에요. 차라리 올리비에를 넣어서 왼쪽은 수비에만 치중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스탕다르 리에쥬의 오른쪽 윙어, 세르히오 콘세이상에 맞서 누구를 내보내야 하는지가 고민이었다.
콘세이상은 만만한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세르히오 콘세이상.
피구, 파울레타, 루이 코스타 등과 함께 포르투갈 골든 제너레이션을 이끈 선수였다.
비록 에르난 크레스포의 [email protected]:1 트레이드과정에서 [email protected] 중 1로 포함되는 굴욕을 당한 이후 내리막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주필러 리그에서는 최고의 윙어였고, 이는 지난 시즌 리그 MVP를 수상한 것으로 증명되었다.
“하지만 주의 수비력이 그리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지 않습니까?”
코치의 말대로 성배의 수비력 역시 데샤흐트에게는 밀려도 주필러 리그 최고 수준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렇죠. 문제는 콘세이상이 굉장히 노련한 선수라는 거죠. 주의 약점을 모를 리 없어요.”
이미 세계 정상권 공기를 맛보고 온 콘세이상이었다.
성격이 불같아 경기 중 욱하는 경우가 많다는 약점이 있지만, 어쨌든 노련함으로 따져도 성배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은 선수.
이런 선수라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유도할 것이었다.
“그런데... 또 요즘 들어서 주가 몸싸움을 피하지 않는다는 게 또 변수예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확 달라진 모습이 보입니다.”
전생의 플레이 스타일대로 몸싸움을 극단적으로 회피하던 성배는 요즘 일부러라도 적극적인 몸싸움을 펼치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몸싸움 시도가 적은 편이기는 하지만 성배 입장에서는 굉장히 굳게 마음먹은 것이었다.
“몸싸움을 피하지만 않으면 콘세이상과 경쟁이 되는 선수니까요. 그래서 고민이에요. 조금만 더 변화가 빨랐거나 느렸으면 고민도 하지 않았을 텐데...”
베우스만테른 감독이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다음 경기인 32라운드.
여기서 승리하면 이번 시즌 우승 트로피가 안더레흐트의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제 우승을 확정하고 싶어요. 콘세이상만 아니면 우리가 한 수 위이기도 하고요.”
콘세이상을 제외하면 부담이 되는 선수는 없다.
그러니 데샤흐트를 투입해 데샤흐트와 콘세이상이 함께 경기에서 지워지기만 해도 성공이다.
베우스만테른 감독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전으로 뛰면서 큰 활약을 했는데,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으면 주가 섭섭할 겁니다.”
챔피언스리그 포함 시즌 성적 3골 9어시스트.
어지간한 윙어도 기록하기 힘든 성적을 기록한 성배는 안더레흐트가 우승할 경우 최소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공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 내보내지 않으면 사이가 틀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다음 시즌에는 저희와 함께 있지 않을 테니까요.”
시즌 종료 후, 성배의 이적은 거의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구체적이든 뜬구름 잡는 이야기든 이적설이 계속 돌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곧 떠날 성배와의 관계보다 팀의 우승이 더 급했다.
“그러면 올리비에로 가는 겁니까?”
“그러니까, 고민 중이라는 거죠. 아직 모르겠네요. 주가 약점을 어느 정도 극복한 것이 사실이면 분명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테니까요.”
안정적으로 콘세이상을 막을 수 있는 데샤흐트냐, 아니면 콘세이상에게 뚫릴 위험도 있지만 오히려 콘세이상도 철저히 막으면서 상대 측면을 파괴할 가능성도 존재하는 성배냐.
베우스만테른 감독은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
‘이 아저씨가 콘세이상인가...’
결국 선발 자리는 성배의 것이었다.
훈련에서도 적극적으로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이자, 기대를 걸어본 것이었다.
자신은 몰랐지만 어렵게 기회를 잡아 출전한 성배가 콘세이상과 마주했다.
‘영상으로 보니까 좀 부담스럽던데...’
파워풀한 드리블과 정확한 슈팅.
콘세이상의 장점이었다.
스피드나 피지컬은 평균 수준이었지만, 스피드는 몰라도 피지컬은 부담스러웠다.
‘그래, 한 번 붙어봅시다.’
예상대로 콘세이상이 피지컬로 밀고 들어왔다.
볼은 성배가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만 미리 굴려놓고 어깨 싸움을 유도한 것이었다.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최근에 자신감이 좀 붙었기에 피하지 않았다.
‘윽!!’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직 무의식적으로 몸을 부딪치지는 못하고 의식을 한 번 거쳐 계산한 다음에야 경합에 들어가기 때문인지 불리한 자리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끊자.’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놓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성배는 미련없이 손을 뻗었다.
경기 초반이고 동료 수비수들도 자리를 잡았지만, 여기서 뚫리면 위험지역까지 고속도로가 놓여 있었다.
-삐--익!!
‘아직은 괜찮아.’
프리킥으로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기에는 살짝 먼 위치였기에 과감하게 파울로 돌파를 끊었다.
충분히 할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콘세이상의 표정이 밝았지만, 성배의 표정도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막을 수 있겠어.’
몸싸움에서는 밀렸지만, 몸싸움이 아예 되지 않을 때도 주필러 리그 수위권의 풀백으로 인정받았던 성배였다.
정당한 몸싸움에서 이 정도까지 경합이 된다면, 콘세이상을 막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콘세이상... 부담이 좀 되었는데, 별것 아니네.’
전체적으로는 밀렸지만, 그래도 로번, 가르시아, 호아킨 등 현세대 최고의 윙어들을 상대로 봐줄 만한 대결을 펼쳤던 성배였다.
정상에서 놀았던 선수라지만, 이미 전성기가 지난 선수와는 충분히 해볼 만했다.
***
-삐--익!!
‘흠... 이 정도는 안 된다는 말인가?’
몇 분 뒤, 콘세이상이 다시 바닥을 굴렀다.
이번에도 파울이 선언되었다.
첫 대결에서 파울로 콘세이상의 돌파를 끊은 이후, 두 번째 파울이었다.
“너무하잖아!! 파울이 이제 겨우 두 번째라고? 왜 이렇게 휘슬을 안 부는 거야!!”
그라운드 바닥을 강하게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콘세이상이 주심을 향해 다가갔다.
성배의 거친 플레이와 휘슬을 불지 않는 주심에게 분노한 것이었다.
사실, 두 번째 파울이기는 했지만, 주심에 따라 파울로 선언되어도 할 말 없는 플레이는 여러 번 있었다.
성배가 주심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수위를 조절하며 계속해서 파울 성 플레이로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흥분했네. 느낌이 좋군.’
콘세이상은 다혈질이다. 가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다.
이번 경기에서 보여주는 성배의 수비는 위의 사실을 이용해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조금만 더 건드리면 확실히 보내버릴 수 있겠는데?’
여전히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대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콘세이상.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배는 미소를 지었다.
“주. 지금 엄청 재수 없는 표정이야.”
콤파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마 전 훈련에서 봤지만, 역시 성배가 작정하고 교묘하게 플레이하면, 당하는 입장에서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재수 좀 없으면 어때. 이기는데.”
“그렇게 웃지 마. 상황이랑 안 어울리니까.”
친해질 가치가 있는 선수들에게는 이미지 관리를 하자.
요즘 들어 부쩍 얼굴에 미소를 띠는 경우가 많아진 성배였다. 그리고 보기 좋다고 칭찬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웃을 타이밍이 아니었나 보다.
“됐고. 콘세이상은 내가 맡을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맡아줘.”
가벼움은 여기까지.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 더 이상 잡담이나 장난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잘 막고 있는데, 뭘. 여력 좀 남으면 다른 곳도 좀 부탁한다.”
“잘 막고 있기는 개뿔. 힘들어.”
엄살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계속 대결에서 승리하고 있기는 했지만, 매번 종이 한 장 차이였을 뿐이었다.
한 번 삐끗하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들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콘세이상만 막아.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믿음직스럽네.”
콤파니와 타이히넨, 반덴 보레라면 걱정은 없었다.
최소한 주필러 리그에서는.
최근 반덴 보레의 성장세가 멈춘 것인지 리그와 국가대표 모두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였지만, 콤파니가 어떻게든 커버해 줄 것이었다.
‘그럼 계속 해볼까?’
생각을 마무리한 성배는 다시 콘세이상을 향해 다가갔다.
프리킥 상황이니만큼 그 어떤 상황보다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기 딱 좋았다.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콘세이상의 뒤에 자리 잡은 성배는 바로 오른손으로 허리를 감았다.
***
‘드디어 흔들리는군.’
주심에게 거칠게 어필한 이후, 콘세이상은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드리블이 약간이지만 투박해졌고, 볼터치가 길어진 것이었다.
‘쐐기를 박자.’
다만, 워낙 노련한 선수였기 때문에 조금만 가만히 놔두면 금방 안정을 찾을 것이었다.
그 전에, 쐐기를 박아놓을 필요가 있었다.
‘지금!!’
그리고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성배의 태클 사정거리 안에서 콘세이상의 드리블이 길어진 것이었다.
그 타이밍을 놓칠 리 없는 성배가 바로 몸을 날렸다.
-뻐-억!
반칙은 선언되지 않았다. 정당하게 볼을 건드린 태클이었기 때문이었다. 콘세이상과는 전혀 접촉도 없었다.
하지만 접촉이 없었음에도 콘세이상은 저 멀리 날아갔다.
‘제대로 걸렸네.’
역시 성배가 의도한 대로였다.
옆에서 들어간 태클이었고, 볼과 콘세이상의 발 사이가 멀었기 때문에 볼을 건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거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볼이 다리에 와서 닿는 순간, 태클을 시도하려 뻗었던 오른 다리를 콘세이상 쪽으로 살짝 움직였다.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콘세이상의 중심을 무너뜨려 앞으로 날려버리기엔 충분했다.
‘이거 잘못하면 한 대 맞겠는데?’
앞으로 날아갔던 콘세이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씩씩대면서 성배를 향해 다가왔다.
제대로 열 받은 모습이었다.
“헤이, 세르히오!! 왜 그래!!”
“참아, 참아!!”
그 모습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스탕다르 선수들이 다급히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안더레흐트 선수들도 혹시나 성배가 해를 입을까 봐 급히 끼어들어 성배를 뒤쪽으로 숨겼다.
“만족하냐?”
“아직. 좀 더 흔들어야지.”
이 모든 상황이 성배가 의도한 것임을 알고 있는 콤파니가 헛웃음을 지었다.
콤파니는 여기서 성배가 한 대쯤 맞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예 쫓아내면 좋고, 최소한 경고 한 장은 받게 해 줘야지.”
이제 전반전도 슬슬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하프 타임에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선수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 전에 확실히 남을 수 있는 무언가, 최소한 경고 한 장 정도는 필요했다.
< 낭만필드 - 06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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