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06)
이 별과 이별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을 나온 뒤.
나는 곧장 집으로 가려다 말고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최근 갑자기 생긴 버릇 중 하나였다.
집 안에 혼자 있을 때면 종종 멍하니 주인 없는 캣 타워만 보고 있는데, 그러고 있는 힘없는 내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였다.
누가 알아볼까, 모자를 눌러쓰고 긴 무지 티의 소매를 걷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은호가 회의를 끝내고 나올 때까지 운동 겸 동네나 돌고 있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약 세 바퀴쯤 돌았을 때였을까.
“후우……?”
땀으로 이마가 촉촉하게 젖을 때쯤, 우리 집 대문 앞에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전 매니저님?”
“아, 은지다.”
전도진 매니저였다.
목소리가 들리자 매니저 오빠가 이쪽을 돌아봤다.
‘전 매니저님이…… 이렇게 웃던가?’
낯선 얼굴이었다.
분명 매니저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헤실거리는 웃음인데, 나는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오랜만이야, ……은지야.”
전 매니저님의 눈가에는 점이 없다.
근데 왜 눈 아래 점이 있는 누군가가 떠오를까.
그 순간, 전 매니저가 눈웃음을 풀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눈웃음에 가려진 샛노란 눈동자는 미소가 풀어지면서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노란 눈을 마주했을 때였다.
“연탄이…….”
기억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쏟아지는 기억에 울었다가 웃었다가 내가 미친 것만 같았다.
전 매니저가 내가 서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몸은 분명 전 매니저님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속에 있는 건 그간 내가 차마 버리지 못했던 방 안의 캣 타워의 주인.
그리고 처음으로 심장이 아리다는 감정을 알게 해 준, 내 첫사랑.
연탄이었다.
이어진 행동은 본능에 가까웠다.
처음엔 말도 없이 사라졌던 일에 화가 나서 멱살을 잡아챘다.
하지만 그만큼 그리워했던 탓일까.
맞닿은 입안으로 짙고 특이한 양주의 향기가 퍼져 간다.
* * *
은지의 입술이 닿고 잠시 후.
충격적인 일에 술이 깨기라도 한 건지 도진의 노랗던 눈동자가 본래의 짙은 갈색으로 되돌아왔다.
‘내, 내가 왜 은지 씨랑…….’
입술이 맞닿아 있는 와중에 상황을 자각하게 된 도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닿아 있는 은지를 뿌리치자니 입술로 흘러들어온 눈물의 짠맛이 도진을 굳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훅 목덜미를 낚아챈 손에 의해 도진은 은지와 떨어졌다.
은지가 얼마나 강하게 쥐고 있었던 건지 옷의 멱살 부분이 굉장하게 구겨져 있었다.
도진은 구겨진 제 목 쪽을 바라보다 뒤늦게 고개를 들어 목덜미를 낚아챈 사람을 확인했다.
위에서 떨어지는, 싸늘하다 못해 살벌한 은호의 시선을 마주한 도진은 생각했다.
‘……조졌다.’
* * *
회의를 끝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은……지?”
넌 아직도 집에 안 들어가고 뭐 하냐?
……라고 말을 하며 다가가려던 그때였다.
집 앞에 느껴지는 인기척에 당연히 은지일 거라 생각하며 확인도 하지 않고 입을 열었던 건데, 고개를 든 순간.
집 앞에서 뜨겁게 키스를 하는 한 연인이 있었다.
‘X친…….’
은호의 시선이 차게 식었다.
은호는 굳은 얼굴로 몸 방향을 돌렸다.
별안간 혈육의 열렬한 연애를 생눈으로 보게 된 오빠의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까.
과장 하나 없이 검지와 중지를 들어 제 눈을 찌르고 시간을 되돌려서 못 봤던 걸로 넘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잠깐.’
그렇게 몸을 돌리던 그때였다.
은호가 퍼뜩 조금 전보다 더 놀란 표정을 하며 다시 집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뒤늦게 은지와 입맞춤을 나누고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게 됐다.
“……도진 형?”
혈육의 연애도 적잖은 충격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 상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라는 것도 충격이긴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충격이었던 건 현재 은지와 도진과의 나이 차이는 7살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저, 도둑놈이……!’
* * *
집 앞에서 있었던 사고(?) 이후 꽤 긴 시간이 흘렀다.
NRY 직원들 사이에서는 은호와 은지가 사는 집을 마치 성역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딱히 은호와 은지가 권위적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평범한 2층 옥탑방이지만 CCTV와 온갖 보안장치로 무장된 무시무시한 ‘연예인’의 집이자, 대표님의 자식들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도진은 오늘 처음으로 그 성역처럼 여겼던 은호와 은지의 집에 들어오게 됐다.
최첨단으로 무장된 겉모습과 달리 내부는 오히려 시간이 멈춘 듯 허름한 편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도진은 주변을 둘러볼 생각은 무슨.
평소보다도 더 싸늘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은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은호가 딱히 무릎을 꿇으라고 한 적은 없었다.
도진 스스로 무언가 잘못됐다고 여겨서 한 행동이었다.
“이은지.”
“…….”
10분간 은지는 은호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었다.
하지만 연탄과 관련된 기억은 도진의 눈동자에서 노란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모습을 감춰 버렸다.
이건 그 결과였다.
갑자기 평소 친하지도 않던 매니저에게 키스를 갈긴 자신.
이유조차 모르고 키스를 당한 도진.
그리고 그걸 본의 아니게 맨눈으로 봐 버린 친오빠.
“회, 회의는 잘 끝났어?”
은지는 곧 터질 것 같은 붉은 얼굴로 모른 척 말을 돌리려고 했다.
“가시나야, 말 돌리지 마라.”
이게 만화라면 은호의 주변에 순간 검은 아우라가 솟아오르지 않았을까.
안 그래도 날 선 분위기에 살벌한 기운이 더해졌다.
은지는 얌전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닫았다.
“그래서 둘이 딱히 사귀는 사이는 아닌데, 집 앞에서 그 X랄을 하고 있었다고?”
“……응.”
“니 진짜 도랐나?”
평소 최대한 욕을 자제하던 은호였지만 오늘따라 찰지게 사투리가 엮인 욕이 절로 흘러나왔다.
진심으로 화가 난 듯한 은호의 목소리 탓인지 은지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하하. 귀엽……어?’
한편, 도진은 그런 은지를 보며 귀엽다고 생각한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화들짝 놀랐다.
솔직히 남자인 이상 호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일은 일이었기에 공과 사 구분은 확실하게 하고 있었다.
그 저질 친구가 농담인 양 꺼낸 말처럼 생각해 왔던 ‘길’에서 엇나가지 않기 위해서.
‘그랬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은지는 비교하자면 ‘같은 과’랄까.
은지의 성격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이상형은 아니었다.
자신이 워낙 모자란 면이 많아, 자신과 반대되는 진지하고 어른스러운 여성이 이상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 못 했다.
처음엔 ‘술김에 내가 와서 사고를 친 건가?’라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입을 먼저 맞춘 건 자신이 아니라 멱살을 쥔 채 힘으로 당기고 있던 은지였다.
은지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도진과 눈조차 못 마주치고 있었다.
“그럼 왜 그러고 있었는데? 그것도 집 앞에서.”
은호는 한숨을 내쉬며 묻자, 은지도 도진도 입을 다물었다.
* * *
키스라는 행위 자체가 불편했는지 아니면 집 앞에서 그러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그 장면을 직접 봐 버렸기 때문일까.
‘그냥 전체적인 상황이 거지 같아서 그런가.’
은호는 자신조차 알기 어려운 기분을 안은 채 은지와 도진을 번갈아 바라봤다.
형과는 그다지 사이가 가깝지는 않았다.
회식 때 소소하게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
하는 행동이 은지랑 비슷해서 정이 비교적 많이 가는 사람인 건 사실이었다.
‘미안한 느낌 같은…….’
도진을 보면 딱히 잘못한 게 없음에도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드는 등.
친밀함과 함께 의미를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도 들곤 했다.
‘7살 차이.’
은지는 이제 20살이다.
‘……왜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뭐, 아무튼.
나이 차이에 잠시 눈이 돌아간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연애 중이라면 상관없었다.
어차피 은지 인생이니까.
처음엔 단순히 이야기나 할까 싶어서 불렀던 거였다.
그랬는데…….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 일단 우리 사귀거나 그런 사이는 아니거든……?”」
은지는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도진 형 또한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부터 당황한 모습이라 딱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진지하게 ‘요즘 20살은 저런 건가?’라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더 이야기해 봐야 딱히 이해될 만한 답이 나오진 않을 것 같은데…….’
일단 형은 집에 보내기로 결정을 내렸다.
“일단, 알겠어요. 형, 갑자기 끌고 올라온 건 미안해요. 타지에서 고생하고 오래간만에 얻은 휴가인데…….”
이제 집에 가서 쉬라는 이야기를 이어서 꺼낸 그때였다.
형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겨우 입을 뗐다.
“저기 은호야…….”
“……?”
“나 차를 두고 왔거든…….”
“형, 일산 살지 않아요?”
“어? 어. 어어. 맞아. 근데 내가 말해 준 적 있었나?”
어?
그러고 보니 그랬다.
형에게 딱히 어디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었다.
근데 나는 어떻게 일산이라는 걸 알았을까.
의문을 가진 순간 무언가 떠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떠올리려던 것은 그것을 막으려는 안개에 뒤덮이듯 흐려졌다.
당장 급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난 다급하게 떠오른 잡생각을 치워 내며 물었다.
“우연히 어디서 들었나 봐요. 아무튼 그건 됐고, 형, 그럼, 여기까지 택시 타고 왔어요?”
“그…… 그랬나 본데?”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으면 그런 거지 애매하게 ‘그랬나 본데’는 뭐야‘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펼쳐진 일 때문일까.
나는 형의 ‘그랬나 본데?’라는 대답을 한 번 더 곱씹게 됐다.
처음엔 집에서 함께 나와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콜택시 회사는 죄다 전화를 안 받았다.
기분 탓이려니 생각하며 일단 밖으로 나갔다.
길가의 택시를 잡아서 형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니 소름 돋을 정도로 차 한 대조차 지나가지 않는 상황이 펼쳐졌다.
그러다 한참을 걸어, 겨우 택시를 잡았을 때였다.
“어? 나, 지, 지갑이랑 휴대폰 없어졌어.”
이번엔 뜬금없이 주머니에 잘 넣어 놨다는 지갑과 휴대폰이 없어졌다.
“기사님, 계좌 번호 주시면 제가 보내 드릴게요.”
답답한 마음에 그냥 택시를 태워 보내고 내가 돈을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오늘 진짜 뭔가 있나?’ 의심이 들 정도로 이번엔 휴대폰 인터넷 뱅킹이 갑자기 먹통이 됐다.
“어허, 뭐 하는 겁니까. 거, 탈 생각 없으면 문 닫아요.”
기사님은 결국 화를 내며 떠나셨다.
은지는 먼저 자고 있으라며 집에 두고 나온 탓에 얼떨결에 남자 둘이서 저녁 산책이라도 나온 모습이 됐다.
“내가 진짜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
“알고 있어요.”
황당하리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 연속으로 펼쳐지니, 도진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형에게 거실에 이부자리를 펴라며 방에 있던 여분의 이불을 건넸다.
“어? 지갑이랑 휴대폰…….”
그러고 나자 갑자기 사라졌던 휴대폰과 지갑이 다시 주머니에서 나왔다.
황당했다.
분명 사라졌다고 했을 때, 내가 직접 봤기에 정말 없었다는 건 단언할 수 있었다.
형이 마술이나 마법 같은 걸 부릴 줄 모른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형, 사실대로 말해요. 원래 이럴 작정이었죠.”
“아니야. 진짜! 나, 나 정말로 억울해!”
표정을 보아하니 일부러는 아닌 것 같았다.
앞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은 탓일까.
시간이 벌써 새벽 1시가 넘었다.
인제 와서 다시 택시를 잡기도 애매한 시간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시간도 늦었으니까 그냥 자고 여기서 출근해요.”
“어? 아, 응. ……고맙다.”
“별말씀을. 잘 자요, 형.”
“으응. 너도.”
나는 방 안으로 들어오며 방문을 닫았다.
문득.
집 안에 ‘셋’이 있다는 점에서 왠지 이유 모를 그리운 느낌이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었는지 감상은 그다지 오래가진 않았다.
* * *
고요해진 집 안.
거실에서 부스럭거리며 이부자리를 편 도진은 이불을 덮고 누운 그 순간 곧바로 ‘녹다운’ 되었다.
술은 정신없는 상황 때문에 깼다지만 겪은 일이 많아서 그런가.
곧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겹치자 뒤늦게 피곤함이 몰려오면서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금세 깊이 잠이 든 건지 도진이 코를 골듯 숨을 깊이 들이쉰 그때였다.
번쩍.
도진의 눈이 뜨였다.
다시 눈을 뜬 도진의 눈동자는 창문 너머 달빛에 선명한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