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08)
수십 번.
시간으로 치면 수십 년이 더 흘렀다.
경험을 바탕으로 잘 시간이 될 무렵인 것 같은데…….
도진은 뭘 하는 건지, 정신을 넘겨줄 생각이 전혀 없다.
‘느껴지는 것도 보이는 것도 없으니…….’
연탄은 당연히 도진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공허 속에서 예상으로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흐름이었다.
기나긴 시간을 또다시 반복하고 연장하며 그렇게 도달한 미래.
드디어 도진이 잠이 든 건지 다시 몸을 차지했다.
그리고 눈을 뜬 그 순간.
‘여긴…….’
눈앞에 보이는 곳은 사랑해 마지않던, 지난 ‘1년’이란 시간 속 무수하게 반복됐던 그 풍경이다.
눈앞에 보인 익숙한 풍경을 인식한 순간 환희에 몸이 떨렸다.
지갑과 휴대폰.
그 외에도 집 안과 주변 곳곳에 아득한 그분들의 흔적이 보였다.
무슨 변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나를 도와주겠다는 건가.
적어도 또 먼 거리를 이동해서 찾아갈 각오를 했건만 다행이었다.
이번만큼은 신이라 불리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시가 급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려 하니, 힘이 없어서 그런가.
풀썩.
바보 같을 정도로 맥없이 은지의 방문 앞에 주저앉아 버렸다.
다시 만나기에 멋있는 모습은 아니지만,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기에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1초라도 더 은지를 직접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아 두고 싶어서.
똑똑.
연탄은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어서 한 번 더 두드리던 그때.
문득 벽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했다.
캣 타워 위에서 뒹굴던 시기.
은지를 기다리며 자주 봤던 그 시계다.
‘새벽 1시.’
이렇게 다시 보니, 새삼 여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음을 깨달았다.
당시엔 변신이 풀리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많았건만.
그때의 내가 퍽이나 배가 불렀구나 싶었다.
이젠 변신 같은 것은 불가능한 지경이니까.
그때, 문득 시계를 봐 버린 탓일까.
시간이 늦어서 혹시나 은지가 방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면 또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반복해야 할까.
아니. 그 전에 이제 몇 번이나 더 거슬러 올 수 있을까.
미약해진 생명력을 나 스스로가 더 잘 알기에 걱정과 함께 막막한 두려움이 몰려오던 그때였다.
달칵.
다행히 문이 열렸다.
“뭐 해…….”
서 있던 은지는 내가 앉아 있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놀란 얼굴이 됐다.
좋아서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온다.
그때였다.
은지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후두둑,
뺨 위로 빗방울처럼 물들이 떨어졌다.
은지의 눈물이었다.
왜 우느냐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말도 없이 사라졌던 건 나였으니까.
“뭐야, 나쁜 놈아.”
은지가 그 어떤 말을 하든 이게 천국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좋았다.
“은지야.”
목소리가 고여 있다가 흐려지지 않고 뻗어져 나간다.
“뭐.”
그 목소리에 은지가 답해 준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이 오가는 목소리가 기뻤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듣고 싶었다.
“은지야.”
“…….”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눈물방울만 자꾸 떨어진다.
예상치 못한 키스를 받았을 땐 ‘인사’를 하겠다는 목적을 잊을 만큼 당황해 버렸다.
그래서 이번엔 반드시 ‘갑자기 떠나서 미안했다.’라고, 인사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입을 열자 튀어나오는 말은 생각과 다른 말이었다.
“……보고 싶었어.”
“나도…….”
다음 말을 이어 가고 싶은데.
은지의 대답 이후 이어진 울음소리에 차마 말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웃음소리도 듣고 싶은데…….’
하지만 그건 욕심인 걸 알기에.
조용히 도진의 손을 빌려 은지의 눈물만 닦아 줬다.
은지의 눈물이 잠시나마 잠잠해진 뒤.
그제야 난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간략하게 은지에게 설명할 기회가 생겼다.
언제 또 회귀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가슴 한편에 있었지만, 은지를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간이 영원한 척, 차분한 척 이야기를 이어 갔다.
* * *
“……헤헤.”
도진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 있는 건 연탄이가 맞는지 익숙한 바보 같은 웃음이 머리 위에서 흘러나왔다.
저녁에서 새벽이 되기까지의 몇 시간이었다.
하지만 연탄의 이야기는…….
“이 미련한……!”
정말 고작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이 순간 하나를 위해 수천 번 같은 시간을 반복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결국 잠시나마 멎었던 눈물이 다시 왈칵 터졌다.
“……그럼 지금은……, 몇, 흡, 번째, 끅 극, 인데, 끅.”
“……헤헤, 그건 말 안 해 줄래.”
숨도 못 쉰 채 겨우 흐느끼며 물었건만.
돌아온 연탄의 장난기 섞인, 씁쓸한 대답에 이번엔 울컥 화가 먼저 났다.
주먹에 힘을 실어 연탄의 가슴을 때리려던 그 순간, 손에 힘이 풀렸다.
달라진 연탄이의, 도진의 몸이 내쉬는 호흡 때문이었다.
고개를 들어 연탄의 얼굴을 뒤늦게 눈에 담은 은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황도 잠시.
은지는 차오르는 눈물 대신 입술을 꽉 깨물고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내 사랑스러운 연탄이”
“…….”
“……나밖에 모르는 미련하고, 바보 같은 내 고양아.”
“응…….”
“사랑해. 정말로 많이 사랑해…….”
이 말 한마디가 뭐라고 활짝 웃는 그 얼굴에 가슴이 벅찰 만큼 아파져 왔다.
연탄은 찬찬히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은지야…….”
나긋한 목소리와 겹쳐 오는 입술.
은지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은 은지가 눈을 감으며 연탄을 받아들이자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이번엔 후회 없이…….”
입술이 떨어지며 연탄이 입술을 달싹이자 그 움직임과 입김이 느껴졌다.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진 않았지만, 움직임만으로도 은지는 연탄이 어떤 말을 하는지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해.’
짧은 입맞춤을 하며 잠이 들 듯 눈이 감겨 가는 연탄의 얼굴에는 그 어떤 후회도 없이 편안함만 가득했다.
은지는 그런 연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끌어안았다.
“잘…… 자.”
저 감겨 가는 샛노란 눈동자의 주인이 세상에 미련 하나 남기지 않기를 바라며.
온 마음을 담아 속삭이듯 전했다.
“우리 사랑하는 연탄이, 잘, 자. 예쁜 꿈 꿔…….”
정말 이별이었다.
옅었던 호흡마저도 멈추자, 그제야 실감이 나면서 뺨 위로 끝없는 물줄기가 흘렀다.
“…….”
다행인 건지 연탄이에 대한 기억은 가려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았다.
“괜찮아.”
연탄이가 떠났다.
같은 목소리였지만 은지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너 만나겠다고 그 녀석 고생 정말 많이 했으니까.”
지금은 분명 도진 본인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도진 또한 연탄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많이 울어 줘.”
“연탄이…….”
‘연탄이를 알아요?’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목이 메어서 말이 끝까지 나오질 않았다.
은지와 닮은 면이 있기 때문일까.
도진은 은지가 하려던 이야기를 다 듣지 않았음에도 알아들은 듯 씁쓸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잠만 자면 자꾸 네가 웃는 얼굴이 보이더라.”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꿈이라기엔 자꾸 내가 검은 고양이 모습으로 나와서 이상했는데…….”
항상 품 안에 있던 바보 같은 내 고양이.
흔히들 검은 고양이는 저주에 빗대지만, 나에게 있어서 너는 항상 선물이었고 사랑이었다.
은지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는 와중에 조금 전 연탄이가 그랬듯 눈물을 닦는 손길이 뻗어 왔다.
“지금 네 반응 보니까 이제 알겠다.”
“…….”
“꿈에 나온 그때, 네 얼굴이 그 녀석이 가장 좋아하던 네 표정이었나 보다.”
도진은 은지의 눈물을 한 번 더 닦아 주었지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은지의 눈물은 계속 흘렀다.
“지금 우는 만큼 앞으로는 많이 웃어 줘라. 걔가 바라던 모습이니까.”
“윽……. 끅, 그럴 거야. 나…….”
참았던 울음소리를 입 밖으로 터뜨리자, 다시 틀어막을 수 없을 만큼 쏟아졌다.
앞으로 더 나올 것이 없을 때까지 계속 울었다.
슬픈 이별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진짜 사랑이라는 걸 배웠고, 앞으로 살아갈 목표를 찾았다.
“나 X발, X나 행복하게 살 거야…….”
겨우 편안하게 떠난 연탄이가 내 걱정에 다시 힘든 길을 돌아오지 않도록.
* * *
은지가 울다 지쳐서 잠들었을 때, 도진은 품 안에 잠든 은지를 빤히 바라봤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그만큼 사랑스럽다던가.
그 말이 빈말은 아니구나 싶었다.
단순히 외모 때문이 아닌 품에 안은 그 마음 때문에 심장이 뛰었다.
두 사람이 얼마나 깊은 인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떠나기 전까지 잠시 공존했던 시간 동안 느꼈던 그 감정.
그건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열렬함이었고 편안함이었다.
‘아.’
그러다 도진은 문득 시선이 느껴진 듯 슬쩍 고개를 들어 옆 방의 방문을 바라봤다.
“잠든 것 같은데.”
반쯤은 혹시나 해서 이야기한 건데…….
이야기를 꺼내기 무섭게 닫혀 있던 은호의 방문이 기다렸다는 듯 열렸다.
‘비켜 줘야겠지.’
도진은 아쉬운 마음을 애써 모른 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온 은호에게 은지를 넘겨 줬다.
은호는 붉게 퉁퉁 불은 은지의 눈가를 바라보며 짧게 혀를 찼다.
“그게 뭐라고…….”
연탄이 잠들었던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큰 파도에 덮쳐지듯, 잃었던 그간의 진짜 기억들이 돌아왔다.
그랬기에 은지가 왜 우는지는 알고 있고,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다만 감정의 깊이랄지, 은호가 연탄에게 가졌던 감정은 많이 쳐 줘야 미운 정이 고작.
게다가 그간 은지를 마음 고생시키고 울린 놈이 그리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그래서 아쉬움은 있으나 은지처럼 울 정도는 아니었다.
‘이젠 푹 쉬어라.’
방문 너머로 들은 이야기였으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은지 하나만을 바라본 그 정성과 희생만큼은 고마웠다.
은호는 이후 ‘다정’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다소 섬세하지 못하게 은지를 이부자리에 눕혔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나서기 전, 은호는 은지의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휴지를 뽑았다.
“으휴, 아직 애냐.”
허리를 숙인 은호는 투박한 손길로 은지의 콧물을 닦아 준 뒤 다시 몸을 일으키며 방 밖으로 나왔다.
달칵.
“……?”
은지의 방문을 닫고, 뒤늦게 고개를 들던 은호는 당황했다.
거실 이부자리에 앉아 훌쩍이던 도진 때문이었다.
도진은 뒤늦게 은지보다도 심각할 정도로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니. 은지도 아니고, 형은 또 왜 질질 짜고 있어……요.”
은호가 황당해하며 묻자, 도진은 크게 ‘쿨쩍’거리며 대답했다.
“야, 인간적으로 동생이 저렇게 서럽게 우는데 눈물이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한 거야! 그리고 은지……!”
도진의 멈춘 말에 은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도진은 눈물이 시야에 방해됐는지, 팔등으로 대충 눈물을 벅벅 닦은 뒤 말을 이었다.
“지금은 건강해 보인다 싶어서……. 다행이다. 너도, 은지도…….”
“……!”
도진이 씨익 웃자, 황당하게 도진을 바라보던 은호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