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013 >
“벨기에에 가겠다고? 학교는? 축구는 어떻게 하려고!!”
역시 어머니가 굉장히 놀라신 것 같았다.
사실, 이번에도 아버지 혼자서 벨기에로 떠나시고, 어머니와 자신, 그리고 여동생은 한국에 남기로 되어있었다.
자신과 여동생은 학업 문제도 있었고, 특히 자신은 축구 선수로 진로를 이미 잡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벨기에로 떠나겠다고 하니, 어머니가 당황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 일단 알겠다. 이유부터 들어보고 싶구나.”
“... 그래. 일단 이유는 들어봐야지. 성배야, 왜 그런 생각을 했니?”
두 분의 반응에 성배는 속에서 뭔가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기분을 느꼈다.
뜬금없는 이야기였고, 잘 다니고 있는 학교, 그리고 나름대로 잘 이어가고 있는 선수생활을 통째로 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한다는 대책 없는 이야기였는데, 먼저 설득하려고 한다거나 혼을 낸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물어봤다는 것.
그것만으로 두 분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주변에 자신의 편이 한 명도 없었던 서른여섯의 자신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눈물을 흘릴 뻔했다.
“저... 확실한 목표를 잡았습니다. 유럽에서 뛰고 싶어요. 더 큰 무대에서, 세계 최고라는 무대에서 그 일원으로 뛰어보고 싶어요. 그래서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벨기에에서 더 늦기 전에 축구를 배우려고요.”
“그래. 네 뜻이 어떤 건지는 알겠다. 하지만 절대로 쉽지 않을 거야. 언어도 다르고, 축구를 가르치는 방식도 아마 다르겠지. 차라리 한국에서 최고가 되어 유럽으로 나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축구를 좋아하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성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신 것 같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아버지의 반론 역시 일반적인 경우, 훨씬 더 나은 선택일 것이었다.
수많은 유망주들이 어린 시절 해외 유학을 떠나지만 그 중 성공해서 외국에 자리 잡은 선수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대부분은 K리그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점들로 인해 문제를 겪고 방황해 결국 성장까지도 멈춰버리고 마는 다른 유망주들과 성배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성배에게 벨기에는 낯선 곳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스무 살부터 서른여섯 살까지 16년을 벨기에에서 생활한 성배에게는 오히려 한국보다 벨기에가 더 익숙하고 편한 곳이었다.
“한국에서 최고가 되어 유럽으로 나간다라... 어려운 일은 아니겠죠. 하지만, 저는 이제부터 왼쪽 풀백으로 뛰어볼 생각이에요. 한국은 쓰리백을 사용하기 때문에 풀백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가르쳐줄 사람도 거의 없어요.”
“왼쪽 풀백이라... 축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자세히는 몰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포백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그래서 대충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그래도 쉽사리 허락하기는 힘드네.”
“성배야. 외국 유학이라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닐 거야. 외국 유학을 나가는 사람은 많지만, 거기서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훨씬 많잖니? 외국 생활이라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든 거야. 엄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일단 모든 것이 달라지는데 생활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거기에 축구까지 배워야 하잖아. 굉장히 어려울 거야.”
성배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좋은 부모였다.
축구를 하고 싶다는 성배의 말에 반대하지 않고 축구를 하면서 겪을 힘든 일들을 말해주면서 버틸 수 있다면 해보라고 응원해주었고, 성배가 축구를 선택한 이후에도 항상 응원해주었다.
아이가 원하는 길이 있으면 그 길의 어려운 점을 이야기해줄 뿐, 자신들의 의사는 거의 말하지 않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이상적인 부모였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달랐다. 나고 자란 한국의 땅과 문화가 아니라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벨기에 행을 결정한 성배를 그냥 지지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축구 선수로의 진로 선택은 실패하더라도 어쨌든 익숙한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어떻게든 다른 진로를 잡을 수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벨기에 축구 유학은 달랐다.
벨기에에서도 학교는 다니겠지만,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기보다는 결국 축구를 배우는 것이었고, 실패했을 때는 한국에서도, 벨기에에서도 자리를 잡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마냥 지지해줄 수 없었다.
“아빠. 엄마. 수없이 많은 선수들이 프로 축구 선수의 꿈을 꿔요. 초등학교에 200개, 중학교에 150개, 고등학교에 120개의 팀이 있어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면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면서 그만큼의 선수들이 도태된다는 거죠. 그리고 결국 프로에 지명되는 선수는 100명 정도예요. 그 중 같은 나이의 선수가 70명 정도라고 치면 지금 저와 같은 나이의 5,000명도 넘는 선수들 중에 K리거가 되는 선수는 겨우 70명 정도라는 거죠.”
“그렇구나.”
“그래, 성배야. K리그에서 뛰는 것도 그렇게 힘든데, 유럽 빅 리그로 가는 건 얼마나 힘들겠니? 그러니까 너무 힘든 길로 가지 말고, 우선 여기서 K리그를 노리는 게 어떨까?”
아버지는 이미 성배의 결심이 강하게 섰다는 것을 눈치 챘고, 지금 이 대화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도 대충 아셨는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성배의 유학 결정만큼은 막고 싶으신지 계속해서 성배를 설득하려고 하셨다.
그래도 이번 결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뜻대로 해야 했기 때문에 성배도 강하게 나갔다.
“K리그에서 뛰는 것도 그렇게 힘든데, 유럽 빅 리그로 가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런데 남들처럼 해서 어떻게 그 자리에 설 수 있을까요? 남들보다 더 독하게 해야 하고, 남들보다 더 과감하게 해야죠. 실패할 경우의 대비책까지 준비하는 식으로는 절대로 그 위치에 못 가요. 2부 리그나 더 밑의 리그라고 하더라도 프로로 살아남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다른 살 길까지 준비하면서 어떻게 최고의 무대에 설 수 있겠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불안한 걸 어떡하니. 아무리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게 해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어쨌든 사랑하는 내 아이인데...”
운동선수들의 딜레마였다.
운동선수로 성공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에서 2부 리그 격인 내셔널 리그까지 포함하더라도 프로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50:1의 경쟁을 펼쳐야 하는데, 그런 경쟁 속에서 다른 살 길까지 마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축구에 걸게 되면 50: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 속에서 도태되었을 경우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굉장히 힘들 수밖에 없었다.
올인과 안정적인 베팅, 그리고 완전한 포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선택이 어려운 일이지만, 이 세 가지 방법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 날은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동안 계속해서 성배가 두 분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한 결과, 드디어 성과가 나타났다.
“성배야.”
“예, 아버지.”
아버지는 일주일 내내 허락해달라는 성배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성배를 안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나서 한참동안 눈을 감고 고민에 빠져있던 성배의 아버지, 주장석이 드디어 눈을 떴다.
어차피 결정권자는 아버지였다.
평소에는 어머니의 말을 대부분 들어주시는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중요한 결정들은 주로 아버지가 결정하고 어머니가 그에 따라가는 식이었기 때문에, 이번 일은 아버지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입이 열린 지금, 성배는 상당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정말로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노력할 자신이 있어? 순간의 충동으로, 괜한 치기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네 모든 것을 다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니?”
“...여보...”
“예. 자신 있어요. 바닥의 바닥까지 부딪혀서 결국 위로 올라갈 거예요.”
성배는 강렬한 눈빛으로 아버지의 시선을 마주 쳐다보았다.
이미 한 번 죽은 몸이었다. 실질적으로 죽음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갑자기 이전의 생이 끊긴, 그런 느낌이었지만, 사실 그 당시에 이미 성배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생을 바친 모든 것들로부터 버림받은 서른여섯의 주성배는 이미 그 순간 죽었다.
그런 잔인한 일을 겪은 성배에게 이번 생에서의 모험이 실패하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벨기에로 다시 날아가서 축구에 집중하는 이 선택으로 인해 2부 리그에서도 뛰지 못하는 선수가 되거나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 일은 별 것 아니었다.
처참하게 바닥으로 추락한 경험도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못 다 이룬 꿈을 위해 처절하게 구르는 일이었다.
“좋다.”
“여보!! 잠깐만요. 고민을 조금 더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아니야, 여보. 저 녀석 눈빛 좀 봐. 얼마나 믿음직해? 우리 성배가 다 큰 것 같아. 하하하, 뭔가 대견하지만 서운하기도 하지 않아? 저 어린 아이가 사실은 이미 어른이었어.”
“여보... 에휴,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죠.”
장석의 말에 성배의 어머니, 성혜진도 결국 더 이상 안 된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너무나도 걱정스러웠기 때문에 애써 밀어냈지만, 혜진이 보기에도 성배의 지금 모습, 특히 지금의 눈빛은 이미 자신의 길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성인의 그것이었다.
저렇게까지 믿음직한 모습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자신들에게 이야기하는 성배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성배야. 아버지가 이번에 가게 된 벨기에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함께 쓰는 곳이란다. 영어도 필수적인 곳이지.”
“예. 알고 있어요. 이미 알아봤죠.”
“정말로 네가 네 모든 것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는 것인지 작게나마 확인을 해보고 싶구나. 준비할 것이 많으니 많은 시간은 줄 수 없고...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성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마지막 시험만 남은 것이었다.
아버지의 이번 시험만 통과하면 이제 완전히 부모님을 설득하고 자신의 꿈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잠시 뒤, 아버지가 손에 책을 한 권 들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받아.”
“이건... 프랑스어 입문 책 아닌가요?”
“맞아.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쓰기는 하지만, 우선 아버지가 있을 브뤼셀은 프랑스어를 쓰는 인구의 빈도가 더 높은 곳이야.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구사하는 인구를 더하면 대략 80% 정도가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지.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50% 정도 되겠구나.”
마지막 시험은 언어 능력에 대한 것으로 보였다.
비록 네덜란드 어를 쓰는 안트베르펜 지역에서 16년을 살았던 성배이지만, 기본적으로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독일어 등 세 가지 언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고, 이 중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는 거의 비슷한 빈도로 쓰이는 벨기에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프랑스어는 할 줄 알았다.
마지막 시험은 생각보다 훨씬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이 떠나게 될 경우, 시간이 급하니까 일주일의 시간을 줄게. 그 일주일 안에 그 책의 기본 파트인 2장까지. 2장까지 나와 있는 내용에 대해서 나와 대화가 가능하다면, 적어도 뜻이라도 파악할 수 있다면 허락해줄게.”
“여보. 일주일은 너무 짧은 거 아니에요?”
“하하, 왜 그래? 반대하는 거 아니었어?”
“사실 아직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저렇게 원하는데 가능한 숙제를 내주셔야죠.”
“축구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다고 했어. 그러면 보여줘야지. 축구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성배가 원하는, 벨기에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야. 정말로 간절하다면 충분히 할 수 있어. 어차피 저기 나와 있는 문장을 그대로 사용할 거니까.”
정작 지금까지 반대해왔던 혜진이 무리가 아닌가, 생각해서 이야기할 정도로 쉬운 시험은 아니었다.
아무리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받았고, 초급 프랑스어 입문 책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프랑스어 자체가 어려운 언어였다.
1/5에 달하는 30페이지 이상이 시험 범위였기 때문에 외우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성배에게는 초등학교 수준의 받아쓰기 난이도에 불과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무조건 할 수 있어요. 제가 보여드릴게요.”
이로써 첫 번째 난관은 무사히 통과해냈다고 볼 수 있었다.
앞으로 자신의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서 수많은 난관들이 있겠지만 지금처럼 무사히 통과해낼 수 있기를 바랐다.
< 낭만필드 - 013 > 끝
ⓒ 미에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