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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41화 (16/356)

< 낭만필드 - 041 >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2차 예선부터 시작해야 하는 안더레흐트였기 때문에 여유가 별로 없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전술과 선수들을 시험해볼 기회인 프리시즌 경기를 두 경기밖에 치를 수 없었던 것이었다.

두 경기로 전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새롭게 영입된 선수들을 파악해서 시즌을 준비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번 시즌에는 우승컵을 차지하기 위해 네 명의 즉시 전력감 선수들을 영입했기 때문에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감독마저도 새로 부임한 신임 감독이었다.

이 모든 것을 위한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주의 움직임은 어떤가요? 올리비에보다 나은 것 같나요?”

“음... 제가 볼 때 공격력에서는 주의 압승, 수비력에서는 올리비에의 신승. 이 정도로 보이네요.”

안더레흐트의 신임 감독 베우스만테른과 그를 따라온 신임 수석코치 마이크 헨케는 마지막 프리시즌 매치인 BV 페엔담과의 친선경기를 매의 눈으로 탐색하면서 시즌을 구상하는 중이었다.

새로 영입된 선수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그로 인해 자리에 변동이 생긴 기존 선수들은 또 어떻게 써야 하는지, 생각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고작 두 번의 프리시즌 매치를 치르며 이를 결정해야 하는 이 상황은 그들에게는 너무 가혹했다.

“그렇다면 주와 올리비에의 기용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구어와 음펜자의 기용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야겠군요. 왼쪽 윙어로 누가 나서냐에 따라서 두 선수 중 누가 더 왼쪽 풀백에 어울리는지 가려질 테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주의 수비력도 리그에서 충분히 통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주를 주전으로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더레흐트는 리그 최고의 클럽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공격적으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선수의 기용 문제는 단순히 그 자리에서 누가 더 좋은 기량을 보이느냐, 만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팀의 전체적인 전술에 누가 더 어울리는지, 주변 동료들과의 호흡은 누가 더 잘 맞는지, 그런 것들을 모두 종합한 이후에야 가장 효율이 높을 것 같은 선수가 선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성배와 데샤흐트는 분명 다른 장점이 있었다.

데샤흐트는 수비에 장점이 있는 대신 공격이 약했고, 성배는 공격과 수비 모두 평균 이상이라 밸런스에 장점이 있었다.

두 선수의 주전 경쟁은 앞으로 최소 한 달 정도는 계속 치열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

페엔담과의 마지막 프리시즌 경기까지 마치고 이틀, 베우스만테른 감독은 고심 끝에 성배를 첫 경기 선발로 낙점했다.

첫 경기 상대가 아제르바이잔의 네프치 바쿠로 손쉬운 상대였기 때문에 조금 더 먼저 컨디션을 끌어올린 성배에게 일단 기회를 주는 의미가 첫 번째였다.

그리고 2005/06시즌 첫 경기부터 화끈한 공격 축구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여기!!”

왼쪽 윙어로 경기에 출전해 성배와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된 구어가 상대 수비수를 앞에 두고 멈춰있는 동안 성배는 사이드라인에 바짝 붙어서 골라인 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성배의 움직임에 구어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상대 풀백이 급히 성배를 막으러 움직였고, 때마침 구어의 패스가 성배에게 이어졌다.

‘고생했는데, 미안.’

그리고 성배는 논스톱으로 다시 구어에게 볼을 넘겨주었다.

갑자기 뒤에서 뛰어들어온 성배를 막기 위해 급히 달려오던 수비수는 화들짝 놀라 다시 몸을 돌려 구어를 마크하려다가 중심을 잃었다.

자신을 마크해야 하는 선수가 넘어진 덕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게 된 구어가 그대로 중앙을 향해 올라갔다.

“아오!! 미안. 패스 좋았는데.”

“뭐, 괜찮아. 좋은 플레이였어.”

‘차라리 노마크로 있을 때 왼발 크로스를 올렸어야지.’

성배의 센스있는 패스로 노마크 찬스를 맞았던 구어는 득점을 욕심내 슈팅을 시도했다가 골킥을 내주고 말았다.

오른발 사용이 미숙한 왼발잡이 구어가 굳이 수비벽이 두꺼운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오른발로 슈팅을 날렸으니 애초에 성공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시도였다.

왼발은 그나마 어느 정도 잘 쓰는 선수였기 때문에 차라리 왼발로 크로스를 올렸으면 좀 더 성공률이 높았을 것이었다.

‘에휴, 관두자. 저 정도 재능에 똑똑하기까지 했으면 빅리그 갔겠지, 여기 왜 있겠어.’

그래도 생각하고 있는 것을 굳이 말로 그대로 내뱉을 필요는 없었다.

경기 중에 괜히 동료의 사기를 꺾을 필요도 없었고, 쓴소리를 해주는 악역을 맡아가며 동료의 기량을 끌어올릴 의무감도 느끼지 못했다.

승리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동료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까지가 자신의 역할이었다.

“주와 구어의 호흡이 제법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공격 쪽에서는 일단 성공한 것 같은데요?”

“그러네요. 훈련에서도 올리비에보다 주와 호흡이 더 잘 맞는 것 같더니 실전에서도 괜찮은 호흡을 보여주는군요.”

공식전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프리시즌 상대들보다 더 약체팀인 네프치 바쿠를 맞아 안더레흐트의 베우스만테른 감독은 프리시즌의 연장선 개념으로 경기를 대하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는 확고한 주전이라고 평가되는 빌헬름슨과 반더헤그, 타이히넨이 빠져있었고, 그 자리를 레기아르와 티오테, 후아즈가 대신하고 있었다.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해 여전히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공격을 살리기 위해서는 주를 선발로 쓰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구어도 혼자서 뭔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동료의 지원이 있어야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고요.”

“하지만 데샤흐트의 수비력을 버리기도 아깝죠. 주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갖추고 있기도 하고요.”

다른 포지션들은 대충 주전들의 윤곽이 나온 상황이었는데, 성배와 데샤흐트가 경쟁하는 왼쪽 풀백 자리는 여전히 안갯속에 빠져있었다.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벨기에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며 훨씬 더 많은 경험을 쌓은 데샤흐트를 빼기에는 마땅한 명분이 없었던 것이었다.

실력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데샤흐트의 경기력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백업으로 돌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일단 조금 더 두고 보도록 하죠. 주는 안토니와 함께 오른쪽 풀백으로 돌리거나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 투입할 수도 있는 선수니까요. 활용의 폭이 넓은 선수니까 이래저래 경기에 출전시키기도 쉬워요.”

“예. 알겠습니다.”

데샤흐트와 반덴보레가 주전 풀백으로 활약하는 가운데 그 백업으로 경기에 나서는 성배와 즐라코프는 감독 입장에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선수들이었다.

포백라인의 어디서든 안정적인 활약을 보여줄 수 있는 즐라코프, 양쪽 풀백 자리와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수준급의 기량을 보여주는 성배 모두 멀티 플레이어 자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감독 입장에서는 이런 선수들을 고정 선발로 쓰기보다는 팀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곳에 투입하는 식으로 활용하고 싶은 것이 당연했다.

“아!! 골입니다, 감독님!!”

“예. 보고 있어요. 아쿤이 멋진 골을 넣었군요. 안더레흐트 데뷔골이네요.”

이래저래 활용할 수 있는 폭이 넓은 성배를 떠올리며 베우스만테른 감독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동안, 그라운드 위에서는 안더레흐트가 선취골을 터뜨렸다.

베우스만테른 감독의 요구로 페네르바체에서 영입한 세르하트 아쿤의 안더레흐트 데뷔골이었다.

계속해서 미소 지을 일만 생기는 것이 이번 시즌, 예감이 좋았다.

***

아쿤의 선취골을 시작으로 안더레흐트는 한 수 아래의 바쿠에게 제대로 된 축구를 주제로 한 강의를 시작했다.

아쿤에 이어서 음펜자, 콤파니, 제터베리가 차례로 강단에서 강의를 진행했고, 마지막으로 아쿤이 한 번 더 강단 위에 올라가 앵콜로 강의했다.

다섯 골을 허용한 바쿠의 선수들은 이미 밸런스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오랜만에 여기까지 볼이 왔네.’

그렇게 자신들의 진영에서 거의 나오지 못하던 바쿠가 오랜만에 볼을 몰고 하프라인을 넘어섰지만,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성배는 잔인하게도 중간에서 볼을 차단해버렸다.

하프라인을 거의 넘어서지 못하면서 속이 터져버리기 직전일 바쿠의 선수들이 안쓰럽기는 했지만, 성배 역시 뭐라도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었다.

‘일단 받아봐.’

볼을 커트한 성배는 바로 구어에게 볼을 넘기고 전방을 향해 온 힘을 다해서 빠르게 질주했다.

상대 윙어에게 이어지는 볼을 중간에 끊어낸 것이었기 때문에 성배를 마크할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고, 구어도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았다.

상대 풀백을 달고 중앙 쪽으로 움직여주면서 성배를 위해 측면을 비워준 것이었다.

그 덕분에 성배의 앞은 텅 비어있었다.

‘아오. 잘했다고 칭찬해 주려니까...’

성배가 어느 정도까지 올라온 이후, 구어는 왼쪽 측면의 비어있는 공간을 향해 패스를 찔러주었다.

거기까지는 좋았고, 패스를 선택하는 타이밍도 좋았는데 강도가 별로 좋지 못했다.

생각보다 힘이 들어간 것인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력으로 달려도 따라잡을 수 있을지를 확신하기 어려웠고, 따라잡는다고 해도 전력 질주하던 상태에서 크로스를 정확히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뛰어야지.’

저 볼을 잡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달려온 거리까지 합치면 60M에 달하는 거리를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기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달려야 했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마무리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속으로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도 일단 무작정 볼을 쫓아갔다.

어차피 다섯 골을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바쿠의 공격은 안더레흐트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 플레이로 인해 체력을 소모한다고 해도 바쿠의 공격 정도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고, 볼을 살려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감독과 코치,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만 있다면 성공이었다.

“됐다!!”

최선을 다해 전력으로 뛰고도 모자라 마지막 순간에 몸까지 날린 덕분에 볼을 살려낼 수 있었다.

볼을 살려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살려내는 것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벅차서 크로스의 목표를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뭔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최선을 다하면 무언가 보상이 따라왔다.

“나이스!! 고마워!! 주 덕분에 골도 다 넣고!!”

“하하, 이걸 받네? 하여튼, 다리는 또 엄청 빨라요.”

불이 나갈 것으로 판단한 바쿠의 선수들은 마지막 순간에 긴장을 풀고 말았다.

이미 다섯 골이나 허용하면서 정신적으로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던 선수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성배보다도 더욱 절박한 처지에 놓여있는 후보 선수, 조나단 레기아르가 열심히 달렸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결국 성배의 몸을 날린 허슬 플레이는 득점으로 이어졌고, 2005/06시즌 성배의 공식전 첫 번째 어시스트가 기록되었다.

< 낭만필드 - 041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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