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1화 (1/356)

< 낭만필드 - 001 >

원 클럽 맨.

이 얼마나 낭만적인 단어인가!!

프로 스포츠 종목에서 이 원 클럽 맨이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가 연고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만큼 그 클럽, 나아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뜻과 동일해진다. 그야말로 그 팀, 그 지역 자체가 되는 것이다.

프로에 데뷔한 이후, 임대로 다른 클럽에서 활약한 경우도 없이 최소한 10년 이상 한 클럽에서 활약한 경우, 원 클럽 맨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 원 클럽 맨들은 생각보다도 많은 숫자가 존재한다.

그 팀에서 꾸준히 은퇴할 때까지 버림받지 않고 뛸 수 있는 실력, 그리고 팬들의 지지, 이적 제의를 받더라도, 더 좋은 조건이더라도 팀을 옮기지 않고 자신의 팀에 충성을 바치는 의리까지. 선수와 팬, 그리고 클럽이 하나가 되어야 나올 수 있는 것이 바로 원 클럽 맨이다.

그런데도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원 클럽 맨에 대한 로망이 있고, 이를 쉽지 않다고, 나타나기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이야기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원 클럽 맨에 대해 낭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들의 시대에 뛰었던 원 클럽 맨들 중 당신은 라이언 긱스를 알고 있는가?

폴 스콜스는?

프란체스코 토티는?

다니엘레 데 로시, 카를레스 푸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파올로 말디니 등... 아마 다 아는 이름일 것이고, 원 클럽 맨에 대해 로망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조금 더 특별한 이름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진파올로 벨리니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가?

사브리 사르올루는?

마르크 플라뉘, 스티븐 체룬돌로, 미켈 아란부루, 라르스 리켄은?

이 선수들도 모두 원 클럽 맨이다. 유명하지 않은 리그의 선수가 아니냐고?

전혀. 이들은 모두 흔히 말하는 4대 리그 소속 클럽의, 1부 리그 소속의 선수들이다.

사르올루는 그렇지 않지만, 그래도 챔피언스리그 단골 참가 팀. 갈라타사라이의 선수이다. 하지만 당신들은 아마 이 선수들의 이름을 잘 모를 것이다.

이들도 특별한 원 클럽 맨이지만, 당신들은 이 이름을 모를 것이다.

축구계는 변했다. 원 클럽 맨이라는 칭호보다 주급 10만 유로를 초과한 선수라는 칭호가 절대적으로 선호되고 있다.

아무리 자신의 팀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서포트하던 팀에서 에이스로 뛰고 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부터 선수들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클럽들의 돈을 앞세운 러브콜에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원 클럽 맨이라는 칭호를 획득할 기회 역시 이런 팀에서 데뷔한 선수들에게만 주어지게 되었다.

그렇지 않은 팀에서 데뷔해 원 클럽 맨으로 남는 선수들은, 빅 클럽에 갈 실력이 없어서 팀에 남는 선수. 그런 인식을 받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인식을 받는 선수 중 한 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빅 클럽에 갈 실력이 없어서 팀에 남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래도 선수 본인은 팀에 대한 충성심과 애정 하나로 더 좋은 조건들을 마다하고 팀을 위해 뛰었던, 그런 선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

“주!! 준비하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알겠습니다.”

성배는 출전을 준비했다.

오늘 경기는 아마도 자신의 선수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기회일 것이 분명했다.

소속팀인 로얄 앤트워프는 벌써 2부 리그로 떨어진 지 올해로 딱 20년이 지났다.

유럽 4대 무역항 중 하나이면서 벨기에 제 2의 도시인 이 곳, 안트베르펀을 연고로 하는 명문 클럽의 성적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형편없는 성적이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자신의 선수 생활도 이제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었다.

스무 살.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대한민국을 떠나 벨기에 2부 리그 소속의 로얄 앤트워프에 둥지를 틀고 벌써 16년 째였다.

이제는 팀 내 최고참이 되었고, 백업으로 시작해 점점 늘어나 주전 자리까지 따냈던 팀 내 위상은 다시 점점 줄어들어 백업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축구 인생 마지막 장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 마무리 멋지게 하고, 다음 시즌에는 1부 리그에서 멋진 에필로그를 써나가는 거다.’

[IN - 16. 주성배 / OUT - 3. 그레고리 빌헬름]

“잘 부탁해요. 우리 꼭 승격해요!!”

“인마, 넌 한참 멀었어.”

자신과 교체된 선수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간절히 외쳤다.

앳된 얼굴. 스물세 살의 그레고리는 이미 자신을 밀어내고 자신의 포지션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었다.

2부 리그 소속의 팀이지만, 후보로라도 올림픽 대표에 선발되었을 정도로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는 선수였다.

팀을 위해서, 팀의 승격을 위해서는 당연히 그레고리가 주전으로 뛰는 것이 옳았다.

‘그래도, 그래도 이 팀에 대한 애정, 승격에 대한 간절함은... 내가 최고다.’

그래도 성배는 이 팀에서 16년을 뛰었고, 로얄 앤트워프가 2부 리그에서 보낸 20년의 시간 중 80%를 함께 겪은 선수였다.

팀 내 최고참. 이번 시즌에는 백업으로 활약하며 선발 출전과 교체 출전을 합쳐 겨우 13경기 밖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승격을 결정짓는 이 경기의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Bijou!! Bijou!! Bijou!! Bijou!! Bijou!!]

교체 출전하는 자신을 향한 팬들의 환호.

저것도 16년간 이 팀을 떠나지 못한 하나의 이유였다.

Bijou. 프랑스어로 보석, 패물, 주옥같은 작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였다. 그렇다고 자신의 그런 선수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성배 주]라는 이름 덕분에 뒤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별명이 된 것 뿐이었다.

그래도 이 팀에서 16년을 뛰면서 팬들의 마음을 얻었고, 뛴 기간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팬들 중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름대로 성공한 선수 생활이라고 자평할 수 있었다.

“야!! 라인 정리해!! 얼마 안 남았어!! 몸으로 막아!!”

백업이지만 이래보여도 프로 생활만 16년이었다.

안 그래도 형편없었던 피지컬이 노쇠화로 인해 더욱 형편없어지면서 백업으로 밀렸을 뿐, 경기를 보는 눈과 상대의 플레이를 읽어내는 능력은 최소한 2부 리그에서는 최고 수준이었다.

전성기라고 이야기하기도 뭐하지만, 그래도 나름 가장 실력이 좋았을 때는 1부 리그에 승격하는 클럽들에서 영입 제의가 왔었을 정도였다.

‘와라, 애송이.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아직은 내가 한 수 가르쳐 줄 실력은 되니까.’

상대팀 줄테-바레헴의 공격수가 자신의 앞에서 드리블을 치면서 틈을 노리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이 알기로는 열여덟 살의 선수였다.

빅 리그로 선수들을 보내는 것이 목표일 정도로 리그 자체가 셀링 리그, 빅 리그로 향하는 중간 경유지와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선수들이 어렸지만, 그래도 열여덟 살의 나이에 1부 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비록 그 팀이 강등을 눈앞에 둔 약팀이라고 하더라도.

‘으쌰!! 눈에 빤히 보인다고, 어린 친구.’

열여덟 살에 1부 리그인 주필러 리그의 주전으로 활약하는 선수.

분명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2부 리그에서도 백업으로 나서는 서른여섯 살의 아저씨는 간단히 스피드로 제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성배는 그리 간단하게 놓아주지 않았다.

‘노장에게는 노장의 방식이 있는 거란다.’

일반적으로 한 선수의 전성기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수비수의 전성기는 그것보다 조금 더 느린 30대 초반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전성기 나이와의 거리를 생각하면 성배가 상대인 크리스티안보다 더 가까웠다.

수비수의 전성기는 축구 지능과 예측력의 성장과 함께 시작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성배는 피지컬을 제외하면 지금도 전성기 기량을 갖추고 있었다.

‘너는 분명 빅 리그로 가겠지. 그 전에 좋은 공부한다고 생각해라.’

볼을 가볍게 차놓고 스피드로 성배를 따돌리려고 했던 크리스티안은 빈 공간으로 달린다고 생각했겠지만, 성배의 등과 충돌하고 말았다.

이미 크리스티안이 어느 방향으로 빠져나가려고 할지 알고 있던, 아니, 일부러 그 방향을 열어주고 있던 성배는 볼이 빠져나간 이후 바로 등으로 길목을 막아냈다.

‘스피드가 약하면... 상대도 스피드를 못 내게 하면 그만이야.’

볼은 그대로 골라인을 넘어섰고, 앤트워프의 골킥이 선언되었다.

이미 1-0으로 앞서고 있는 앤트워프였다. 이 스코어만 지켜내면 20년 만에 다시 1부 리그, 주필러 리그의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낸다...’

이제 성배의 선수생활은 거의 막바지였다. 이제 마지막 남은 꿈은 주필러 리그의 그라운드를 한 번이라도 밟아보는 것.

선수 생활을 오래 해봐야 겨우 1, 2년 정도일 것이었고, 팀의 사정과 전력을 감안하면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일 것이 분명했다.

“내려와!! 카요!! 왼쪽으로 움직여!! 야!! 야!! 데니스!! 저기 8번이 비잖아!!”

교체 선수로 활약하지만, 최소한 성배가 그라운드 위에 있을 때는 그가 수비 라인의 조율을 담당했다.

주전 센터백 두 명과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나름 잠재력과 재능이 있었지만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수비 라인을 조율하는 능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성배가 투입되면 자연스럽게 수비 라인의 리더 역할이 넘어왔다.

지금도 성배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면서 다른 선수들의 위치를 지정해주고 있었다.

어차피 성배에게 맡겨진 시간은 10분에 불과했다.

이미 경기는 거의 끝나기 직전이었고, 90분으로 설정된 정규 시간 타이머는 멈춘 지 오래였다. 오늘 목이 찢어지더라도 다음 시즌까지는 석 달의 시간이 있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찢어진 목도 다시 붙을 것이었다.

어차피 그라운드 위가 아니면 목을 쓸 일도 별로 없었고, 다음 시즌을 진행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면 목이 찢어져도 상관없었다.

“막아!! 데니스!! 이 자식이!!”

결국 탈이 났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상대 공격형 미드필더의 움직임을 놓치면서 슈팅 찬스를 내준 것이었다.

페널티 박스 정면에서 상대 선수가 발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고, 성배는 자신이 막던 선수를 놔두고 급하게 박스 안으로 움직였다.

중거리 슈팅을 막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최소한 리바운드 된 볼을 상대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퍼--억!!

‘크윽... 어디냐... 어디로 떨어지냐!!’

다행히 슈팅은 성배의 머리를 때렸다.

순간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강렬한 충격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튕겨져 나간 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성배의 머리에 맞고 흐른 볼은 상대 선수의 앞으로 향했고, 다리를 뒤로 빼면서 휘두르려는 상대 선수의 모습을 본 순간, 성배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몸을 날렸다.

-뻐--억!!

< 낭만필드 - 001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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