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049 (유료연재 시작) >
한국에서의 역반응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신이 벨기에 국적을 원해서 딴 것이 아니라 벨기에 쪽에서 자신을 원해 찾아온 것으로 해두었다.
나중에 이 일이 한국에서 논란이 될 때, 어느 정도는 반응을 막아줄 수 있을 것이었다.
나중을 위해 조금이라도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몇 가지 장치들을 생각해놓은 성배였고, 그 중 첫 번째는'벨기에가 저를 간절히 원했습니다.'였다.
유럽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는 한국 축구 팬들이었으니까.
‘너무 감성에 빠져있지 말자. 아직 뒤를 돌아보기에는 내가 이룬 것들이 너무 미약해. 앞을 보자. 이번에는 그러기로 했으니까.’
국적이 바뀌었다는 것.
전생을 포함해 40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았던 자신이 이제 벨기에 국민이 되었다는 것 때문에 잠시 흔들린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감정적이 되기엔 자신이 잡아놓은 목표와 현재의 위치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아직은 감상에 빠지기보다 위를 바라보며 달릴 타이밍이었다.
[UEFA European U-19 Championship Belgium Squads]
감독 : 마르크 반 그리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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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K 다비노 베르슐트 : 1987년 11월 25일 (17세) - KSK 베베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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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MF 마루앙 펠라이니 : 1987년 11월 22일 (17세) - 스탕다르 리에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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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FW 케빈 미랄라스 : 1987년 10월 5일 (17세) - 릴 OSC
14. DF 주성배 : 1987년 2월 5일 (18세) - RSC 안더레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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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를 바라보고 달리기 위한 스타팅블록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성배를 위해 준비된 스타팅블록.
바로 벨기에 U-19 대표팀 선발이었다.
벨기에의 U-19 대표팀 멤버로 선발된 성배는 한 달 정도 뒤에 열리는 유로 U-19 챔피언십에 출전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활약하는 동년배 선수들과 정면에서 맞붙을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또 다른 무대가 드디어 생겼구나.’
유럽 무대에 자신의 모습을 보일 기회는 지금까지 챔피언스리그 무대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또 다른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 기회를 잡게 되었다.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는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로도 경쟁력이 있는 현재의 기량을 보여주었다면, U-19 대회에서는 동년배 선수 중 최고 수준임을 증명할 것이었다.
‘아무리 미래의 스타들이라지만, 열아홉도 안 된 어린 나이니까 충분히 압도할 수 있겠지.’
분명 성배보다 재능이 훨씬 더 뛰어난 선수들도 많을 것이었다.
하지만 성배에게는 경험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아무리 자신을 그리 높게 평가하는 편이 아닌 성배라도 아직 경험이 적고 보여주는 플레이가 단조로운 어린 선수들을 상대로 빛나는 활약을 보여줄 자신은 있었다.
***
최근 들어서 성배의 골치를 썩였던 귀화 문제가 해결된 이후, 성배는 그라운드 위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전부 다 털어버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법적으로는 이제 더 이상 한국사람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으로 인한 찝찝한 기분 역시 그라운드 위에서 화끈하게 풀어버리는 중이었다.
‘끌지 말고 리턴해.’
성배는 왼쪽 측면에서 고전하고 있는 구어를 돕기 위해 오버래핑을 시도했다.
구어에게 수비가 집중된 사이에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부터 파고들었고, 볼을 받아 중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중앙에서 음펜자가 수비수들을 등지고 버티면서 볼을 운반하는 성배를 바라보았다.
'계속 버텨.'
음펜자에게 볼을 투입.
그리고 성배는 빠르게 가속해 자신을 마크하던 수비수를 뒤로 떨쳐냈다.
음펜자는 피지컬이 그다지 좋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수비수들의 압박을 견뎌냈고, 중앙으로 이동한 성배에게 리턴 패스를 내준 이후에 쓰러졌다.
다행히 음펜자의 패스는 성배에게 연결될 수 있었다.
-뻥!!
‘제대로 얹혔다!’
전생에서는 풀백으로 포지션을 전향한 뒤에야 미미한 전성기를 맞았다.
지금도 벨기에 최고의 풀백 유망주로 불릴 정도로 성배는 분명 풀백 포지션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스트라이커로 축구를 시작했고, 윙어로도 활약했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건 들어갔다.'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한 이후 공격수로 15년 정도 활약한 성배였기 때문에 최소한의 슈팅 능력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
킥력은 원래 뛰어난 편이었고, 킥도 정확한 편이었다.
골 결정력과 골문 앞 침착성이 부족해 스트라이커로 뛸 때는 한국에서도 득점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못 받았지만, ‘풀백 중에서’라는 조건을 붙인다면,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와아아아아아!!!!!]
“아자!! 으아아!!”
다음 순간, 안더레흐트의 홈구장인 콘스탄트 반덴 스톡 스타디온을 가득 메운 2만 5천여 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성배의 슈팅이 신트-트라위던의 골망을 가른 것이었다.
빨랫줄처럼 날아간 성배의 중거리 슈팅은 신트-트라위던 골키퍼가 뻗은 손을 피해 골대에 꽂혔고, 시원하게 그물을 흔들었다.
“너, 트라위던이랑 무슨 원수진 일 있냐? 뭐야? 왜 그러는 거야? 하하.”
“데뷔 첫 공격 포인트도 트라위던한테 뽑아내더니, 데뷔 첫 골도 트라위던한테 뽑아내는 거야? 대단한데!”
성배의 데뷔골이었다.
데뷔 후 1년이 되지 않아 첫 골을 뽑아낸 성배의 감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풀백을 평가할 때, 득점이란 것은 주요 지표가 아니었지만, 어느 포지션의 선수에게든 득점 기록은 최소한의 어필 포인트가 될 수 있었다.
당연했다.
결국, 축구란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게임이었기 때문이었다.
“트라위던이랑은 상관없지. 이제 이틀만 지나면 처음으로 벨기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되는데, 이 정도는 서비스해줘야지 않겠어?”
“하하, 그래, 그래. 잘했다. 이 정도면 네가 벨기에 유니폼 입는다고 반대할 사람은 없을 거다.”
“이 자식!! 너 때문에 내 자리가 위험해!! 요즘 나 위험하다고!!”
최근 벨기에 축구팬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뱅상 콤파니, 그리고 성배와 같이 U-19 대표팀에 선발된 레기아르가 성배의 말에 반응했다.
이제 같은 국적을 갖게 되어 대표팀에서도 함께 활약할 수 있다는 생각에 괜히 친근감이 드는 것 같았다.
‘벨기에 국가대표는... 그냥 내 몸값을 올리기 위한 무대일 뿐이지만. 장단은 맞춰줘야겠지.’
벨기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된다면, 그 누구보다도 더 치열하게 뛸 생각이었다.
만족스러운 위치에 올라갈 때까지는.
A매치는 그 어떤 대회들보다도 자신을 어필하기 좋은 기회이고, 특히 벨기에는 유럽 국가였기 때문에 유럽의 많은 클럽이 벨기에의 A매치를 지켜보았다.
나중에는 A매치에서 몸을 좀 사릴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당장은 몸이 부서질 때까지 뛰는 것이 나았다.
“하하, 내가 먼저 자리 잡고 터 닦아 놓을 테니까 불안하며 나중에 천천히 와. U-20 월드컵 정도면 되겠지? 같이 가자고.”
레기아르와는 굳이 친분을 다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콤파니는 달랐다.
이후 벨기에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하고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주장이 되는 콤파니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향후 성배의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친해지자.'
그래서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지만, 벨기에를 위해 열심히 뛰겠다는 뉘앙스로 말을 내뱉었다.
콤파니의 표정을 보니 성배의 발언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방금 전에 골을 터뜨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성배의 말이 마음에 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분위기는 좋았다.
***
UEFA European Under-19 Championship.
전 유럽의 국가대표팀이 모여 유럽 최강을 가리는 유로컵처럼 각 국가의 19세 이하 대표팀이 모여서 그 세대의 최강을 가리는 대회였다.
유로컵만큼의 관심은 당연히 받지 못했지만, 미래의 구도를 예상해볼 수 있는 대회인 만큼 적지 않은 관심이 쏠렸다.
이 대회는 위의 의미 외에도 또 다른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2년에 한 번 열리는 U-20 월드컵 전년도에는 월드컵 예선까지도 겸하기 때문이었다.
이 대회를 통해 유럽 지역에서 U-20 월드컵에 출전할 여섯 팀이 가려지게 되어 있었고, 이는 포기할 수 없는 메리트였다.
‘6일 동안 세 경기라... 미친 거지. 에휴.’
U-19 유로피언 챔피언십은 상당히 일정이 빡빡한 편이었다.
매년 열리는 대회였고, 이후 월드컵 준비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나라가 참가하는 예선과 본선을 6개월 안에 모두 끝내야 했다.
1차 예선과 엘리트 예선을 거쳐 여덟 팀을 선발하고, 그 여덟 팀이 두 개조로 나뉘어 본선을 가지게 되는 짧지 않은 과정.
그것을 반년 안에 끝내려면 일정이 빡빡할 수밖에 없었다.
‘스웨덴이면 가깝지도 않은데, 시즌에 영향이 없을 수 없겠네.’
6일 만에 세 경기를 치르려면 이동 따위는 사치였다.
그래서 1차 예선은 시드를 받은 국가에서 나라별로 세 경기를 모두 치렀다.
벨기에가 속한 Group 5의 시드국은 스웨덴.
벨기에에서 결코 가깝지 않은 나라였다.
'스웨덴은 좀 벅찬데.'
라스무스 엘름, 크리스토프 노드펠트, 욜라 토이보넨, 마틴 올슨, 알빈 액달, 욘 구이데티를 앞세운 스웨덴.
리버풀 유스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크리스티안 네메스라는 에이스와 나머지 선수들의 끈끈한 플레이를 앞세운 헝가리.
이들은 절대로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약체 중의 약체인 페로 제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두 팀을 상대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몇 년 뒤라면 상황이 조금 다르겠지만...’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강호로 성장하는 벨기에의 황금세대는 90년대 이후 태어난 선수들을 중심으로 꽃을 피울 것이었다.
즉, 80년대 후반에 출생한 선수들로 이루어진 현재의 벨기에는 성인 대표팀이든 유소년 대표팀이든 절대 강팀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좋아. 황금세대가 나타나기 전에 먼저 자리를 잡아주지. 그리고... 그들이 나타나면 같이 껴서 올라가자.’
세계적인 강팀으로 성장한 벨기에 황금기의 국가대표.
이름값과 실질적인 기량 이상의 무언가가 당연히 주어질 것이었고, 몸값도 당연히 높아질 것이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벨기에 유니폼을 처음 입고 출전하는 이번 대회의 결과가 중요했다.
10월 5일 : 벨기에 VS 페로 제도
10월 7일 : 벨기에 VS 스웨덴
10월 9일 : 벨기에 VS 헝가리
‘우선 페로 제도를 가볍게 박살 내버리고, 분위기를 끌어올려서 스웨덴이랑 헝가리랑 붙어야 할 텐데... 페로 제도한테 최대한 많은 골을 뺏어야겠어.’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팀의 일이었기 때문에 성배가 아무리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온 뒤, 신기하게 대부분의 계획들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든 일단 계획부터 세우고 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이번에도 계획대로만 된다면 충분히 엘리트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었다.
느낌이 좋았다.
지금의 분위기라면 벨기에 국적을 따고 처음 나서는 대표팀 경기에서 일을 한 번 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 낭만필드 - 049 (유료연재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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