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300)
외전: 상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다.
……정확한 이야기도 아니다.
본디 신이라는 것은 천계에서 난 분도 있으나 믿음과 부름으로, 마음으로 피어난 존재들 또한 덧없이 많다.
신의 존재를 선악으로 나눈 것 역시 인간으로, ‘우리’에게 있어 선악은 의미가 없었다.
인간은 시간을 센다.
시간을 관리하는 존재는 먼 시간부터 있었다.
시간이란 평등하나 인과에 속해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는 자들 역시 적잖이 많다.
간절한 바람은 때론 운명을 바꾼다.
하지만 뒤틀릴지언정 정해진 운명적인 사건과 시간까지 뒤틀진 못한다.
은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난 거짓을 말했다.
이편이 덜 아파할 테니까.
사실 우리의 첫 만남은 은지가 물을 내어 줬던 그때가 아니었다.
내가 갓 태어난 영물로 날 적, 힘은 넘치지만 아둔하기만 한 어린 날.
그때의 난 주린 배를 채울 고기가 필요했다.
때마침 내 구역을 지나가는 오누이가 나타났고, 본능에 따라 일어난 일이었다.
처음은 배를 채울 심산으로 한입에 누이를 꿀떡 씹어 삼켰다.
그게 악연의 시작이었다.
누이가 죽고, 사내는 누이의 핏자국을 보며 오열했다.
그리고 기도를 올리더라.
「“서로의 운명을 살다가 마지막 생에는 다시 누이와 내가 오누이로 만나자. 그땐 내가 누이를 지킬 수 있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게, 내가 더 어른으로…….”」
난 그 사내를 구경했다.
낯설었기 때문이다.
호환이라 불리는 두려운 일을 겪었음에도 이토록 태연하게 기도를 올리는 자는 흔치 않았으니까.
거기다 지금 생각하면 고작 열셋을 넘긴 나이였던가.
하지만 그건 제 목숨을 걸고 싸우리라는 맹세였는지, 짧은 기도를 마친 사내는 달라진 눈빛으로 제 몸만 한 나무토막을 들고 달려들었다.
고작 나뭇조각에 이 두꺼운 가죽이 벗겨지겠나 했건만…….
오만이었다.
달려들던 사내는 방향을 틀어 내 턱 아래를 노렸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야 다가올 수 없는 거리였다.
주둥이 아래, 연약한 살을 꿰뚫어 버린 날카로운 나무토막.
사내는 아무 나무나 집어 든 건 아니었는지 나무에는 독성이 있었다.
상상한 적 없던 고통이 몰려오며 눈앞이 하얘졌다.
몸부림쳐지는 통증은 격하게 내 이성을 헤집었다.
‘죽여 버리겠다. 찢어 버리겠어.’
고통에 눈이 멀었던 나는 한입거리도 되지 않는 사내를 잔인하게 물어뜯었다.
사내는 찢겨 가면서도 제 누이의 흔적만 남은 검붉은 웅덩이를 보며 붉은 피 눈물을 흘렸다.
「“내 숨을 앗아 가라, 터주야. 하하. 한낱 미물인 내 피와 혼이 당신껜 족쇄가 되어…….”」
쿨럭.
내던져진 사내의 입 밖으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내가 이겼다.
그렇게 생각했다.
독기를 품으며 웃는 사내의 얼굴을 보기 전까진.
「“당신은 여섯 생을 거칠 동안 내 죄 없는 누이에게 그 죗값을 갚아야 할 것이다.”」
갈빗대가 부서지는 매 순간순간 사내는 피를 토하며 기어이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에서야 말을 끝맺었다.
악에 받친 유언이었다.
처음엔 비웃었다.
결국 내 배 속의 양분이 되어 버렸고 그래 봐야 한낱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시했던 그것은 ‘한’이었으며, 그건 곧 언약이 되어 지독한 저주로 남았다.
본래 영물과 신령과 악령이 되는 것은 한 끗 차이.
그것 역시 인간에 의해 인간에게 이로운 존재와 아닌 존재로 나뉜다.
그 아이의 저주가 아니었다면 나는 일찍이 ‘신’이라는 존재가 되어 육신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갔을 것이다.
하늘로 오르지 못한 존재는 지상의 것과 같이 나약해지며 서서히 소멸할 뿐이었다.
나는 사내가 엮은 언약에 따라 수천 년이라는 긴 시간.
본능에 따라 누이를 찾아 이승을 떠돌았다.
시간이라는 수천 년의 감옥에서 나는 아이가 내게 건 저주를 따라야만 했다.
겨우 만난 두 번째 생의 누이는 장군이 될 운명으로 태어났다.
장성하여 장군이 된 그가 출정 명령을 받았다.
하나 승기가 없는 출정이었기에 나는 그의 아내가 되어 그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여인보다 나라에 충심을 바친 그는 막 혼례를 올린 저녁 늦은 밤에 떠나 버렸다.
이후 돌아온 건 유서 하나.
나는 또다시 사라진 누이를 찾아 긴 시간을 헤맸다.
세상은 더이상 과거의 사람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무시하던 인간에 의해 내 부모이자 힘의 원천이었던 산조차 모습을 감췄다.
나는 거대했던 힘을 잃고 그간 무시하던 한낱 미물이 되어 저잣거리를 떠돌았다.
저잣거리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여 하루하루 연명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더는 자연의 것을 함부로 먹을 수 없었다.
더러운 것들이 많아졌기에 독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깨끗한 물이 고팠다.
죽음이 고플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남은 저주는 생사도 모르는 누이와 엮여, 나를 죽지조차 못하게 막아섰다.
그러다 세 번째로 우리는 만났다.
너무 많은 것들이 뒤바뀌어 생김새로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전생에 단단히 엮인 인연만큼은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그들이 이번 생에는 특별하게도 수천 년 전처럼 오누이로 태어난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 여섯 생인 것 또한 말이다.
긴 기다림 끝에 나는 한때는 먹잇감이었던.
또 한때는 정 하나 없지만 부부의 연을 맺었던 그 혼이 깃든 현세의 ‘누이’를 마주 봤다.
“물만 줘요?”
그녀는 휴대폰이라는 물건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곤 잠시 후 집으로 돌아 들어가더니 다시 나온 그녀의 손에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맑은 물이 든 물그릇이 있었다.
처음으로 이번 생에는 내 뜻으로 그녀를 지켜 주고 싶었다.
사소한 호의였으나 내겐 절실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그녀를 뒤따른 곳에는 사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곳까지 갔을 땐, 은인이자 겨우 다시 만난 누이가 생명이 꺼져 가며 차게 식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혼을 거두어 갈 듯 대기하는 사신들 탓에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이토록 무력함을 깨닫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도롯가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제발, 누군가 이곳을 찾아 주길.
제발, 그녀를 살려 주길 간절하게 바랐다.
내 소리를 들은 지나가던 차량에서 사람이 내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사이렌 소리와 함께 차량과 사람들이 도착했다.
축 늘어진 그녀는 그들의 손에 실려 떠났다.
하지만 그녀를 뒤따르는 사신들은 내 방해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그녀를 쫓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긴 기다림이 허망하게, 그녀의 마지막 생이 끝나 버렸다.
이제 내가 지킬 것도, 내가 이곳에 얽혀 있을 이유도 없어졌다.
떠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탓이었을까.
시작은 호환으로 얽힌 악연이었으나 시간이라는 것이 그러했다.
미운 정도 정이라, 영물의 이름을 내걸며 나는 사신들을 물렸다.
호의의 보답으로 사신들을 대신하여 누이를 위해 저승의 안내자 역을 자처했다.
하지만 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수천 년 전에도 그러했듯 그 사내의 환생 또한 만만치 않았다.
내 턱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무토막을 박아 넣을 때 알아봤다만.
저놈은 더럽게도 독한 놈이다.
이번 생엔 동생이 된 제 누이를 쉬이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마음이 같았다.
나 또한 그녀가 이렇게 허무하게 마지막 생을 보내길 바라지 않았다.
수천 년을 그녀 하나만 기다렸는데, 이렇게 보내면 지켜 주고 싶었던 내 마음은 둘째 치고서 쌓인 원한은 어디에 풀어야 하는가.
그동안의 시간을 보상받고자 했던 내 복수는 시작도 못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저 핑계가 필요했던 것 같다.
복수를 핑계로 시간을 훔쳐, 두 시간을 하나로 엮고 뒤틀어 인연을 맺었다.
‘복수하겠다’라던 결심은 함께한 시간에 재가 되어 사라지고, 원망과 지루함 또한 눈 녹듯 녹아내려 버렸다.
재가 날아가고 남은 것을 돌아보니 처음부터 애(愛)였더라.
복수라고 했으나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된, 케케묵은 감정.
하지만 때가 와 버렸다.
아득히 높은 존재에게서 인간의 시간으로 한 해를 버텼으면 나름대로 잘 버틴 것 아니겠나.
그래, 그러면 된 거다.
* * *
『남쪽의 어버이와 서쪽의 품…….』
『연탄.』
판결을 내리는 아득히 높은 존재께서 나를 불쾌하게 여기는 기운이 풀풀 풍겼다.
하지만 어차피 결과는 하나이기에 두려울 필요가 없었다.
『그런 구닥다리 이름은 버렸으니 연탄이라 불러 주시오. 나는 연탄이오.』
아득히 높은 존재께선 끝내 한낱 미물인 내 청 따윈 들을 가치도 없다 여긴 듯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빚어진 아이여, 그대는 범해선 안 될 것에 손을 댔다. 그대와 함께한…….』
『죄지은 것은 나 하나요.』
나는 그림자 속에 너를 감추고 홀로 대가를 치를 것이다.
복수를 핑계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끝은 연모하게 된 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득히 높은 존재께선 미물의 말은 믿지 않는 듯한 기색이었으나 그림자를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육신을 잃고 그대가 손댄 그 시간이 감옥이 되어 잊히리라.』
판결이 내려졌다.
소멸까지 생각했는데, 이만하면 다행이다.
‘오늘이 콘서트라 했는데.’
다녀온 이후에 신난 은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끊어 내려야 끊어 낼 수 없도록 엮인 은지의 새로운 시간에 뒤틀린 존재는 나 하나뿐이었으니.
오히려 나 같은 것은 차라리 잊고 사는 편이 은지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는 좋은 일일 것이다.
『…….』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아득히 높은 존재가 소리쳤다.
재판은 끝이 난 듯, 아득히 높으신 존재들이 안개와 함께 흩어졌다.
눈앞에는 다시 익숙한 집 풍경이 나타났다.
나는 항상 은지와 함께 누웠던 이불 위에 몸을 뉘었다.
고양이의 모습은 사람과 닮은 모습으로 바뀌고 서서히 흐려져 간다.
기나긴 여생이었다.
하지만 남은 것은 허무하리만큼 찰나구나.
이 순간 아쉬운 건, 단 하나였다.
소박하게 단 하나만을 바랐다.
은지에게 미처 하지 못한 끝인사 같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랬다간 우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 그건 보고 싶지 않다.
‘그저 나는…….’
매일 밤 은지가 아무렇게나 덮은 이불이 더 흐트러지지 않도록 옆구리에 붙어 몸을 만 채 눈을 감는 순간.
지금은 그저 그 순간이 그리웠다.
흐려지는 몸을 보고 있으니 이제 정말 끝이란 것이 실감 난다.
정을 넘어선 감정으로 인해 여기까지 와 버렸지만, 후회는 없었다.
첫사랑이었던 네가 살아 있으니까.
나를 희생하여 이어 낸 너의 새로운 삶에는 부디 후회 없이 행복하기를…….
서서히 흐려지던 그의 몸은 그렇게 사라졌다.
* * *
흔적
은호가 나간 뒤, 족히 여섯 시간이 지나고서야 은지는 다시 눈을 떴다.
더 잠을 청하자니 은지는 어쩐지 이불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 같은, 왠지 모를 불쾌한 기분에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간단하게 점퍼 하나를 걸친 뒤 슬리퍼를 끌며 옥상으로 나온 그때.
에어컨 실외기 옆에 놓여 있는 낡은 스티로폼 상자에 눈길이 갔다.
‘고양이가…….’
고양이가 쓰기 좋아 보이는 상자다.
은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은지는 천천히 입을 벌리더니 혼잣말처럼 작은 목소리를 흘렸다.
“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