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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50화 (25/356)

< 낭만필드 - 050 (2권) >

“지금 여기 나와 있는 선수들이 우리 벨기에의 미래라 불리는 선수들입니다. 향후 붉은 악마의 유니폼을 입고 세계에 벨기에 축구를 알릴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습니다. 지금은 비록 벨기에 축구가 잠시 침체기에 있지만, 뛰어난 유소년 시스템에서 길러진 유소년 선수들이 있으므로 미래는 밝습니다.”

U-19 유로피언 선수권 대회의 1차 예선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성배가 벨기에의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는 첫 경기 상대는 바로 페로 제도.

독립 국가는 아니고, 덴마크의 자치령이지만 FIFA에 가입되어 있고, 각종 대회 예선 참가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승점 셔틀.

나오는 대회마다 산마리노,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등과 함께 유럽 축구계 공인 도시락 노릇을 톡톡히 해주는 중이었다.

‘첫 경기 상대로는 아주 좋아.’

이에 대한 성배의 감상은 딱 이랬다.

데뷔전 상대로는 더없이 좋은 상대.

아무래도 대표팀 첫 차출이기 때문에 동료들과의 호흡이나 전술적인 숙련도에 있어서 부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실험하기에 딱 좋은 상대였다.

“어때? 청소년 대표팀이지만, 어쨌든 벨기에 유니폼 처음 입고 나오는 건데. 안 떨려?”

“쟤가 떨겠냐.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인데.”

이번 U-19 대표팀에 성배의 안더레흐트 동료는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왼쪽 윙어인 홀란드 라마와 오른쪽 윙어인 조나단 레기아르.

어려서부터 단계별로 유소년 대표를 거친 엘리트들이지만, 이미 위상에서 성배에게 역전당한 선수들이기도 했다.

“떨릴 게 있나? 그냥 평소처럼 경기하는 것뿐인데.”

경험이라는 자산.

성배는 전생부터 쌓아온 수많은 자산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경험 중에 대표팀 차출이라는 경험은 없었다. 첫 경험인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별로 떨리지 않았다. 성배 본인 역시 놀랄 정도로.

“봐봐. 쟤랑 얘기하는 거 재미없다고.”

“왜 그렇게 삐딱해. 크크, 혹시... 네가 처음 대표팀 뽑혔을 때 생각나서 창피해?”

“야!! 그 얘기는 내가 하지 말랬지!!”

레기아르의 놀림에 발끈하는 라마.

그 역시 본래 코트디부아르 국적을 가지고 있던 선수로, 귀화 선수 출신이었다.

물론, 성배보다는 훨씬 어린 나이에 벨기에 국적을 땄고, 굳이 말하자면 이주민 출신에 가까웠지만.

라마는 처음 대표팀에 차출되었을 때, 긴장감에 얼어붙어 본인의 흑역사를 초 단위로 갱신했었다.

덕분에 여전히 벨기에 U-19 대표팀 동료들에게 놀림을 받는 중이었다.

“하하. 1군 무대에서 뛰면서 이런 데서 긴장하지 마라.”

분명 어릴 적 이야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성배도 놀림에 동참했다.

훈련이나 경기 준비를 하는 도중에 성배가 농담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듯 함께 웃었다.

‘전생처럼 모두에게 잘해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벽을 세울 필요는 없지.’

전생에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또, 아껴준 후회한 성배는 과거로 돌아와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렸었다.

하지만 점점 성공을 향해 순조롭게 달려가면서 조금 변하기로 했다.

함께 뛰는 동료들까지 밀어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좋은 이미지. 정말 성공하려면 이제 슬슬 이미지랑 친분도 관리해야겠지.’

물론, 전생처럼 좋은 사람이 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일 생각은 있었다.

인맥도 실력.

불쾌하지만, 성배는 그 말에 동의했다.

***

“굳이 백업을 들어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페로 제도와의 1차 예선 1차전.

20여 분 정도가 흐르자, 성배가 한 선수를 불러 말했다.

“혼자 막을 수 있겠어?”

“물론. 아무런 문제도 없어.”

전반전의 절반이 지나는 동안, 성배는 자신이 맡은 왼쪽 측면을 공략하는 상대 선수들을 철저히 파악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전혀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

수비에 참여하는 인원을 줄여서 화끈하게 공격을 쏟아붓는 것이 이득이었다.

“내가 오버래핑 나갈 때만 좀 들어와 줘.”

“오케이. 알았어.”

벨기에의 수비형 미드필더, 마루앙 펠라이니는 성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비에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펠라이니에게도 반가운 말이었다.

안 그래도 페로 제도의 공격수를 상대하면서 주필러 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는 두 명이 붙는 것이 너무 시시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생각했다.

‘데뷔전이라... 5골 정도는 넣어야겠지?’

유럽 축구계의 영원한 승점 셔틀.

페로 제도가 상대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야!! 라인 유지해!! 내려가지 마!! 조금 더 올리라고!!”

벨기에 대표팀 유니폼 자체가 처음이었지만, 이미 성배는 수비라인의 리더 자리를 차지했다.

U-19 대표팀은 물론이고 연령대별 대표팀 차출 자체가 처음인데, 수비라인의 조율을 맡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라인 내리지 마!! 충분히 여기서 끊을 수 있다고!! 공격하기 쉽게 만들어 줘!!”

하지만 당연하다면 또 당연한 일이었다.

U-19 대표팀.

19세 이하의 선수들, 즉, 아직 각 클럽의 유소년 팀에 속한 선수들까지 모인 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배는 벨기에 최고의 팀, 안더레흐트의 주전 수비수였다.

‘그래도 아직 어려서 그런가... 말은 잘 들어서 다행이네.’

소집 이후, 며칠의 훈련을 통해 선수들은 성배를 인정했다.

성배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성배는 수비라인의 리더로서, 수비수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중앙이 아니라 측면에 자리하고 있어서 말의 전달이 어려운 것 정도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는 없지만. 내 조율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니까.'

성배의 지시에 맞춰서 벨기에의 포백라인이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파상공세를 버티지 못한 페로 제도가 멀리 걷어낸 볼이 벨기에 진영으로 날아오자, 수비수들은 일제히 움직이며 동료가 패스하기 좋은 자리를 잡았다.

“넘겨!!”

성배에게서 나오는 롱패스는 이미 유명했다.

최소한 벨기에 내에서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전방을 향해 한 번에 찔러주는 성배의 롱패스는 리그 내에서도 멋진 장면들을 끌어내는 보증수표였다.

‘역시. 뭘 좀 아는군.’

성배의 외침에 벨기에 U-19 대표팀의 주전 센터백, 팀 드레센이 바로 볼을 넘겼다. 이미 성배의 롱패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배에게 볼이 전달되는 것과 동시에 소속팀 동료인 라마와 레기아르가 양 측면으로 침투했다.

그들은 이미 이 패스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뻥!!

‘멋진 움직임이다. 이따가 칭찬해주지.’

그래서 성배는 중앙의 로시니에게 패스를 꽂아주었다.

양 측면에서 라마와 레기아르가 눈에 띄게 움직여준 덕분에, 수비라인이 양쪽 측면으로 벌어진 것이었다.

당연히 중앙에 공간이 생겼고, 그 넓어진 공간은 성배가 지배하는 영역이었다.

“골!! 골입니다!! 쥐세페!! 로시니!! FC 위트레흐트의 샛별, 쥐세페 로시니가 이번 예선에서 벨기에의 첫 골을 터뜨립니다!!”

“뒤에서 한 번에 전달해준 볼을 안정적으로 컨트롤하고 다음 플레이를 이어간 것이 좋았어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침착한 플레이를 보여주었습니다.”

넓은 공간에 날려주는 성배의 패스가 빗나갈 리 없었다.

상대 수비수들과의 경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위치로 볼을 투입해준 성배 덕분에 로시니는 편안하게 플레이를 이어갈 수 있었고, 침착하게 득점을 성공시켰다.

아무리 벨기에 청소년 대표팀이 거하게 삽을 푸는 중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플레이는 기본으로 할 줄 아는 선수들이었다.

“로시니의 마무리도 좋았지만, 역시 이번 득점은 레프트백으로 경기에 나선 주의 패스가 8할 이상을 만들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 그렇죠? 수비라인에서 다이렉트로 올라간 패스에 수비수들이 대응하지 못했어요. 주의 패스도 굉장히 정확했고요.”

득점은 로시니가 기록했지만, 이번 득점 상황에서 가장 빛난 선수는 로시니가 아닌 성배였다.

하프라인 근처까지 라인을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최후방에서 최전방까지 한 방에 가로지른 패스.

그런 패스를 보여주었는데, 시선을 모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 어시스트를 기록한 주성배 선수인데, 이 선수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예. 분명히 그렇습니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1군 무대에 데뷔한 것도 모자라서 주필러 리그 최강, 안더레흐트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죠?”

주필러 리그를 즐겨보는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않았지만, 주로 해외리그를 즐겨보고, 대표팀 경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팬들은 성배가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 팬들을 위해 중계진은 성배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성인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데샤흐트를 밀어내고 차지한 자리이지 않습니까?”

“네. 정확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이 있어요. 이 선수가 벨기에 국적을 취득한 지는 며칠 되지 않았거든요? 이 정도면 협회 차원에서 공을 들였다고 봐야죠.”

새로운 스타.

국가와 인종, 지역을 떠나서 새로운 스타라는 것은 팬들을 열광시키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벨기에는 성배에게 그 가능성을 보았다.

화려한 플레이로 팬들의 이목을 끌어낼 선수는 아니었지만, 이민자가 많은 벨기에에서도 흔치 않은 아시아계 귀화 선수로 벨기에의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하는 것을 보니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 정도 선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야 했고, 협회가 옳은 일을 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조건 잡는 게 맞죠! 분명히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선수예요.”

아직 청소년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정도였지만, 머지않아 성인대표팀에도 발탁될 것이 분명했다.

슬슬 띄워주기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주필러 리그에서 뛰고 있는 유망주들이 귀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같은 처지에서 스타가 된 귀화 선수들이 스타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성배 역시 귀화 선수였다.

‘버크만이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내일쯤이면 기사가 크게 나겠네.’

타국 유망주들의 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성배를 스타로 만든다.

버크만의 아이디어였다.

성배와 버크만은 백인이 아니고 귀화 선수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고민했다.

‘굳이 귀화 선수를 유치하지 않아도 벨기에는 곧 강팀이 되지만... 그걸 누가 알겠어.’

그래서 나온 기획안이 바로 ‘스타 귀화 선수를 통한 해외 선수의 유입 유도’였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재능들은 대부분 벨기에의 옆 나라인 프랑스로 넘어갔다.

무언가 계기가 있다면, 그들의 상당수를 벨기에로 끌어올 수 있을지 몰랐고, 버크만과 성배는 그 부분을 건드린 것이었다.

굳이 귀화선수가 없어도 자국의 유망주들만으로 결국 세계 최강의 위치에 한 발을 걸치게 되는 벨기에였지만, 그것은 미래의 일.

지금의 벨기에는 피파 랭킹 52위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스타로 만들어주는 건 아니니까... 어시스트 한 개 정도만 더 해볼까?’

스타로 만들려고 해도, 선수가 가능성과 실력을 보여주어야 가능했다.

어차피 수비할 기회도 많이 없을 페로 제도와의 경기.

성배는 공격수로 활약했던 20년의 경험을 한 번 살려보기로 했다.

< 낭만필드 - 050 (2권)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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