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07)
은호와 도진이 택시를 잡겠다며 밖으로 나갔을 때, 은지는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왜 그랬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분명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었다.
굉장히 그리워했었고 기다리고 있었던 순간인 것처럼 설렜었다.
그 기분에 휩쓸려 전 매니저님한테 입을 맞췄다.
하지만 분명 선명하게 떠올랐던 그 기억들은 갑자기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해 버렸다.
그리고 그걸 이은호가 봤다.
미적거리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언제나 잘 까먹는 탓에 잊지 않으려고 메모장과 녹음기는 바로바로 켜질 수 있게 해 놨다.
메모장을 켠 뒤 나는 자판을 두드렸다.
「친오빠한테 남친도 아닌 사람이랑 키스하다 걸린 기분을 설명하시오.」
괜히 생각하기 싫어서 글로 쓴 건데, 쓰고 나서 눈으로 보니 더 X 같네.
하아…….
마른세수를 하자 머리카락 하나가 딸려 오며 눈을 찔렀다.
이건 머리카락 때문이다.
“끅…….”
뭔가 그간 붙잡고 싶었던 걸 드디어 낚아챈 느낌이었다.
마치, 마치 그래.
얼마 전 휴대폰에서 본, 솜사탕을 더 깨끗하게 먹고 싶어서 물에 씻어 버린 라쿤이 된 것 같다.
이불을 치워 내며 대자로 뻗어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캣 타워로 눈을 돌렸다.
‘…….’
흐릿하게 검은색 꼬리가 기분 좋은 듯 살랑거리는 환각이 보였다.
‘석탄같이 까만…….’
무언가 떠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급격하게 몰려오는 졸음인지 어지럼증인지, 갑자기 눈이 감긴다.
똑똑.
“으, 너헝!”
번쩍.
다시 눈을 떴을 땐 창밖이 새파래진 한밤중이었다.
똑똑.
일정한 노크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렸다.
“이은호?”
비척거리며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어?’
문 앞에 있는 건, 아무도 없다?
시선을 내리자 그제야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 앞에 앉아 있는 도진이 보였다.
“뭐 해…….”
도진이 고개를 들며 웃자, 틈새로 노란 눈이 보였다.
다시 안개에 흐려졌던 기억들이 선명해진다.
‘무슨 수도꼭지도 아니고…….’
‘연탄’이라는 이름이 떠오르자 자동으로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뭐야, 나쁜 놈아.”
괜히 짜증을 섞어 화난 것처럼 말해 봤지만 돌아오는 시선은 낯뜨거울 정도로 다정했다.
“은지야.”
“뭐.”
“은지야.”
“…….”
“……보고 싶었어.”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 인사에 져 버렸다.
은지는 화는커녕 조용히 연탄이 들어 있는 도진을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나도…….”
* * *
실제 체감상 흘러간 시간은 반백 년이었나.
은지와 있는 것을 포기하고 도진의 몸에 공존할 때까지 버텨 온 시간이 말이다.
50년이었다.
사실 더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는 세질 않아서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맘때쯤 1년이 반복되는 시간의 감옥에 서서히 빈틈이 생겨났다.
처음엔 자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았던, 채 10초가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처음 깨달았던 건 되돌아온 시간이 뒤틀렸을 때였다.
잠든 은지가 아닌, 길거리에서 은호의 옷을 입고 사람의 형태로 회귀한 나.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보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던 도진이라는 그 남자.
회귀 직후 그와 정확히 또 한 번 눈이 마주쳤을 때 깨달았다.
‘드디어 성공했구나.’
결과를 모른 채 이어 온 50년도 버텼는데, 눈에 띄는 결과가 보인 이후의 시간을 버티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시 1년을 보내고.
미래의 늘어난 10초를 보고.
다시 1년을 보내고.
늘어난 10초의 뒤를 이어 늘어난 시간을 보고.
또다시 그 ‘1년’을 반복하며, 시간을 대가로 미래를 연장해 나갔다.
그걸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한 끝에 나는 차츰 5분, 10분.
조금씩 조금씩 늘려 나가, 한 시간, 두 시간 이후에는 하루 이상의 시간을 만들었다.
드디어.
드디어 이제 은지에게 닿을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이 생긴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하필 톡신인지 뭔지, 멤버의 지방 출장을 따라가서 도진은 몇 개월간 그 지방에 거주해야 했다.
꽤 긴 시간을 벌었다는 것에 들떴던 나는 지방에 있는 도진을 벗어나, 은지와 마주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고 익숙한 집을 찾아갔다.
집에 없기에 1층으로 향했더니 한창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은지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형.
형체가 없다.
은지는 아득하신 존재가 내린 처벌에 따라 나에 대한 기억이 가려졌다.
『은지야!!!』
내가 있음을 알리려고 일부러 녹음실 안에 들어가서 소리를 질러 보는 등 정말 별짓을 다 해 봤으나 은지는 끝내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뭐라도 없을까 싶어 고생 끝에 헤드셋이라도 떨어뜨려도 봤는데…….
「“이 X발 X이, 남의 집에 들어와서 X랄 하지 말고 안 꺼져!!!”」
긴 세월 동안 잠시 잊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은지는 귀신을 굉장히 무서워했었다는 걸.
때마침 시간이 다 된 건지 나는 또다시 도진과 마주치는 처음으로 돌아왔다.
거친 욕을 먹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은지를 다시 봤으니까.
하지만 보기만 하는 것으로는 갈증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래서 목표를 바꿨다.
‘은지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
하지만 미래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은지와의 인연이 흐려지면서 기존의 1년을 벗어난 탓일까.
세상에 나를 묶어 둘 수 있었던 은지와의 인연이 약해졌다.
그로 인해 세상에는 나라는 존재 자체의 의미가 흐려져, 나는 점차 힘을 잃어 갔다.
하지만 은지가 나를 보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선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야기’를 나누겠다던 그 목표를 바꿨다.
긴 반복에 내 존재가 완전히 소멸하게 되더라도 미리 하지 못했던 인사를 마무리하겠다.
그게 내 목표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1년의 세월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무수한 세월이 쌓였다.
그만큼 나는 힘을 잃었다.
도진과 공존하던 초기와 달리 도진이 깨어 있을 땐 그 몸을 차지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나약해졌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1년을 반복한 걸까.
드디어 도진이 지방에서 다시 은지와 가까운 곳으로 돌아오는 시기까지 다가왔다.
이제 시간을 하루만 더 연장해서 도진에게 주어진 ‘유급 휴가’ 기간만 이겨 내면 됐다.
은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다.
목표를 이룰 날이 머지않았다.
하지만 속이 끓게도 도진은 쉬는 날 밤을 새워 가며 온종일 게임만 했다.
그래서 꾀를 썼다.
―도진아ㅏㅏ 새끼야 우리 언제 한잔하냐?
도진이 잠든 틈을 타, 평소 놀자며 종종 연락이 오던 도진의 지인들에게 내가 대신 답을 했다.
나― 내일 오전 어때
도진의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 기회를 낚아챘다.
―오예 전도진 온다!
―야야 저 새끼 약속 쨀 수도 있어
―맹세하셈 전도진 약속 째면 백만 빵
백 만원을 잃기는 싫었는지 도진은 약속 자리에 나갔다.
녀석들은 내가 바라던 대로 밤낮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말 그대로 부어라 마셔라 놀아 댔다.
하지만 이젠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도진의 주량.
‘배에 술고래가 들었나.’
웬만하지 않고서야 쓰러지지를 않으니 몸을 가져올 수가 없다.
이래선 은지네 집으로 갈 수도 없다.
게다가 차츰 내 힘도 점점 더 약해져 간다.
나는 온갖 시도를 하며 시간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방법을 찾아냈다.
양주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까지 성공한 이후에는 몇 차례 술을 마시고 쓰러지는 데까지도 성공했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은지가 있는 동네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눈을 떠 버리면서 실패가 반복됐다.
‘왔다. 드디어.’
그렇게 몇 차례 시도 끝에 도달했다.
그리웠던 은지의 집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을 회상하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지난 시간을 ‘회귀’가 아닌 ‘흘러간 시간’이라 한다면…….
‘지금의 나는 전생의 은지를 죽이고 저주에 얽매여 지낸 그때의 배를 보냈구나.’
정확히 몇 배인지는 일부러 끔찍해서라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전 매니저님?”
그때였다.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뒤를 돌아보니 그리웠던 은지가 ‘나’를 보고 있다.
비록 내 이름은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은지의 눈에 내가 다시 ‘보인다’는 그 자체로도 나는 앞으로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내게 주어진 시간만 있다면 몇 번이라도 더 반복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했으니까.
“아, 은지다.”
이제 나한테는 남은 시간과 힘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랜만이야, 은지야.”
은지는 내게 지난 시간의 대가와 같았다.
닿으면 사라질까.
조심스럽게 은지에게 다가간 그때였다.
“연탄이…….”
알아봐 줬다.
그간의 고생이 파도처럼 몰려오는 환희에 휩쓸려 사라진다.
은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얼굴이 붉어졌다.
그 얼굴조차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멱살을 붙들렸다.
그리고 맞닿아 왔다.
“……!”
놀랐다.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이게 도진의 몸이 아닌 내 몸이길 간절히 바랐다.
조금만, 조금만 더.
나한테 주어진 시간이 있기를 빌었다.
하지만 긴 시간을 이동하며 내 힘을 모두 써 버렸고, 나는 또 한 번 시간을 거슬렀다.
새삼 나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실감해 버렸다.
“저기, 괜찮아요?”
다시 돌아온 어긋난 시간.
앞에서 놀라는 도진은 무시한 채 나는 바닥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
입술 끝에 닿았던 촉감이 여전히 남아 있는 느낌인데, 거기까지 가려면 또 몇 번이나 시간을 흘려보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욕심을 안 낼 수 있을까.
미래의 시간은 ‘1년’이라는 그 시간과 마찬가지로 이미 만들어진 시간을 내가 고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입맞춤은 몇 번이나 반복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또 은지를 만나기 위해, 미래에서 더 버틸 시간을 벌기 위해.
내가 도진의 몸을 다시 차지하는 순간까지 시간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지금까지는 내내 괴로움밖에 없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마지막 자락에 은지의 입맞춤이라는 단 열매가 생겼으니까.
괜찮았다.
다만, 이제 내 힘이 미약해져서 그게 문제였다.
이젠 점차 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진다.
나는 본래 자연에서 난 존재로 주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도진의 몸을 직접 차지하여 그 눈으로 보지 않으면 파악이 힘든 수준이 됐다.
게다가…….
‘걸렸나.’
언젠가부터 ‘시선’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은지와의 인연이 다시 연결되면서 아득히 높은 분께 ‘감옥’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을 걸린 것 같다.
당연히 또 한 번 재판에 불려 갈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걸린 이후에도 내게는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처음엔 아득히 높으신 분께서도 내 정성에 감동이라도 하신 걸까 싶었다.
하지만 거듭 생각해 보니, 소멸 직전에 다다를 때까지 이렇게 ‘반복’하는 것.
그것 이상의 벌이 있을까.
‘죄인이긴 하나, 내릴 수 있는 벌이 없다.’
이편이 재판이 열리지 않는 이유에 더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자학적이고 쓸쓸한 농담을 즐기는 것도 잠시.
나는 다시 그간의 고단함이 씻겨 내려가는 은지의 입맞춤을 맞이했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인사를 전하기 위해.
은지가 있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