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02)
『어?』
몸이 사라질 때만 해도 이젠 정말 죽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땐 어쩐지 주변이 익숙했다.
은지의 방이었다.
“움믐…….”
게다가 옆에는 뒤척이는 은지가 잠들어 있다.
잠결에 발차기로 날려 버린 이불까지.
‘진짜, 은지다.’
나는 조심스럽게 은지의 곁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 봤다.
그 순간 눈앞에 보인 건 감격스러운 이 기분과는 어울리지 않는 복슬복슬한 까맣고 작은 손이었다.
‘아.’
고양이 모습인 걸 인식하고 나자 어쩐지 기분이 민망했다.
나는 잠시나마 모습을 바꾸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은지의 옷들이 걸려 있는 곳 아래, 비상용으로 은호의 옷을 숨겨 뒀던 상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상함을 느낀 건 그때부터였다.
‘어?’
상자가 없다.
문득 다시 주변을 돌아보니 이곳은 내가 알고 있는 은지의 방이 아니다.
은지가 직접 조립해 줬던 캣 타워도.
민망하긴 했지만 적응되고 나서는 편했던 모래 화장실도.
물소리가 듣기 좋았던 작은 폭포가 있던 신기한 물그릇도.
정확하게는 내 물건이 모두 사라진 은지의 방이었다.
그때였다.
내 심장에 품은 단 하나
승자가 되리라는 나만의 기도 야
성공을 바란다면 빌어 봐 신도 여
난 네가 바라 왔던 너만의 신전 야
은지의 휴대폰에서 들어 본 적 없는 낯선 음악이 울렸다.
은지의 휴대폰에서는 주로 은지가 만든 곡들이 나오곤 했었다.
하지만 이건 들어 본 적이 없는 곡인 데다 은지의 노래가 아닌 웬 남자의 목소리만 들렸다.
아프다고 외쳐 봐야 들어 주지 않아
내 한 몸 불 질러 불꽃이 피어올라
뒤이어 가사가 이어졌을 때.
나는 뒤늦게 그 곡이 은지가 자주 흥얼거리며 좋아하는 곡이라던 ‘시스투스’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알던 휴대폰 노래는 저런 게 아니었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싶던 그때였다.
은지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번쩍 상체를 일으켰다.
진심으로 너무 놀라서 순간 심장이 바닥을 찍었다.
은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휴대폰을 찾아 귓가에 가져댔다.
“에, 음, 냐, 여보세여.”
은지는 눈은 떴지만 잠은 덜 깬 상황인 듯 비몽사몽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은지의 전화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지야, 나다.
“…….”
―아침부터 미안한데, 은호가 전화를 안 받는구나.
“에.”
―은지 너도 자고 있었구나. 너는 앞으로 활동하려면 6시에는 어? 적어도 정신 차리도록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거 어? 내가 습관을 들이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을 했는데 어떻게 아직도…….
대표의 잔소리가 길어지자 어느새 은지는 눈을 감은 채 앉아서 잠들었다.
―은지야! 듣고 있냐!
“아, 에. 스흡. 드, 들었어요.”
눈이 반쯤 뒤집힌 은지는 침을 대충 닦아 내며 누가 들어도 걸릴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하아…….
아니나 다를까, 전화 너머의 대표도 알아챈 건지 한숨이 길었다.
하지만 그도 나쁜 사람은 못 되는 듯 이내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얼른 잠 깨고, 지금 은호 깨워서 1층으로 같이 내려와.
“넹.”
―잠 깨라고 했다.
“넹.”
스르륵.
대답과는 달리 은지는 전화를 귓가에서 떼어 내며 동시에 다시 누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대표는 눈에 훤히 이 장면이 보인다는 듯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너 지금 안 내려오면 앞으로 고기는 없을 줄 알아.
“…….”
전화 너머 대표의 말에 은지는 머리가 베개에 닿기 직전에 비척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전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아……. 귀찮은데.”
이후 은지는 퀭한 얼굴로 푹 한숨을 내쉬며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은지가 발을 내디딘 그 순간.
빠각.
웬 큰 소리가 들렸다.
투둑.
은지가 눈썹을 들썩이며 발을 들자, 부서진 빗 조각이 떨어졌다.
조금 전 그 단 한걸음에 은지의 이불에 널려 있던 플라스틱 빗 중 하나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아, X발…….”
그때, 간담이 서늘한 정도로 낮게 깔린 목소리에 나는 부서진 빗에서 은지의 얼굴로 시선을 올려다봤다.
꼴깍…….
자주 느끼는 거지만, 자고 일어난 뒤 은지의 눈빛은 정말 ‘정말 정말’ 무섭다.
탈탈.
은지는 발에 붙은 부서진 빗 조각을 대충 털어 낸 뒤 다시 비척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방문을 열면서 긴 머리를 손가락으로 간단히 정리한 은지는 깊은숨을 들이켜며 소리쳤다.
“오빠!”
우렁찬 은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닫힌 은호의 방은 열릴 기색조차 안 보였다.
잠귀가 어두운 녀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였다.
쾅!
“야, 이은호!”
우리 불같은 은지의 성질이 어디 갈까.
은지는 은호의 방문을 걷어차며 시원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그때, 은호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은지를 보며 물었다.
“뭐야.”
“뭐냐니, 낮술이라도 했어?”
은지가 신경질적으로 묻자, 오히려 은호 쪽에서 황당하다는 듯 헛숨을 터뜨렸다.
“너, 네가 왜 여기 있어?”
“기껏 깨워 줬더니 아침부터 왜 X랄이야. 일어나기나 해! 대표님이 내려오래!”
“어?”
“‘어?’는 무슨.”
고기 안 사 준다는 말이 어지간히 은지의 성질을 긁었던 걸까.
은지는 내가 알고 있던 모습보다 훨씬 사나운 얼굴을 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얼빠진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정신 차리고 나오기나 해!”
은지는 자신이 열어젖힌 은호의 방문을 그대로 두고서 다시 제 방으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였는지, 방에서 다시 나온 은지는 조금 전과 다르게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후였다.
“아, 이은호 뭐 해. 신발 신게 길 막지 말고 빨리 꺼져 봐.”
“어? 어…….”
한편, 은지가 다시 방으로 돌아간 후 은호는 밖으로 나갈 때까지도 무슨 이유인지 엄청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하며 얼이 빠져 있었다.
이후 은호와 은지가 1층으로 내려가고, 나는 이전과 다름없이 집 안에 혼자 남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황이라던가, 익숙하지만 낯선 집 안의 모습이라던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던 회사가 갑자기 다시 1층에 있다는 것 등.
모든 게 이상했다.
낯설었다.
모든 것들이 말이다.
당시에는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후, 시간은 흘러 콘서트 날이 찾아왔다.
그리고 내 시간은 되감긴다.
다시 눈을 뜬 나는, 드디어 상황을 이해했다.
내 심장에 품은 단 하나
승자가 되리라는 나만의 기도―
들어 본 전화 벨소리.
『……그대는 허락되지 않은 시간을 탐낸 죄로 육신을 잃고 그대가 손댄 그 시간이 감옥이 되어 잊히리라.』
나는 재판을 받아, 처벌이 행해진 상태였다.
신(神).
수천수만의 신들에게도 날 때부터 타고나는 계급이 있다.
본래 영물이었던 나 역시도 신은 신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득히 높으신 분들의 수하일 뿐.
본디 아득한 존재에 비해 한낱 미물에 불과한 내가 그분들의 말씀을 감히 거역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여, 현재 내가 있는 곳은 내가 뒤틀었던 그 ‘시간’ 속이다.
은지의 끊어졌던 생을 이어 가기 위해 훔쳤던 ‘그’ 시간 속.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켜본 바로는 이것은 내가 겪었던 것과 다르게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은지는 의미 없이 캣 타워를 사서 조립을 하는 등.
내가 없음에도 대표에게 물어, 함께 내 물건은 사 오는 것은 여전했다.
은지는 일전에 은호에게 회귀했음을 눈치채고 먼저 물었다고 했었다.
하지만 1년간 이 시간에서 은호와 은지는 ‘회귀’와 관련된 그 어떤 단어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사라진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나는 끝까지 ‘나’라는 존재를 마주칠 수 없었다.
물론 그 사실 외에도 많은 실험을 거치며 상당한 정보를 얻었다.
나는 은호와 은지에게 보인다.
하지만 은호와 은지가 고개를 돌리거나 내가 모습을 감추면 두 사람은 금세 나를 본 적이 없다는 듯 행동했다.
지금껏 지냈던 집에서 1년을 보내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 소망이 소박해서 그런가.
나는 이 형벌을 나름의 방법으로 즐겼다.
불만이 없는 이유는 단 하나.
다시 은지의 모습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나는 나아가지 못하지만, 은지는 나아가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일 년이라는 같은 시간을 계속 반복했다.
세 번째까지는 은지와 은호한테 걸리지 않으려고 별짓을 다 했다.
괜히 은지에게 무슨 피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네 번째였던가.
“어?”
“앗……!”
추억에 잠겨 거실에 대자로 뻗어 있다가 갑자기 집에 들어선 은지에게 딱 걸렸다.
솔직히 설레기도 했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나를 알아볼까 싶어서.
“뭐지, 나 뭔가 하려고 했던 거 같은데 뭐였……. 아, 휴대폰.”
기대는 무너지고, 은지는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 내 몸을 통과하며 제 방으로 향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지금 무(無)형의 존재라는 걸.
그 어떤 짓을 해도 이 시간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그 순간에는 조금 아득한 존재께서 말씀하신 그 ‘감옥’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하지만 이런 걸로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는다.
이미 나는 수천 년을 한 존재만을 지키기 위해 헤매며 버텨 왔었으니까.
적어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한텐 귀한 일이라서 괜찮았다.
조금, 아주 조금 씁쓸할 뿐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 조금 더 편안하게 집에서 머물렀다.
사람의 형태가 되어 당당히 거실에 앉아 은지를 구경하는 등, 나는 이 형벌을 내 나름대로 즐기게 됐다.
그렇게 여섯 번째 일 년이 흐르고, 일곱 번째 일 년이 찾아왔을 때 생각했다.
‘은지한테도 들켜도 괜찮은데, 그럼 그냥 나 이젠 당당하게 밖에서도 은지 따라다녀도 되는 거 아닌가?’
난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은지와 은호가 회의를 할 때나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나, 시간이 끝나 갈 땐 콘서트도 직접 구경할 수 있었다.
무대 위 은지는 TV라는 화면으로 볼 때보다 멋있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은지와 마찬가지로 은호 그 녀석도 ‘창부대신’의 관심을 받는 만큼 무대에서 제 끼를 뽐내는 걸로 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운기가 막혀 있던 매듭마저 풀어진 지금은 더더욱이 말이다.
어지간했으면 은지만 보려던 내가 그놈만 얼이 날아간 채 쳐다봤을까.
아마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시선이 사로잡히는 게 당연한 지경이었다.
여덟 번째에는 이제 두 사람을 쫓아다니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즐겼다.
이제 은지는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외울 정도였지만, 주변으로까지 눈을 넓히니 반복되는 이 세계도 꽤 놀거리가 많은 감옥이 됐다.
쌓여 가는 시간만큼 나는 점점 경계가 풀어졌다.
이젠 모습을 들켜도 ‘어차피 잊으니까~’라며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저주’ 뮤직비디오 촬영장에 따라간 날.
이번 역시 알아서 잊으려니.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며 스태프들이 메고 있는 이름표도 따라서 걸어 보고 모자도 써 보는 등 은지를 구경하며 신나게 놀고 있던 그때였다.
은지는 곧 물속에 들어가야 하는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듀오 때, 입수 장면 괜찮게 나왔던 것 같은데, 은지가 물에 빠지면서 염색되는? 뭐, 이런 느낌은 어떨까요.”」
은호는 ‘듀오’ 촬영 때 혼자만 수중 촬영했던 것이 억울했는지 ‘저주’ 촬영 전 회의 당시 은지의 입수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면서 추가된 장면이었다.
참 여전하다면서 두 사람을 지켜보며 웃고 있던 그 순간.
“아아악!!! 이은호 개싫어! 진짜!”
“아!”
어……?
“죄, 죄송합니다.”
은지가 나한테 사과를 했다.
“괜찮, 습니다.”
진심으로 당황했다.
은지와 몸이 맞닿았으니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게다가 이상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보통 채 수 초가 지나기도 전에 나를 인식한 인간들은 금세 허공을 보며 ‘뭐였지?’라며 갸웃거린다.
하지만 지금 은호는 나를 보고 있다.
‘이, 이러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