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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19화 (250/356)

< 낭만필드 - 019 >

“감사합니다. 별로 도움이 되는 것도 없으실 텐데 이렇게 나서서 도와주시고... 진짜 감사해요.”

“뭘... 어차피 나도 특별히 하고 있는 건 없었으니까... 그리고 지도자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한 명이라도 더 가르쳐보면 나도 좋지. 공부해본 것들 실전에서 써먹어볼 수 있으니까.”

첫 날의 훈련은 만족스러웠다.

유영민은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성배의 훈련을 도와주었다.

덕분에 많이 어색했던 기본기나 킥과 같은 부분들에서 조금씩 감각을 찾을 수 있었다.

2주 정도면 상당 부분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확실히 풀백이 네 천직인가 봐. 뭐 이렇게 빨리 늘어? 스트라이커로 뛸 때는 잘 몰랐는데, 원래 네 킥이 이렇게 정확했던가? 처음에도 놀랐는데, 훈련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정확해지는 게 무섭기까지 하더라.”

“하하하, 그러게요. 저도 놀랐어요.”

과거에 킥에 있어서만큼은 벨기에 리그 한정으로 1부 리그까지 다 합쳐도 수위권에 들었던 성배였다.

킥을 어떻게 차야 잘 차는 지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바뀐 몸이 가지고 있는 다리의 근력이나 발목의 힘 등이 전생과 달랐기 때문에 생각했던 것과 상당한 오차를 보였지만, 점점 바뀐 몸을 파악하면서 감각을 찾아 어느 정도 오차를 줄일 수 있었고, 그 정도로도 같은 나이 또래에서는 손꼽힐 정도의 킥을 보여주었다.

“출국까지 2주 남았다고 했지? 그 2주 동안 한 번 제대로 해보자고.”

“네! 근데 진짜 감사해요.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아니야. 오늘 보니까 2주 동안 얼마나 늘지 궁금해졌어. 진짜 장난 아닌데? 이러다가 윤기표도 위협하는 거 아냐?”

“에이... 윤기표 선수가 얼마나 잘 하는데요. 아직 멀었죠.”

“당연하지, 인마. 당연히 멀었지. 나이 차가 10년이 나는데,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윙백이라고 하는 윤기표에게 비견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그래도 내가 볼 때, 너 가능성 있어.”

오늘 훈련을 함께 했던 유영민은 성배가 보여준 풀백으로서의 가능성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성배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한, 모든 사람들이 아마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고 있는 이 빠른 성장은 성배가 전생의 기량을 되찾는 순간 바로 끝이었다.

그것이 성배의 약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장 큰 무기이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비행기 타는 것 같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비행기 아니야. 진짜 내 말 한 번 믿어봐. 크게 될 수 있을 거다.”

아마 자신을 본 사람들은 백이면 백, 이런 생각을 할 것이었다.

이는 유럽 클럽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노련하게 경기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눈이 번쩍 뜨이는 플레이는 못해도 실수를 최소화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당한 메리트였다.

그것이 성배와 언젠가 고용하게 될 에이전트가 어필하는 세일즈 포인트가 될 것이었다.

클럽 관계자 정도 되면 성배가 안정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이지만, 잠재력은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결국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피지컬이나 천재성 등에서 예상을 벗어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배는 어느 리그, 어느 클럽에서든 무난하게 연착륙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만 하드웨어 측면에서 상당히 떨어지고, 소프트웨어의 성능도 뛰어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예상할 수 있는 요소들을 잘 사용하는 스타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 모두가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로 스쿼드를 채우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런 선수들을 몇 명 데리고 있으면 그들을 묵묵하게, 안정적으로 받쳐줄 수 있는 선수들이 무조건 필요했고, 성배가 노리는 시장은 바로 그 쪽이었다.

“그러면 내일 뵐게요. 내일은 굳이 데리러 오지 마시고, 제가 한 시까지 오늘 갔던 운동장으로 나가 있을게요.”

“그래, 그래주면 나도 편하지. 그럼 내일 보자. 잘 쉬고. 쉬는 것도 훈련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니까.”

“예. 잘 쉴게요. 코치님도 좀 쉬세요. 오늘 힘드셨을 텐데.”

“인마, 너 때문이잖아!! 어렵게 뛰어달라고 나름 열심히 뛰었는데 생각보다 킥이 정확해서... 에이...”

처음 성배가 패스를 보내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달라고 부탁했을 때는 사실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영민이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성배의 킥은 정확해졌고, 그에 따라 영민도 점점 더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나중에는 현역에서 물러난 지 몇 년이 지난 영민의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되는 속도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차를 타고 사라지는 유영민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두 눈을 빛내는 성배였다.

벨기에 유학이 결정되었고, 훈련도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도와줄 코치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럽 나이로 열여섯 살. 어리다면 어린 나이지만 생각해보면 마냥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향후 2년 정도가 전체 커리어를 결정지을 것이었기 때문에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가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라고 해도 아무도 없지...”

“응? 오빠 왔네?”

“어? 너 있었어? 학원가는 시간 아니야?”

“오빠가 안 나간다고 해놓고 아침 일찍 나갔잖아!! 심심해서 나도 아침에 갔다 왔다, 뭐.”

아버지는 외교관이 직업이라서 국내에 있을 때는 본부에서 근무하셨기 때문에 보통 집에는 주말에만 오시는 편이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도 시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셨기 때문에 유빈이는 항상 집에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 갔다가 돌아와서 미술 학원 두 시간 정도 다녀오면 계속 혼자인 것이었다.

다행히 학기 중에는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다녀오면 곧 어머니가 돌아오시지만, 지금과 같은 방학 중에는 하루의 절반 정도를 혼자 보내야만 했다.

“에구구, 미안, 미안. 많이 심심했어?”

“당연하지! 오늘은 그래도 오전에 놀아줄 사람이 있는 건가, 했는데... 나갈 거면 나간다고 말이라도 하지... 칫.”

이 당시에는 성배도 훈련이다, 기합이다 하는 것들 때문에 바빠서 유빈이가 혼자 집에서 지내는 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사실, 돌아오고 난 뒤에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바빠서 마땅히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

하지만 혼자 소파에 앉아서 별로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유빈이의 모습을 직접 본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뭐라도 같이 해주고 싶었다.

“그러면 뭐라도 같이 할까? 점심은 먹었어?”

“점심... 안 먹었어. 빵은 있었는데, 별로 안 먹고 싶어서...”

“그러면 내가 떡볶이 해줄까? 배 고프지?”

“... 오빠가 떡볶이도 할 줄 알아?”

“그럼!! 당연하지. 이 오빠가 집에 잘 안 붙어 있어서 몰랐나본데, 생각보다 요리를 꽤나 잘 한단다.”

“치이. 떡볶이 그거 생각보다 안 어렵다더라. 내 친구들도 해먹는 애들 있대.”

“그래, 그래. 쉬운 거니까 그러면 내가 가르쳐줄게. 나중에 먹고 싶으면 혼자 있을 때라도 해먹어. 불만 조심하고.”

축구 선수가 외국에서 몇 년을 혼자 살았는데 음식을 못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자취 생활을 벨기에에서 처음 시작했기 때문에 한식 쪽은 몇 가지 밖에 하지 못했지만, 비교적 간단한 음식들은 자신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떡볶이라는 음식은 굉장히 하기 쉬운 음식이기도 했다.

“자, 그러면 냉장고 한 번 보고 필요한 거 사러 가자. 잠깐만 기다려.”

“... 튀김도 사줘.”

“하하하, 알았어. 오는 길에 분식집에 들러서 튀김이랑 다른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오자.”

원래는 훈련을 마친 뒤, 방에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유빈이를 계속 혼자 둘 수 없어서 뒤로 밀어놓기로 했다.

자신의 의도대로 훈련을 진행한 것은 돌아온 이후 처음이었고, 그 과정에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정리가 필요했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분명 유빈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일 터였다.

“아싸!! 오뎅도 사와야지-이”

“대신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그냥 내가 해 준 떡볶이만 먹은 걸로 하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 말하면 나도 혼날 텐데 내가 바보야?”

분명 어머니한테 들킬 것이었다.

비밀로 한다고 말은 하지만 자신은 몰라도 유빈이가 어머니께 계속 들키지 않을 리 없었다.

아무리 군것질이나 길거리 음식을 좋아하시지 않는 어머니지만 어쩌다 한 번 먹은 걸로 화를 내실 분도 아니고, 어쩌면 자신이 출국하기 전까지는 유빈이가 비밀을 잘 지켜줄 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 낭만필드 - 019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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