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60화 (35/356)

< 낭만필드 - 060 >

'바로 빅리그를 선택해야 하나...'

세르클레와의 경기는 안더레흐트의 완승으로 끝이 났지만, 그 경기 중 시작된 성배의 고민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

경기 중 불현듯 떠오른 위기감이 여전히 성배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빅리그로 바로 건너가면, 성장하기는 쉽겠지만...'

유망주는 원래 부딪히고 깨지면서 성장하는 법.

아직 완전히 준비된 것은 아니지만, 다음 행선지를 빅리그로 정하면 분명 지금 목말라하는 부분을 적실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깨지면 다음 스텝을 밟기 위해 좀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는 거지.'

당연히 모든 선택에는 장단점이 있었다.

바로 빅리그에 가서 버거운 승부를 많이 경험하면 실력 상승의 기반이 될 수는 있겠지만, 상승세가 꺾일 것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다시 빅 클럽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활약을 펼쳐야 했는데, 확신이 없었다.

“확실히 다른 리그를 한 번 거쳤다가 가는 게 안정적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프랑스나 네덜란드 등의 리그를 거치고 들어가는 게 안정적이었다.

벨기에보다 반 계단에서 한 계단 정도 위에 있는 이들 리그에서 활약하면 그다음 스텝은 빅리그가 되는 것이었다.

'혹시 실패할지도 모르니까... 선택지를 넓혀야지.'

이 루트의 장점은 안정적이라는 것이었다.

벨기에에서 정상을 찍고 빅리그로 이적한 뒤, 그러면 안 되지만 혹시나 도전이 실패로 끝날 경우.

벨기에로 다시 돌아와야 할 확률이 높았다.

성배의 생각이 깊어질수록 깨끗한 백색이었던 종이가 지저분해졌다.

뭔가를 필기하는 것이 아니고 생각의 흐름에 따라 낙서하듯 적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저기 번지고 글씨는 겹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한 번 중간 다리를 거치고, 그 중간 다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빅리그에서 밀려나더라도 다시 재기를 노릴 수 있어.”

바로 빅리그를 선택했다가 실패할 경우, 다시 숨을 고르며 빅리그 복귀를 노릴 수 있는 위치의 클럽들이 확신을 가지고 자신을 데려갈까?

장담하기 어려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주필러 리그를 벗어난 뒤, 상위 리그에서 증명이 되지 않았으니까.

성배가 종이에 반덴 보레의 이름을 적은 뒤, 그 위에 두 줄을 그었다.

전생의 반덴 보레가 바로 그 예시였다.

안더레흐트에서 세리에A의 피오렌티나로 이적한 그는 피오렌티나와 제노아를 거치며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계약이 만료되었다.

이후 헹크, 안더레흐트를 거치며 주필러 리그에서 커리어를 마감하고 말았다.

'주필러 리그에서 다시 잘해서 빅리그로 가겠다는 건...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빅리그 클럽들이 주필러 리그를 보는 눈은 유망주 공급시장에 불과했다.

여기서는 거의 완성된 즉전감 선수를 영입하지 않는다. 한 번의 실패를 겪은 뒤에 주필러 리그로 돌아오면, 빅리그 진출의 길은 굉장히 좁아지는 것이었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성장에 목매는 청춘 만화 주인공이었다고...'

부모님께 벨기에행을 허락받을 때는 패기 넘치는 청춘 드라마 주인공을 연기했지만, 기본적으로 성배는 마흔 살의 아저씨나 마찬가지였다.

시간을 거슬러와서 어려진 이후의 나이는 계산하지 않더라도 서른여섯.

안정적인 것을 추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고민했던 것들이 점점 결론을 향해 다가가고, 머릿속이 정리되면서 빠르고 난잡하게 움직이던 성배의 손과 펜도 안정을 찾고 있었다.

이미 깨끗했던 종이에서 하얀 부분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 시점이었다.

'일단 차근차근 가자. 빅리그에서 실패해도, 바로 아래 리그에서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

전생의 성배는 안정적인 삶과 거리가 멀었다.

벨기에 2부 리그.

거기서 밀려나면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치열한 전쟁이었다.

모험을 하기에는 영혼이 너무 지쳐있었다.

'그래도... 유럽대항전에 나가는 팀을 우선 찾아볼까...'

하지만 이미 눈을 뜬 이상 정상급 선수들과의 경쟁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 갈증은 아쉬운 대로 유럽 대항전을 통해 풀 수밖에 없었다.

***

2006년.

벨기에 황금세대가 출현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아아, 부럽다. 나도 가고 싶다.”

성배는 안더레흐트 훈련장을 함께 빠져나가는 몇 명의 선수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크크, 한 달 일찍 태어나서... 아깝네. 조금만 늦게 태어나지 그랬어.”

이제 팀원들이 함께 모여있을 때는 거의 성배의 옆을 자기 자리로 삼은 콤파니가 성배의 중얼거림에 끼어들었다.

얄밉다고 생각했다.

“내가 2월에 태어나고 싶어서 2월에 태어났겠냐.”

2006년, 황금세대를 만들어낸 벨기에 축구협회의 유스 육성 정책이 시행되었다.

지금 떠나는 선수들은 그 정책에 의해 협회 주도의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받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나도 대충 들었는데, 시설 장난 아니라더라. 코치진도 엄청나고.”

옆에서 콤파니도 거들었다.

1년만 늦게 태어났으면 콤파니도 합류할 수 있었겠지만, 프로 데뷔가 워낙에 빨랐기에 1년 늦게 태어났어도 아마 아카데미에 합류할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이번에는 협회에서 뭔가 하려나 보네.”

어느 나라든 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이 못마땅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벨기에 축구의 부진으로 인해 벨기에 축구협회도 상당히 많은 비난을 받고 있었는데, 이번 정책으로 오랜만에 지지를 받았다.

“몇 년 전부터 뭔가 하겠다고 했다며. 그렇게 오래 검토한 정책이니까 잘 되겠지.”

[유망주의 발굴과 성장을 위한 10년 계획]

네덜란드와 함께 공동으로 개최한 유로 2000에서의 처참한 성적은 벨기에 축구협회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다.

유로 2000이 열렸던 2000년과 마지막으로 출전한 2002년 월드컵 당시, 벨기에 축구는 마크 빌모츠를 축으로 황금세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황금세대의 끝이 다가와 있음을 그 당시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번엔 뭔가 되어야 할 텐데...”

일단 시작은 좋았다.

유소년 선수들을 승부가 아닌 축구 그 자체에 집중시키기 위해 낮은 연령대의 유소년 리그에서는 리그 순위 자체를 없애버렸다. 승부에 집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큰 대회를 없애고 작은 대회 중심으로 바꿨다. 큰 대회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승패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합 중심의 팀 운영을 게임 중심으로 바꾼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그래도 4-3-3이라잖아. 그럼 앞으로 국가대표에서도 4-3-3을 쓴다는 건데, 너는 좋겠다. 측면에서 부담이 좀 줄어들잖아?”

“요즘 축구에서 윙어 안 쓰는 팀 있으면 찾아와라. 윙어만 있으면 부담은 줄어들지. 오히려 4-3-3이면 공격수들이 위로 너무 올라가서 수비할 때 부담스러워.”

그리고 국가 주도의 아카데미 운영과 함께 이번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골자 중 하나가 있었다.

바로 모든 유소년 팀들에게 현대 축구의 흐름을 반영한 매우 빠른 템포의 4-3-3 포메이션을 베이스로 하도록 권장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 모든 것들을 주도한 협회의 미셸 사블론 기술 이사는 모든 벨기에 클럽의 관계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등, 큰 공을 들였다.

측면 미드필더의 수비적 역할이 줄어들면서 풀백인 성배의 수비 부담은 좀 커지겠지만, 확실히 현대 축구의 흐름을 미리 가르치기 위해서라면 4-3-3이 제격이었다.

“하아... 어쨌든 이게 잘 돼서 유로 2008에는 꼭 출전했으면 좋겠다.”

“야, 야. 10년 계획이야. 고작 2년 만에 결과가 나오겠냐?”

“이 정책 대박나서 몇 년 뒤, 벨기에는 FIFA 랭킹 5위권의 엄청난 강팀이 된다!!”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들 알게 될 테니까.

다만, 이 정책을 통해서 몇 년 뒤의 벨기에가 강팀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

[룩셈부르크전 국가대표 명단]

감독 : 르네 반더레이켄

GK

기 드 블리저 - SV 줄테 바레헴

스틴 스티넨 - 클럽 브뤼헤

실비오 프로토 - KRC 안더레흐트

DF

뱅상 콤파니 - KRC 안더레흐트

다니엘 반 바이텐 - 바이에른 뮌헨

토마스 베르마엘렌 - 아약스

...

주성배 - KRC 안더레흐트

MF

...

유소년 육성 정책이 성배에게 미친 가장 긍정적인 영향은 바로 이것이었다.

국가대표 선발.

19세의 어린 선수가 국가대표로 선발된 것이었다.

성배의 국가대표 선발과 유소년 육성 정책 사이의 연결점을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깊은 관련이 있었다.

유소년 육성 정책을 통해 벨기에는 현재가 아닌 미래를 선택했다.

그래서 국가대표팀도 지금 당장이 아닌 미래를 보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성배는 생각보다 일찍 국가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몇 년 뒤, 지금 키우고 있는 10대 후반의 유망주들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될 시점에서 국가대표팀을 이끌어줄 선수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떨리네...’

생각보다 빠른 국가대표 선발에 성배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성배라고 하더라도 국가대표라는 의미와 무게감은 부담되었다.

국가대표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것과 이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와우. 떨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닌데...”

“시끄러워. 좀 조용히 갈 수 없나?”

평소 감정의 폭이 크지 않은 성배였기 때문에 함께 국가대표 소집 장소로 움직이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콤파니는 묘하게 즐거워했다.

“편하게 생각해, 편하게. 룩셈부르크는 그렇게 힘든 상대가 아니니까.”

지금 상대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속으로 투덜거렸다.

상대가 브라질이든 저기 붙어있는 동티모르든 그건 상관이 없었다. 그저 첫 국가대표 합류라는 것이 성배를 긴장케 했다.

“정 부담스러우면 가서 너처럼 처음 소집되는 친구들 찾아서 같이 놀던가.”

이미 국가대표 3년 차인 콤파니가 옆에서 계속 놀려댔지만,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대응하자니 너무 유치한 것 같기도 했고.

“이번에 유독 처음 합류하는 친구들 많던데. 또래가 많아져서 좋네.”

“하긴. 그동안에는 대표팀에 네 또래는 없었지.”

성배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이번 대표팀에 첫 소집된 선수들은 적지 않았다.

85년생 니콜라스 롬바르츠와 토마스 베르메엘렌, 87년생 스티븐 데푸르, 무사 뎀벨레, 케빈 미랄라스.

그리고 주성배.

이미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중심이 된 콤파니와 함께 벨기에의 부활을 이끌어달라 선택된 선수들이었다.

“전에도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적은 많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야.”

“그게 무슨 느낌인데?”

자신이 말하긴 했지만 콤파니도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대충 그 느낌이 뭔지는 알 것 같았다.

“음...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고 해야 하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전과는 뭐가 되었든 달라질 것 같다.”

살짝 오글거리지만, 성배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었다.

과거에는 아직 한국에 있던 시기라 이 시대의 정확한 흐름은 몰랐던 성배도 2006년의 첫 A매치인 룩셈부르크전이 벨기에 축구의 전환점이 될 것이고, 전에도 그랬을 것이라 확신했다.

80년대부터 시작했던 벨기에 축구의 황금세대가 물러나고, 찾아온 암흑기.

그리고 황금세대를 뛰어넘는다는 의미로 ‘다이아몬드 세대’라 불리게 될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시작은 룩셈부르크와의 경기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성배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 낭만필드 - 060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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