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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17화 (248/356)

< 낭만필드 - 017 >

“으음... 어쩔 수 없이 혼자서 훈련을 해야 하나?”

출국까지는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평범한 학생이 유학을 간다면 2주의 짧은 시간을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쓰거나, 유학 가는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는데 쓰겠지만, 지금 성배는 훈련을 하지 않는 1분 1초가 아까웠다.

벨기에로 가면 학교 축구부가 아닌 유소년 클럽이나 아카데미로 들어가야 했고, 가장 좋은 것은 주필러 리그 소속 클럽의 유소년 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자신에게 기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최대한 테스트 날까지 조금이라도 과거의 감각을 살릴 필요가 있었다.

“그 깽판을 치고 고등학교에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중학교를 찾아갈 수도 없고...”

유학이 결정되었다는 말을 전하러 갔을 때, 자신이 한 행동을 생각하면 유학 전까지 학교에서 훈련해도 되냐고 물어보는 순간 뺨을 내줘야 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중학교에서 훈련을 하기도 뭐했다.

새로 합류하게 된 입학 예정자들과 함께 한창 내년을 준비하고 있을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혼자는 할 수 있는 게 제한되는데...”

지금 당장 시급한 발 밑 감각을 끌어올리는 훈련은 혼자서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수 한 명 정도는 제칠 수 있는 개인 기술을 갖추기 위한 훈련이나 킥 훈련 같은 것은 혼자서 할 수 없었다.

할 수는 있지만 차는 시간보다 한 번 찬 볼을 다시 가져오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었다.

“아!!”

순간, 누군가를 떠올린 성배는 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 당시 저가 휴대폰 시장에서 꽤나 힘을 쓰고 있었던 CYON에서 출시된 32화음 벨소리, 65,000컬러 LCD와 유기발광 외장LED를 탑재한 폴더폰이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잠시 이 신형 휴대폰에 대한 생각에 빠졌던 성배는 정신을 차리고 전화번호부 창을 띄웠다.

처음 회귀했을 때는 한동안 이 작은 화면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나마 다시 익숙해진 LCD 화면에서 찾던 이름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은 성배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코치님!! 저예요, 성배.”

훈련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던 성배가 떠올린 사람은 바로 얼마 전까지 영원중학교에서 성배를 지도했던 유영민 코치였다.

작년을 마지막으로 영원중학교를 떠난 유영민 코치는 무명이기는 하지만 나름 K리그에서 활약했던 전력을 가진 프로 출신 코치였다.

나중에는 K리그의 명문 클럽, 수원 유나이티드의 2군 코치까지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중학생인 성배가 부탁할 수 있는 사람 중에는 가장 고급 인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 성배? 갑자기 무슨 일이냐?]

“다른 건 아니고,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 훈련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응? 훈련? 너 영원고등학교에서 훈련하는 거 아니었어?]

“일이 그렇게 되었네요.”

[그럼 지금은 어떻게 훈련하고 있는데?]

“오늘부터 혼자 해야 되는데, 도와줄 사람을 좀 찾고 있는 중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유영민 코치는 한국에서 좋은 기억이 거의 없는 성배가 좋게 기억하고 있는 정말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더욱 함께 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해주었고, 아이들의 성장과 미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젊은 코치였기 때문에 힘이 없어서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지만 당연히 선수들에게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능력도 충분히 갖추고 있어서 고작 열여섯의 선수가 일대일로 훈련을 받기에는 과분했지만, 일단 지금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한 번 기대해볼만 했다.

[그래, 뭐 마침 마땅히 할 일도 없었으니까 내가 봐줄게. 어디로 나가면 되는데?]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까 그것도 문제네요. 주변 학교 운동장 아무데나 빈 곳으로 가야겠죠?”

[그렇겠지. 영원중학교나 고등학교는 축구부가 훈련하고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나 이제 코치 아니라고 듣기 싫은 다, 나, 까는 안 쓰네. 하하하.]

다행히 유영민은 성배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훈련 장소야 찾아보면 많이 있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방학을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비어있는 운동장들이 꽤 있을 것이었다.

시합을 하는 것도 아니고 테크닉 연습과 킥 연습 정도는 운동장의 1/3이면 충분했다.

과거로 돌아온 이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은 실컷 봤지만 정작 진짜 보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유영민 코치는 보지 못했던 성배는 훈련에 도움도 받고 유영민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뭐... 별 일은 아니고 이번에 아버지 따라서 유학가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학교 축구부에는 안 나간다고 말했어요. 선배라고 하는 것들 꼴이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하긴, 너는 중학교 때도 애들한테 아쉬운 소리 잘 못하는 성격이었지.”

얼마 뒤, 유영민 코치가 직접 자신의 차를 끌고 성배를 데리러 왔다.

덩치도 산만하고 우락부락한 남자가 마티즈에서 내리는 것은 조금 어울리지 않았지만, 성배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차 뒷좌석에는 여러 훈련용품들과 축구공들이 가득 차 있어서 훈련용품이 없는 것에 대한 성배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뭐, 그거랑은 별로 상관없지만요.”

“확실히 나 어릴 때보다는 조금 나아졌지만, 이 나라의 유소년 축구는 그게 문제야. 도대체 선수들 사이에서 군기를 잡을 필요가 뭐 있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하는 건 부모님이랑 감독, 선생님들의 역할이지, 같은 아이들끼리 무슨...”

유영민 코치는 한국 엘리트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폭력적인 문화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결국 축구인 출신으로, 이전에 그런 문화의 희생자가 되었던 사람들인데, 본인들이 그렇게 배웠으니 그렇게 가르친다는 태도와는 확실히 다른 부분이었다.

“뭐, 때릴 필요까지는 없긴 하죠. 기합 정도야 어떻게 관대하게 넘어간다고 해도.”

“그러니까 말이지. 언젠가는 없어져야 할 텐데...”

아마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에게 푸는 행동은 어쨌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였다.

이러한 것들이 용납되는 운동부의 문화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이상에 불과했다.

“뭐, 그 이야기는 이 쯤 해두고, 유학 간다고?”

“네. 벨기에로 가려고요. 아버지가 외교관이시라 따라가는 거예요.”

“유학 가는데도 나까지 불러서 훈련하려고 하는 걸 보면... 거기 가서도 축구는 계속 할 생각인가 보네?”

“네. 혹시 알아요? 나중에 유럽 무대에서 뛰게 될지...”

엄밀히 말하자면 굳이 안 가도 되는 것을 자신이 요구해서 가게 된 것이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의 인식으로는 말해봤자 너무 큰 모험을 하는 것이 아니냐며, 성공 가능성이 너무 낮다면서 걱정하는 반응만 돌아올 것이었기 때문에 괜히 말해서 스트레스 받을 이유도 없었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지금부터 유럽에 나가서 뛰는 거면...”

“아, 참고로 저 왼쪽 풀백으로 뛰어볼 생각이에요. 고등학교 훈련에서 몇 번 뛰어봤는데, 가능성이 있겠어요. 고등학교 감독님이랑 코치님들한테도 엄청 칭찬받았고요.”

“왼쪽 풀백? 포백에서 왼쪽 수비수 말하는 거 맞지? 음... 괜찮겠어? 지금까지 공격수였잖아?”

“윤기표 선수도 공격수에서 풀백으로 전향한 케이스인데 이렇게 잘 됐잖아요. 늦은 것도 아니죠. 어차피 제가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경쟁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무릎에 심각한 부상을 당하기 전에도 성배는 사실 스트라이커로서의 발전 가능성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스피드, 그리고 위치 선정 능력을 비롯한 머리 쓰는 부분에 강점이 있었을 뿐, 슈팅의 정확도나 골 결정력, 피지컬 등에서 스트라이커로 활약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신 스피드나 공간 활용 능력 등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것 덕분에 나름 이름을 날렸었기 때문에 성배가 레프트백으로서 가능성을 보이기 전에는 영원고등학교의 석영균 감독도 장기적으로 성배를 윙어로 쓰려고 했었다.

“그건 그렇지. 그런데 성배야. 수비수는 경험이라는 것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포지션이야. 그런데 완전히 낯선 유럽에 가면서 포지션 전향이라니... 어렵지 않을까?”

“어차피 풀백에 대해 배우려면 유럽이 낫죠. 한국은 아직도 거의 대부분의 팀들이 쓰리백을 쓰잖아요. 게다가 풀백이 귀한 것은 유럽도 마찬가지니까 살아남을 가능성도 높고... 이래저래 풀백 전향이 옳은 선택인 것 같아요.”

“모르겠다. 뭐, 당사자인 네가 선택한 길이니까 이래저래 많이 알아보고 고민하고 했겠지. 어쨌든 잘 해봐라. 네 말처럼 풀백은 지금도 귀하고, 앞으로도 계속 귀할 거야. 특히 우리나라처럼 포백 시스템을 들여온 지 얼마 안 되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겠지. 대신 아무리 그래도 늦게 시작한 거니까 할 거면 정말 제대로 해보고.”

왼발을 잘 쓰는 레프트백.

이 포지션은 성배가 회귀하기 전이었던 2020년대에도 여전히 귀한 몸이었다.

어느 정도 기량과 가능성만 보이면 유망주로 이름을 알릴 수 있고, 귀하기 때문에 빅 클럽들도 일단 영입하고 보는 포지션 중 하나였다.

유망주 때의 평가만큼 성장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1부 리그에서 버틸 수는 있는 포지션이기도 했다.

이래저래 재능의 한계가 뚜렷한 성배가 이 왼쪽 풀백으로서의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었다.

어쨌든 이 포지션도 수비수인 이상 경험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타이밍을 읽고 경기의 흐름을 읽는 능력,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능력 등은 정말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많은 경험을 쌓아야 키울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성배는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 낭만필드 - 017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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