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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29화 (260/356)

< 낭만필드 - 029 >

“자, 자!! 여기까지!! 오늘 팀 훈련은 여기까지 하고, 이후부터는 자율 훈련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안더레흐트의 유니폼을 입은 지 2년이 지난 성배는 어느새 열여덟 번째 생일이 지나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처음 벨기에로 건너왔을 때는 165cm에 불과했던 신장도 2년 간 10cm가 넘게 훌쩍 자라 177cm까지 자랐다.

전생에서는 177cm의 작은 신장과 무릎 부상 여파로 제공권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이대로라면 풀백임을 감안할 때, 제공권에서는 어느 정도 강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코치님, 부탁드립니다.”

“그래, 알았다. 조금 있다가 갈 테니까 먼저 가서 준비하고 있어.”

지금 기량을 봤을 때, 1군 무대를 밟는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군으로 승격하기 위한 모습을 어필할 생각도 없었다.

주필러 리그의 1군 무대를 밟는 것은 전생의 꿈일 뿐.

지금의 꿈은 빅 리그라 불리는 곳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조금 더 기본기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또 기본기 훈련이야? 지긋지긋하지도 않냐?”

“지긋지긋? 그럴 여유도 없다.”

팀 훈련이 끝나고 개인 훈련 시간이 되면 바로 기본기 훈련에 돌입하는 성배의 일과는 이미 유명했다.

안더레흐트로 합류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일이었고, 재미없는 기본기 훈련에 집중하는 성배의 모습은 동료들도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번 겨울에 안더레흐트에 합류한 U-19 팀 동료 셰이크 티오테는 이런 성배의 모습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가난하게 태어나 15세까지 축구화 한 켤레 없이 뒷골목에서 맨발로 빨래뭉치를 차면서 축구를 했던 그는 축구가 재미있어서 시작한 선수였다.

배정된 기본기 훈련 외에 자율 훈련 시간까지도 기본기 훈련에 할애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가 보기에 성배의 기본기는 절대로 나쁘지 않았다.

다만, 성배의 비교 대상이 그저 그런 동년배 선수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기본기를 갖추기 위해 계속 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게 재미있냐? 나는 도저히 두 시간 이상은 못하겠던데...”

“재미? 난 축구에 모든 걸 다 걸었어. 재미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해.”

기본기.

기본기라고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축구의 기본이기 때문이었다.

축구의 기본은 결국 발로 볼을 다루는 것이었고, 기본기란 발을 비롯한 축구에서 허용되는 모든 신체 부위를 이용해 안정적으로 볼을 다루는 것, 그리고 다음 플레이가 용이하도록 볼을 다루는 것이었다.

당연히 재미있을 리 없었다.

유럽에서는 어린 선수들을 가르칠 때 축구의 재미를 최우선적으로 가르쳤다.

게임과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축구 실력을 늘려주는 것을 최고로 쳤고, 어릴 때부터 기본기나 전술을 가르치기보다는 모든 선수가 볼을 자주 건드리고 득점을 올릴 수 있도록 2 vs 2, 5 vs 5, 8 vs 8 등의 미니게임으로 가르치는 것을 선호했다.

이는 성인 선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성인들도 훈련에서 재미있는 경기, 재미있는 게임을 원한다]는 것은 벨기에 축구협회의 발전 비전 중 중요한 부분이었다.

노는 즐거움 -> 훈련하는 즐거움 -> 경쟁하는 즐거움 순서대로 축구를 가르쳤고, 이 과정에서 경쟁하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선수가 스스로 자신의 플레이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모든 훈련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그래도... 재미있어야 더 좋은 플레이가 나온다니까? 기분이 좋아야 예상하지 못한 플레이들이 나오지. 나도 상상하지 못한 엄청난 플레이!! 막 두근거리지 않아?”

“응. 너에겐 분명 그런 게 어울려. 그런데 난 아냐. 그러니까 너도 이제 가서 훈련해라.”

"에헤이... 그러지 말고. 방금 단체 훈련 끝났는데 조금 쉬기도 하고 그래야지."

"그럼 저기 가서 쉬어. 나는 바쁘다고."

[뛰어난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굉장히 유명한 구절이지만, 성배는 인정할 수 없었다.

사실 이 문장이 대체적으로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성배 자신이 그대로 할 수 없을 뿐이었다.

‘즐겨? 즐기라고? 내가 축구를 어떻게 즐기면서 할 수 있겠냐.’

사실 아예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신체적인 것까지 포함해 전생의 기량을 거의 넘어선 지금,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면서 전생에 밟아보지 못한 새로운 경지로 넘어가는 것은 분명 조금이나마 즐거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전생의 기억은 즐기는 것을 멈추고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도록 만들었다.

“준비 다 해놨어?”

“예. 이제 코치님이 봐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좋아, 그럼 또 시작해보자고. 나는 이제 눈 감고도 네 훈련은 봐줄 수 있으니까.”

“그래도 눈은 뜨세요.”

곧 코치가 도착해 성배와 훈련을 시작했다.

코치의 도착과 함께 복잡했던 머리를 비운 성배는 언제나처럼 지겨운 기본기 훈련에 돌입했다.

기본기 훈련이 끝나면 킥 훈련과 체력 훈련을 이어서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잡념에 빠져서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 1초가 아까웠다.

동년배의 유망주들이 하나둘씩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지만, 성배는 급하면서도 급하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기량을 끌어올리고 싶어서 급했지만, 1군 무대에 데뷔하는 것은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한 살 많은 콤파니는 이미 지난 시즌부터 안더레흐트의 주전 센터백 자리를 차지했고, 동갑이자 같은 풀백 포지션의 반덴 보레는 U-19팀과 1군을 오가며 경험을 쌓고 있었다.

그러나 성배에게 1군 무대에 데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탄탄한 기본 뼈대를 만들어놓는 것이었다.

잘 가다듬어진 기본기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해줄 것이고, 그로 인한 안정감과 꾸준함은 자신의 몸값을 높여줄 것이었다.

재미가 없다고, 1군 무대 데뷔가 늦어진다고 소홀히 할 수 없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정이었다.

***

“마크. 저 친구, 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주, 라... 독한 친구죠. 팀에서 손꼽히는 유망주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훈련하고, 생활 태도도 모범적입니다. 성적도 나쁘지는 않은 수준을 지켜주고 있기도 하고, 여하튼 믿음직해서 별로 걱정이 안 되는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배의 생활은 그야말로 모범적이라는 단어 하나면 설명을 끝낼 수 있을 정도였다.

학교를 마치면 바로 훈련장에 나타났고, 알아서 개인 훈련을 진행하다가 팀 훈련에 참가, 그리고 팀 훈련이 끝나면 다시 유스 훈련 시간이 마무리될 때까지 자율 훈련에 임했다.

그 결과 코치들도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기량이 올라왔고 어느새 반덴 보레와 함께 팀 내 최고 유망주인 콤파니의 뒤를 잇는 유망주로 인정받고 있었다.

처음부터 꽤 기대를 걸긴 했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더 빠른 성장이었다.

“주의 생활에 대해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요. 주가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면 어떤 것을 듣고 싶으십니까?”

“주의 현재 기량, 그리고 1군 무대에서의 가능성에 대해 듣고 싶군요.”

안더레흐트의 U-19팀 감독인 자비어 로니는 이제 슬슬 성배를 1군에 추천할 생각이었다.

나이로 따지자면 이번 시즌까지 U-17팀에서 뛰어도 될 정도로 어린 선수였지만 성배보다 8개월이나 어린 반덴 보레도 이미 1군에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성배가 1군에 올라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충분합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반덴 보레보다도 주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호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죠?”

“주는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선수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영리한 플레이를 합니다. 상대 공격수가 어떤 플레이를 할 것인지를 미리 읽고 한발 앞서서 막아내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1군에서도 충분히 제 몫을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안토니 반덴 보레나 뱅상 콤파니처럼 보통 특급 유망주들은 뛰어난 피지컬로 동년배 선수들을 압살하거나 뛰어난 테크닉과 개인기로 유스 리그를 폭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럴 경우 자신들의 피지컬이나 테크닉이 통하지 않는 1군의 베테랑 선수들에게 고전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성배는 그런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성배의 플레이는 성배가 베테랑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영리하고 효율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했다.

그것도 유스 리그에서나 통할 정도의 미숙한 것이 아니라 1군 선수들에게도 흔히 볼 수 없을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다다른 모습이었다.

이런 선수들은 일반적인 특급 유망주들처럼 전율을 일으키지는 못해도 최소한 코칭스태프들을 실망하게 하지는 않았다.

“아마 경험이 더 쌓이면 오래 지나지 않아 주필러 리그 최고의 풀백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지금의 주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실전 경험, 1군에서의 경기 경험입니다.”

“확실히... 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험이죠. 피지컬이나 스피드, 테크닉은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는 것이지만, 주의 플레이는 절대적으로 예측과 경험에 의지하는 것이니까요. 1군 무대 경험이 쌓이면 지금 유스 리그에서 보여주는 압도적인 모습을 1군에서도 보여줄 수 있을 거예요.”

‘비록 그만큼 한계도 빨리 찾아오겠지만...’

그들이 생각하기에 성배는 전형적인 로우 리스크-로우 리턴(Low risk - Low return)의 유망주였다.

아무리 망해도 주필러 리그 최정상급의 풀백까지는 성장할 수 있는 안정적인 유망주이지만, 아무리 터져도 세계 최정상급의 풀백으로 성장하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굉장히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인 하드웨어의 성능 문제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그랬다.

“좋아요. 그럼 지금 바로 주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해주세요. 1군의 윌리스 감독님에게 보여드릴 거니까 최대한 주의 장점을 부각시키세요.”

“알겠습니다, 감독님.”

그렇다면 최대한 어린 나이에 1군 무대에 데뷔시켜서 빅 리그의 관심을 끌고 조금이라도 더 비싼 이적료를 받아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차피 떠날 확률이 높은 선수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가치가 높을 때 그 가치를 조금 더 뻥튀기시켜서 이적시켜야 했다.

시작은 프로 계약, 그리고 1군 데뷔부터였다.

< 낭만필드 - 029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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