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마지막 회)
기억을 되찾은 나한테 있어선 형이 꺼낸 그 ‘건강’은 의미가 달랐다.
「“지금은 건강해 보인다 싶어서……. 다행이다. 너도, 은지도…….”」
은지가 세상을 떠난 시기.
지옥 같았던 그 시기에 아버지와 같은 대표님보다도 곁에 가장 오래 함께한 건 도진 형이었다.
형에게 있어 내 케어는 그저 ‘일’의 일부였다.
하지만 형은 일을 넘어서 진심으로 당시 불안정하던 내가 은지를 뒤따라 떠나지 않고 살아가기를 그 누구보다 바랐다.
술도 약한 내가 종류와 관계없이 죽어라 퍼부어 마실 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술을 숨겼고, 병원에 방문할 때, 은지를 보낼 때는 밤을 새워 가며 곁에 있었다.
회귀 전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처음 형을 봤을 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었었으니까.
「“형, 설마 처음부터…….”」
「“아니야. 나도 나한테 있던 그 친구가 가면서 알게 된 거야.”」
연탄이 떠나기 전, 도진 형과 연탄은 별개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마음을 공유하고 있던 것 같았다.
형은 그때 ‘나랑 함께 있던 시기’.
즉, 회귀 전을 어렴풋이 떠올렸다고 했다.
그날은 평소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진 밤이었다.
은지도 그렇고, 솔직히 다음 날이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콘서트 계획이 잡힌 이후에는 스케줄이 연습과 콘서트 준비로 그야말로 포화 상태가 되면서 ‘회귀 전’이라든가 ‘연탄’을 떠올릴 시간은 더더욱 줄어 갔다.
그리고 그사이 우리의 첫 정식 앨범 판매가 시작됐다.
E-UNG The 1st FULL Album
[GIFT]
- Track -
1. 편하게 (Ease)
2. Perfect me
3. Center of the Galaxy
4. Enjoy
5. U R my light
6. Naboth's vineyard
7. 인사 (Greeting)
8. 이 시간 (This time)
9. Remember
10. forever
은지도 나도 많은 일을 겪으며 만들어 냈기에 우리가 그간 낸 곡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들만 실었다.
덕분에 ‘수록곡 맛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GIFT’ 앨범은 굉장히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은지의 휴식기가 끝난 동시에 발매된 정식 앨범은 앰버서더 소식까지 더해져 화제가 되는 건 당연히 따 둔 당상이었다.
은지가 휴식기를 가지는 기간에도 괜히 빈자리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보람이 있었다.
절대 잊지 못할 거라던 ‘엔조이’ 속 가사처럼 사람들은 자꾸만 떠오른다며 우리 곡을 다시 들었고, 그렇게 ‘1등’은 자연히 손에 쥐어진 등수였다.
* * *
“은호야? 다 갈아입었어?”
“네. 금방 나갈―.”
“꺅!”
슬기 누나한테 대답하던 그때였다.
누나는 바깥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지 비명을 질렀다.
왜인지는 몰라도 누구 때문인지는 알 수 있었다.
이 대기실에서 누나한테 그런 비명이 나오게 만들 범인은 하나뿐이니까.
그럼 그렇지.
곧 범인의 이름이 들렸다.
“은지야! 그거 그렇게 입는 거 아니야!”
“아, 이거 아니에요?”
“나시 먼저 입고 입으라니…….”
“이렇게요?”
“아후! 아니야. 이리 와. 어차피 뒤에 끈으로 당겨야 하니까 그냥 내가 해 줄게.”
“넹!”
난장판이 따로 없다.
슬기 누나가 은지를 어딘가로 끌고 가는 격한 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잘하고 와!”
“화이팅!”
“이야, 멋있다. 내 새끼들.”
정신없이 준비를 마친 뒤에는 많은 스태프와 우리 NRY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무대로 향했다.
* * *
스크린 속 빈 액자만 있던 화면에 알파벳 ‘E’가 등장하자 콘서트의 시작임을 눈치챈 듯 열렬한 환호성이 이어졌다.
E, U, N, G
각 알파벳이 등장할 때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배경이 나타났다.
많은 일이 있었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지난날을 뜻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액자 속에 나타난 풍경화는 곧 덮쳐 오는 검은 연기에 가려졌다.
저벅, 저벅.
잠시 후, 스피커를 통해 구두 소리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일제히 고요해졌다.
“크흠.”
객석이 빼곡하게 가득 찼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기침을 하자, 그 소리가 눈에 띌 정도로 고요해진 콘서트장.
그때였다.
반짝.
검게 변한 스크린에 빛이 하나둘씩 생겨나더니 언제부터 있었는지 콘서트장에도 환하게 켜진 동그란 조명들이 천장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관객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조명을 바라보던 그때였다.
키릭―.
프랫노이즈를 시작으로 노래가 시작됐다.
익숙한 피아노 간주가 이어졌다.
은호와 은지가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던 ‘Last Day’였다.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며 외치던
Last Day
반가운 은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던 그때였다.
리프트의 움직임에 긴 머리칼이 시야를 방해하는지 은지는 버릇처럼 머리를 쓸어 올렸다.
리프트가 올라올수록 은지가 입은 옷도 천천히 드러났다.
슬기가 입히는 데 고생했던 하얀 폴라 나시 위로 화려한 검은 뷔스티에.
주머니가 드러난 짧은 청 재질의 핫팬츠 아래로는 칸이 넓은 망사스타킹.
무대 위에서는 구두를 포기하지 않는 은지를 위한 건지 바닥과 높이가 같아질 무렵 드러난 살벌한 굽을 가진 워커.
리프트가 멈추고 나서야 은지는 주연이 선물해 준 금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커스텀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익숙한 가사에 팬들 또한 신나게 목소리를 높이며 떼 지어 노래했다.
이미 우린
서로의 섬에 갇혀 있어
숨 한 번
뱉기가 힘들어 알고 있잖아
Last Day
가사에 맞춰 숨이 가쁘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안무를 할 때, 스크린 한가득 사나운 눈으로 삼백안을 뜬 은지의 얼굴이 비쳤다.
은지도 집중하고 있는지 평소보다도 훨씬 몽환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때, 은지가 수상쩍게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몸을 돌렸다.
클라우드 멤버들은 모두 똑같은 흰 모자와 화려한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노래가 멈추고 모두 일제히 모자와 점퍼를 벗어 던졌다.
점퍼를 벗은 이후에도 클라우드 멤버들은 모두 비슷한 의상 차림이었다.
다만 그들 중 유일하게 다른 의상의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은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스태프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듯 관객들의 비명 같은 환호성이 이어졌다.
♬♪♪―!
은호가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가자, 기다렸다는 듯 스피커에서 폭발적으로 노래가 이어졌다.
우리가
서로의 것이라 외치던
그 Last Day
그 Last Day
노래가 끝나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넓은 콘서트장을 가득 메우는 함성이 쏟아졌다.
이후 여러 곡을 이어서 달리다, 격하게 흔드는 ‘엔조이’가 끝난 뒤에는 다음 무대를 세팅하는 동안 체력 보충을 위해 짧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아까 나 이게 속옷인 줄 알고 안에 입었다가 우리 코디 언니한테 혼났었어요. 헤헤.”
“분명히 세 번이나 설명했는데도…… 진짜 빡대가리라니까요.”
“동생한테 빡대가리가 뭐냐? 우럭 대가리야.”
“그래. 내가 너무했네. 빡대가리가 아니라 호박 대가린데.”
“와 씨!”
“하하하하―.”
그동안 은호와 은지가 투덕거리며 관객들과 짧은 이야기도 나누는 등 콘서트는 열띤 분위기에서 계속됐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새 마지막 곡 차례가 찾아왔다.
은지와 은호를 함께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은지는 무대 한편으로 물러났다.
I don't want to rest
I still don't want to leave
I'm just that
Nothing else
잠시 후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듯 은호의 목소리와 함께 스피커에선 활동 내내 라이브로 부른 적 없던 수록곡 중 하나인 ‘Center of the Galaxy’가 흘러나왔다.
* * *
조명이 꺼진 틈을 타 빠르게 자리를 잡자, 조명이 다시 켜졌음을 증명하듯 등으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동시에 등을 돌리고 있음에도 숨이 막힐 정도로 가득 찬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간 진행된 공연에 숨이 가빠진 지 오래였지만 내가 사랑하는 ‘순간’이 찾아오자 다시 심장이 더 할 수 있다며 활기차게 뛴다.
은지가 세상을 떠났던 그때도 그랬다.
무대 위에서 받는 이 환호성이야말로 정신과 약보다도 더 좋은 치료제였다.
봄날의 이 꽃처럼
널려 있는 팝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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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이 별처럼
길이길이 펼쳐진
이 하늘 위 별들의 전쟁
노래를 부르는 것, 무대에 서는 것.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쌓아 온 것을 보여 주고, 사람들이 나를 봐 주는 이 일을 사랑한다.
하지만 널려 있는 스타들 사이에서 이런 마음으로 무대에 서는 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 매일, 매시간 일어나는 곳이 바로 이 바닥이었다.
떠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노래해
간판 꺼진 잊힌 Bar라도
난 목이 터져라
대중의 선택 역시 이 일을 사랑한다고 해서 택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은지는 그 선택을 받은 운명을 타고난 녀석이었다.
흔히들 스태프들도 직원들도 은지를 보고 말했다.
쟤는 ‘타고났다’라고.
은지는 빛나는 인생을 살았다.
한편, 나 또한 선택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절대로 적은 인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스스로 은지의 그림자에 갇혀 넓은 곳을 보지 못했다.
빛나는 그들 속
내 존재는 그저 언더 바(_)
공백 따윈 허용되지 않는
쉬고 오면 잊힐
고장 난 자판기 속 스낵 바
그러니까 날 봐 달라
난 또 한구석 목 터져라 노래해
그 시간의 나는 어른인 척은 할 줄 알았지만, 내 어린 마음을 인정할 줄은 몰랐다.
내가 지켜야 할 존재인 동생이 내 머리 위에 있는 모습이 뿌듯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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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이 별처럼
은지가 내 목소리 끝에 화음처럼 소리를 쌓았다.
먼 길을 돌아 알게 된 사실은 우습게도 본인은 그런 삶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마, 당시의 내가 은지의 그 말을 들었다면 공감과 이해는커녕 ‘배부른 소리’라며 은지를 무시했을 것이다.
잘나가는 은지를 지켜보던 나에게는 그 모습이야말로 바랐던 삶이었으니까.
그래서 은지는 견뎌 왔었다.
미련하리만큼 속이 곪아 가면서.
간판 꺼진 잊힌 Bar처럼
난 찾아오는 이 없는 날이 두려워
소리 낼 수 없는
주인 없는 오카리나가 될까 두려워
마음이 복잡했다.
센터 오브 더 갤럭시는 내 못난 부분을 모아 만든 가사로 채운 곡이라 더 그랬다.
마지막 곡을 이 곡으로 함으로써 나는 과거의 내 못난 면을 이젠 보내 주려는 생각이었다.
My hobby is to send you letters
I'm just that
Nothing else
My hobby is sending you letters
nothing else
영어 가사가 이어지자 스크린을 통해 아름다운 배경과 함께 그 뜻이 전달됐다.
[내 취미는 네게 편지를 보내는 거야.]
[나는 ……그저 그래.]
[다른 건 없어.]
은지가 처음 이 가사를 들었을 때 나한테 했던 말이 있었다.
「“오빠 온종일 가사 쓴다고 노트만 붙잡다가 넣을 거 없어서 넣은 가사지?”」
평소와 다름없이 ‘아니거든, 멍청아’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은지한테는 더더욱 알리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으니까.
* * *
이건 회귀 전 이야기다.
하얀색 화이트로 ‘凸’가 그려진 은지의 일기장을 펼치면 빈칸이 없을 만큼 글자가 빼곡했다.
공책 곳곳의 빈칸에는 은지가 세상을 떠난 뒤, 내가 은지에게 남겼던 편지들이 빈 곳을 메워 버렸기 때문이다.
「……어릴 때랑 똑같았을 것 같더라.
딱 그 모습으로 활동하는 거잖아. 다시 생각하니까 좀 아쉽다.」
「나도 그래. 은지 니가 떠나고 나서 몇 번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같이 활동했으면 네가 이렇게 될 일도 없지 않았을까. 니가 들으면 개소리라고 또 난리 쳐 댈 거 알지만…….」
「데뷔곡 발표까지 1분 전.
아~~~ 떨려!」
「내가 미래 보고 왔는데, 너 성공하니까 떨지 마.」
「이거 원래 오빠 부르라고 만들었던 곡인데, 내 거 됐네. 아까운 줄 아셈! 이은호 ㅋㅋ~」
「그러게. 겁나 아깝네. 그때 주지 그랬냐. 나 요즘 곡도 잘 안 나오는데 지금이라도 내 앞에 나타나서 주면 좋겠다.」
「노래 부르고 사람들 관심받고 싶어 했던 건 오빤데, 좀 미안하다.」
「멍청한 거 일기에서도 티 내네. 뭐 부러워했던 적도 있는데,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네 덕분에 나도 노력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니까 그런 생각하지 마. 은지야, 모두 네가 만든 결과고 네가 해낸 거야.」
「오늘 무대 되게 신났었는데….
우리 어릴 때 했던 콘서트 놀이 생각났다. 같이 했으면 오빠도 같이 여기서 엄청 뛰어 놀았을 텐데 아쉽다.」
「우리가 혹시라도 다른 생이든 다른 시간이든 사람이든 개든 벌레든 어쨌든 다시 남매로 태어난다면 그땐 우리가 바라던 콘서트 놀이 말고 같이 제대로 콘서트 해 보자. 사람이라면 사람 관객들 있는 곳에서 하고, 개나 벌레면 멍멍이 관객들, 벌레 관객들 앞에서든 꼭 그렇게 하자...」
되돌아온 시간.
괴로웠던 시기는 지나가고 아쉬웠던 마음을 후회하지 않을 순간이 찾아왔다.
간절했던 바람을 이룰 수 있는, 과거와 다르게 새로운 인연을 만나 만들어진 새로운 우리.
* * *
비가 올 때 그리고 눈 내릴 때
너는 항상 내 곁에 있었고
나도 항상 네 곁에 있으니
다가온 이별이 가슴 아파도
잊지 말아요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힘들 때는 있었다.
체력의 한계가 닥칠 때.
나를 좋아하지 않는 시선들이 나를 볼 때.
이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작곡이 좋아서 이 일을 함께하게 된 은지로서는 이 무게를 지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걸 정말 먼 길을 돌아와서야 깨달았다.
「“생각해 봤는데, 이은호 너도, 나도, 우리 ‘서로의 삶’을 살 때가 왔나 싶다.”」
「“언젠 안 산 것처럼 말한다?”」
「“장난 아니야. 나 지금 X나 진지 빨았다고.”」
「“알아, 멍청아. 그래서 나, 멀리 가잖아.”」
연탄이가 떠난 며칠 뒤, 우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남매는 회귀 전을 포함하면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자라 왔다.
떨어져도 며칠을 넘기는 경우는 몇 없었고, 따로 산 시간도 은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렇게 길지 못했다.
애초에 은지는 본인이 새로 산 집보다 연습실 겸 우리가 살던 그 이층집에 이부자리를 깔고 잘 때가 더 많았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앰버서더인가. 할머니가 제안해 주신 거 외에도 거기서 활동 좀 해 보고 오려고. 이번에 나가면 아마 짧으면 1년이고, 길면 글쎄. 몇 년은 있다가 들어올 거야.”」
오늘 이 콘서트가 끝나면 나는 챙겨 둔 짐을 가지고 우리가 그간 지냈던 이층집을 떠난다.
나 또한 은지랑 이렇게 길고 멀리 떨어지는 건 처음이라 낯설기도 하다.
사실 여전히 은지의 죽음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기에 두려운 마음도 크다.
하지만 죽음이 두렵다고 고여 있기엔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내 꿈을 깨달아 버렸고, 은지 또한 그랬다.
우리는 먼 시간을 돌아서야 서로를 이해하게 됐고, 서로에게 있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밤하늘을 수놓는 찬란한 이 별처럼
우리 이별처럼
물론 평생 할 이별은 아니다.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시간을 가지며 우리 남매의 비즈니스를 잠시 멈추는 것뿐이다.
‘안 그러냐, 이은지.’
감성이 차올라 시선으로 말을 건넨 그 순간.
시선이 마주친 은지는 무언가 아니꼽다는 듯 눈썹을 비틀었다.
‘뭘 꼬나 봐.’
그럼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돌아온 답은 퍽이나 이은지다워서 할 말이 없었다.
‘그래, 내가 너한테 뭘 바라냐.’
은호는 조용히 마이크 뒤로 손을 감추며 싹수없는 동생에게 중지를 세웠다.
하지만 얌전히 져 줄 생각은 일절 없는 듯 은지 또한 마이크를 쥔 척 은호가 있는 방향으로 중지를 빳빳하게 세웠다.
감성적인 노래의 마지막을 투덕거리며 끝낸 것도 잠시.
은지는 마지막 곡이 끝난 뒤 활짝 웃으며 마이크를 들었다.
“잘 다녀와, 오빠.”
은지의 인사에 은호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장난스럽게 웃으며, 은지를 따라 마이크를 들었다.
“그래. 너도 집에서 폐인같이 잠만 퍼질러 자지 말고, 사고도 엔간하면 덜 치고, 대표님 말 잘 듣고…….”
“예에. 예에에.”
은지가 건성으로 대답하자, 은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후 은호는 객석을 돌아보며 풍경을 한동안 눈에 담았다.
“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께 좋은 추억으로 남길 바라며, 이상.”
“E―!”
“U,N,G. ‘이응’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딱 맞춘 인사를 끝으로, 콘서트는 마무리됐다.
* * *
“호박아, 제발 사고 안 치고 잘 지내고 있어라.”
“우럭이 누구 걱정하냐. 본인이나 해외에서 싱싱하게 회 떠지지나 마셔.”
공항 입구 앞, 은지는 막 자다 깬 눈을 하며 하품과 함께 먼 길을 떠나는 은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간다. 나중에 보자.”
“어―.”
장난도 잠시 이제 정말 가야 할 시간인 듯 은호는 씁쓸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대충 대꾸하던 은지는 은호의 등에 뒤늦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연탄이도, 이은호도 다 가는구나…….’
씁쓸한 걸음으로 공항을 나가는 길.
창밖으로 보이는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니 오늘따라 연탄이 생각이 많이 났다.
이은호는 갔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면 그 빈자리에 함께 연탄이를 추억할 새로운 친구가 있었다.
“……도진 오빠, 배 안 고파?”
“고프지. 비행기 봐서 그런가. 뭔가, 짭짤한 미국 피자 당기지 않아?”
“헐.”
은지가 놀란 얼굴로 빤히 바라보자, 운전하던 도진이 힐끔 돌아보며 물었다.
“왜?”
“어떻게 알았어. 나 피자 당기는 거.”
“응? 뭔 소리야. 그냥 내가 당겨서 말한 건데?”
회귀 전.
「“형이랑 너랑 보다 보면 내가 너 오빤데 도진 형이 더 친오빠 같은 때 있어.”」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이은호가 했던 말이었다.
그땐 솔직히 내 방이 더럽다고 놀리려고 꺼냈던 말이라서 흘려들었었는데, 이제 보니까 꽤 그럴싸할지도 모르겠다.
“각이다. 근처에 있나?”
은지는 뒤늦게 은호의 말을 인정하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는 데 있는데, 고?”
“뭘 물어. 당연히 ‘고’.”
도진이 여유롭게 묻자, 은지가 한쪽 눈썹을 들며 뻔뻔하게 웃었다.
‘고’라는 대답에 도진은 기다렸다는 듯 속력을 올렸다.
속도가 붙자, 열린 창밖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신호에 걸려, 차가 잠시 멈춰 섰을 때.
창밖을 보던 중 길고양이 한 마리를 보게 됐다.
‘연탄아…….’
자연히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름이 있었다.
만남이라는 것이 갑작스럽듯 이별 또한 예고 없이 다가온다.
하지만 생겨난 빈자리에는 또 새로운 인연이 쌓이기 마련이고, 그렇게 쌓여 가는 것이 ‘인연’이었다.
그런 인연이 곧 ‘나’를 만드는 일부가 된다.
멀어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땐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달라진 우리 남매가 다시 만날 그날이 기대된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안녕.
《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의 작가 무기입니다.
원래 250화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니 300화 또 어쩌다 보니 309화까지 오게 되었네요.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은호와 은지의 티키타카를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수위 조절과 분량 조절이었습니다.
은호와 은지가 워낙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인지라 들리는 것을 그대로 쓴 뒤 심하다 싶은 것은 지우고, 순화할 것은 순화하며 정말 많이 쳐 냈음에도 몇몇 독자님들께서 불편함을 호소하실 땐 중도를 어디로 맞춰야 할지 고민이 많았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제 모자란 실력에 실망하신 독자님의 댓글에 상처를 받을 때도 적진 않았습니다만, 그만큼 제가 더 나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글이 업이 된 이후부터 꾸준히 남겨주신 댓글을 소중하게 읽어보고 있습니다.
이번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는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하며 유독 재치 있는 댓글이 많아 더더욱 유쾌하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인생 처음 팬 카페가 생기기도 했고 아름다운 팬아트도 받는 등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는 쓰면서 정말 많은 일을 겪은 것 같습니다.
작품의 후반 무렵에는 즐거운 일보다는 힘든 일이 조금 많았습니다.
2022년 1월, 뇌출혈 후유증으로 고생하셨던 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시고 마음을 겨우 추스를 즘이었던 3월엔 아버지의 암 3기 소식을 접했습니다.
당시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친데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도저히 연재를 이어가면서 감당할 수가 없어 긴 휴재를 결정하기도 했었습니다.
휴재기간은 나름 긴 편이었지만 주변 상황을 정리하기엔 모자란 감도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다시 돌아와 끝까지 달릴 수 있었던 것엔 제 글을 정식으로 구매해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순수하게 글을 즐겨주신 많은 독자님의 소중한 응원의 힘이 가장 컸습니다.
그런 독자님들께 잘하고 싶은 마음에 끝까지 해내려 노력했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길바닥부터 함께 사람답게 사는 것을 꿈꾸며 빛나는 별을 꿈꿨던 은호와 은지는 비로소 별이 되었으며, 두 사람은 이제 서로 각자의 꿈을 빌어 주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은호와 은지는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 전까지 각자의 삶을 살며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남매’의 이야기는 잠시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만 은호와 은지의 이야기 중에는 본편에 넣기엔 동떨어진 이야기라 떼어 놓은 이야기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현실의 힘든 상황이 정리되고 난 뒤,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면 짤막한 은호와 은지의 못다 한 이야기와 다시 만난 미래의 이야기 그리고 조카 바보(?)가 된 은호 등 외전들을 모아 다시 한 번 독자님들을 찾아뵐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동안 아직 부족한 면이 많은 저 ‘무기’를 응원해 주시고, 또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의 랑이와 지지에게 많은 관심을 보내 주셔서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시 뵐 수 있는 미래를 고대하며.
글을 통해 만난 여러분께 항상 행복한 일이 가득하시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