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031 >
“주성배 선수.”
“예. 말씀하시죠.”
“휴우...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겠지만, 주는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유럽 선수들보다.”
“네, 알고 있습니다...”
이번 계약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비슷한 기량을 가지고 있다면 성배는 다른 유럽 선수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기량이 조금은 더 낫다고 하더라도 그냥저냥 비슷하다면 성배를 영입하려다가도 다른 선수에게 눈길을 돌리게 될 것이었다.
바로 리그마다 존재하는 용병 제한과 프리미어리그의 워크 퍼밋 제도.
이것이 큰 문제였다.
현재 상태로는 절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을 수 없었다.
2년간 국가대표로 70% 이상의 경기에 참가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많은 돈이 모이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할 수 없다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게다가 벨기에의 뛰어난 유망주들이 빅 리그 진출 전에 교두보로 삼는 프랑스 리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리그앙 역시 EU 연합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선수는 한 팀당 4명까지밖에 보유할 수 없었다.
가나, 기니, 말리, 세네갈 등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의 선수들과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보스니아를 제외한 모든 유럽 국가, 뉴질랜드를 제외한 모든 오세아니아 국가 출신의 선수들은 용병으로 치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주로 네 명의 용병 TO는 EU에 가입하지 않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의 유럽 선수들이나 남미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에서 가장 외국인 정책이 느슨하다고 평가되는 프랑스가 이 정도였다.
그러니 다른 리그의 사정은 굳이 볼 것도 없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경우에 선발과 교체 명단에 올릴 수 있는 비 EU 국가 출신 선수의 숫자는 겨우 세 명에 불과했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국적의 선수들을 용병으로 취급하지 않고, 터키, 러시아 선수들도 용병으로 취급하지 않았지만, 여기도 아시아 선수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이탈리아 세리에A는 성배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리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세리에A는 용병 보유 한도라거나 출전 제한과 같은 규정은 없었지만, 한 시즌에 단 한 명의 비 EU 국적 선수만 영입할 수 있었다.
주로 아프리카나 남미 쪽의 선수들에게 이 자리가 돌아가기 때문에 아시아 선수들이 세리에A에서 활약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는 이방인이니까요. 아무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도 안더레흐트의 팬들을 제외하면 저를 환영해주지 않겠죠. 백인도 아니고, 유럽 국적의 선수도 아니고, 축구 강국 출신의 선수도 아니니까 말입니다. 국가대표가 된다고 해도 제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그렇습니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인종차별도 아니고, 편견도 아니고, 그냥 당연한 일일 뿐이니까 너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하하하하!!”
버크만의 말에 성배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버크만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아직은 어린 자신이 그라운드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하는 말일 것이었다.
하지만 성배는 지난 생을 통해 16년 동안이나 이방인의 신분으로 유럽 무대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었다.
용병의 설움과 그로 인한 어두운 부분들도 잘 알고 있었다.
“버크만 씨. 인종차별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당장 저도 몇 번이나 겪었는데... 모두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합니다. 버크만 씨도 알고 계시는 것처럼.”
“하아... 죄송합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확실히,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하죠.”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앞세운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곳, 그리고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대부분의 가치들이 태동한 곳.
그런 유럽이지만 인종에 대한 차별을 여전히 존재했고,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시점으로부터 10년이 넘게 지나도 그라운드 위에서 벌어진 인종차별에 대한 사건이 가끔 화제가 될 정도였는데, 지금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얼마 전에 길을 걷고 있는데 한 어린 꼬마가 저한테 달려오더라고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귀엽고 반가워서 미소 짓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앞에 침을 뱉으면서 “Chink!!”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자기 친구들 있는 곳으로 달려가면서 낄낄대더군요.”
“......”
“그렇다고 그걸 어떻게 합니까?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붙잡고 패버려야 하나요? 한두 번이 아닐 텐데, 그때마다 반응하면 저 그라운드에서 쫓겨나겠죠.”
전생이나 지금이나 성배는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정도 'Chink'라는 단어를 들어야 했다.
쌍꺼풀이 없고 눈이 옆으로 가늘게 찢어진 동양인의 생김새를 비꼬는 단어, Chink.
한국에서는 유럽을 굉장히 평등한 곳, 차별이 없는 곳이라 착각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이면에는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어두운 부분이 존재했다.
“그나마 유럽에서 인종차별의식이 약한 편이라는 벨기에에서도 이러는데, 다른 나라라고 뭐 다르겠습니까? 매일 이슬람, 아프리카,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유입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그들에 대한 공격이 벌어지는 나라가 수두룩한데.”
“휴우... 오랜만에 말문이 막히네요. 같은 유럽인으로서 제가 사과드립니다.”
“하하, 버크만이 뭐하러 사과를 해요. 그리고 사과받을 일도 아닙니다. 당장 한국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인데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어디에서나 있는 일이고,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그런 것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주는 참 강하네요. 어린 나이인데 대범하기도 하고.”
16년에 2년을 더 겪은 일이었다.
그런 수준 낮은 행동들로 인해 자신의 삶에 손해를 입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로 상처를 받았던 시기는 이미 예전에 지나갔다.
지금은 그냥 그런 대우를 받아도 속으로 혀를 차면서 상대를 동정할 뿐,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대신, 그런 대우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준비는 해야겠죠.”
“응? 어떤 건지 제가 들을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후후...”
이미 성배에게는 아시아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불이익을 줄일 방법이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성배가 의도한 대로 천천히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앞으로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회귀하면서부터 성배가 준비했던 것이 드러날 것이었다.
***
[여보세요?]
“아, 아버지. 저 계약 마쳤어요. 내일부터는 저도 1군 훈련에 참가해요.”
[그렇구나... 우리 아들 대단해!! 아주 대견하구나.]
집에 돌아온 성배는 곧바로 아버지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오늘 프로계약을 맺기 위해 클럽 사무실에 방문한다는 것은 아버지도 알고 계셨지만, 계약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들으면 놀라실 것이 분명했다.
“주급 2,400유로에요. 월급으로 따지면 10,000유로가 조금 넘는 정도겠네요.”
[뭐? 허, 허허... 네가 나보다 더 많이 버는구나. 네가 가장해라.]
업무 능력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해도, 해외 공관에 나와 있어서 연봉과 보너스가 조금 세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공무원이었다.
성배의 수입은 아버지인 장석의 수입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많아진 것이었다.
“에이, 돈만 많이 번다고 가장인가요? 그래도 돈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굉장히 많은 돈인데... 잘 관리할 수 있겠어? 한 1년만 아빠가 맡아줄까?]
“아니에요. 제가 관리할게요. 이 정도야 별것 아니죠.”
서른여섯까지 살았던 성배가 고작 돈 관리 하나 하지 못할 리 없었다.
운동만 하고 산 선수 중에는 돈 관리에 실패해서 엄청난 돈을 벌고도 은퇴 이후에 자금 문제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성배는 그리 많지 않은 수입으로 미래까지 준비하면서 살다 보니 돈 관리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래, 너라면 잘하겠지. 믿음직해! 좋아!!]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불려서 집이라도 한 채 사드릴게요, 하하하.”
굉장히 큰돈이었지만 장석은 딱 한 번 성배의 의견을 물어볼 뿐이었다.
그리고 성배가 자신이 관리하겠다고 말하자 바로 성배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자녀가 번 돈을 자신이 대신 관리해주는 경우가 많은 일반적인 한국 예체능계열 스타들의 부모님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엄마한테도 빨리 전화해서 알려줘. 네 엄마도 엄청 기뻐할 거다. 울지도 모르니까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해두고.]
“알았어요. 그럼 이따가 봬요. 계약서는 그때 보여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아빠는 그럼 그때까지 동료들한테 열심히 자랑할게.]
아버지와의 통화를 마친 성배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제전화는 비싸서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밖에 걸지 않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전화기를 붙잡고 떠들지 않으면 안 되는 날이었다.
[뭐!? 진짜로!? 진짜 이제 프로 선수가 된 거야?]
“네, 저 내일부터는 1군에 합류해요. 리그에서 뛰는 모습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한국 TV로는 나가지 않겠지만...”
예상대로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성배가 전해준 소식에 깜짝 놀라셨고, 엄청나게 기뻐하셨다.
소식을 들으시자마자 벌써 수화기 너머에서는 감정이 북받친 어머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곧 울음을 터뜨리실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벨기에 리그에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 중계되지 않겠지만... 제가 어떻게든 영상을 구해서 메일로라도 보내드릴게요. 한국에서 주소를 입력하면 바로 영상으로 보실 수 있게요.”
[그래... 모든 경기를 다 볼 수는 없어도 우리 성배 나오는 거는 무조건 다 챙겨봐야지.]
“하하, 제가 잘한 경기만 보여드릴 거예요.”
한국에서는 벨기에 리그에 대해 그리 높은 평가를 하지 않아 중계는 당연히 없었다.
박인진 선수와 윤기표 선수가 속해있는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는 살짝 과대평가가 되어있었고, 벨기에 주필러 리그는 상당히 저평가 되고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 전의 영웅 성규한 선수가 벨기에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고도 잉글랜드 2부 리그에 속한 울버햄튼으로 이적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우리 성배, 열심히 해야 된다? 엄마랑 유빈이 다 버려두고 혼자 그 먼 곳까지 갔으니까 이 악물고 열심히 해!! 엄마랑 유빈이가 기뻐할 수 있게.]
[열심히 해!! 유빈이가 기뻐할 수 있게!! 헤헤...]
“하하, 알았어요, 어머니. 알았어, 유빈아. 내가 두 사람 다 기쁘게 해줄게요. 나만 믿어요.”
< 낭만필드 - 03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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