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99화 (299/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99)

[요즘 왜 지지는 활동을 안 할까?]

└ [소속사 공지 보니까 잠시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다던데]

└ [어디 아프대?]

└ [이유는 안 알려 줬어 ㅠ]

└ [ㅠㅠㅠ 어디 아픈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ㅠㅠㅠ]

[은호 이번에 나온 곡 있잖아 이별 노래 같은데 실화일까?]

└ [나는 오히려 실화라면 은지 실화일 거 같은데?]

└ [왜?]

└ [원래 이응이들 곡 대부분이 지지가 작곡 랑이가 작사인데 이번에 퍼펙트 미는 지지가 작사 작곡 편곡 다 했대]

└ [오... 예리한데?]

└ [살짝 핀트 나간 이야기긴 한데, 나만 우리 이응이들 재능에 가슴 웅장해지냐 지금까지 곡들 거의 다에 지지랑 랑이 이름 빼곡한 거 ㅈㄴ 간지인듯]

└ [ㅋㅋㅋㅋ ㅇㄱㄹㅇ]

[<사진 첨부> 우리 랑이 요즘 리즈 갱신이야 ㅠㅠ 빛난다 빛나

(무대 위 땀 흘리며 뛰고 있는 은호 사진)]

└ [무대 설 때마다 리즈 갱신 중 ㅋㅋㅋㅋ]

└ [난 아쉽던데 ㅠ]

└ [왱?]

└ [지지랑 같이 있을 때 그 남매 아우라가 없어서」

└ [그건 ㅇㅈ 근데 지지 작곡 엄청 많이 한다던데 또 좋은 곡 나오려면 쉴 때 쉬는 게 맞는 거 같아!]

└ [이거 맞음 ㅋ 오히려 전처럼 쓰러졌다는 소식보단 이게 낫잖아 ㅋㅋ]

└ [ㄹㅇㅠ 쓰러졌다는 기사 뜨고 며칠 뒤에 또 쓰러졌다는 거 보고 내 심장 미국 갔다 왔잖아 ㅠㅠㅠㅠ]

└ [다른 그룹이었으면 애들을 얼마나 굴린 거냐고 소속사에 한마디 할 텐데ㅋㅋㅋㅋ]

└ [난 기사 보자마자 빛창석 씨 안 쓰러졌나 걱정했닼ㅋㅋㅋ]

└ [엇 나도ㅋㅋㅋㅋ]

└ [난 타 팬 출신이라 이번에 솔직히 여기선 어떤지 아직 잘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은지 언니 휴식기 엄청 의외였어]

└ [왱?]

└ [솔직히 지금 이응 인기 장난 아니잖아? 창석 씨 입장에선 콘서트 끝나고 한창 행사 많이 들어올 텐데 그거 다 포기하고 아티스트 건강 챙긴다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휴식기를 준다는 게….]

└ [아버지의 마음 ㅠ]

[지지 보고 싶다... 요즘 이응이들 오튜브 활동도 줄어서 소식 알기도 힘드니까 내 현생이 힘들어 ㅠㅠㅠ]

└ [(링크) ]

└ [랑이 말고 지지 ㅠ]

└ [(링크) <[하이라이트] 은호가 직접 말하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이응’ 남매의 매운맛 토크>]

└ [어 이건 좀 좋다 ㅎㅎ 감사]

└ [미쳤 헐 이걸 지금까지 왜 안 봤지]

└ [님 만수무강하시고 로또 당첨되세요]

흔한 ‘E―FAN’의 자유 게시판의 일상이었다.

* * *

성공적인 콘서트를 마치고 한 달의 시간이 흐른 뒤,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출근하던 창석은 골목에 들어서자 걸음을 멈췄다.

“응……?”

사옥 입구 앞에 멀끔한 회색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감기라도 걸린 듯 훌쩍이며 앉아 있다.

새벽부터 취객인가 싶었으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창석의 표정과 걸음이 그대로 굳었다.

“뭐 하나?”

“……형님.”

창석의 목소리가 들리자,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창석을 돌아봤다.

창석이 예상했던 대로 어석배 대표였다.

어석배는 창석을 보자 급작스럽게 감정이 격해진 건지, 왈칵 눈물샘이 넘쳐흘렀다.

“왜 이래, 징그럽게.”

창석이 진심으로 질겁하자 어석배 대표는 상처받은 듯 시무룩해졌다.

창석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형님.”

어석배가 입을 뗀 순간, 창석은 골목 어귀에서 인기척을 느낀 듯 뒤를 돌아봤다.

“거,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누가 볼까 봐 무섭다.”

“예…….”

어석배도 그제야 밖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라도 생각한 듯 눈물을 닦으며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NRY 사옥 안으로 들어갔다.

“비품 주문한 게 아직 도착을 안 해서, 이런 것밖에 없어. 자.”

“형님이 주시는 건 다 감사하죠.”

커피 믹스 한 잔을 내어 준 뒤 창석은 어석배가 앉아 있는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뒤늦게 어석배 얼굴을 자세히 살피자 어석배는 최근 잠을 설친 건지 안 그래도 짙은 눈 그늘이 훨씬 더 심해져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내 자식 같이 아껴 온…….”

어석배는 씁쓸한 눈으로 컵을 보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어석배가 입을 뗀 순간, 창석은 누구의 소식인지 곧장 이해했다.

최근 직원을 통해 에이슬의 유학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제 눈엔 여전히 어린 애 같기만 한데…….”

“덩치는 그렇긴 한데, 곧 성인인 고등학생이 ‘어린 애’는 아니지.”

“……이슬이가 갑자기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고 해외로 가서 다른 가족들과 지내겠다고 합니다.”

“에이슬한테 다른 가족이 있나?”

“이슬이 친아빠는 세상을 떠났는데, 그 친가 쪽 가족들이 저보단 못하지만, 이슬이를 책임지고 싶다고 의사를 밝혀 왔었어요.”

창석은 문득 서로에게 기대 자란 은호와 은지를 떠올리며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이슬이는 인복이 많구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죠.”

“…….”

“뭐 아무튼, 지금까진 이슬이의 선택으로 저랑 지냈는데, 이번에 이슬이가 그쪽에서 지내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제 욕심엔 그걸 막고 싶은데, 안 될 일이겠죠.”

“안 될 일이지. 본인이 택한 거잖나. 해외로 영원히 떠나는 것도 아니고.”

냉정한 창석의 대답에 어석배는 아쉬운 눈길을 보내며 소심하게 질문을 덧붙였다.

“형님, 그럼 톡신이, 아니지.”

비교 대상이 잘못됐는지 어석배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잠시 후 다른 대상을 떠올린 듯 멈췄던 말을 다시 이어 갔다.

“형님은 만약 제 상황처럼 은호 씨랑 은지 씨가 떠나겠다고 해도 같은 의견이십니까.”

“당…….”

그럼, 당연하지.

그렇게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창석은 최근 은호와 은지의 달라진 모습을 떠올리며 말을 멈췄다.

은호는 요즘 예전과 달리 뭐랄까.

날아다닌다.

예전부터 재능은 있던 녀석이었지만 항상 은지의 뒤만 보고 있달까.

본인의 길을 잡지 못했다는 느낌이었는데, 최근 콘서트 이후로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크게 변했다.

E―UNG는 새 앨범을 발표하기로 했으나 발표하지 못했다.

대신 정식 앨범에 실으려던 곡을 디지털 앨범으로 먼저 발매하여 은호만 활동하고 있다.

덕분에 은호는 최근 폭주 기관차처럼 상승 곡선을 타고 있었다.

활발한 활동만큼이나 차트에 줄줄이 올라 있는 은호의 솔로 곡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현재 은지는…….

은호가 좋은 쪽이라면 은지는 반대로 좋지 않다.

‘하…….’

창석은 은지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져서 한숨이 먼저 흘러나왔다.

현재 외부에 활동하는 건 은호 혼자다.

은지는 현재 집 안에서 작곡하는 것에만 빠져 있다.

예전엔 은호와 은지는 마치 불과 얼음처럼 성격이 전혀 다른 느낌이었는데, 최근 은지는 불길이 꺼지고 남은 물웅덩이처럼 식은 느낌이다.

좋은 말로 하자면 ‘차분해졌다’지만, 그것보다는 ‘어두워졌다’라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았다.

콘서트 날 은호와 달리 은지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은지가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달라졌다.

병원이라도 가자며 이야기를 꺼내 봤지만, 다가가려 하면 할수록 은지는 문을 닫아 버렸다.

“……보내 줘야겠지. 본인 뜻이라면.”

창석은 고민 끝에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다.

창석의 대답에 마음 정리를 하려는 듯 어석배 대표는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하다 보니 창석 또한 고민이 깊어진 듯 목을 축이려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지금의 창석은 은지가 그저 닫은 문만 다시 열어 준다면 뭐든 해 줄 수 있는 기분이었다.

* * *

아침에 눈을 뜬 은지는 제 방 한구석을 차지한 캣 타워의 꼭대기를 버릇처럼 바라봤다.

“…….”

영혼이 증발한 것 같은 은지의 죽은 눈이 방 안을 훑었다.

고양이를 키운 적도 없으면서 방 한구석을 차지한 캣 타워.

정성껏 채워 둔 모래 화장실.

널려 있는 고양이 장난감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벽 구석 아래 헤진 상자 안에는 은호의 옷과 바지가 놓여 있다.

무언가 많은 일이 엮인 것 같은 상자인데, 이상하게 그걸 보면서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게 이상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다.

무언가 알 것 같은데 모르겠다.

내 감정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기괴한 기분.

은지는 다시 눈을 감았다.

오늘도 깨어나기보다 눈을 감고 잠을 더 청하는 쪽을 택했다.

* * *

은호는 모자를 눌러쓰고 운동화를 신으며 홀로 출근 준비를 하고 있다.

문을 열고 나서려다 말고 은호는 고요한 은지의 방을 걱정스럽게 돌아봤다.

“야, 이은지.”

“…….”

“나, 갔다 온다.”

방문 너머의 은지는 대답이 없었다.

고요한 집을 뒤로하고 은호는 밖으로 나섰다.

은지가 저렇게 된 건 콘서트가 끝난 직후, 집에 돌아온 순간부터였다.

문을 열자, 은지는 갑자기 제 가슴을 퍽퍽 때리며 흘러내렸다.

「“왜 이래!”」

놀라며 물었는데, 은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저었다.

은지는 그날 저녁 밤 내내 울었다.

울다 지쳐서 탈진할 때까지 계속.

다음 날 이야기를 전해 들은 대표님과 슬기 누나와 현우 형이 찾아왔지만 겨우 방문 밖으로 끌어낸 은지에게 들은 이야기라고는 ‘나도 모르겠다.’라는 것뿐.

그날 은지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간 후 마음과 함께 방문도 닫아 버렸다.

콘서트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온 그날.

‘평소와 달랐던 점이 있나?’

몇 번을 되새겨 봐도 무엇 하나 떠오르는 것은 없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누구라도 말을 해 줬으면 좋겠건만.

당사자인 은지는 닫힌 입처럼 방문까지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편, 방 안에서 아무 일도 안 하는 건 아닌 듯 클라우드에는 매일 새로운 곡들이 적으면 네 곡에 많을 땐 열 곡 가까이 쌓여 간다.

몇 번이고 바라봐 줘 보고 웃어

몇 번이고 안게 해 줘 안고 싶어

분명 행복했던 시간이었는데

너로 인해 배운 감정이었는데

그랬던 것 같은데

은지는 매일 지금의 감정을 담은 듯한 신곡들을 올리고 있었다.

출근길에 그 곡들을 듣는 건 전담 작사가로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남은 것은 비어 버린 허공이야

가슴 한가운데가 뚫린 것만 같아

허전함을 달래려 건반을 눌러 봐도

공허에 의문을 가져 봐도 네가

떠오르지 않아 그게 너무 아파

은지의 노래를 듣고 떠오른 가사를 끄적여 은지에게 보내면 바로 다음 날.

빠를 땐 몇십 분을 채 넘기지 않고 은지는 그걸 흥얼거리며 대충 녹음한 뒤 다시 클라우드에 올린다.

그중에는 내가 쓴 가사를 비슷한 음절이지만 다른 단어로 바뀐 부분 또한 몇몇 있었다.

최근 은지가 바꾼 가사들을 보면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렸는지 자꾸만 ‘비어 있다’, ‘잃어버렸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가사가 많다.

하지만 정작 무엇을 잃었는지는 본인조차 모르겠다고 하니, 지켜보는 처지에선 답답하기만 했다.

“…….”

“왜? 무슨 문제 있어?”

운전 중 은호의 한숨 소리를 들은 현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은지 걱정돼서 그래?”

“뭐, 그런 건 아닌데…….”

“아니기는. 다 보여. 안절부절못하는 거.”

“…….”

덤덤하게 속을 꿰뚫는 현우의 말에 은호는 그제야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 모른다고만 하니까,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더 답답해서.”

“스스로 이겨 낼 문제인 거겠지.”

“그런가.”

“은지가 너를 찾을 때 그때 곁에 있어 주면 충분할 거야.”

“하여간 이은지. 갑자기 사춘기가 왔나. 여럿 걱정시키기는…….”

은호는 탓하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던 슬기와 현우는 알고 있었다.

은호가 말한 ‘여럿’ 중 가장 속이 문드러지는 사람은 오히려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은호였으니까.

“같이 휴식기를 가지는 편이 좋았을까?”

“아뇨.”

“하지만 요즘 너무 무리하는 것 같은데…….”

슬기가 걱정스럽게 묻자, 은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난 지금 나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거라서, 걱정할 필요 없어. 난 괜찮아, 누나.”

0